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33화 (33/173)
  • < 아우라 (3) >

    “어엇!”

    “그렇죠, 그렇죠! 퇴장이죠!”

    “레드카드가 나왔습니다!”

    나라 잃은 표정을 짓는 에부에.

    에부에는 눈앞의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무릎 꿇고 있는 에부에에게 다가간 심판이 자유의 여신상같은 포즈를 취하며 내보인 건, 레드 카드였다.

    이제 막 전반 14분이 지나고 있는 참인데.

    이렇게 너무도 이른 시각에 퇴장이라니?

    “말도.. 안 돼..”

    망연자실한 에부에.

    음바페 마저도 입가를 쓸어 내리며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그러나, 누구도 항의를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명백한 반칙이었으니까.

    그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 뿐.

    “...”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에부에.

    최고라 평가받던, 프랑스 수비의 핵 에부에는 그렇게 전반 14분 박스 안에서의 어처구니 없는 백 태클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도훈아!”

    “나이스! 됐어!”

    도훈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동료들.

    “다친 건 아니지?”

    “그럼요.”

    도훈은 툭툭 털고 일어났다.

    예상보다 세게 걷어 차이긴 했지만, 다칠 리는 없었다.

    알고 있었으니까.

    나 참. 녀석도 급했긴 했나보다. 설마 뒤에서 태클을 할 줄은 몰랐는데.

    태클이 날아오는 게 느껴지는 순간, 도훈은 일부러 발을 피하지 않았다.

    여기서 백 태클?

    곧바로 퇴장감이라는 건 코흘리개도 아는 사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페널티 킥.

    결승전에서 선제 득점은 가지는 의미가 매우 큰 것.

    또한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과, 국민들이 보고 있다.

    누가 찰 것이냐.

    이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선수가 공을 들고 걸어 나왔다.

    “키커는, 백도훈!”

    당연히 도훈이 차야 했다.

    신중히 공을 놓고 뒤로 물러나는 도훈.

    “...”

    골키퍼 메슬리에는 침을 삼키며 도훈의 눈을 응시했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아니면 가운데?

    그 눈을 도훈은 피하지 않았다.

    “...!?”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누구냐, 누구냐.”

    “어이! 백씨! 아들내미가 차는구먼.”

    그 모습을 자그마한 티비로 지켜보고 있는 중년의 남성들.

    보기만 해도 알코올 냄새가 확 풍기는 듯한 남성들이 가득한 이 곳은 동네의 평범한 소주집.

    짤랑-

    도훈의 아버지, 백씨는 식당 문을 열고 나와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치익-

    스읍, 후우-!

    이미 반쯤 취한 상태인데, 시원한 박하향 담배 연기가 목을 타고 흐르니 정신이 아찔하면서도 폐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백씨는 도저히 TV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가슴이 자꾸 점점 더 빨리 뛰어서 이러다 잘못되는 게 아닐까 싶었으니까.

    “아니, 아들이 차는데 안 보고 어딜 가는겨.”

    페널티 킥을 차겠다고 공을 들고 나선 건 아들 도훈이었다.

    아들이 페널티 킥을 차는 걸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아들은 믿는다.

    하지만, 믿을수록 불안한 게 부모의 마음이다.

    후우-!

    담배를 피우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건만, 어느 새 담배 맛도 잊은 채 문 너머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백씨.

    “으아아-!”

    그리고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고개를 돌리는 백씨.

    백씨는 얼른 담배를 밟아 끄고 식당 문을 열었다.

    “어이! 자네 아들이 넣었다!”

    “백씨 고거, 아들내미 하나는 기똥찬 놈으로다가 낳았구만!”

    같이 노가다일을 하는 동료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있었고, 테레비 안에선 아들과 또래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는 모습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아니, 자네 아들이 꼬올 넣었다는디, 왜 그러고 멍청하게 서 있어?”

    “...휴우.”

    아마 공을 차는 아들보다 몇 배는 더 긴장했을 것이다.

    그 긴장이 갑자기 탁! 풀리니, 백씨는 잠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큰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이야아아-!”

    “아잇, 깜짝이야!”

    백씨는 만세를 불렀다.

    “선제 골입니다! 백도훈 선수가 페널티 킥을 침착하게 마무리하면서! 전반 16분만에 앞서가는 대한민국입니다!”

    “아, 너무 좋아요! 자신이 얻어낸 피케이를 완벽하게 차넣은 백도훈 선수 정말 대단하고요. 게다가 상대 수비의 핵인 에부에까지 퇴장이 됐으니, 이거 뭐 이 보다 좋을 수가 없네요!”

    페널티 킥 역시 1대1이다.

    도훈은 야신을 세워두고 페널티 킥을 수련했었고.

    놓칠 리가 없었다.

    도훈의 킥은 골키퍼의 예상 반대로 정확히 꽂혔고, 경기장 안의 한국인들은 모두 펄쩍 일어나며 환호했다.

    “됐어! 됐어!”

    “그대로 해! 승호야! 애들한테 말해! 그대로 해!”

    김 감독 역시 마찬가지로 만세를 불렀지만, 곧바로 선수들에게 흥분을 가라 앉힐 것을 요구했다.

    이 보다 좋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상대 중앙 수비수가 퇴장을 당했고, 전반 16분에 선제 득점을 올렸다.

    그러니 상대에겐 궁지에 몰린 최악의 상황인 것이고.

    하지만, 그렇기에 궁지에 몰린 상대는 어떻게든 발악을 해올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인데, 상대는 쥐가 아니라 사자였다.

    발톱이 없어도 사자는 사자다.

    아직 송곳니의 날은 시퍼렇게 살아 있는.

    지금은 흥분을 가라 앉히고, 원래대로 경기를 풀어가는 게 중요했다.

    “원래대로! 한 명 없는 거, 1대0인거 생각하지 말고 그대로 하자!”

    “그대로!”“지금대로!”

    중앙의 백승호가 선수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선수들 역시 복명복창하듯 서로에게 그 말을 전달했다.

    ‘맞는 말이다.’

    도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적장은 물리쳤다.

    하지만, 아직 왕은 살아 있다.

    왕을 그 왕좌에서 폐위 시키고, 깃발을 꽂아야 비로소 나라를 함락시킬 수 있다.

    그 때까지 전쟁은 계속 될 것이고, 방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삐익-!”

    전쟁은 재개 되었다.

    “감독님, 벵상과 디디에는 준비 됐습니다.”

    “...”

    프랑스의 벤치는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10명으로 남은 70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싸워야 한다.

    그 긴 시간을 수비 공백을 안고 경기를 펼칠 수는 없었다.

    이미 네 명의 수비로도 실점을 허용했는데.

    공격에서 한 명을 빼더라도 수비 자원을 넣고 버텨보는 수밖에.

    “감독님?”

    “일단 이대로 가.”

    그러나 프랑스의 감독 블랑은 팔짱을 낀 채 경기를 지켜볼 뿐.

    솔직한 말로 답이 없는 상황이다.

    0대1로 뒤지는 상황에서, 수비가 하나 없는 상황.

    상대가 한국이라고 하지만, 이름값 만으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경기력을 갖추고 있음을 블랑 감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럴 때 정석대로 간다?

    ‘이건 결승전이야..’

    오늘 경기로 대회는 끝이 난다.

    리그가 아니라, 결승전인 오늘, 단판으로 끝이 난다는 말이었다. 버티고 자시고는 나중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이럴 땐 모 아니면 도밖엔 방법이 없다.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도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란 말.

    “일단은 쓰리백으로 가. 나머지는 그대로. 아니, 공격적으로 다 올라가!”

    승부수는 10분, 아니 5분이다.

    그 5분안에 역으로 몰아쳐 동점골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이후 수비를 보충하고 정상적으로 경기를 버텨내야 한다. 그 편이 훨씬 확률은 올라간다.

    "킬리안! 오스만!"

    블랑 감독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음바페와 뎀벨레.

    믿을 건 그 둘 뿐이었다.

    “교체를 하지 않는데요.”

    “이대로 갈 생각인가요? 수마레, 뎀벨레에게. 일단은 그대로 갑니다.”

    공격을 전개하는 프랑스.

    경기가 재개되자 마자 초반과 다르게 물밀 듯 올라가는 상대를 보며, 도훈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도훈이 하프 라인 근처에 서 있음에도 상대 미드필더들은 전진하고 있었고, 상대 수비들은 쓰리백의 대열을 유지하며 크게 빈 공간을 노출한 상태.

    오히려 스스로 성문을 열어 젖힌다?

    상대는 문을 열고 나가 싸울 생각인 게 분명했다.

    “집중!”

    도훈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프랑스는 이번 공격에 사활을 걸 생각이라는 걸.

    사활을 건 프랑스의 공격.

    한 명이 있든 없든 이건 위험했다.

    “득점 이후가 사실 매우 위험합니다. 계속 집중해야돼요!”

    전열을 정비하는 한국 수비진.

    오른쪽에서 공을 잡은 뎀벨레는 천천히 상황을 보다가,

    파아앙-!

    중앙으로 접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따라 붙어주는 백승호.

    “저지해야죠!”

    그러나 빼앗는 건 쉽지 않다.

    최대한 흐름을 저지할 뿐.

    휘이익-

    발재간을 부리며 중앙에서 빙글 빙글 도는 뎀벨레.

    이윽고 정우영 역시 수비에 가담해 뎀벨레에게 붙었다.

    두 명 사이에서 길이 막힌 듯 뒤로 접는 뎀벨레.

    “잘 저지 했...”

    뎀벨레를 협력 수비로 잘 저지한 듯 보였던 그 순간,

    스르륵-

    타타탓-!

    뎀벨레가 공을 긁으며 재차 뒤로 돌아섰다.

    번개같은 움직임.

    순식간에 둘 사이를 빠져 나온 뎀벨레는,

    파아앙-!

    왼쪽으로 패스를 넘겼다.

    그 곳에서 음바페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

    “사람 놓치면 안됩니다!”

    음바페에게까지 공이 연결된 순간, 프랑스 선수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박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적인 움직임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한국 선수들.

    한 명이 없음에도, 공격 숫자는 오히려 이전보다 늘어난 상황.

    그 도박은, 음바페라는 패가 있기에 가능한 것.

    최소한 음바페가 공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하에, 모두가 공격에 가담하는 것이었다. 음바페에게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니까.

    또한 그러면서, 동시에 음바페에게 몰릴 수 있는 상대의 집중 견제를 무력화 시킨다. 공격 숫자가 많아지니 음바페에게만 수비가 집중될 수는 없기 때문.

    ‘이번만 넘기면 돼.’

    도훈 역시 박스 쪽으로 달려가며 생각했다.

    축구에는 흐름이 있다.

    아무리 약 팀이라도 최소한 세 번의 흐름은 잡게 되고.

    지금은 분명히 프랑스의 흐름.

    그러나 억지로 만들어낸 흐름이었다.

    이 흐름만 잘 막아낸다면, 분명히 이후부터는 더 쉬워질 수 있다.

    “킬리안 음바페.”

    공을 앞에 두고 툭툭 치고 들어가는 음바페.

    전방의 상황을 훑은 음바페는, 왼다리로 헛다리를 한 번 짚은 뒤 오른쪽으로 치고 들어갔다.

    “큭..!”

    최희원이 헛다리에 속은 건 아니었다. 그저 습관적으로 휙 휘두르는 느낌의 헛다리였으니.

    오히려 음바페의 경로를 먼저 파악하고 뛰었던 최희원이었다.

    그러나 음바페는 빨랐다.

    우월한 속도.

    축구에서 스피드란 가장 아무것도 아니지만, 가장 사기적인 능력이다.

    ‘젠장. 벌써..’

    횡 방향으로 가로질러 올라가는 음바페.

    그런 음바페를 따라가던 최희원은 끝까지 음바페를 추격할 수 없었다.

    몇 걸음만에 자신의 관할 구역을 벗어났기 때문.

    그 다음은 센터백 이지솔의 관할.

    그러나,

    타타탓-!

    음바페는 멈추지 않았다.

    이지솔의 관할 구역을 지나친 건 더욱 빨랐고, 순식간에 정승현의 관할 구역까지, 그리고 마침내 박스 주변을 한 바퀴 돌아 왼쪽 풀백인 최준의 영역까지 들어가는 음바페.

    속도를 붙은 음바페를, 이미 상대 선수들을 마크하고 있던 최준이 저지하기란 불가능한 일.

    결국 선수들로 혼잡한 박스 바깥쪽을 반 바퀴 돌아낸 음바페가, 박스 오른편에서 오른발을 당겼다.

    뻐어어엉-!

    쿠당탕-!

    음바페는 끝까지 속도를 줄이지 않았기에, 체중을 실어 슈팅을 때린 후 바닥을 뒹굴었다.

    그 와중에도 꺾어 때린 슛.

    슈팅은 박스를 대각선으로 갈라 먼 쪽 포스트를 향해 빠르게 굴러갔고,

    “...!”

    골키퍼 강현무의 손마저 지나쳐 골대로 향했다.

    골대로 향했다.

    골대로.

    파아아앙-!

    “으앗!”

    비명에 가까운 해설자의 외침.

    경쾌한 소리.

    음바페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그 공을 향해 잉어떼처럼 달려드는 선수들.

    혼전.

    그 어지러운 상황에서, 다행히 정승현이 공을 터치라인 쪽으로 차냈다.

    박스 밖으로 빠져나가는 공을 보며 다들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파아앙-!

    “어?”

    득달같이 달려가 그 공을 잡는 선수가 있었다.

    프랑스 선수가 아닌,

    도훈이었다.

    “어, 지금은..”

    “나가도록 두는 게..”

    위험상황이었다.

    소유권을 내주더라도 일단은 터치 라인 바깥으로 내보내는 게 맞는 듯 보이는 상황.

    공격에 참여했던 프랑스 선수들은 절반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선수들이, 이젠 곧바로 수비 태세를 취하고 있었고.

    위험지역에서 공을 빼앗기는 건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도훈이 나가던 공을 놔두지 않고 잡은 것.

    “...”“...”“...”

    “...”

    대치 상황이 펼쳐졌다.

    코너 부근에서 공을 잡은 도훈.

    그런 도훈을 바라보며 포위망을 좁혀오는 프랑스 선수들.

    마치 막 다른 골목에 몰린 도둑 고양이처럼 되버린 도훈.

    그러나,

    “...”

    그것은 고양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 순간 다가 가려던 프랑스 선수들을 멈칫하게 만들 정도로 강한 눈빛이었다.

    단신이고, 막 다른 골목에 몰렸지만, 상황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듯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

    마치 자신을 몰아세운 한나라 병졸들과 마주 선 항우처럼.

    < 아우라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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