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23화 (23/173)

< 백문이 불여일견 (4) >

2020년 6월 28일, 수원 월드컵 경기장.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경기장은 붉은 유니폼을 입은 인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올림픽호가 결전지인 도쿄로 입성하기 전, 한국에서 치르는 마지막 평가전이자 출정식.

그 동안 준비해 온 결과물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자리가 바로 오늘.

“나이지리아는 상당히 강한 팀입니다. 선수들의 피지컬도 연령별 대표팀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완성이 되어 있구요. 이게 아프리카팀의 특징이고, 그 동안 연령별에서 강했던 이유이기도 하죠.”

“사실 지금 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선수들 대부분이 똑같이 A대표팀에도 포함되어 있잖아요?”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 상대는,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역시 오늘 경기를 마치면 도쿄로 출발해 메달을 노리는 팀.

최소 8강급 전력이라고 평가받는 나이지리아를 상대하게 되는 오늘이었다.

“그리고, 자. 문제의 선발 명단인데요. 요즘 화제의 중심인, 백도훈 선수가 선발 명단에 들어가 있습니다.”

“정면 승부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김학범 감독, 그리고 백도훈 선수 본인 모두.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명단 발탁에 대해 있었던 논란들은, 오늘 경기력으로써 보여주겠다 이건데요. 백문이 불여일견인거죠. 보면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도훈은 오늘 중앙 공격수로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그 좌, 우를 정우영과 이승우가 보좌.

“이제 두려울 건 없다. 모든 걸 보여주자. 이젠 오히려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의 기세를 끌어 올리는 게 중요하다.”

“예!”“옙!”

도훈은 비밀병기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숨기지 않고 전면에 내세우게 될 비밀병기.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2주 남짓.

상대가 분석 가능한 전력 노출 따위를 신경 쓸 단계는 이미 지난 상태였다.

아니, 감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게 더 정확한 이유라고 할까.

도훈의 실력은 그저 깜짝 놀라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 상대의 전의마저 상실케 하는 게 가능한 수준이라고 내부 평가가 이루어졌으니.

“오빠 나오는 거 잘 찍어라.”

“찍고 있어요.”

그리고, 월드컵 경기장의 VIP석에서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는 한 부녀.

도훈의 아버지와 동생 소윤이었다.

이들은 도훈이 전달한 티켓으로 이 자리에 와 있었다.

아들 덕분에 이런 좋은 자리에서 난생 처음으로 축구를 보게 되다니.

“걱정 마시고 오세요.”

그러나 사실 발걸음을 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도훈의 걱정대로, 아버지도 요즘의 논란에 대해 알고 계셨다.

아버지 역시 요즘 케케오톡의 프로필 사진이 도훈이 유니폼을 입을 모습일 정도로 관심이 높아지셨으니 당연.

보지 않으려고 하다가도 어쩔 수 없이 보게되는 댓글들을 보았을 땐, 속이 답답하고 열불이 나는 것 같아 소주를 벌컥 벌컥 들이키기도 했었다.

때문에 티켓을 받았을 때도 조금 껄끄러운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당연히 아들을 믿고 있지만, 행여나 아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도훈의 목소리는 너무나 당당했다.

그리고, 보여주겠다고 했다.

자신의 실력을.

그 실력을 가장 보여주고픈 게 가족들이었고.

“백도훈 나왔네?”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바로 선발인지. 보자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그 동안 애비도 모르고 있었던 그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길 바랄 뿐.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나온다.”

곧 환호성과 함께 양 국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BAEK 이라고 쓰여진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 도훈.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동생 소윤.

도훈의 첫 올림픽 대표팀 데뷔전이 시작 되었다.

“눈 여겨 봐야 할 선수는 역시나 백도훈 선수겠죠.”

“플레이 하나 하나가 엄격한 잣대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꼭 백도훈 선수가 아니라고 해도, 그러한 자리일 수밖에 없구요.”

도훈은 알고 있었다.

이 자리가 자신의 평가대가 될 것임을.

그렇기에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논란 따위를 순식간에 잠재워버릴 수 있는.

때문에 준비는 단단히 하고 나왔다.

평소보다 더욱 신경써 명상했고, 체내의 기를 가득 채워 나왔다.

몸 상태는 최고.

“긴장되나?”

“괜찮습니다.”

공기가 울리는 듯한 많은 관중들.

사실 이렇게 많은 관중들 앞에서 경기를 하는 건 처음.

그 정도로 도훈은 경험이 적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긴장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러나 도훈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동굴 안에 틀어박혀 말동무라곤 노인네 하나뿐이었던 생활을 100년이나 한 사람이란 말이었다.

그 100년 동안.

한 가지만을 갈고 닦았다.

그렇게 갈고 닦은 실력을 모두에게 뽐내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자랑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니까.

그러니까 오늘 도훈은, 긴장이 된다기 보단 오히려 기대가 되는 상태였다.

한 시 빨리 이 모두에게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고 싶었다.

“여기!”

파아앙-

그리고 첫 패스가 도훈에게 찾아 왔다.

“빠르게 붙습니다. 압박의 강도가 높습니다.”

“나이지리아의 특징이, 경기 템포가 시종일관 빠릅니다. 굉장히 탄력적이고요. 뭔가 기본이 잘 정돈되어 있다기 보다 야생적인 느낌이 강하달까요. 이런 압박에 우리 선수들이 당황하면 안됩니다. 당황하기 시작하면 기세와 주도권을 바로 내줄수도 있어요.”

나이지리아는 기세가 강한 팀이다.

그 기세가 오르게 놔두면 프랑스같은 팀이라 할지라도 경기 내용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그 기세는 대부분 초반에 결정이 되는 게 보통.

“처음부터 빠르게 해. 다른 템포에 맞출 필요 없어. 네 템포를 가져가면 돼.”

김 감독의 전언.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해서, 초장부터 기선제압을 하고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도훈은 날 것 그대로인 나이지리아에 맞설 선봉장이었다.

촤르르-

굴러오는 공.

그리고 동시에 달려드는 상대 미드필더.

볼을 이미 잡은 후라면 모르겠지만, 피지컬적인 측면에서 50대 50의 볼 경합에 있어선 상대가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

그러나,

휘이익-!

싸워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상대는 공을 먼저 잡는다기보다 몸을 먼저 밀어 넣으며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도훈은 몸을 빙글 돌리며 그 시도를 피해냈고, 동시에 발바닥으로 공을 긁어 당겨 가져왔다.

멋진 턴.

“좋은데요?”

“공을 잘 지켜 냈습니다.”

소소하게 터져 나오는 탄성.

반응이 조금 달랐다.

도훈의 플레이에 대한 관중들이나 해설자들의 반응이.

도훈이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건만, 논란 때문에 선수를 바라보는 잣대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은 플레이를 이승우가 했다면 이미 환호로 경기장이 들썩했을지도.

하지만 도훈은 상관 없었다.

이제부터 그 소소한 환호가 거대한 환호로 바뀌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테니까.

타타탓-!

“빠르게 올라 갑니다!”

“좌우 있어요! 빠르게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몸을 돌리자마자 중앙을 향해 공을 몰고 올라가는 도훈.

동시에 좌우 측면으로 파고드는 정우영과 이승우.

단 한 번의 터치로 상대를 벗겨낸 것이 역습과도 같은 효과를 내는 순간.

여기서 더 빠르게 올라가려면, 중앙에서 사이드로 패스를 내준 뒤 다시 중앙으로 연결하는 것이 보통.

공을 가지고 올라가는 것보다 맨 몸으로 달려가는 게 빠르고, 또한 사람보단 공이 빠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툭, 툭, 툭-

타타탓-!

“빠, 빠릅니다!”

공을 몰고 올라가는 그 선수의 속도가, 공 없이 공간으로 침투하고 있는 측면 선수들보다 빠르다면.

그렇담 굳이 다른 선수를 거쳐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

단경보법과 급류보법의 조화.

남들이 전력질주하듯 뛰면서도, 남들이 섬세히 드리블하는 것처럼 공을 컨트롤 한다.

도훈은 전력으로 달리면서도, 공을 계속해서 짧게 터치하며 드리블을 해나갔다.

“오...!”

“메시 같은데..?”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딱 그 느낌이었다.

메시가 붉은 유니폼을 입고 돌파를 하는 것 같은.

도훈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오히려 관중들은 도훈의 플레이에 집중하고 있었고.

점점 관중들의 태도가 바뀌고 있었다.

도훈이 처음 공을 잡고, 겨우 5초 남짓이 지났을까.

팔짱을 낀 채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지켜보던 관중들은 어느새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 어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관중들.

도훈이 돌파를 멈추지 않고 기어코 상대 중앙 수비수까지 제쳐내는 그 순간이었다.

"어, 엄청난 드리블 입니다!"

하프라인부터 공을 몰고 올라온 도훈은 거의 서너 명을 손쉽게 제쳐냈다.

그리고, 무언가 번개같이 지나간 순간,

도훈은 이미 상대 최종 수비까지 제쳐낸 상태였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그리고 완벽한 마무리까지.

“와아아아-!”

“봤어? 뭐야! 대박인데?”

골망이 출렁이는 순간, 거대한 환호성이 터져나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도훈이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던 관중들을 자리에서 일으켜 환호하게 만든 데까지는 불과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와아아! 골이다, 골! 네 오빠가 넣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주변의 관중들 역시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너도 일어나서 박수치고 그래라! 오빠가 골 넣었는데!”

“아 쫌..”

울분을 토하듯 마음껏 기뻐하는 아버지.

속이 다 시원했다.

솔직한 말로, 이 나이 먹고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한 바퀴를 돌며 관중석을 주욱 둘러 보았다.

아들의 골로 수만 명이 환호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아들 때문에 수만 명이 기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기분을 안겪어본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아버지 역시도 처음 겪어보는 기분이었고.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

“한 골 더 넣어버려라!”

경기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 정말 멋진 골이었습니다! 느린 그림으로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일단 첫 터치로 돌아서는 게 너무 좋았구요. 치고 달려가는 테크닉 보세요. 빠르게 올라가면서도 공이 발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이지리아 수비도 속수무책이었고요. 그리고 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이 드리블.”

“와아아...”

대형 전광판에 도훈의 드리블 장면이 느린 그림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엔 다시 한 번 탄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고.

분명히 느린 그림이건만 도훈의 발은 정상적으로 재생되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박이었다.

“와, 뭐냐 저거? 실제로 보면 다리가 안 보이겠는데?”

“어디서 저런 앨 찾았지? 이거는 인맥이 아니라 칭찬해줘야 하는 것 아냐?”

다들 감탄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인맥이 어쩌고 하던 사람들이.

하지만 그럴 수밖에 더 있을까.

도훈이 보여준 골은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는 너무도 멋진 골이었으니.

“후우..”

득점 뒤 하프라인에 서서 경기 재개를 기다리는 도훈.

도훈은 크게 숨을 골랐다.

공을 잡은 뒤 10여초 안에 골까지 집어 넣었다.

하지만 그 10여초 동안 소모한 기의 양은 거의 절반 가량.

마지막에 지주신보까지 쓴 게 컸다.

사실 굳이 지주신보까지 쓸만한 상대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도훈은 안달이 나있는 상태였다.

마치 6살 어린아이가 유치원에서 그려온 그림을 엄마에게 빨리 보여주고픈 그 심정이랄까.

‘미안하지만, 감정은 없어.’

상대인 나이지리아는 그저 운이 없을 뿐이었다.

기를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만큼은 모든 걸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이 모두의 앞에서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실력을 한 치도 남김 없이.

< 백문이 불여일견 (4)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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