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34화 (34/173)

< 처음이지? (1) >

“...”

도훈은 코너에 몰린 채 서 있었고,

“...”“...”“...”

프랑스 선수들이 코너를 둘러싼 채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보고 있었다?

왜일까.

당장에 달려들어 공을 빼앗아도 모자랄 판에.

하지만, 그 순간 누구도 선뜻 도훈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누구 하나가 먼저 달려들기를 기다리듯 프랑스 선수들은 순간 경직이 되었다.

“처리 해야죠!”

그것도 잠시. 곧바로 프랑스 선수들이 달려 들었다.

물론 지금이라도 밖이든 프랑스 진영 쪽이든 차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 프랑스의 공이 되어 버린다.

안 그래도 지금의 흐름은 너무나 위험한 상황.

다시 공격권을 주게 되면 그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그 흐름을 끊어야 한다고 도훈은 판단하고 있었다.

‘여길 헤쳐 나간다.’

패스를 줘봐야 누가 받더라도 걷어내기 급급할 것이다.

그건 안된다.

이 곳을 빠져 나가면서도 공을 넘겨주지 않는 방법은 오직 자신이 가지고 나서는 수밖에 없다.

무모한 판단은 아니다.

할 수 있으니 하려는 것이다.

이기기 위해서.

아무도 할 수 없는 그 역할을 도훈이 해야 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경기를 바꿀 뻔한 흐름을 절단한다.

아무것도 아닌 상황같지만, 어쩌면 지금이 승부처일지 모른다고 도훈은 생각했다.

‘깃발을 꺾는다.’

파아앙-!

도훈이 뛰었다.

프랑스 선수들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가는 도훈.

워낙에 좁은 공간이라 동료들도 바라만 볼 뿐 도와줄 수가 없다.

“흐으읍-”

그리고 충돌 직전.

도훈이 숨을 가득 들이 마셨다.

여기서 부터는 순식간이다.

모든 기를 두 발에.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도훈은 유령이 되었다.

그 두 다리 사이에서 번개가 휘몰아 쳤으며, 촘촘히 서 있던 프랑스 선수들 누구 하나가 도훈을 막아내지 못했다.

설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뚜, 뚫고 나왔습니다..!”

“백도훈!”

도훈은 더 이상 코너에 몰려 있지 않았다.

도훈은 어항을 뚫고 바다로 나와 있었다.

“큭...!”

그러나 순간 흐려지는 눈앞.

심한 어지러움이 몰려 왔다.

순식간에 엄청난 기를 소모했으니 당연한 일.

이 정도 어지러움은 도훈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지.

“가!”

뻐어어엉-!

있는 힘껏 공을 차낸 뒤 쓰러지는 도훈.

90도 기울어진 세상.

한 쪽엔 푸른 잔디가, 한 쪽엔 어지러운 세상이 펼쳐져 있다.

어지럽다.

하지만, 도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역습입니다!”

“이승우!”

마지막 힘을 짜내 차낸 패스를 향해 이승우가 정확히 달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으니까.

“후우..”

도훈은 대자로 드러누워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우-!!”

“끄아아..”

잠시 후 들려온 탄성 소리에 도훈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승우가 머리를 감싸쥐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역습이 골까지 연결되진 못한 모양.

그래도 코너킥으로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이것으로 사활을 건 상대의 공격 시도는 끊어낸 것이니.

상대의 도박을 막아냈고, 흐름을 꺾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벵상. 준비해라.”

“옙.”

프랑스의 블랑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수비수인 벵상 카멜을 투입할 준비를 했다.

도박은 실패했다.

한 번 실패한 도박은 이제 성공률이 50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젠 다시 도박을 하는 게 수비를 보충해 버티는 것보다 못해진 것이었다.

아! 거기서 골대라니.

블랑 감독은 하늘에게 외면당하는 기분이었다.

“왼쪽 공격수 사무엘이 나오구요, 중앙 수비수 벵살 카멜이 들어 갑니다. 음.. 이렇게 되면 4-3-2 정도의 형태로 갈 것 같네요. 아니면 뎀벨레의 위치에 따라 4-4-1인데. 최전방에 음바페를 두고, 그렇죠. 뎀벨레가 우측 미드필더로 내려가네요. 4-4-1 의 형태입니다.”

울며 겨자먹기.

지고 있는 입장에서 공격의 숫자를 줄여야 하는 심정이란.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음바페가 있다는 것일 것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믿음 정돈 가질 수 있으니.

하지만,

“그렇죠. 우리 선수들 여유를 찾고 있습니다.”

“아주 좋아요. 시간은 여러모로 우리 편입니다. 방심만 안하면 돼요.”

단순히 공격 숫자 하나가 없는 게 꼭 공격에서만 불리함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 한 명이 없다는 것.

상대에게 압박을 가할 사람이 하나 없다는 것이고, 상대의 패스를 끊을 사람 하나가 없다는 것이다.

맞물리고, 맞물린다.

단순히 한 명이 없을 뿐이지만, 필드에 남은 나머지 열 명은 그 열 명 모두가 자신의 곁에 한 명이 없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천히! 아무도 없어.”

“여기.”

한국은 천천히 공을 돌렸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한 명이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한국의 편이었다.

계속해서 공을 돌리며 상대를 뛰게 하고, 한 발 더 뛸 수밖에 없는 상대는 빨리 지치게 된다.

가뜩이나 오늘 경기는 체력 싸움이었다.

20일도 되지 않는 기간에, 그것도 폭염에 가까운 날씨 속에서 6경기째를 치루고 있는 양 팀이니. 틈이 날 때마다 이온음료로 목을 축이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템포를 여유롭게 가져가는 것은 도훈으로서도 고마운 일.

조금 전의 일기당천같은 돌파로 기 소모가 컸던 도훈은, 천천히 기를 회복하며 뛰었다.

전반전은 그렇게 흘러 갔다.

간혹 한국의 두드림이 골문을 열뻔 한 장면도 있긴 했으나 아쉬움에 그쳤고, 음바페를 위시로 한 프랑스의 역습 역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진 못했다.

“삐익, 삐이익-!”

“네, 나쁘지 않은 전반전이었습니다. 전반 막판에 그 찬스에서 한 골을 더 넣기만 했더라면 뭐 더할 나위 없었겠으나, 괜찮아요. 우리에게 나쁜 요소가 지금은 전혀 없습니다.”

드레싱 룸으로 돌아오자 마자 체력 회복을 위해 곧바로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

김 감독이나 코치진들 역시 끝까지 하자는 말과 파이팅만을 외쳐주며 선수들을 독려할 뿐 다른 전술 지시사항은 내리지 않았다.

이젠, 정말 보인다.

꿈일 것만 같았던 올림픽 금메달이.

이젠 정말 도금이 아닌 황금세대가 맞음을 입증하기까지, 남은 건 45분뿐.

45분만 지나면 힘들었던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아니 넘치는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금메달 가지고 공항에 입국한다고 생각해 봐.”

“상상만 해도 짜릿하네.”

금의환향.

하고 싶다.

선수들은 그 어느 하프타임때 보다도 지쳤지만, 파이팅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도훈 역시 마찬가지.

요령껏 뛴 덕에 기력은 많이 회복이 되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남은 45분을 버티면 이긴다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

나머지 45분도 이겨야 진정한 챔피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도훈은 생각했다.

“자, 가자!”

“마지막이다! 그라운드에서 쓰러진다는 마음으로!”

경기는 후반전으로 이어졌다.

“후우, 후우.”

진행되는 후반전.

음바페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주위엔 붉은 유니폼들 뿐, 동료는 없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

점수차는 고작 한 점이고, 남은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가면 갈수록 불리해지는 건 프랑스다.

이미 전반전에 소모한 체력만 따져도 한국보단 프랑스쪽이 훨씬 많은 체력을 소모했을 것.

날은 여전히 덥다.

동료들의 발은 1분 1초가 지날수록 느려지고 있었다.

물론 자신조차도.

‘지는건가.’

단 1퍼센트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경기전에도, 심지어 전반 30분 정도까지만 해도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패배의 그림자는 스멀스멀 커지고 있었다. 마음 속에서.

패배는 정말 익숙치 않다.

고개를 숙이고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건 정말로 싫다.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움직여야 한다.

혼자서 이 게임을 뒤집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녀석도 해냈다.

‘내가 진다고?’

음바페는 결국 하프라인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파아앙-

“킬리안 음바페. 낮은 위치까지 내려와 공을 잡습니다.”

“전방에 콕 박혀 있어선 전혀 배급이 되고 있지 않으니까요. 우리 선수들이 수적 우위를 잘 활용해주고 있어요.”

혼자서 해야 한다.

동료들은 구멍이 난 수비를 메꾸는데도 벅차하고 있으니.

“...”

공을 잡고 전방을 훑는 음바페.

전반 때처럼 물밀 듯 올라가주는 동료들은 없다. 뒤에서 음바페를 바라볼 뿐.

하지만 그 눈빛들에서 느껴지듯, 이것 역시 기대고 믿음이다.

음바페는 혼자서도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그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음바페가 뛰었다.

타타탓-!

“저지해야죠.”

속도를 붙여 보는 음바페.

그러나 마음껏 속도를 높일만큼 공간이 넓은 건 아닌 상황.

하지만 음바페가 노리는 건 직선.

최단 경로로 뚫는 수밖에 없다. 자신도 체력이 쌩쌩한 상황은 아니니.

이번에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다음엔 더 난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살아갈 날 중 오늘이 가장 젊다는 말처럼.

이번에 해야 한다.

“어어, 협력으로 붙어야죠!”

말 그대로 닥돌이었다.

박스를 향해 달리는 음바페.

속도는 무서웠다.

순식간에 수비 둘셋을 달고 뛰는 음바페.

제치려는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같이 뛰어보자는 식이었다.

누가 제일 빠른 지 보자는 것처럼.

마치 메시가 10/11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혼자 중앙을 뚫고 들어가 넣었던 골을 재현하려는 듯.

그러나 음바페는 음바페지 메시가 아니었다.

촤아악-!

“삐이익-!”

박스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점.

음바페가 쓰러졌다.

따라붙던 최희원과 백승호가 동시에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고, 분명 공에 발이 먼저 닿은 듯 싶었으나 음바페가 발에 걸려 넘어진 것도 맞는 상황.

“프리킥이 주어지네요. 태클은 괜찮게 들어간 것으로 보였는데요.”

심판은 프리킥을 선언했고, 최희원에게 옐로 카드까지 들어 보였다.

아쉽다면 아쉬울 수도 있는 상황.

“후우, 후우.”

솔직히 잘 된 일이라고 음바페는 생각했다.

마지막 터치가 조금 길었는데, 다행히 반칙이 선언 되었으니.

이건 하늘이 준 기회다.

아크 정면.

골대까지의 거리 24미터.

좋은 위치다.

충분히 넣을 수 있다.

크게 호흡하며 골대를 노려보는 음바페.

온 정신을 집중한 뒤,

“삐이익-!”

음바페가 달려 들었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있는 힘껏 뛰어오른 수비벽.

그러나 음바페의 킥은 그 머리 위를 넘었다.

그리고, 곧바로 강한 회전으로 감겨 들어가기 시작했다.

잘 찬 프리킥이었다.

그러나 완벽한 킥은 아니었다.

여기서 강현무가 활약한다.

파아아앙-!

“아! 들어간 줄 알았습니다! 들어간 줄 알았습니다!”

“막았어요, 막았어요. 슈퍼 세이브입니다!”

가슴이 철렁한 순간.

수비벽을 넘겨찰 것이라는 걸 예상한 듯 벽쪽 가까이 자리를 잡고 있던 강현무가 몸을 날려 공을 쳐낸 것이었다.

거의 들어간 줄 알았던 프랑스 선수들은 머리를 감싸쥐었고, 몇몇은 무릎을 꿇으며 탄식했다.

“...”

그리고 음바페는 하늘을 바라 보았다.

다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하늘이...'

그저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밖에는.

대가는 컸다.

체력이 빠진 음바페는 더 이상 아무런 전방 압박을 할 수 없었고, 나머지 선수들은 두 명이 없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수적 우위, 체력적 우위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긴 패스를 통한 반대 전환으로 프랑스의 수비를 출렁이게 만들었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툭-!

"이야, 퍼스트 터치 참 부드럽네요."

그렇게 왼쪽에서 도훈이 공을 잡았다.

한 방은 더 필요했다.

이제 마무리 일격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

상대는 매우 지쳐있다.

도훈 역시 고민 없이 중앙을 향해 닥돌하기 시작했다.

흐느적 거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프랑스 수비들.

처절했다.

좀비처럼.

“...!”

등이 갑자기 무거워지는 느낌.

도훈의 속도가 급격히 줄어 들었다.

뒤에서 누군가 유니폼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었던 것.

그들 입장에선 그 방법밖에 없었다.

“삐이익-!”

“아이, 지금은 노골적이죠. 그렇죠. 경고 줘야죠. 아, 퇴장 줘도 좋은데요.”

프리킥이 주어졌다.

어쩐지 비슷한 상황.

거리 역시 24미터.

‘차라리 잘 됐다.’

도훈 역시 음바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유는 달랐다.

도훈은 방금의 일을 떠올렸다.

우승 팀은 진정 하늘이 선택하는 것일까, 라는듯이 말 없이 하늘만 쳐다보던 음바페.

‘개소리.’

도훈은 웃었다.

탓할 게 없으니 대답 없는 하늘을 원망할 뿐.

핑계다.

억울하면 넣었어야지.

분명히 도훈의 눈엔 보였다.

더 잘찰 수 있었다.

월드컵도 먹은 녀석이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을 뿐이다. 아님, 원래 그 정도 실력일 뿐이거나.

‘우승은 자기가 만드는거지. 하늘이 아니라.’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도훈이었다.

우승은 하늘이 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도훈은 보여주고 싶었다.

"삐이익-!"

휘슬이 울리고,

“백도훈!”

도훈이 공을 향해 달려 들었다.

타타탓-

뻐어어엉-!

도쿄 국립 경기장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떴다.

도훈의 프리킥이 그린.

슈우우웅-

철썩-!

“고오오올-! 들어 갔습니다! 백도훈 선수의 환상적인 프리킥!”

결정타.

복부를 맞고 흐느적거리던 프랑스 선수들이 턱을 맞고 마침내 쓰러졌다.

< 처음이지?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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