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25화 (25/173)
  • < 고양이와 쥐 (1) >

    ··· 이렇듯 여러 팀들이 접촉을 해왔으며, 현재로써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보이는 곳은 분데스리가의 레드불 라이프치히입니다. 라이프치히는 올 해 리그 7위를 한 강팀이나, 이번 여름에 주축 선수인 에밀 포르스베리와 티모 베르너가 동시에 이적한 탓에 공격수 쪽에서의 공백을 느끼고 있는 중이어서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는 이러한 상황이며, 백도훈 선수의 동의가 있다면 곧바로 계약이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도훈은 며칠 전 밀란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도훈이 한국으로 떠나기전 시작되었던 임대건에 관한 이야기.

    여러 팀들이 관심을 표명했다는 소식이었고, 그 중 가장 좋을 것이라고 구단에서 판단한 팀이 바로 분데스리가의 RB 라이프치히라는 것이었다.

    도훈은 구단이 보내준 정보들을 면밀히 검토했다.

    도훈이 보기에도 가장 좋은 조건은 분데스리가의 라이프치히가 맞는 것 같았고, 고심끝에 도훈은 동의의 의견이 담긴 답장을 보냈다.

    라이프치히라는 팀에 임대를 가는 것에 대해.

    그리하여 도훈이 일본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사이, 이역만리 유럽에선 도훈의 임대 계약이 성사되고 있었다.

    레드불 라이프치히로의 1년 임대 합의.

    필수 조항으로는 1군 스쿼드 보장과 밀란이 원할 경우 반 시즌으로 임대를 종료할 수 있다는 것.

    밀란으로서도 잘 키워내야 할 재산이기 때문에 계약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결과였다.

    “됐군.. 됐어.”

    그리고, 그 계약를 마친 뒤 손가락을 튕기는 한 남자.

    라이프치히의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이었다.

    작년 시즌부터 팀에 부임한 나겔스만 감독은 젊은 지도력으로 팀을 7위에 랭크시키는데 성공했었다.

    그러나 이번 여름, 주축 선수들의 이탈로 새 시즌은 완전히 새로운 구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

    이탈자들인 에밀 포르스베리와 티모 베르너는 유럽 정상급의 선수들이었다.

    그 선수들의 공백을 느끼지 않으려면 그에 걸맞는 정상급 선수를 데려오는 게 무조건적으로 필요했던 상황.

    그러나 나겔스만 감독은 그 선수를 다른 유수의 팀에서 찾는 게 아니라, AC 밀란의 유스 선수를 데려오는 선택을 내렸다.

    그 시작은 우연히 유에파 유스 리그의 결승전 경기를 봤을 때였다.

    충격이었다.

    모든 감독들이 도훈을 처음보고 느끼는 그 충격을 나겔스만 감독 역시 그대로 느낀 것.

    그리고 때마침 임대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겔스만 감독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구단 관계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나겔스만 감독의 의지는 강력했다.

    자신의 거취를 걸 정도로.

    구단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작 유망주 하나를 임대로 데려오기 위해 그러한 도박까지 하다니?

    당장 다른 선수를 데려올만한 이적료를 대주겠다는 구단의 권유에 나겔스만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껴두십시오. 반년 뒤 그 돈을 꼭 쓸 일이 생길 겁니다. 아니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고요."

    1년 임대지만 겨울때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밀란과 나누어야 한다.

    그 때, 분명 아껴둔 돈을 쓸 일이 있을 것이었다.

    나겔스만 감독이 본 도훈의 잠재력은 그 정도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잠재력이 아니었다.

    ‘수면 위로 드러나기만 하면 되는거지..’

    혹시나 다른 팀에 빼앗기진 않을까 진땀을 뺐던 나겔스만 감독이었다.

    이건 마치 확실한 정보가 있지만, 아직 상승세를 타기 전의 주식을 매수하는 기분.

    여름 동안, 백도훈은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다고 했다.

    올림픽은 수많은 유망주들이 뛰는 대회이고,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대회의 활약에 힘입어 치솟은 몸값을 자랑하게 되는 선수들이 나오곤 했다.

    그러니 이 계약이 행운이라는 것이었다.

    한 달만 지나도 백도훈이라는 선수의 가치는 미친듯이 폭등할테니.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이미 저점에서 매수한 임자가 있는데.

    “부지런한 새가 먹이를 채가는 법이라고.”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는 나겔스만 감독이었다.

    ㆍㆍㆍ

    “찜통이다 찜통..”

    “용광로 안에서 녹는 기분이다..”

    7월 12일, 도쿄.

    이제 여름의 초입에 해당하는 시기이건만, 선수들이 느끼는 더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도훈도 오전 오후 훈련을 마치고 나면 진이 다 빠질 정도.

    뜨거운 햇살보다도 높은 습도 때문에 찌는 듯한 더위가 호흡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뜨거웠던 만큼 올림픽호는 끈적하게 하나의 팀이 되어가고 있는 듯 했다.

    7월 2일, 남아공과의 연습 경기 4:2 승리.

    7월 6일, 스웨덴과의 연습 경기 2:2 무승부.

    7월 9일, 페루와의 연습 경기 3대2 승리.

    일본에 온 뒤로 세 번의 연습 경기에서 2승 1무.

    기세는 무서웠다.

    점점 더 일치되어가는 조직력과, 갈수록 날이 서는 공격력.

    특히나 도훈의 컨디션은 하늘에서 내려올 줄을 모르고 있었다.

    세 번의 경기에서 나온 9골 중 6골이 도훈의 골이었을 정도니까.

    무더운 날씨에 후반 이후 체력 문제를 느끼긴 했으나, 큰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어차피 이 날씨엔 도훈만 지치는 게 아니었으니.

    남자축구 B조

    -대한민국

    -아르헨티나

    -가나

    -덴마크

    대한민국은 아르헨티나와의 첫 경기를 시작으로 가나, 덴마크 순으로 조별 예선을 치루게 된다.

    상당히 만만치 않은 조 편성이었다.

    해외 도박사들의 따르면 대한민국이 예선을 뚫고 8강에 진출할 가능성은 3번째로, 낮은 편.

    그나마 4순위인 가나와도 배당이 그렇게 차이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헨티나와 덴마크의 전력이 상당히 강하다는 평이었다.

    “뭐니뭐니 해도 기술. 개인 기량으로 승부는 보는 친구들이야. 강인이는 익숙한 스타일일거다.”

    8강 진출의 열쇠는 역시나 첫 경기, 아르헨티나 전이었다.

    아르헨티나의 강점은, 역시나 개인 기술.

    흔히 우리나라는 기술의 남미에게 쥐약이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여오곤 했다. 끈끈한 조직력을 갖춘 팀보다도, 개인 기량으로 승부하는 타입에 오히려 더 약점을 보여왔다는 것.

    그러한 약점에 대해, 더 조직력을 탄탄히해 협력으로 수비하는 방식으로 준비해왔던 게 과거의 한국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깜짝 놀랄거야.”

    이번 대표팀이 아르헨티나전을 준비하는 키워드는 맞불.

    맞불이었다.

    “누구 화력이 더 뜨거운지 해보자고.”

    그 어떤 감독이 감히 할 수 있었을까.

    아르헨티나를 오히려 공격력으로 찍어누를 생각을.

    그러나, 분명히 자신은 있었다. 이번만큼은.

    경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ㆍㆍㆍ

    7월 14일,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정식으로 올림픽의 개막식이 열리기 하루 전.

    남자 축구 예선은 막을 올렸다.

    “경기장의 온도는 섭씨 29도입니다. 해가 져가는 오후 6시임에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요.”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하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죠. 오늘, 끝까지 뛰는 정신력에서 상대를 이겨줬으면 좋겠습니다.”

    연주되는 애국가를 부르며 서있는데 턱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

    정말 용광로같은 더위였다.

    이런 날씨라면 오늘 경기는 정말 정신력 싸움이 될 것같은 양상.

    “드디어, 도쿄 올림픽 남자 축구예선 조별 첫 경기,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그러한 뜨거운 분위기에서, 마침내 올림픽 본선이 시작 되었다.

    “자, 첫 경기지만 아마 우리에겐 가장 어려운 경기가 될 겁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우리 수비 조직력으로 상대의 개인 돌파를 막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겠죠.”

    “혼자선 막지 못하더라도 서로 도우면서 수비를 해야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어떤 세대이건, 아르헨티나라는 팀이 가지는 색깔은 기술,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공격력이었다.

    그 동안 한국이 남미에게 약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그러한 개인 기량에서 밀리는 모습을 많이 노출했었기 때문.

    항상 고양이 앞에서의 쥐같은 모습이었던 대한민국이었다.

    “자, 이거죠. 공을 잡으면 바로 1대1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거거든요.”

    경기 초반, 상대 윙 포워드 무리엘이 공을 잡음과 동시에 툭툭 치고 들어오며 위협을 시작했다.

    이건 습관적일 정도로 전형적인 플레이였다.

    우리 선수들이 공을 잡으면 다음 패스를 어디로 연결할지부터 찾는 플레이를 한다면,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공을 잡으면 한 명을 제칠 생각부터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럴 수 있는 능력들을 다들 갖추고 있다는 것이 무서운 점.

    휘이익-

    파아앙-!

    “역시 유연하네요.”

    왼쪽 풀백 최준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무리엘은 유연한 드리블로 최준을 속이며 사이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뻐어엉-!

    그러나 대비하고 있었다는 듯 공을 터치라인 밖으로 차내며 그 공간을 커버하는 중앙 수비수 정승현.

    “좋아요. 이렇게 서로 서로 커버를 해줘야 한다는 거죠.”

    이러한 협력 수비를 준비해왔던 한국의 수비.

    괜찮았다.

    다만, 애초에 1대1에서 밀리지 않는 게 역시나 베스트.

    이러한 수비 형태는 한 번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면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불안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었으니.

    “집중력 유지해야 합니다. 언제 뚫릴지 모르는 일이에요. 항상 자기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커버를 들어가야 하는지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경기 초반은 역시나 아르헨티나가 주도권을 잡고 가는 형태였다.

    기술들이 좋아 단순한 압박으론 공을 빼앗아내기 힘들었고, 중원에서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숏 패스들이 상당히 정확했다.

    확실히 이번 아르헨티나 올림픽팀은 강팀으로 분류되는 이유가 있어보이는 모습이었다.

    ‘높다.’

    그런 상황에서, 도훈은 조용히 주변을 둘러 보았다.

    오늘 도훈은 4-3-3 형태에서의 원 톱 역할을 맡은 상태.

    때문에 상대 최종 수비수와 비슷한 선상에서 뛰고 있었다.

    그 상대의 최종 수비수 라인이 높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는 숏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팀이고, 그러다 보니 선수들의 간격이 좁을 수밖에 없다.

    또한 지금은 아르헨티나가 점유율을 가져가며 공세를 취하고 있는 입장.

    당연히 전체적으로 라인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물론 도훈에겐 기회였다.

    아주 먹음직스러운 기회.

    “항상 역습 준비하고 있어야죠. 우리 선수들도 역습에서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능력들이 다들 있는 선수들입니다. 예전과는 달라요.”

    수비에서의 집중력만 받쳐준다면, 공격쪽에선 분명히 상대를 파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생각으로 도훈은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하프라인 근처에서 천천히 활동 범위를 가져갔다.

    “아, 안되는데요.”

    “어어, 다행입니다! 이지솔이 몸을 던져 막아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슬슬 아찔한 장면들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전반 7분, 박스 안에서의 첫 슈팅을 허용하는 한국.

    또 다시 상대의 개인 돌파와, 순식간에 공간을 허무는 2대1 패스로 슈팅까지 내주고 만 것.

    수비수 이지솔이 몸으로 막아내지 않았다면 꼼짝 없이 실점으로 연결될 뻔 한 순간.

    그러나 어찌됐든 막아는 냈다.

    위기 뒤엔 곧 기회.

    뻐어어엉-!

    “이런 패스, 좋아요! 빠르게 올라 가야죠!”

    걷어내듯 차낸 공이 순식간에 하프라인 근처로 떨어졌다.

    수비라인이 높은 상대이기 때문에 공을 잡아내기만 한다면 곧바로 큰 찬스가 날 수 있는 상황.

    “정우영!”

    그 공을 왼쪽의 정우영이 잡아내는 순간,

    “반대, 중앙에서도 들어 갑니다!”

    전광석화같이 오른쪽과 중앙을 침투해 들어가는 이승우와 도훈.

    “이익..!”

    “놔!”

    어슬렁거리던 도훈이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동일선상에 있던 상대 중앙 수비수를 앞지르는데 다섯걸음이면 족했을 정도.

    때문에 뒤쳐질 거라는 걸 느낀 상대가 도훈의 유니폼을 잡아 당기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강하게 뿌리친 뒤 달려 나가는 도훈.

    그 기세가 돌풍처럼 느껴지는 순간.

    ‘잠깐.’

    박스를 향해 달려들던 도훈이 아차하며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너무 빠른 탓에 누구도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축구엔 오프사이드라는 룰이 있다.

    이대로라면 가장 빠른 죄로 오히려 패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

    그러나 정우영이 이미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지마!”

    도훈의 외침은 한 박자 느렸다.

    아니, 정우영의 판단 미스가 한 박자 빠른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정우영의 패스는 이미 발을 떠난 상황이었다.

    “삐익-!”

    “아, 지금은 백도훈 선수가 앞서 있었습니다. 오프사이드네요.”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상황을 파악하고 머리를 감싸쥐는 정우영.

    “미안.”

    “아냐, 내가 생각없이 앞질러 있었어.”

    도훈과 정우영은 서로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스읍, 입맛을 다시는 도훈.

    생각하면서 달려야 했는데.

    아직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부족하다.

    그런데,

    “un tonto? ni no se las reglas?”

    도훈에게 뒤쳐졌던 그 중앙 수비 녀석이 도훈을 보며 웃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스페인어였다.

    도훈이 스페인어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뱉은 말일 것이었다.

    아니라면 그런 말을 들리도록 하진 않았을테니.

    하지만 도훈은 그걸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바보인가? 룰도 몰라?”

    녀석이 뱉은 말의 뜻이었다.

    그래?

    도훈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스페인어로 대답해주었다.

    “미안하다. 근데 넌 뛸 줄을 모르더라?”

    “...!”

    도훈이 스페인어로 대꾸하자 미간을 찌푸리는 녀석.

    둘간의 신경전이 시작된 것은 그 때부터였다.

    < 고양이와 쥐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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