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존심 강한 두 천재 (3) >
‘내 역할은 해냈다..’
드레싱 룸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도훈.
스스로 답답함을 느낀 적도 몇 번 있긴 했으나 어쨌든 득점은 해냈다.
상대가 기를 쓰고 잠갔지만, 어찌됐든 그걸 스스로 뚫어냈고, 그건 도훈밖에 할 수 없는 역할이었기에 그걸 해낸 도훈은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도훈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어때, 체력은?”
“문제 없습니다. 이대로 끝까지 뛸 수 있어요.”
도훈의 상태를 체크하는 코치진.
말대로 체력은 문제 없었다.
날씨도 워낙 덥고, 골을 넣기 위해 조자룡처럼 뛰어든 순간 다량의 기를 소모하긴 했으나 그 이후로 스스로 조식을 취하며 기를 호흡했다. 가만히 앉아서 쉬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요령껏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기는 다시 회복되니까.
게다가 이미 선제 득점을 올렸으니 급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라크의 공격력은 충분히 봉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였고.
그러나 코치진 입장에선 도훈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들 널 믿고 있는 건 맞아. 근데, 도훈이 너도 애들을 믿어도 돼.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 말은 도훈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한 이야기였다.
좀 더 동료를 이용해도 된다는 것.
하지만 이미 도훈도 알고는 있었다.
골을 넣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누구 말마따나 확실하게 골을 넣는 방법을 도훈은 알고 있다.
소 잡는 칼을 닭 잡는데 쓰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닭 잡는 칼은 닭을 잡을 때에도 잘 안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소 잡는 칼이 있다면 단칼이다.
너무 많이 써서 날이 나가더라도 갈아주면 그만이다.
자신은 소 잡는 칼이었다.
굳이 닭 잡는 칼들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잠시 용변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하는 도훈.
화장실의 문을 여는 순간, 도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화장실 안에서 독한 파스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
화장실엔 누군가 있었다.
교체선수용 조끼를 입고 있는, 미드필더 김태준.
‘뭐하고 있는거지?’
김태준은 변기에 앉아 혼자 꼼지락대고 있었다.
다들 드레싱 룸에 있는데 혼자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걸까.
“어? 아, 도훈이냐.”
인기척을 느꼈는지 김태준이 고개를 돌리더니 꼼지락대던 걸 감췄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요?”
“응? 아. 아무것도 아냐.”
“파스 쓰셨어요? 냄새가..”
“아, 미안. 조금 뿌렸어. 발톱이 안좋아서..”
“예? 그럼 닥터님한테 말씀하시지. 제가 말씀 드릴까요?”
“아, 아냐 아냐. 넌 경기 준비해야지. 내가 알아서 할게.”
서둘러 화장실을 떠나려는 김태준.
도훈은 고개를 갸웃이며 얼른 볼일을 본 뒤 드레싱 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의료진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뭐? 태준이, 발 좀 봐봐.”
“예? 아..”
“뭐야, 발톱이 왜 이래? 너 전반도 안 뛰었는데.. 언제부터 이런 거야?”
“어제 훈련 끝나고 보니까 살짝..”
발톱이 깨져 있었다.
급히 치료에 들어가는 의료진.
“아이고. 어제 패스 연습을 그렇게 하더니. 관리를 잘해야지 임마.”
“죄송합니다..”
김태준은 가나전 한 경기만을 뛴 선수였다.
그러나 18명의 적은 선수단에서, 필요하지 않은 선수는 없다.
김태준 역시도 언제 투입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항상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했다.
때문에 훈련때 최선을 다했고, 본인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패스에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죽어라 연습했다.
정말 죽어라고 연습했다.
그걸 쓸 수 있을 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 다시 가보자.”
“4강, 가자! 4강만 가면, 일단 메달 가능성이 50퍼센트는 높아지는거야!”
경기에 나설 선수들은 다시 경기를 위해 나가야 했고, 도훈 역시 드레싱 룸을 나왔다.
“도훈아.”
그리고, 그런 도훈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주장 정승현.
“애들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 거, 너도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태준이도 어제 패스 연습 엄청 했고, 승우나 우영이도 원 터치 받는 연습 엄청했어. 알고 있겠지.”
“...”
“근데 연습했다고 경기에서 모두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냐. 그걸 알아. 근데도 연습 하는거야. 나도 너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아는데, 편하게 갈 수 있는데 좀 어렵게 하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거야. 뭔 말인지 알지?”
“예.”
도훈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정승현.
도훈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누군가에겐 자신이 마티니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더 중요한 건, 아직까지도 자신이 축구라는 스포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닐까?
축구에 100퍼센트라는 건 없다.
누군가는 90퍼센트를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50퍼센트를 가지고 있지만 한 사람이 100퍼센트를 가지고 있을 순 없다.
도훈도 자신이 100퍼센트 모든 걸 해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자신은 100년을 수련한 인간일 뿐이지 신은 아니니까.
신선이 되신 스승님이라면 인간 세상에선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팀 내에서 가장 그 퍼센트가 높은 선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80퍼센트와 동료의 20퍼센트가 만나면 그것은 100퍼센트가 된다.
정승현의 말이 완벽히 그 뜻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도훈은 후반전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혼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 비하인드 스토리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축구계에 있어서 이 대목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지도 몰랐다.
지금껏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묵직한 오른손만을 썼던 도훈이, 이젠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왼손까지 쓰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오른손의 파워를 낮추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오른손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후반전.
도훈이 공을 잡으면 역시나 서넛이 붙어 왔다.
그걸 떨쳐내는 동안 그 수는 네다섯으로 불었고.
그러나 도훈은 다시 그 사이를 뚫기 위해 기를 쓰지 않았다.
기를 쓰고 뚫는 게 성공확률 80퍼센트.
동료에게 공을 넘기면 40퍼센트가 될 것이었다.
지금까진 그러니까 패스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그 40퍼센트를 활용하는 게, 자신의 80퍼센트를 90, 99퍼센트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으니까.
뻐어어엉-!
“와, 정말 잘 봤습니다!”
“백도훈의 침투 패스!”
도훈은 수비 너머로 패스를 뿌렸다.
못해서 안한 게 아니었다.
할 수 있는데 안한 것이었다.
“와..!”
“패스 봐..”
백 패스나 이런 패스가 아니라, 그것은 어찌보면 도훈의 제대로 된 첫 패스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첫 패스치고는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했다.
“고오올-!”
“백도훈의 환상적인 어시스트를 골로 연결하는 정우영입니다!”
“뭐야! 패스 안한다며?”
어이 없다는 표정의 이라크.
분명 고집스럽게 패스를 하지 않는다는 정보가 있었건만.
어찌 저리도 아름다운 패스까지 할 줄 알았단 말인가?
“도훈아!”
도훈은 김태준에게 감사했다.
사실, 이런 저런 이유보다 도훈이 패스를 선택하기로 결심한 건 김태준 때문이기도 했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지만, 김태준은 패스를 연습했다.
자신에게 기회가 온 순간, 그 패스를 뿌리기 위해서.
근데 자신은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
“잘했어!”
“고마워요, 형.”
“응? 뭐가?”
골이 들어간 순간 도훈은 정우영에게 가는 대신 벤치로 달려가 김태준을 끌어 안았다.
“세 번째 골입니다! 이번 경기도 화끈한 골 폭풍을 몰아치며 완전히 경기를 압도하고 있는 한국입니다!”
“아, 이번에도 백도훈의 도움이었는데, 패스가 기가 막히네요. 이런 재주도 있었군요, 이 선수가. 하하.”
도훈은 이후로 한 개의 도움을 더 기록했다.
그리고, 그 도움에 도움을 받아 한층 헐거워진 집중 견제를 벗어나 쐐기의 쐐기골까지 터뜨렸다.
동료를 활용하는 건 자신의 기회를 줄이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더 많은 기회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총 2골 2도움.
새롭게 눈을 뜬 도훈이 경기를 완전히 박살내는 모습이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를 만드는 건, 나머지 열 명의 도움 없이는 매우 힘들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구나.”
스승님의 말씀을 떠올리는 도훈.
“그래도 세계최고는 한 명뿐이죠.”
아직도 그 대답을 했던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
하지만, 비로소 도훈은 스승님의 진정한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새롭게 눈을 떴다.
그 말인 즉슨,
앞으로 축구계는 좆됐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이 4강에 진출합니다!”
ㆍㆍㆍ
“알아요?”
“아니, 아는 정도가 아니라. 내 이번 과제 주제가 아예 그 사람인데? 너, 진짜 와... 대박이구나.”
도훈이 임찬주에게 조르제 멘데스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사실을 말하자, 임찬주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화 통화니 도훈이 그걸 볼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임찬주는 감탄밖에 할 수가 없었다.
당장 임찬주가 준비하고 있는 과제 하나가 조르제 멘데스라는 인물 분석이었는데, 도훈은 실제로 조르제 멘데스에게 연락을 받았다니까.
“야. 그 사람이랑 만나볼거냐?”
“기회가 된다면, 만나 봐야죠. 계약을 하든 말든.”
“그럼 그 때 나 같이 가면 안되냐?”
“...형 그렇게 한가해요?”
“나야 뭐 3학년이니까. 그런 경험 한 번 쌓는게 진짜 필요해서 그래. 야, 멘데스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는데 직접 멘데스를 만나서 쓰면 얼마나 퀄리티가 올라가겠냐.”
“뭐 저야 상관 없죠. 연락 드릴게요.”
“진짜 고맙다 야. 내가 진짜 밥 한 번 크게 산다.”
임찬주는 흥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ㆍㆍㆍ
7월 27일 18:00
대한민국 vs 멕시코
온두라스 vs 프랑스
4강 대진이 확정됐다.
대한민국은 나이지리아를 꺾고 올라온 멕시코와 맞붙게 됐고, 프랑스는 온두라스와 같은 시간에 만나게 됐다.
중남미의 전통 강호, 멕시코.
멕시코는 어찌보면 이라크의 상위호환같은 팀이라고 볼 수 있었다.
수비 조직력이 바탕이 되는 팀이면서도, 역습에서의 날카로움은 이라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 역시도 한 단계 위였고.
다만 그래서 한국이 경기를 준비하기엔 쉬울 수도 있었다.
8강을 준비했던 전략에서 크게 수정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선발 명단 역시도 동일.
“한 경기만 더 이기면 메달이다. 다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해보자!”
“옙!”“예!”
선수들의 각오 역시 충만.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선수 생활을 이어감에 있어 일찌감치 군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정말 정신적으로 한 시름을 덜어낼 수 있는 일이다. 오죽하면 면제로이드를 맞고 뛴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물론 도훈도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이건 동료들의 미래가 걸린 일.
다만 도훈은 김 감독의 말처럼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뛸 생각은 없었다.
오늘은 절대 마지막이 될 수 없다.
누가 뭐래도 마지막 승부는 따로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러기 위해서 오늘 경기를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결론은 다를 게 없었고,
“삐이익-!”
멕시코와의 4강전이 시작 되었다.
‘느껴진다..’
경기 초반.
중앙 공격수로 출전한 도훈은 천천히 뛰며 경기장 전체에서 흐르고 있는 기의 흐름을 읽으려 했다.
누구나 기는 가지고 있다.
그 기의 크기는 다르지만, 어쨌든 집중만 한다면 기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고 그것은 곧 적뿐만 아니라 동료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지 굳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기를 읽는 법을 암굴에서 스승님과 함께 수련했던 도훈이었다. 그걸 지금까지는 적의 기를 읽는데 집중했던 도훈이었지만, 이젠 그 범위를 확장시키는 법을 익숙히 해야 할 것이었다.
더 이상 모든 걸 혼자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파아앙-
툭.
약간 내려온 자리에서 첫 터치를 가져가는 도훈.
이미 공을 받기 전, 도훈은 주변의 기를 읽고 있었다.
적대적인 기와,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기.
이걸 이용한다.
파아앙-
도훈은 곧바로 우호적인 기의 방향으로 패스를 툭 내주고 뛰었다.
파아앙-
그리고 곧바로 돌아오는 리턴 패스.
그 원투 패스로 도훈은 아주 쉽게 상대 하나를 제쳐낼 수 있었다.
쉽다.
정말 쉽다.
1대1로 제쳐내는 것에 비해서.
물론 그 편이 훨씬 재미는 있었다. 아직 도훈에게 1대1보다 재밌는 건 없었으니.
하지만 굳이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갈 필욘 없었다.
자기가 무슨 열혈만화의 열혈 주인공도 아니고.
파아앙-
‘쉽게 가자고.’
다시 왼쪽 사이드로 패스를 내주며 박스를 향해 달려드는 도훈.
아직은 어렵게 갈 레벨이 아니었다.
고난과 역경 따위가 온다 해도, 그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여야 했다.
< 자존심 강한 두 천재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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