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22화 (22/173)

< 백문이 불여일견 (3) >

“...!”

수마레를 막아섰던 건 도훈이었다.

뭐,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수마레의 레인보우 플립은.

파아앙-!

전갈처럼 뒷발을 뻗는 도훈.

그 발에 도훈의 머리를 넘기려던 수마레의 의도는 차단되었다.

뿐만 아니라,

툭, 툭-!

도훈은 다시 그 공을 공중에서 컨트롤 하더니,

파아앙-!

"오..!"

공을 툭 차올려 오히려 역으로 수마레의 머리를 넘겼다.

일순간 한국 벤치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

재밌다는 듯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킬리안 음바페.

‘하나 먹고 시작해라, 건방진 것들아.’

정신들 좀 차리자.

니들이 우승후보라고 불리고 있다면, 적어도 이 따위로 해서는 안되지.

도훈은 그러한 심정으로, 그 자리에서 그대로 발리 슈팅을 때렸다.

평범하지는 않게.

'무회전격(無回轉擊).'

뻐어어엉-!

슈우우웅-

발등에 제대로 얹힌 슈팅.

대포알처럼 쏘아져 나가는 공.

먼 거리였다.

"...!"

하지만 프랑스의 골키퍼 메슬리에의 동공이 커졌다.

공이 거리에 비해 너무나 순식간에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공의 무늬 역시 이상하리만큼 또렷히 보이고 있었다.

분명히 발리 슈팅이었다.

떨어지는 공을 때렸으니 역회전이 걸려 뚝 떨어지는 궤적 정도를 대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공은 아무런 회전없이, 거침없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멈춘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부우웅-

부우웅-

"크윽..!"

철썩-!

“와아...!”

전반 6분만에 도훈의 무회전 슈팅이 프랑스의 골망을 찢어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렇지!”

“짜식들, 한 방 먹으니까 정신이 확 들지?”

벼락같이 터진 도훈의 골에 울분을 토하듯 환호하는 한국 벤치.

그라운드의 선수들 역시 도훈에게 달려가 축하를 건넸다.

하지만 도훈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나쁠 뿐.

너무 보였다.

제대로 하지 않고, 이 시합을 장난으로 생각하고 있는게.

지들이 최고다 이거였다.

그랬으니 자신을 앞에두고 사포나 할 생각을 했겠지.

그런 상대에게 골을 넣었다는 게 기쁠리 없었다.

대신, 이제부터라도 전력을 다해주길 바랄 뿐.

그러지 않는다면, 도훈은 더욱 화가날 것 같았다.

전력을 다하는 상대가 아니라면, 상대하는 게 재미가 없을 테니까.

“뭐야, 왜 못 막았냐.”

“아니, 시차적응이 아직도 안됐나. 눈앞이 어질어질하네.”

신경질적으로 공을 뻥 차내는 골키퍼 메슬리에.

거짓말이었다.

흔들린 건 눈이 아니라 공이었고, 메슬리에는 그걸 똑똑히 봤다.

누구였지.

등번호 18번, 그래 저 녀석이었다.

우드득-

목을 좌우로 꺾는 메슬리에.

“어이, 얘들아. 슬슬 제대로 해라.”

“짜식이. 너나 제대로 막어. 걱정 말고.”

프랑스 선수들의 눈빛이 그 한 방으로 조금은 바뀌었다.

재개되는 경기.

몸도 다 풀렸겠다, 한 방을 얻어 맞기도 했겠다, 프랑스는 좀 더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기 시작했다.

한국같은 나라에게 0대1로 끌려간다는 게 우스운 일이니.

“헤이!”

파아앙-

파아앙-!

월등히 빨라진 것이 보이는 패스 플레이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비켜!”

쉬익-

타타탓-!

또한 한 수위의 속도와 기술을 보여주는 과감한 1대1 돌파.

과연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들의 실력은 진짜.

이것이 우승후보, 프랑스의 실력.

프랑스의 물 흐르는 듯한 공격전개에 박스까지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는 한국.

한국의 수비진엔 와일드카드가 두 명이나 있었다.

골키퍼인 강현무와 중앙 수비수 정승현.

이 둘은 이미 프로 1군의 경험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몇 배는 되는 선수들.

그러나 둘의 지휘에도 개인이 허물어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는 일.

결국 왼쪽을 허물고 들어온 장 예데르의 문전 앞으로 붙이는 땅볼 크로스와,

파아앙-!

철썩-!

귀신같이 침투해 발을 갖다댄 은디아예의 마무리까지.

“나이스.”

“뭘.”

실점하자마자 곧바로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하는 프랑스였다.

상대는 음바페와 뎀벨레가 아니었다.

그러나 너무도 허무한 실점.

그 장면을 지켜본 김 감독은 쓴 침을 삼켰다.

분명 몇몇 포지션에 있어선 대등하거나, 오히려 이상인 전력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확실히 상대가 우위.

특히나 수비 부분에 있어서는 약점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이 정돈 예상 했으니까.

단 한 번의 공격에 실점까지 내준 건 마땅히 혼을 내야겠으나, 원래 이런 구도는 애초에 예상한 것이란 말이었다.

애초, 김 감독이 지난 일주일 동안 구상했던 모토는 이것이었으니까.

‘한 골을 내주면 두 골을 넣고, 세 골을 내주면 네 골을 넣어서 이긴다.’

경기가 재개되고, 이번엔 한국이 다시 반격에 나섰다.

어차피 이번 경기에서 중점적으로 실험해야할 것은 수비가 아니었다.

공격.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김 감독은 이번 올림픽 호를 지도하며 생각했었다.

지금 가용되고 있는 이 멤버가, 자신이 맡았었던 그 어느 팀의 공격진보다 맹렬하다고.

그간 96년 애틀란타 올림픽부터 시작해서, k리그를 제패했던 성남 일화, 그리고 황의조와 손흥민이 가세해 금메달을 따낸 18년 아시안 게임까지.

공격진 복은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던 김 감독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궤가 달랐다.

이건 어느 나라와 비견해도 아쉬울 게 없는 공격수들이었다.

진심으로.

“여기!”

파아앙-!

한국 중원의 핵심, 이강인.

발렌시아에서 뛰고 있는 이강인은 공을 가졌을 때의 능력으로는 프랑스 선수들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

이강인이 탈압박 이후에 왼쪽 권창훈에게 공을 넘겼고, 그 공을 건네 받은 권창훈은 자신이 왜 와일드 카드인지를 보여줬다.

툭-

타타탓-!

센스있는 페인팅으로 상대의 중심을 비틀어 놓고 달리는 권창훈.

분명 리그앙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권창훈은 프랑스 선수들에게도 전혀 밀릴 것 없는 개인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반대!”

뻐어어엉-!

그런 권창훈의 왼발 크로스.

크로스는 높고 강했다.

페널티 박스를 가로질러 그 반대편까지 넘어갈 정도로.

하지만 이것은 이미 훈련된 레퍼토리 중 하나.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바이에른 뮌헨의 정우영.

파아앙-!

길게 넘어온 크로스에 발만 가져다대는 정우영.

그 공은 컷 백처럼 뒤로 흘렀고, 박스 바깥쪽으로 흐르는 공을 기다리고 있던 건 도훈이었다.

“각 막아!”

도훈의 슈팅력을 이미 한 차례 경험한 메슬리에 키퍼가 소리쳤다.

논스톱으로 때리기 좋게 공이 흐르고 있었으니 각도를 막아줘야 했다.

그러나,

스르륵-

도훈은 슈팅을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슈팅 페이크 이후 발바닥으로 공을 굴리며 중앙을 향해 치고 들어가기 시작.

프랑스의 박스 중앙은 두 명의 수비가 이미 견고히 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막아 봐. 제대로.'

굳이 그 사이를 지나가겠다는 듯 공을 몰고 들어가는 도훈.

사실 슈팅을 때리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었고, 도훈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왠지 들어가고 싶었다.

저 두 녀석의 사이를.

"나가!"

그런 도훈에게 한 녀석이 먼저 앞으로 튀어 나왔다.

두 명 중 하나가 나와서 막고, 하나는 제 자리를 지키려는 모양.

틀린 수비 방식은 아니었다.

'동시에 덤벼도 안될텐데.'

그러나 그 방식은, 도훈에겐 두 번의 1대1을 하는 것뿐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막을 확률이 높은 건, 두 명이 한 번에 덤비는 것이었을 일이건만.

도훈은 누구에게도 1대1을 질 자신이 없었다.

툭- 툭-

빠르게 잔발로 공을 건드리며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도훈.

어디로, 어떻게 제칠지에 대한 생각은 정해놓지 않았다.

도훈은 그저 상대를 보고, 그 뒤에 반대로 움직일 뿐.

스윽-

‘지금.’

도훈이 상체를 오른쪽으로 기울였고, 상대가 그에 반응했다.

그 순간 쏠리는 상대의 밸런스.

그 모션을 캐치하자마자 도훈은 번개처럼 왼쪽으로 몸을 비틀었다.

“...!”

툭, 툭-!

그리고 가볍게 유령신보.

첫 번째 상대를 가볍게 제쳐내는 도훈.

‘이제 이 녀석인가.’

하지만 승부는 이제부터가 진짜.

뒤에서 도훈을 기다리고 있는 건 은쿠두 에부에.

코치진이 전해준 정보가 있는 녀석이었다.

에부에는 이제 17살의 나이로 도훈과 동갑이지만, 맨 시티와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직접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을 정도의 특급 유망주.

‘수비계의 음바페’ 라는 별명만 들어도 어떤 정도의 선수인 지 알 수 있는 게 에부에였다.

“드디어 붙는다..”

“진짜 뚫을 수 있을까?”

“뚫어 줄거야..”

에부에에게 달려드는 도훈을 지켜보며 침을 꿀꺽 삼키는 한국 벤치의 선수들.

함께 훈련하면서 지켜본 도훈의 실력은 대단했다.

함께한 시간이 이제 일주일 남짓이지만, 감독과 선수들 모두가 도훈을 에이스로 낙점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상대는 세계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인 에부에다.

도훈은 마치 신을 보는 듯 했지만, 과연 그것이 유럽 최고 레벨에서도 통할 것인가?

그것이 결정나는 순간이 지금이니 긴장되는 순간.

그러나 말이었다.

그들이 긴장하는 동안 도훈은 이미 편하게 견적을 내는게 끝난 상황이었다.

‘안써도 되겠다.’

도훈은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생각했다.

꽤나 탄탄한 에부에의 밸런스를 보며, 지주신보를 사용할까 잠깐 생각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필요 없어 보였다.

하도 유명한 녀석이라길래 도훈도 나름 성의를 다하려 했건만, 딱 보니 그저 이 나이대에서 ‘제일 잘하는 정도’ 에 ‘불과’ 했다.

쉬익-

에부에를 앞에 두고 그대로 슈팅을 때리려는 듯 오른발을 뒤로 접는 도훈.

그 모션에 에부에가 다리를 들어 올렸다.

슈팅 궤적을 차단하려는 것.

그러나,

슈우웅-

도훈의 오른발은 공을 감싸고 지나칠 뿐.

마치 헛다리 짚기를 반대 방향으로 휘저은 것처럼.

완전히 속은 에부에.

툭-

도훈은 다시 오른발 그대로 공을 오른쪽으로 툭 차놓았다.

그리고 큰 보폭으로 달려들며,

뻐어어엉-!

도훈의 슈팅이 박스를 대각선으로 갈랐다.

그리고 그 전에, 메슬리에 키퍼는 이미 오른쪽으로 허물어지고 있었고.

그러니 도훈이 속여낸 건 최종적으로 3명이었다.

슈우웅-

철썩-!

프랑스를 상대로 도훈이 10분만에 두 골째를 터뜨리는 순간이었다.

‘다른 시간을 움직이는 것 같았어..’

마법 같았다.

한국 벤치의 선수들, 아니 모두가 뭐에 홀린 듯 다들 방금의 장면을 회상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중앙 수비는 잘 훈련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 자신들의 역할을 빠르게 판단하고,상황에 대처하는 것 역시 과연 우승후보다 싶었다.

하지만.

그 사이를 번개처럼 헤짚은 뒤 골까지 터뜨린 도훈의 모습은, 마치 다른 시간을 걷는 듯 했다. 그 주위가 슬로우모션처럼 보일 정도로.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대단한 놈이야. 정말로.”

“도훈이 있다면.. 금메달, 정말로 가능할지도.”

우승후보 프랑스, 최고의 유망주라는 녀석까지 압도할 줄이야.

그 모습은,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데 충분하고도 넘치는 모습이었다.

“고생했다. 잘 했어.”

“감사합니다.”

전반 33분.

도훈은 가장 먼저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나왔다.

김 감독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전력 노출이.

밀란의 알베르토 감독과 마찬가지였다.

이미 전반 33분 동안 4골을 넣어버린 이상 도훈의 컨디션이 어떤지는 다 노출이 되었겠지만, 괜히 한국의 백도훈이 프랑스를 상대로 6골, 7골을 터뜨렸다라는 소문이 퍼져나가기 전에 막아야했던 것.

분명한 것은, 교체가 없었다면 도훈은 정말로 그럴 수 있었다.

도훈이 빠진 이후.

한국이 4대1로 앞선 채 시작한 후반전.

프랑스는 드디어 음바페와 뎀벨레를 투입시켰다.

과연, 둘은 슈퍼스타였다.

그 둘이 뛰기 시작하자마자 경기의 판도는 급격히 프랑스에게로 기울었고, 마치 도훈 두 명이 양 쪽에서 뛰는 것처럼 한국 수비진의 혼을 빼놓았다.

전반전은 공격력에 힘입어 역으로 앞서는데 성공 했지만, 후반전 동안 한국은 느낄 수 있었다.

음바페, 뎀벨레가 없는 프랑스와 있는 프랑스는 아예 다른 팀이라는 걸.

“삐익, 삐익-!”

“고생하셨습니다!”

최종 스코어는 7대5.

각각이 헤트트릭을 터뜨린 음바페와 뎀벨레의 활약으로 경기는 프랑스의 승리로 돌아갔다.

“자, 다들 많이 배웠을 거라 생각한다. 혹은, 자신감을 얻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얻은 게 많은 시합이야. 이제 이걸 토대로, 본선에 가서 잘하면 된다. 져도 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다들 알겠지?”

“옙!”“예!”

김 감독의 말과 마지막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해산하는 선수들.

이제, 앞으로 남은 건 나이지리아의 공개 평가전.

그리고 최종 명단 발표.

진짜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백문이 불여일견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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