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31화 (31/173)

< 아우라 (1) >

“백도훈, 잘 내줬습니다. 정우영.”

왼쪽에서 도훈의 패스를 받은 정우영은 자신감 있게 돌파를 시도했다.

솔직히 말해볼까.

솔직히 지금까진, 이겨서 좋긴 했지만 경기를 뛰는 재미가 없었다.

굳이 콕 찝어 말한다면, 도훈 때문에.

도훈 덕분에 경기를 이기는 것도 맞았지만, 도훈 때문에 자신이나 동료들이 활약할 여지도 적은 게 사실이었다.

근데 그런 도훈이 8강전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도훈이 자신들을, 그러니까 동료들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툭, 툭-

뛸 맛이 났다.

모든 팀 게임은 다 똑같다.

그게 대학의 조별 과제든, 축구같은 스포츠든.

모든 구성원의 능력이 100퍼센트 발휘되기 위해선 개개인 모두가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어야 했다.

내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결과에 관련이 없다면 의욕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내 역할이 결과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면 지금껏 50퍼센트밖에 발휘되지 않던 능력도 100퍼센트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모두가.

사실 이것까지 도훈이 생각하고 패스를 하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도훈의 패스는 팀의 전체적인 사기와 능력을 높이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분명한 건, 정우영도 이 레벨대에선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는 유망주라는 것.

“한 번 더 파고 듭니다!”

정우영이 과감한 돌파로 골 라인 근처까지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

그 순간 박스 안으로 파고들던 도훈은 동시에 주변의 기를 읽는데 정신을 집중했다.

어지럽다.

소용돌이를 치는 듯 박스 안 기의 흐름은 어지러웠다.

하지만, 분명 도훈은 그 기들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느낄 수 있었다.

적대적인 기든, 우호적인 기든 한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

골대 방향이었다. 당연한 일.

그렇담 여기서 자신에게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반대로.’

동료와 반대로 침투하라던 코치님의 말씀.

그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도훈은 달리던 것을 멈추고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며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외쳤다.

“여기!”

모두가 자신처럼 기의 감각만으로 패스할 수 있는 건 아니니, 외쳐줘야 한다.

그런 도훈의 외침에,

파아앙-!

공이 골 라인을 나가기 직전 컷 백을 꺾어내는 정우영.

촤아아-

없다.

공이 굴러오고 있는 이 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기의 움직임은.

자신의 발 앞으로 굴러오는 공을 향해 도훈은 왼발을 당겼다.

뻐어어엉-!

인프론트로 때린 슈팅.

그 슈팅은 강하게 튕겨 나가면서도 강한 회전이 걸려 휘어 들어갔다.

앞서 말했듯 박스 안은 혼잡했다.

슈팅을 막아보기 위해 몸을 날리는 수비수들도 많았고.

그러나,

슈우우웅-

공은 마치 자석이라도 달린 듯 그것들을 피해내며 골대를 향해 빨려 들어갔고,

철썩-!

멕시코의 골망을 갈랐다.

“고오오올-!!”

전반 7분만이었다.

쉬웠다.

8강에서 한국이 이라크를 4대0으로 꺾은 것을, 사람들은 단순히 이라크의 전력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인식에서 이라크는 그저 8강엔 올라올 수도 있어도 그것이 한계인 복병같은 존재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멕시코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

멕시코는 우승후보까진 아니어도 충분히 결승까지는 오를 수 있는 실속있는 강팀의 이미지였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고.

그러나 한국이 결국에 멕시코 마저도 4대2로 제압하고 결승에 오르는 순간,

“잘했다 도훈아!”

“도훈아! 결승이다, 결승!”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라크는 약한 게 아니었다.

한국이 너무나도 강한 것이었다.

두 명의 와일드카드가 중심을 잡고 있는 수비, 황금세대라고 불리우는 중원과 공격진.

그리고, 백도훈.

말하지 않았는가.

도훈이 새롭게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축구계는 긴장을 해야할 것이라고.

“2골 2도움! 모든 공격 포인트에 관여하며 팀을 승리로 이끈 백도훈 선수네요.”

“아, 정말 혼자 다했죠. 제가 볼 땐 대회를 치루면서 더욱 기량이 성장하는 것 같아요. 제가 오늘 백도훈 선수가 혼자 다했다는 말을 썼는데, 사실 조별예선까지는 백도훈 선수가 혼자 해냈다, 정도 였거든요. 하지만 이라크전부터 오늘까지, 혼자 ‘다’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 왔다.

녀석도 긴장을 해야할 것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자신이 도전자같으니 말이 좀 이상한가.

‘그럼, 내가 긴장을 해주지.’

프랑스는 분명히 올라올 것이다.

“여기 일본 도쿄에서, 당당하게 결승전에 오르는 대한민국입니다!”

이제 두 천재의 대결을 끝낼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ㆍㆍㆍ

“...”

고오오오...

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고요함만이 가득한 공터.

이미 어둠이 내리깔린 그 곳에서, 도훈은 명상을 하고 있었다.

명상.

기는 마치 배터리와 같아서, 소모를 했다면 명상으로 충전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몸 안에 담아낼 수 있는 한계치는 분명히 존재한다.

때문에 도훈도 90분 동안 매분 매초마다 초식을 사용하며 날아다닐 수 없는 것이고.

현재의 초식들만으로 상대를 제쳐내는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도훈은 매일같이 명상을 하며 기를 조금이라도 확장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90분간 한 두번만이라도 초식을 더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의 위력은 지금보다도 배가 될 것이었다.

“그릇의 확장은 언제 일어나는 겁니까?”

“매일 명상으로 기를 몸안에 한 가득 채워넣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하지만, 이로는 눈에 보이는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가장 큰 기 확장이 일어나는 때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같은 절망을 느꼈을 때. 또는 몸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극한의 환희를 느꼈을 때다. 그런 일을 겪으면, 몸 안의 기가 재배치되며 그릇 자체가 확장되는 것이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동굴 안에서 도훈은 몇 번의 기 확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중에서야 안 거지만, 가장 처음의 기 확장은 수련을 시작한 뒤 며칠 사이 동안이었다.

그 땐 절망, 그 자체였으니까.

그러나 그 틈에 도훈이 가진 기의 그릇이 확장 되었고, 1년의 수련 후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역시 환희를 느끼며 그릇이 넓혀졌다.

아무래도 가장 큰 기 확장을 느낀 건 마지막 10년이었을 것이었다.

거의 10년 가까이 지주신보 하나에 매달렸을 때.

오랜 수련으로 충분히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그 목표에, 어떤 방법으로도 도달하지 못하자 도훈은 절망을 느꼈다. 지주신보의 1성 달성 실패, 그리고 바레시를 이기지 못한다는 좌절감.

그러나 그 순간 거대한 기 확장이 찾아왔다.

그걸 통해 도훈은 지주신보를 터득했고.

그 기쁨에 다시 기 확장이 찾아온 건 덤이었다.

“...”

오랜 명상 끝에 도훈은 눈을 떴다.

결승전은 내일이고, 음바페가 이끄는 프랑스는 결승전에 진출했다.

드디어 맞붙게 된다.

결승전.

그 결승전에서 승리한 후 우승을 차지한다면, 동굴에서 나온 이후로의 경험 중엔 가장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넓혀줄게, 그릇아.’

내일은 분명히 기 확장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ㆍㆍㆍ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도쿄 올림픽 남자축구, 그 결승전이 열리는 도쿄 국립 경기장입니다!”

이번 올림픽을 위해 새롭게 축조된 도쿄 국립 경기장.

그 거대한 스타디움을 대한민국 국민들과 프랑스의 응원단, 그리고 일본 관중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한민국-!!”

양으로는 밀려도 목소리 하나만큼은 최고인 붉은악마의 응원으로 고조되는 경기장 분위기.

그 아래서, 선수들이 경기 준비를 위해 한 명씩 터널로 모여 들었다.

“잘 부탁한다.”

“죽기살기로 하자.”

다들 긴장된 듯 보이지만, 한명씩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파이팅을 다잡는 한국 선수들과 도훈.

프랑스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이 모두 정렬한 후에야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테오 귀앵두지.

부바카리 수마레.

은쿠두 에부에.

오스만 뎀벨레.

그리고 마지막으로, 킬리안 음바페까지.

“...”

“...”

도훈과 음바페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둘은 느끼고 있었다.

누가 뭐라해도 이 두 팀의 에이스는 이 둘이다.

오늘, 누가 더 활약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갈릴 수도 있는 상황.

과연 조국을 금메달로 이끄는 것은 누구인가.

“선수 입장!”

질 수 없다.

말 그대로, 질 수가 없다.

도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음바페가 아니라 음바페 할아버지가 와도 안될 것이다.

‘난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니까.’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삐이익-!”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프랑스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 되었다.

“우리나라와 프랑스 모두 5승 무패, 전승으로 결승까지 올라 왔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결승전다운 결승전인데요. 역시나 프랑스가 보여준 지금까지의 기량은 무서운 수준이죠?”

“경기당 평균 득점이 3.1골, 실점은 0.4골입니다. 공수의 밸런스가 기가 막힌데다가, 뎀벨레와 음바페가 이끄는 공격은 성인 레벨에서도 탑급입니다. u23을 둘이서 가지고 노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오늘 그 공격을 우리 수비들이 막을 수 있냐가 가장 관건일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3.8골. 경기당 평균 득점은 우리나라가 더 높습니다. 압도적으로 대회 1등이죠. 상대도 우리의 공격을 어떻게 막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천천히 공을 돌리며 템포를 맞춰보는 프랑스.

지금까지 그 어떤 경기도, 프랑스는 경기를 펼침에 있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종일관 상대를 몰아치고, 간혹 역습을 허용해도 다시 몰아쳐 재차 다운을 뺏어내는 무자비한 하드 펀쳐같은 모습만을 보여줬지. 그 중심엔 5경기에서 10골 3도움을 기록한 음바페가 있었고.

그러나 결승전이기 때문일까, 프랑스는 쉽게 올라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프랑스가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을 펼치고 있는 것.

이는 분명히 결승전이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겐 이미 경험이 있었다.

크게 신경쓰지 않은 연습 경기이긴 했지만, 한국과 붙어본 경험.

절대 화력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상대에겐 5경기 12골 4도움을 올린 녀석이 있다.

지금까진 어쩌다 한 대 맞아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한 번 맞으면 두 대, 세 대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 조심스러운 게 당연.

물론,

‘달려들어, 자식들아.’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은 전술.

수비에서 계속 공을 돌리면, 상대가 라인을 높이도록 끌어 올릴 수 있다.

최전방의 뎀벨레와 음바페는 빠른 스피드를 보유한 공격수들.

보다 넓은 공간에서의 경합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이승우의 압박!”

파아앙-!

상대 최후방 수비, 에부에에게 빠르게 달려드는 이승우.

그 압박을 피해내며 중원으로 빠르게 땅볼 패스를 뿌리는 에부에.

그 패스를 받은 수마레가 지체 없이,

뻐어엉-!

낮고 빠르게 우측으로 로빙 스루 패스를 찔러 넣었다.

타타탓-!

그 공을 향해 달리는 뎀벨레와 최준.

‘잠깐..!’

분명히 최준은 뎀벨레의 속도를 의식해 뎀벨레보다 낮은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러나 공을 향해 달리길 다섯 걸음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뎀벨레는 무서운 속도로 자신을 추월하고 있었다.

파아앙-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뎀벨레는 아웃 코스로 곡선을 그리며 달리고 있었다는 것.

마치 야구 선수가 1루를 돌아 2루로 향할 때처럼 말이었다.

그럼에도 뎀벨레는 최준보다 공을 먼저 터치했고, 자연스럽게 박스 방향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순식간에 위험 상황.

“박스 안에 사람! 사람 잡아야 합니다!”

박스 안에선 음바페가 기다리고 있다.

음바페에게 패스가 이어지는 루트는 절대로 허용해선 안되는 루트.

파아앙-!

뎀벨레는 역시나 박스 안으로 땅볼 크로스를 찔러 넣었다.

그래도,

파아앙-!

“정승현! 잘 끊어 냈습니다!”

예상했던 루트이기에 크로스를 끊어내는데 성공하는 수비.

가장 위험한 만큼, 가장 잘 대비하고 있는 루트.

“어어, 쉽게 처리해야죠!”

뻐어어엉-!

“다행입니다!”

멀리 걷어내는 정승현.

순식간에 폭풍이 휘몰아치고 지나간 듯.

패스를 잘 끊어내긴 했으나, 공을 소유하려다 곧바로 달려드는 상대의 압박에 불안한 장면을 노출할 뻔 했던 방금의 상황.

보지 않고 걷어낸 공은 다시 프랑스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다시 프랑스는 수비 진영에서 여유롭게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방금의 공격은, 단순히 잽이었다는 듯이.

“프랑스... 강합니다..!”

최정예로 나선 11명의 프랑스.

연습 경기때도 이 멤버에게 앞서던 경기를 순식간에 뒤집힌 바가 있다.

‘젠장..’

압박을 가하려다 실패해 오히려 공간을 내줬던 이승우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게 한 번 실패하고 나니, 다시 달려들고 싶어도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

이승우 뿐만이 아니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모두가 프랑스의 기세에 눌린 것인지 제 자리만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타타탓-!

도훈이 먼저 상대에게 달려 나갔다.

< 아우라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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