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27화 (27/173)
  • < 고양이와 쥐 (3) >

    “정말 대단한 골이 터졌습니다! 다시 보시죠!”

    “여기부터 시작이었죠. 한 명을 가볍게 제쳐내고, 여기서 둘. 그리고 셋, 넷까지 완벽하게 개인기로 뚫어냈고요. 골키퍼 나오는 걸 끝까지 보고 툭 로빙 슛. 아,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네요. 정말 대단한 골입니다. 오늘 이 경기가 대회 첫 경기인데, 이건 뭐 대회 최고의 골이 벌써 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대한민국의 백도훈 선수가! 기술의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환상적인 기술을 뽐내며 압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꽤개개개갱-!

    환호하며 대한민국을 부르짖는 관중들과 천둥처럼 울어대는 꽹가리 부대.

    기세가 살 수밖에 없는 골이었다.

    이 전까지만 해도 한국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워낙에 아슬아슬했고, 상대가 강했으니까.

    경기와 전혀 관련이 없는, 단순히 자국에서 하는 경기라 경기를 보러 온 일본 관중들이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며 속으로 화만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젠 정말 통쾌하게 환호성을 내지를 수 있었다.

    “...”

    그 속에서, 소리아노는 무릎을 꿇은 채 한 동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믿을 수 없었다.

    완벽하게 패배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완벽히 뚫려 버리고 말았다.

    다리 사이를 내줬으니.

    무엇보다 충격인 것은, 난생 처음 보는 드리블에 뚫렸다는 게 아니란 것이었다.

    뭐 이딴 드리블이 다 있어? 가 아니라, 이걸 이렇게 당하다니? 라는 느낌.

    골목에서 많이 봐왔던 리듬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의 플립플랩 마저도 골목에서 많이 쓰던 스킬이었고.

    그러나, 그게 그렇게 빠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기술 대 기술에서, 완벽히 진 것.

    분명히 자신할 수 있었다.

    한국 선수 누구라도 고향의 골목에 온다면 평범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젠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최소한 자신이 아는 한, 방금의 상대보다 뛰어났던 녀석은 없었으니까.

    “...”

    골을 넣은 뒤 조용히 돌아가는 도훈의 뒷 모습을 바라보는 소리아노.

    도발을 했다 역으로 당했건만, 상대는 아무런 반응 없이 되돌아가고 있었다.

    때문에 소리아노는 더욱 굴욕적이었고, 무서웠다.

    그 모습이, 마치 너 따위와는 싸울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듯 했으니까.

    “좋아!”

    “잘했다, 도훈아!”

    도훈의 머리를 쓰다듬는 선수들.

    그것은 축하라기 보단 고마움의 표시에 가까웠다.

    “할 수 있어!”

    “집중하자!”

    그리고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분위기를 다시 다잡는 한국.

    방금 보여준 도훈의 믿을 수 없는 활약은 믿음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강했다.

    경기 전, 분명 이길 수 있다고 스스로들을 믿으며 파이팅했던 한국이었다.

    하지만 경기를 하면 할 수록, 과연 정말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가고 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눈으로 보았다.

    이길 수 있다.

    도훈만 있으면.

    믿는 구석이 생겼다는 건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다.

    “네, 괜찮아요!”

    “지금도 불안하긴 했지만, 잘 막아냈습니다. 결국 막아내기만 하면 돼요.”

    버티면 이길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임하는 것과, 버텨내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플레이하는 것과는 당연히 하늘과 땅 차이.

    선수들이 좀 더 집중력을 발휘해 주고 있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오히려 급해지는 입장.

    시종일관 몰아붙이다가, 한 방을 내줬는데 그게 너무 컸다.

    그리고 이제 다시 몰아붙이려는데, 이젠 상대의 기세가 살아나고 있었다.

    분명히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그 흐름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고.

    그러나 그 맥을 너무나 강렬하게 끊어버린 상대 10번의 일격.

    ‘시끄러 죽겠네..’

    꽤개개갱-!

    게다가 저 시끄러운 소리는 뭐란 말인가.

    신경쓰이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삐익, 삐이익-!”

    “네! 이렇게 양 팀 1대1로 전반전이 종료 되었습니다.”

    “괜찮았어요. 공격 횟수는 상대가 훨씬 많았습니다만, 어쨌든 결과는 1대1입니다. 수비에서도 집중력을 잘 발휘해줬구요. 백도훈 선수의 원맨쇼는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후반전, 이제 체력 싸움일텐데 오늘이 첫 경기인 만큼 아직 힘은 충분히 남아 있을 거라고 봅니다. 힘을 더 내줘야 겠죠.”

    경기는 후반전으로 이어졌다.

    “초반 15분. 확실하게 몰아친다. 이제 진짜로 시작해보자.”

    하프타임 동안, 김 감독은 후반 초반 15분을 강조했다.

    전반의 대부분을 상대의 공세를 막아내는 것에 집중했던 한국이었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 속에서, 체력 소모가 심한 쪽은 당연히 한 발 더 뛰어야 했던 한국 쪽.

    후반의 후반까지 간다면 아찔한 장면들이 더 노출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체력과 집중력이 남아있는 시점에 승부수를 걸어야 했고 그것이 후반 초반 15분.

    진정한 맞불은 사실 이제부터.

    전반과는 완전히 기세를 달리하여,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차례였다.

    “이강인, 찔러 줍니다!”

    “좋은 패스입니다!”

    전반 동안 전진 패스를 아끼는 듯 싶던 이강인이 후반 시작과 동시에 공격적인 패스를 뿌리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패스는 실패 확률이 백 패스나 횡 패스보다 당연히 높다.

    그리고 그 실패는 공의 소유권을 내주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따라서 전반 동안은 전략적으로 그 패스를 아꼈던 이강인이었다.

    못해서 안하고 있던 게 아니라는 뜻.

    타타탓-!

    그리고 그 패스를 왼쪽의 정우영이 받았다.

    속도를 살리며 왼쪽을 파고드는 정우영.

    ‘당황하고 있어.’

    도훈은 박스 근처를 파고들며 생각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완전히 태세전환한 모습에, 상대는 분명히 당황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우왕좌왕하며 자신의 위치를 찾지도 못하고들 있었으니까.

    덕분에 오른쪽의 이승우에게도, 중원의 권창훈에게도, 그리고 도훈에게도 공간이 많이 열리고 있는 상황.

    “잘 접었어요!”

    박스 왼쪽까지 파고든 정우영이 왼발로 크로스를 올릴 듯 하며 상대를 속인 뒤 방향을 접었다.

    ‘지금.’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도훈이 훈련했던대로 뛰었다.

    항상 침투는 동료의 반대 방향으로 할 것.

    정우영이 공을 뒤로 접은 순간, 도훈은 튕겨 나가듯 속도를 높이며 박스 안으로 침투했고,

    “여기!”

    파아앙-!

    그런 도훈에게 정우영이 땅볼 스루 패스를 찔러 넣었다.

    줄 곳은 많았다.

    의외로 상대 수비의 조직력이 허술함을 노출하고 있었고, 권창훈이나 이승우에게도 공간이 열려 있었으니까.

    하지만 선택은 쉬웠다.

    도훈에게 주는 것만큼 믿음직한 패스 코스는 없었다.

    촤아아-

    공이 박스 왼쪽을 가르는 동시에 침투하는 도훈과 그런 도훈을 뒤따르는 소리아노.

    다시 한 번 둘의 대결.

    그러나 소리아노는 아까와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

    앞에서 세 명이 제쳐지는 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던 소리아노가, 이번엔 많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이미, 힘의 차이를 느낀 상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스스로 꼬랑지를 만 상대를 제압하는 건 무엇보다도 쉬운 일.

    ‘미리 속인다.’

    패스의 길을 읽으며 도훈은 이미 다음 동작을 생각하고 있었다.

    동굴 밖에서 진짜 축구를 하며 깨달았던 것 중 하나.

    공이 없을 때에도 공을 가졌을 때처럼 상대를 속여야 한다는 것.

    타타탓-!

    “빨라요!”

    박스 안, 왼쪽.

    공이 발 근처까지 다다랐을 때, 도훈은 왼발을 뒤로 당겼다.

    뒤에서 굴러오는 패스를 당겨, 앞으로 한 번 더 치고 갈 것처럼.

    소리아노는 그것을 뒤에서 보고 있는 입장이었고, 당연히 한 발 더 따라가기 위해 속도를 더 높여야 했다.

    파아악-!

    그러나 도훈은 오른발을 강하게 딛으며 멈춰섰다.

    그리고 공을 왼발 바깥으로 컨트롤하며,

    스르륵-!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섰다.

    유려한 턴.

    그 완급조절이 어찌나 칼같았는지, 소리아노는 뒤늦게 멈춰섰지만 이미 제 속도를 못 이기고 저 멀리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 동작 하나만으로 도훈에게 또 다시 슈팅 각이 열린 것.

    도훈은 침착하게 오른발등에 공을 얹었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이미 가까운 거리였건만, 슈팅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강력했으니 골키퍼에게 그 슈팅에 반응을 하라는 건 가혹한 일.

    철썩-!

    후반전이 시작한 지 3분만에 도훈의 역전골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2대1, 역전.

    이제 경기장엔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으며, 그 열기가 더위보다도 뜨거웠다.

    “이제 더위는 꽤 가라 앉았습니다만, 우리 붉은악마들이 좋은 열기를 다시 채워 넣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하나만. 하나만 더 결정타를 먹여주면 참 좋을 텐데요.”

    하지만 여기서 끝은 아니다.

    후반 15분이 지나는 시점.

    현재의 분위기가 좋다고는 하나, 확실히 2대1로는 불안한감이 있는 것도 사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이 기세를 살려 한 골을 더 넣고, 남은 시간동안 그 두 골을 지켜내는 것.

    “백도훈 선수가 상당히 많은 수비들에게 둘러 쌓여 있습니다.”

    “의식을 안할 수가 없죠.”

    도훈도 한 골만 더 넣고 싶었다.

    딱 한 골만 더 넣으면 완벽히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확실히 이쯤되니 상대도 도훈을 집중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도훈이 공을 받으면 곧바로 붙어줄 수 있도록 지근거리에만 서너 명이 따라붙고 있는 상황.

    도훈의 존재감은 그 정도였다.

    1대1에 자신감이 있던 아르헨티나 수비수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서로 힘을 합쳐야할 정도로.

    그리고 분명한 건, 공을 받지 않더라도 그렇게 수비를 서넛씩 데리고 다닌다는 건 그 자체로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

    똑같은 머릿수로 하는 게임에서 한 명에게 서넛이 붙으면, 다른 쪽에선 당연히 인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파아앙-!

    “좋아요!”

    권창훈이 공을 몰고 들어가다, 도훈에게 시선을 한 번 준 뒤 반대편 사이드로 패스를 열었다.

    단순히 도훈에게 공을 주려는 듯한 모션만으로 도훈에게 몰렸던 아르헨티나의 수비.

    자연히 반대편엔 빈 공간이 열렸고,

    뻐어엉-!

    “이승우, 슈우웃-!”

    시종일관 조용히 골문을 노리던 이승우가 그 패스를 받아 먹었다.

    슈우우웅-

    철썩-!

    “고오올-!”

    “됐어요! 됐어요!”

    세 번째 골이 아르헨티나의 골문을 열어 젖히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아-!”

    “감독님!”

    드디어 모든 톱니바퀴가 맞아 떨어지는 순간.

    마침내 계획했던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순간 김 감독을 포함한 벤치의 모두가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짖었다.

    “됐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준비했던 맞불.

    그걸 해낸 것이었다.

    대회 최고 공격력으로 평가받는 그 공격력을 더욱 뜨거운 화력으로 압도해 버리다니.

    모두가 한국과 아르헨티나를 쥐와 고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보통이었다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의 심정으로 고양이를 어떻게든 깨물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후반 21분, 3대1로 앞서가는 대한민국입니다!”

    “아, 정말 화끈한 공격력이네요. 우리 선수들 대단합니다.”

    한국은 쥐가 아니었다.

    고양이보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호랑이였다.

    20분간을 몰아치며 두 골의 리드를 잡은 한국.

    그러나 분명, 마지막 20분간은 에너지를 끌어썼던 대가를 치뤄야 했다.

    도훈도 수비에 가담해야 했을 정도로 아르헨티나는 모든 걸 쏟아부어 어떻게든 만회골을 터뜨리려 총력을 가했다.

    정말 아슬아슬했다.

    실제로 후반 42분에 만회골을 내주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삐익, 삐익, 삐이익-!”

    “네! 경기 끝났습니다! 3대2! 대한민국이 조별예선 첫 경기, 강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승점 3점을 획득하는 순간입니다!”

    두 골을 내줬으나, 세 골을 넣어서 이겼다.

    모든 건 계획대로.

    대한민국이 화력으로 아르헨티나를 잠재우는 순간이었다.

    “좋은 시합이었어요.”

    경기가 끝난 뒤, 인사를 나누는 선수들.

    말이 통하는 이강인이나 이승우, 도훈같은 선수들은 몇 마디씩을 나누며 승자로서 패자를 위로했다.

    “저기.”

    그리고, 도훈에게 소리아노가 다가왔다.

    소리아노는 괜스레 딴 곳을 보며 말했다.

    그 손에는 자신의 유니폼이 들려 있었다.

    “잘하더라. 솔직히 감탄했어. 유니폼 교환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물론이지. 너도 잘했어.”

    웃으며 유니폼을 교환하고, 포옹하는 둘.

    알고 있다.

    경기 중엔 서로를 도발할 순 있지만, 결국 경기가 끝나면 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이것 역시 뜨거운 스포츠의 재미였다.

    “멋있었어요!”

    “최고다!”

    이후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열띤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인사하는 선수들.

    관중들은 멋진 승리를 보여준 선수들에게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 주었다.

    “도훈아!”

    “어?”

    그 때, 익숙한 목소리와 얼굴 하나가 관중석에서 도훈을 부르고 있었다.

    저건..

    “찬주 형?”

    “얌마! 나 더 찬스 떨어졌다! 하하하!”

    < 고양이와 쥐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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