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32화 (32/173)
  • < 아우라 (2) >

    최후방 플레이 메이커, 은쿠두 에부에.

    발밑과 시야, 패스까지 좋은 에부에는 전술적으로 상당히 다양한 옵션을 가져올 수 있는 자원으로, 맨체스터 시티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이유도 그러한 능력들 때문.

    그런 에부에가 공을 잡으면, 아무리 최후방이라고 해도 상대 입장에서는 섣불리 다가갈 수가 없다.

    그 압박이 통하지 않는다면, 노출된 빈 자리로 어김 없이 송곳같은 패스가 향하니까.

    그 장면이 이미 한 번 나왔고, 곧바로 음바페에게까지 공이 연결될 뻔한 모습까지 이어졌다.

    때문에 한국 선수들은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그러나, 도훈만큼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에부에에게 달려 들었다.

    “...!”

    자신에게 달려드는 선수의 얼굴을 확인하는 에부에.

    그 녀석이다.

    연습 경기때, 자신을 완벽하게 제쳐버렸던 그 녀석.

    그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에부에는 골키퍼에게 백 패스를 넘기며 다시 자리를 잡았다.

    “네, 압박 좋습니다 백도훈! 에부에에게서 첫 패스가 깔끔하게 나가도록 하면 안돼요.”

    도훈이 다섯 발자국 이내로 가까이 달려들기도 전에, 에부에는 뒤로 패스를 해 버렸다.

    골키퍼는 다시 우측 풀백에게 공을 연결했고, 이어지는 압박은 없었다.

    그러니 도훈의 압박이 공을 빼앗아낸다든지, 패스 미스를 유발한다든지 하는 큰 성과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줘!”

    도훈은 의도적으로 에부에 근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에부에는 빌드업의 시작이었다.

    프랑스의 수비수들은 공을 잡은 뒤 천천히 공격에 나설 때, 습관적일만큼 에부에에게 공을 넘기고 공격을 시작한다.

    지금도 공을 잡은 풀백 마티유가 습관적으로 에부에에게 패스를 건네려다, 앞으로 주라고 손짓하며 외치는 에부에를 보고 패스를 접었다.

    파아앙-

    결국 미드필더에게 공을 내주며 전개하는 프랑스.

    도훈은 다시 자기 진영을 향해 되돌아가며 에부에의 얼굴을 몇 초간 쳐다 보았다.

    “...”

    에부에는 그 시선을 애써 외면했고.

    ‘생긴 거랑 다르게 의외로 귀엽네.’

    도훈은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은 자신에게 쫄아 있었다.

    물론 쫄아 있는 건 에부에 뿐만이 아니었다.

    한국 수비 역시도 음바페를 그만큼이나 경계하고 있었다.

    “...”

    저 멀리의 공을 보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곁눈질로 확인해야 하는 음바페의 동향.

    음바페의 속도는 월드컵에서도 통한 스피드다.

    공간으로 떨어지는 패스를 향한 경합은, 동시에 출발해서는 웬만해선 이길 수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물론,

    파아앙-!

    “음바페에게 공이 갑니다. 공 잡는 음바페.”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돼요. 순식간에 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음바페를 앞에 두고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공을 가진 상태에서도, 음바페는 무서운 속도를 자랑하니까.

    툭, 툭-

    천천히 전방을 살피며 전진하는 음바페.

    그 모습에 몸을 긴장시키는 수비들.

    뿜어져 나온다.

    아우라가.

    그저 단순한 동작일 뿐인데, 금방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오금이 움찔움찔 한다.

    음바페라는 이름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누구도 섣불리 공을 빼앗으러 달려 나갈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것.

    그래서, 이번에도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도훈이었다.

    쉬이익-

    “...!”

    툭-!

    조용히 음바페의 뒤를 밟은 도훈이 다리 사이로 발을 뻗어 공을 건드렸다.

    그러나 재빨리 공을 갈무리하며 떨어지는 음바페.

    도훈은 그 앞을 가로 막았다.

    “...”

    “...”

    그리고 펼쳐지는 조용한 신경전.

    드디어, 이렇게 마주했다.

    그러나 도훈은 느낄 수 없었다.

    음바페에게서, 어떠한 아우라도.

    이미 음바페 머리 위에 있는 전설들을 상대해 본 도훈이다.

    음바페 따위에게 위축당할 리가 없었다.

    물론 그건 음바페도 마찬가지.

    음바페에게 도훈은 그저 풋내기 애송이에 불과하니까.

    타타탓-!

    신경전은 잠시.

    스타트를 끊는 음바페.

    공격수가 앞길을 가로 막는데, 다른 스킬이 무엇이 필요하랴?

    음바페는 그저 속도 자체로 도훈을 앞지르겠다는 듯 도훈의 왼쪽 방향을 향해 공을 차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근데 말이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 하는 법이거늘.’

    가끔 야구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다.

    투수가 타자로 나왔을 때, 상대 투수는 변화구까지 쓸 필요 없다 생각하여 직구만을 던져 삼진을 잡겠다고 하는 경우가.

    하지만, 그러다가 투수에게 홈런을 맞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하물며 도훈은 타자로 쳐도 3할은 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이건만.

    타타탓-!

    재빨리 몸을 돌리며 달리는 도훈.

    반응은 어떤 수비수들 보다도 빨랐다.

    그리고, 공을 향해 달리는 길목을 먼저 차지하는 도훈.

    파아앙-

    “백도훈이 먼저 공을 잡습니다!”

    “수비 가담까지, 대단한데요!”

    동료들이 입을 벌렸다.

    도훈의 동료들, 음바페의 동료들 모두 말이었다.

    도훈이 음바페를 막아 내다니.

    음바페가 막히다니?

    공을 잡은 도훈이 돌아섰다.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도훈이 공격이고, 음바페가 수비.

    음바페의 수비 능력에 대해 도훈은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난 호랑이야.’

    음바페의 수비 실력이 어떻든 호랑이는 최선을 다한다.

    쉬이익-

    툭, 툭-!

    “...!”

    도훈은 상체 움직임으로 속임수를 준 뒤, 곧바로 유령신보를 사용해 음바페를 제쳐냈다.

    그리고,

    파아앙-!

    치고 달렸다.

    “...”

    멀어지는 도훈의 뒷 모습을 바라보는 음바페.

    음바페는 굳이 그 뒤를 따라 달리지 않았다.

    어차피 수비는 동료 수비수들이 할테니.

    그러나, 과연 그것 때문만일까.

    혹시, 따라간다 하더라도 잡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속도를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흠..’

    그 순간, 처음으로 도훈과 한 합을 겨뤄본 음바페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전까지 애써 무시하던, 백도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 아우라를.

    “빠르게 올라가 봐야죠!”

    음바페에게서 공을 빼앗은 뒤 치고 달리는 도훈.

    느껴진다.

    자신이 공을 잡고 달리니 상대의 기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음바페가 공을 잡았을 때, 우리 수비의 기가 흔들렸던 것 만큼이나.

    ‘특히 저 녀석.’

    가장 많은 동요가 느껴지는 건, 중심부였다.

    에부에는 프랑스 수비의 수뇌부같은 녀석이었다.

    포백은 무엇보다도 호흡이 중요하고,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가장 흐름을 잘 읽는 선수가 커맨더 역할을 맞는 경우가 많다.

    그런 커맨더가 수비진에 있는 것만으로 포백의 기량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할 정도로 그 중요성은 크고.

    하지만, 그 커맨더가 흔들린다면.

    옛날 옛적부터 인류사에 있어 이것은 흔한 전법일 지 몰랐다.

    ‘적장의 목을 벤다.’

    왜 똘마니들이 우리 반 짱이 센지, 니네 반 짱이 센지 궁금해하고, 전쟁을 위해 모인 수천 명의 군사들이, 왜 그들의 대장 하나가 죽었다고 혼비백산 하겠는가?

    그들이 느끼기에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패배한다면, 그것은 곧 자신들 역시도 덤벼봤자 패배한다는 걸 알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만큼은 원래 내 스타일대로.’

    좌우에서 동료들이 쇄도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8강, 4강전에서 도훈이 송곳 같은 패스도 찔러 넣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에 프랑스도 그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오늘만큼은 원래 백도훈식으로 간다.

    단신으로 적장의 목을 베어 오겠다.

    “중앙으로!”

    “옆에 공간이 많은데요!”

    적장은 언제나 수하들 뒤, 깊숙한 곳에 있다.

    하물며 수비 지역에서 빼앗아낸 공이기 때문에 지나야 할 관문은 첩첩산중.

    기본적으로 상대 중원 셋.

    그 뒤의 수비 라인까지.

    이중으로 잠금장치가 펼쳐져 있는 프랑스의 진영이었다.

    당연히 중원은 두터웠다.

    그러나 도훈은 그 중앙을 향해 달려갔고, 프랑스의 미드필더들은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그물망을 좁혀 들었다.

    사실 다른 선수였다면 미드필더 세 명이 한꺼번이 한 점으로 모여들 진 않았을 것이었다. 당연히.

    하지만 그 상대가 도훈이었기에 그들은 모일 수밖에 없었다.

    헛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사이도 뚫어낼 수 있는 상대니까.

    하지만,

    파아앙-!

    “치고 달립니다!”

    “빨라요!”

    도훈은 그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역이용하려 했다.

    중앙으로 뚫고 지나갈 것처럼 움직이던 도훈이 우측 대각선으로 길게 공을 차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중앙을 피해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이건 도훈만이 할 수 있는 속임수였다.

    이미 미친 짓을 해낸 바가 있으니, 다시 그 미친 짓을 하려해도 상대가 진짜구나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아마추어처럼 포지션을 이탈해 뭉쳐 있는 선수들을 뒤로 하고 크게 달리는 도훈.

    타타타탓-!

    “더, 더 빨라 집니다!”

    폭포 오르기.

    "와.."

    관중들이 탄성을 내뱉을 정도로 시원스레 질주하는 도훈.

    도훈은 순식간에 20여 미터를 주파하며 상대 박스 오른쪽 까지 달려 들어갔다.

    “여기!”

    “반대!”

    도훈의 움직임에 따라 각자의 위치를 찾아 들어가며 손을 들어 보이는 동료들.

    좋다.

    하지만, 도훈도 이번만큼은 공을 줄 생각이 없다.

    내가 한다.

    도훈은 박스 근처에 다다라 속도를 줄이며, 상대 왼쪽 풀백을 향해 공을 툭툭 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잡졸은 비켜.’

    수비 리더는 에부에다.

    지금 앞에 있는 이 녀석이 아니라.

    에부에는 직접 도훈에게 당한 바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 역시 자신을 막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래도 에부에가 대장질을 할 깜냥이 된다면, 에부에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녀석의 뒤에서.

    툭, 툭-!

    왼발에 공을 두고 있던 도훈이 번개같이 왼발을 휘저었다.

    플립플랩.

    중앙쪽을 향하는 듯 했던 공이 순식간에 골 라인 방향으로 쳐졌고, 상대 풀백의 밸런스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곧바로 녀석을 제쳐내고 박스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하는 도훈.

    ‘역시.’

    그러면서 도훈은 속으로 웃었다.

    에부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이래야 나름 적장을 마주하는 느낌이 나지.

    “...”

    침을 꿀꺽 삼키며 도훈의 발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에부에.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다른 발 기술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박스 안까지 들어온 이상 자리만 안내주는 수비밖엔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어디로 돌파를 하려들 것이냐는건데.

    ‘왼쪽은 좁아.’

    사이드에서 박스 안으로 진입한 상황이었다.

    골 라인이 있는 왼쪽은 협소했다.

    결국 큰 슈팅 각을 만들기 위해선 중앙 쪽, 그러니까 자신의 오른쪽을 택할 수밖엔 없다고 에부에는 생각했다.

    그리고, 도훈은 실제로 그렇게 움직였다.

    휘이익-

    ‘그래, 그래도 내가..’

    에부에는 재빨리 오른쪽으로 돌아서며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에부에다, 라고.

    사실 이 녀석만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위축 당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훈련 때 상대로 만난 음바페라 할 지라도.

    이 나이대에선 최고라고까지 평가받는 자신이었다.

    그래, 그 때는 운이었던 거다.

    그 말도 안되는 돌파는.

    ‘이 녀석도 나한텐 안...!?’

    막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순간, 도훈의 모습이 눈 앞에서 사라지자 에부에의 동공이 확장 되었다.

    사라졌다.

    설마.

    설마하며 고개를 뒤로 돌리는 에부에.

    그 곳에 도훈이 있었다.

    ‘적장에 대한 예우다.’

    나름 적장인데 시시하게 단 칼에 베어버릴 순 없지 않은가.

    그래도 환영신보 정돈 써주는 게 보내드리는 길의 마지막 예우.

    도훈은 골 라인쪽으로 파고 들고 있었다.

    에부에를 제쳐냈지만 각은 좁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그 어떤 곳이라고 해도, 골 라인을 넘어간 게 아닌 이상 각이 아예 없는 곳은 없으니까.

    도훈에겐 아주 작은 실낱같은 길 하나만 있어도 족했다.

    “뒤로 내주나요?”

    “때려도 돼요!”

    골키퍼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도훈이 오른발을 당겼다.

    그러나, 그 순간.

    퍼어억-!

    “큭..!”

    발목에서 느껴지는 강한 충격.

    동시에 도훈이 빙글 나자빠졌다.

    “어어! 지금은!”

    “이건...!”

    사색이 되는 프랑스 선수들.

    두 손을 들며 동시에 심판을 쳐다보는 한국 선수들.

    넘어진 도훈 역시 고개를 돌려 심판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삐이익-!”

    울려 퍼지는 휘슬 소리.

    동시에 한국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심판이 에부에에게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슴 주머니에서 붉은 색의 무언가를 꺼내면서.

    < 아우라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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