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35화 (35/173)
  • < 처음이지? (2) >

    “골이에요-!!”

    "이건 크죠!"

    도훈의 킥은 수비벽을 넘어 무지개 같은, 누군가에겐 무지 개같은 궤적을 그리며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늘은 가만히 있었다.

    도훈이 잘 차서 넣었을 뿐.

    공이 골문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프랑스 선수들은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전의를 상실케 하는 골이었다.

    쿵! 쾅! 쿵! 쾅!

    도훈은 이미 킥을 찬 순간, 코너 플래그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왜였을까.

    아마 그걸로 경기는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골을 넣은 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이 기쁨을 표출하고 싶었다.

    환희가 피부를 뚫고 나오려 하고 있었다.

    “백도훈입니다!”

    촤아아아-

    도훈이 무릎 슬라이딩을 하며 두 팔을 벌렸다.

    그 앞엔 방방 뛰는 국민들이 환호로 답하고 있었고.

    “예에에-!”

    “와아아앗-!!”

    미친 순간이었다.

    “도훈아!”

    “끝까지, 정말 네 대회다. 네 대회야!”

    도훈에게 달려들어 포효하는 선수들.

    정말 대회 시작부터, 결승전에서마저 승부를 결정짓는 막내라니.

    모두가 도훈에게 진정으로 감사를 표했다.

    “후우.”

    헝클어진 머리로 겨우 동료들에게서 빠져 나온 도훈.

    도훈은 하늘을 향해 두 검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스승님. 제가 스승님의 가르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90분을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한 기가 도훈의 몸 안을 돌고 있었다.

    사자의 이빨이 뽑혔다.

    깃발이 꺾였고, 왕이 왕좌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새 깃발이 꽂혀 바람에 펄럭였다.

    “자!”

    “이거 차면 끝날 것 같은데요.”

    뻐어어엉-!

    시간은 막바지로 흘렀고,

    강현무의 골 킥은 마지막을 알리는 축포가 되었다.

    “삐익, 삐익, 삐이이익-!”

    마침내 경기 종료, 아니 대회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

    “와아아아-!!”

    터치라인에 모여 휘슬만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 선수들과 코치들이 만세를 부르며 그라운드 위로 뛰쳐 나왔다.

    “대한민국, 우승! 역대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하는 순간입니다!”

    “정말 잘했어요, 우리 선수들. 아, 장합니다.”

    삼삼오오 모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선수들.

    방방 뛰며 만세를 부르는 선수들.

    서로 부둥켜 안는 선수들.

    각자의 방법으로 금메달, 정상의 자리에 올랐음을 기뻐하는 대한민국의 선수들.

    “프랑스도 강했습니다.”

    “준우승, 은메달. 잘 했어요. 음바페와 뎀벨레를 가지고 준우승했지만, 잘한거죠 뭐.”

    프랑스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그라운드를 빠져 나갔다.

    이 축제는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다.

    몇몇 선수들은 패배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주저 앉아 눈물을 보였다.

    “...”

    음바페는 한참이나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익숙치 않다.

    기뻐하고 있는 게 왜 자신이 아니고 저들인지.

    왕관이 왜 자신의 머리가 아니라, 저들의 머리에 씌워져야 하는 것인지.

    음바페는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그라운드를 빠져 나갔다.

    “참, 왠지 모르게 베이징때가 생각나네요. 그 때 아마 4강전때 였나요. 호나우지뉴의 브라질과 메시의 아르헨티나가 맞붙었죠. 당시 호나우지뉴는 와일드 카드로서 무조건 금메달을 노렸지만, 메시에게 격파 당했었습니다. 아, 지금 그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요. 음바페에게서 호나우지뉴가 보이고, 백도훈에게서 메시가 보이기 때문일까요.”

    “사실 이번 대회의 메시가 될 것은 음바페로 모두가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무조건 음바페의 프랑스가 우승할 것이다라는 말이 많았잖아요?”

    “그랬죠. 아, 하지만 까고 보니 아니네요. 백도훈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고요. 금메달입니다, 금메달!”

    유에파 유스 리그도 우승을 하긴 했지만, 그건 솔직히 맛도 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6경기 모두 전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며 여기까지 왔고,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다.

    사실상 첫 우승.

    이런 기분인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월드컵을 우승했을 때, 음바페는 이것보다 더 기뻤겠지.

    그렇다면 이해도 된다.

    왜 녀석이, 아니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우승에 목을 메는 것인지.

    솔직히, 그 어떤 때보다도 기뻤다. 동굴에서의 그 어떤 때보다도.

    그 이윤 아마도,

    “도훈아!”

    “네가 딴 금메달이다 이건!”

    “아뇨, 다같이 딴 거죠. 정말 감사합니다, 다들.”

    “요 애늙은이 진짜! 하하!”

    혼자만의 기쁨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장하다! 멋지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고생 많았다!”

    이 더운 날 끝까지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에 목소리를 높여줘, 여기가 도쿄인지 서울인지 모를 정도로 만들어준 국민들에게 인사하는 선수들.

    그저 축구 선수들이 메달을 땄을 뿐인데 왜 이들이 기뻐할까?

    아니었다.

    그건 모두의 메달이었고, 모두의 기쁨이었다.

    기쁨은 함께 할 수록 배가 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감사합니다!!”

    다같이 손을 맞잡고 큰 절을 올리는 선수들.

    도훈은 처음으로 느꼈다.

    우승이란 건 정말로 기쁜 경험이라고.

    또한 맛을 봤기에 더욱 더 갈망하게 되었다.

    앞으로, 더 큰 무대에서, 아니.

    그 어떤 무대에서라도 최고의 승리와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결승전은 이렇게, 대한민국이 우승후보 프랑스를 2대0으로 제압하고 마침내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며, 저희는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 이 곳은! 도쿄 국립 경기장입니다!”

    도훈이 이끈 대한민국이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축구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ㆍㆍㆍ

    -6경기 전 경기 득점, 14골 4도움 백도훈, 모든 공격 부문에서 지표 ‘압도적 1위’

    ㄴ안봐도 걍 1위라는 거 알음. 음바페도 상대 안되더만 ㅋㅋㅋㅋ 얘는 무조건 빅 클럽 예약이다

    ㄴ와일드 카드도 아니고 심지어 팀 막내가 모든 걸 혼자 다함.. 밀란이랑 라이프치히만 땡잡았네. 1년만 뛰고 이피엘 가자!

    ㄴ이피엘을 왜 가냐 라리가를 가야지 ㅋㅋㅋ

    -전 세계 외신도 백도훈 주목... “17세 소년이 일본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게 만들었다”

    ㄴ런던 때 동메달 받는 거 보면서도 감동이었는데... 도쿄에서 당당히 금메달이라니 선수들 진짜 장하다!!

    ㄴ이번 올림픽 때문에 경기장 새로 지었는데 정작 일본은 조별 광탈하고 우리가 금메달 ㅋㅋㅋ 애국가 울릴 때 나도 벅차 오르더라

    -축구 결승전, 최고 시청률 27.8%... 3사 중계 합치면 50%에 육박, 전국민적 관심

    ㄴ저녁 시간대도 최고였고 경기 내용도 최고였으니.. 앞으로 축구 인기 더 오를 일만 남았네.. 백도훈은 광고 5개 정돈 예약한 거 아니냐 ㅋㅋ

    ㄴ진짜 마지막에 우리 선수들 쥐나면서까지 뛰는 거 맴찢 ㅜㅜ 그 와중에 우리 작은 뽀시래기 도훈이 땀에 젖은 거 왤케 멋있냐며 ㅜㅜ

    도쿄 국립 경기장에서 태극기가 가장 높은 곳에 계양되고, 애국가가 크게 울려 퍼지는 모습은 많은 국민들을 감동케 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투지를 보였던 선수들은 많은 국민들을 울게 했고, 금메달을 목에 건 앳된 선수들의 해맑은 미소는 국민들을 웃게 했다.

    그리고 그 금메달의 주역들이 8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야, 애늙은이.”

    “예?”

    어느 새 애늙은이가 애칭이 되어 버린 도훈.

    출국장으로 나가기 전, 이승우가 도훈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제 네 시대가 될 것 같다.”

    “뭔 말이에요?”

    이승우는 목에 걸고 있던 목베개를 도훈의 목에 걸어 주었다.

    팬에게 선물 받은 것인지, 알록달록한 색깔로 ‘뽀시래기’ 라고 적혀 있는 목베개였다.

    “이걸 왜..”

    그리고 출국장의 문이 열리고, 선수들이 발을 내딛는 순간.

    “꺄아아악-!”

    “도훈아아악-!”

    “백도훈-!!”

    유명 아이돌이 입국할 때나 들릴 법한 소녀들의 함성 소리가 출국장을 가득 메웠다.

    “이거 받아주세요!”

    “제꺼도요!”

    “아,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당황스러운 수준의 환영 인파였다.

    도훈에게 쏟아지는 손들엔 팬들이 준비한 선물들이 가득.

    유독 많은 여성팬들의 관심에 도훈은 팬들의 눈도 못 마주친 채 선물들을 받아들고 얼른 길을 빠져 나왔다.

    [작.뽀 빛도훈]

    [☆백도훈남☆ 결혼하자]

    [일당백도훈♥]

    팬들의 플랜카드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리는 도훈.

    “꺄아악!”

    “웃는거 봐!”

    그 미소에 팬들이 괴성을 지르자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도훈은 고개를 떨궜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싫지만은 않은 이 기분.

    아아.

    이것이 인기라는 것인가.

    “인기 터지네, 애늙은이.”

    “부럽다, 부러워. 막내 때문에 우린 찬밥이네 아주?”

    말은 짓궂게 하면서도, 쑥쓰러워 하는 막내를 바라보며 아빠 미소를 짓는 형들.

    이어서 금메달을 입에 문 포즈로 단체 사진을 찍고, 대한축구협회의 간부들이 나와 선수들과 악수를 하며 그 동안의 노고를 격려했다.

    “정말 잘 해줘서 내가 고맙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간부 중 하나인 허정무는 도훈을 끌어 안아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다음으론 인터뷰가 진행 되었다.

    김 감독이 먼저 나서 우승 소감에 대해 이야기 하고, 몇 가지 질문들에 답을 했다.

    이어서 선수들이 인터뷰를 하고, 도훈의 차례가 돌아왔다.

    “백도훈 선수 앞으로 나와주시죠.”

    “꺄아악-!”

    도훈이 마이크를 받았다.

    도훈의 차례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 모든 기자들이 손을 들었고, 결국 시간 관계상 몇 개의 질문만 골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출국하실 때 환영을 받으며 돌아오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 대로 금의환향 하셨습니다. 금메달에 대한 소감 한 마디 해주시죠.”

    “일단 저희 감독님, 코치님, 의무 선생님들, 그리고 동료 형들과 다 같이 노력한 끝에 금메달을 따게 되어서 매우 기쁘고요. 개인적으로도 제가 했던 말도 지켰고, 제 실력의 70퍼센트 정도는 보여드린 것 같아 나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6경기에서 14골을 터뜨리셨습니다. 단연 대회 최고의 선수셨는데, 실력의 70퍼센트만 보여주셨다는 건가요? 그럼 100퍼센트를 발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100퍼센트를 발휘했다면..”

    도훈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웃음이 아니라, 당돌한 17살의 재기발랄함에 감탄하는 웃음.

    소녀팬들 역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도훈이 말을 이었다.

    “그건 저도 어떻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더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훈도 웃으며 마이크를 넘겼고.

    하지만, 방금한 말이 농담은 아니었다. 100퍼센트 진심이었지.

    워낙 날씨와 일정 탓에 체력적 부담이 심한 정상적이지 못한 토너먼트였고, 도훈도 나름 처음으로 참가하는 큰 대회였기에 망정이지.

    100퍼센트 모든 걸 다 발휘했다면 지금같은 드라마는 없었을 지 모른다.

    정말 너무도 싱겁게 금메달을 따버렸을지도.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시 팬들의 환호성과 함께, 대표팀 선수들은 경호원들의 보호 아래 각자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 뒤 해산했다.

    “후우.”

    협회에서 준비해 준 차에 올라타 한숨을 내쉬는 도훈.

    목에 걸린 금메달.

    차까지 몰려온 수많은 팬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도쿄에서의 기억들.

    기억에 남을만한 대회였다.

    ㆍㆍㆍ

    “백씨! 백씨 어딨어!”

    자신을 찾는 반장의 목소리에도 못들은 척 자재들을 정리하는 백씨.

    또 뭘 시키려고 찾는건지.

    “아, 백씨! 아들 찾아왔어, 좀 나와봐!”

    “뭐? 도훈이가?”

    그러나 아들이 찾아왔다는 말에 백씨는 고개를 갸웃이면서도 얼른 1층으로 내려갔다.

    푹 쉬어야 할 아들이 공사판엔 왜 찾아왔다는 건지?

    “아버지!”

    “아니, 웬 일이냐?”

    “저 금메달 땄는데, 한 턱은 내야죠.”

    도훈은 양 손에 든 음식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집에서 쉬지 뭐한다고 나왔냐.”

    “쉴만큼 쉬었는데요, 뭐.”

    최고급 한우 도시락을 돌리고, 싸인까지 쫙 돌린 도훈이었다.

    "김씨, 고거 구기지 말고 딸내미 갖다 줘. 요즘 얘가 아주 여자애들한테 인기잖여."

    아버지는 자꾸만 괜히 왜 왔냐고 하시면서도 어깨가 으쓱하신 모습.

    그 뒤 부자는 잠시 공사가 마무리 되어가는 건물을 구경했다.

    “왜, 노가다꾼들이 우스개 소리로 그런 말 하잖냐. 저 건물 내가 지은거다, 저 빌딩 내가 지은거다. 근데, 말이야 맞는 말 아니냐. 건물은 다 이렇게 지어지는거야. 이 건물도 따지고 보면 내가 지은거지.”

    “대단하시네요.”

    아버지가 일 하는 현장에 와본 건 처음.

    그러니 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일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드리자,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신이 나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지가 지었으니 이 건물이 아버지 거네요.”

    “지은 놈이 임자인가. 돈으로 사는 놈이 임자지.”

    씁쓸하게 느껴지는 아버지의 말.

    “그럼 제가 이 건물 아버지걸로 만들어 드리죠, 뭐.”

    “뭐? 짜식이.. 말만이라도 고맙다.”

    “말만 아닌데.”

    정말 말로만 하는 말 아닌데.

    도훈은 미소를 지었다.

    "됐다. 내일 모레 바로 그 독일로 가는거냐?"

    "예."

    "대회 끝난지도 얼마 안됐는데, 좀 더 쉬지."

    "올림픽은 끝났어도, 이제 새 시즌이 다가오니까요. 끝이 아니에요. 올 해는 이제 시작이죠."

    뜨거웠던 도쿄의 여름은 끝이 났다.

    그러나, 더 뜨거운 유럽의 여름이 도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훈에게 올림픽은 올 해의 시작일 뿐이었다.

    < 처음이지?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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