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21화 (21/173)
  • < 백문이 불여일견 (2) >

    -이건 좀 아닌데?

    -그 땐 그랬어도 이번엔 정말 아닌 것 같다.

    -이 정도 논란 있고도 데려 갈거면, 주전감이어야 한다는 거 아닌가? 서브로 데려갈거면 굳이 논란 있는 선수를 데려가야 할 이유가 있나?

    논란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특히 허정무가 도훈을 추천했다는 사실을 밝힌 기사는 논란에 기름을 부었고, 도훈의 발탁에 인맥에 의한 입김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견은 사실인 것처럼 여론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언론이 시끄러운 가운데, 문제의 도훈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음?’

    입국장을 빠져 나오던 도훈의 눈이 커졌다.

    입국장이 카메라를 든 기자들로 가득했기 때문.

    이들 모두 도훈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 모인 기자들.

    그러나 재밌게도, 도훈이 눈앞을 지나가는데도 도훈을 알아본 기자는 몇 없었다.

    그 중 도훈을 겨우 알아본 기자가,

    “어, 백도훈 선수!”

    “뭐야, 저 친구야?”

    도훈을 부르고 나서야 급작스럽게 기자들이 도훈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백도훈 선수! 이번 올림픽호 발탁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허정무 부총재와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시죠!”

    “혹시 고향이 어디신가요! 나온 초등학교와 중학교는요! 아버지는 뭐하시는 분이십니까!”

    턱밑까지 조여오는 수많은 마이크들.

    뭐지, 이건?

    쏟아지는 질문을 도훈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결국 도훈을 마중나왔던 대표팀 관계자가 자리를 정리한 후에야, 몇 가지 질문들에만 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 졌다.

    먼저, 허정무 부총재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제가 참가했던 더 찬스의 심사위원이셨습니다. 그 때 저를 뽑으셨었고요.”

    “그 전엔?”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그 이후의 질문들도 대체로 비슷.

    마치 스캔들이 난 톱스타가 된 것같아 도훈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심정으로 대답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왜 논란이 있는지.. 에 대해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도쿄로 출국할 땐 모두 다른 반응이 되시리라고 확신합니다.”

    어쨌든 도훈은 당당했다.

    ㆍㆍㆍ

    2020년 6월 18일, 파주 NFC 트레이닝 센터.

    올림픽 호에 소집된 22명이 모두 입소를 마쳤다.

    그리고, 한달 여간의 마지막 담금질을 위한 첫 시작을 준비.

    “그래, 강인이 왔냐. 몸은 좀 어때?”

    “예. 좋습니다.”

    선수들 대부분은 김학범 감독과는 구면.

    구면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 올림픽 예선을 함께했으니 김 감독의 제자인 셈.

    물론 도훈만큼은 예외.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네. 몸 상태는 좀 어떤가.”

    “당장 경기에 뛸 수 있습니다.”

    사실 불편했다.

    도훈과 김 감독 서로 모두.

    도훈은 애초에 본인이 참가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뽑혀서 온 입장이었다.

    그러나 좋지 않은 논란이 생겨 괜히 도훈에게 피해가 간 것 같아 김 감독으로서는 미안한 감정이 들 수밖에.

    도훈 역시 어찌됐든 자신 때문에 올림픽호에 대해 시끄러운 말들이 나오고 있으니 비슷한 감정이 있었고.

    그러나 도훈이 정말 불편한 것은 사실 김 감독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었다.

    22명, 그리고 18명이라는 자리는 결코 많은 자리가 아니다.

    도훈이 이 자리에 들어온 순간, 누구 하나는 대표팀에서 낙마해야 했다.

    그리고 그 낙오자는 이들과 함께 했던 동료였고.

    상황이 이러한데 자신에 대한 동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걸 도훈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입을 열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말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면 그만이니까.

    자신의 실력만 보여준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도훈은 믿고 있었다.

    앞으로 올림픽호의 일정은 이러했다.

    첫 소집인 6월 18일부터 28일까지 10일 동안 훈련과 비공개 연습 게임을 가지며 담금질에 들어간다.

    그리고 28일, 출정식 겸 평가전을 나이지리아와 가진다.

    그 후 곧바로 다음 날, 최종 명단 18인을 발표한다.

    이 후 도쿄로 출국하여 7월 14일까지 훈련과 연습 경기를 병행하며 준비.

    대망의 올림픽 조별예선 첫 경기인 15일 아르헨티나와 경기를 시작으로 올림픽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첫 소집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첫 번째 비공개 연습게임을 앞두게 된 대표팀.

    그 상대는,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

    지난 10년 동안 올림픽 무대에 출전조차 하지 못했던 프랑스가 단번에 우승후보로 부상한 것은, 역시나 스타 플레이어들의 참가 소식 때문.

    프랑스의 조별 첫 경기 상대는 일본이었다.

    그게 한국으로써는 정말 행운이었던 게, 덕분에 프랑스쪽에서 먼저 연습 게임을 제의해왔었다.

    우승후보와 대회 직전 연습게임을 치룰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기회가 아닐 수 없는 일.

    따라서 김 감독은 이 연습 게임을 다른 어떤 평가전보다 중요하게 준비했었다.

    애당초 이번 대회 목표는 동메달.

    그러나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팀만 프랑스, 벨기에, 브라질로 최소 세 팀.

    목표를 이루려면 어떤 우승후보라도 한 팀은 잡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했다.

    때문에 프랑스와의 경기는 실전처럼 임할 생각.

    그러니 일주일간의 훈련 동안 김 감독은 선수들의 모든 기량과 컨디션을 테스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정말 세세한 하나 하나까지 관찰에 관찰을 더하며 선수들을 관리했고, 평가했다.

    “내일 선발 명단을 발표한다. 교체로 대부분 출전할거니까 다들 준비는 철저히 해놓고. 먼저, 골키퍼 강현무.”

    프랑스와의 연습 게임에 선발로 나설 선수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단순한 연습 경기의 명단이 아니었다.

    이 게임의 중요성을 누구나 아는만큼, 지금 불리는 이 멤버가 실제 대회에서도 주전이 될 확률은 정말로 높았다.

    때문에 듣고 있는 선수들의 얼굴도 무척이나 진지.

    “미드필더 백승호. 이강인. 권창훈.”

    “공격수 정우영, 이승우, 백도훈.”

    도훈은 그 11명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누구보다 확신이 없었던 것은 김 감독이었다.

    애초에 도훈을 직접 본 적 자체가 없었으니까.

    도훈을 예비명단에 뽑았던 건 고문의 추천과 그를 직접 본 코치들의 완강한 조언이 있었기 때문일 뿐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일주일 동안 도훈을 직접 지켜보고, 지도했다.

    그 일주일이 지난 지금.

    도훈의 실력에 누구보다 강한 확신을 갖게 된 건 다름 아닌 김 감독이었다.

    ‘식사라도 한 번 대접 해야겠네.’

    대회가 끝나면, 허정무 고문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정말 다행이었다.

    추천을 받은 건 사실이었지만, 그 추천은 정말 오로지 실력만을 본 추천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이젠 당당할 수 있었다.

    결과로 보여드리겠다고 국민들에게 떳떳히 말할 수 있었다.

    도훈의 실력은 그 정도였다.

    “누누이 말하던 걸, 이제는 좀 다르게 말해야 겠다.”

    선발출전하게 된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김 감독.

    “메달권안에 들자. 이게 항상 말하던 우리의 목표였지. 말이 메달권이지, 까놓고 말하면 동메달 따자 이거 아니야. 근데 이제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김 감독의 시선이 선수들의 얼굴을 주욱 훑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마지막엔, 도훈이 서 있었다.

    “금메달을 노려보자.”

    “...예.”“예!”

    힘차게 대답하는 선수들.

    이들 또한 알고 있고, 느끼고 있었다.

    어찌보면 김 감독보다 더.

    직접 같이 뛰어보고, 경험해봤으니까.

    일주일 동안 여러 훈련 프로그램을 함께 했고, 같은 팀으로 뛰기도 하고 적으로 상대하기도 했었다.

    생초면인 도훈과 말이었다.

    그리고 그 일주일간의 감상은, 간단했다.

    말도 안되게 잘한다.

    그게 다였다.

    그리고 느꼈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정말 금메달이 꿈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ㆍㆍㆍ

    “이건 좀 따져야 하는 것 아냐?”

    “기분 나쁘네 이거. 우승후보라고 째는거야, 뭐야?”

    프랑스와의 연습 경기가 있는 날.

    일찌감치 경기장에서 몸을 풀고 있던 한국 선수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이제 곧 시합이 시작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건만, 여전히 프랑스 선수들은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기 때문.

    귀한 몸들이라 이건가.

    이번 프랑스 올림픽 대표팀의 몸 값은 다른 조 네 개 국가를 다 합친 것보다도 큰 것으로 화제가 된 바 있었다.

    개개인 모두가 유럽에서 촉망받는 유망주인데다가, 특히 두 명의 초대형 스타 플레이어가 올림픽 참가를 결정했기 때문.

    킬리안 음바페와 오스만 뎀벨레였다.

    이 둘은 와일드 카드가 아니었다.

    각각 98, 97년생이니까.

    하지만 이미 그들은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유럽 최고의 스타들.

    그들이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소식 자체부터가 화제였다.

    이미 둘 모두 월드컵 우승까지도 경험한 바가 있으니.

    때문에 그들의 참가는 과거 리오넬 메시나 네이마르의 출전과 비교가 되고 있었다.

    그들이 모두 자국을 금메달로 이끌었던 것처럼.

    그런 귀한 몸이 프랑스였다.

    때문에 그들이 늦어도 한국은 적극적으로 따질 수 없는 입장이었다

    물론 마땅한 대가를 지불하긴 했지만, 게임을 같이 뛰어주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니까.

    결국 프랑스 선수들이 훈련장에 도착한 건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은 시각이었다.

    “아아, 피곤해.”

    “입에 맞는 음식이 없네. 빨리 일본가고 싶다.”

    “야. 한국이랑은 왜 시합을 잡은거야?”

    그마저도 선수들은 서두르지 않고 하품을 하며 기어 나와 미적미적 몸을 풀기 시작했다.

    “너, 우리가 일본이랑 같은 조인지도 몰랐지?”

    “아아, 그랬냐. 알게 뭐냐.”

    대부분은 진지하게 몸을 풀기보단 서로 농담이나 주고 받으며 설렁설렁이었고.

    그러나 유독 진지하게 몸을 푸는 이도 있긴 했다.

    킬리안 음바페였다.

    “오..”

    “빠른데.”

    러닝으로 몸을 풀다, 빠르게 달리며 페이스를 맞춰보는 음바페.

    확실히 눈에 띄었다.

    이것이 월드 클래스, 차세대를 이끌 슈퍼스타인가.

    “시합 준비해주세요.”

    “자, 어렵게 성사된 연습 게임이니까 배울 건 최대한 배우자. 다들 부상 조심하고.”

    결국 게임은 원래 계획보다 30분 늦게 시작.

    선발로 나서는 열한 명의 선수들에게 말하는 김 감독.

    그러나 도훈은 그런 김 감독의 말에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늘 배워가는 건 자신들이 아니라, 저들이 될 것이었으니까.

    “삑-!”

    시합을 시작했어도, 한국 입장에서는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

    음바페와 뎀벨레 모두가 선발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

    둘은 벤치에 앉아 따분한 얼굴로 시합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라운드엔 그 둘의 백업 멤버들이 경기를 치루고 있었다.

    이럴거면 왜 연습 시합에 응했는지도 의문이 갈 지경.

    단순히 도쿄와 가깝고, 일본전의 대행연습으로 한국만한 상대가 없었을 뿐이란 것일까.

    그러나 문제는, 그런 프랑스라 할 지라도 결코 약한 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스날의 마테오 귀엥두지나 파리 생제르맹의 부바카리 수마레 등.

    와일드 카드 하나 없이 스쿼드를 채웠지만 전원이 유럽 리그에 소속되어 뛰고 있을 정도니까.

    스쿼드의 절반 이상이 해외파로 채워진 것만으로 ‘황금세대’ 라는 기대를 받는 한국과는 애초에 뿌리부터가 다른 전력.

    “압박 들어가!”

    “큭..!”

    중앙에서 공을 잡은 프랑스.

    곧바로 상대에게 두 명이 달려 들었다.

    그러나 상대는 기술적인 볼 컨트롤로 공을 지켜내다 뒤로 패스를 뿌렸다.

    계속해서 공을 소유하는 프랑스.

    기술적이었고, 다들 발 밑이 좋았다.

    과연 아트싸커의 후예들.

    “천천히 해.”

    “뒤에 온다, 야.”

    경기를 하면서 몸을 풀어도 충분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슬슬 몸이 풀리기 시작한 프랑스 선수들은 한층 더 여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시시한 느낌.

    그런 자만심이 들기 시작하면서,

    한 녀석이 돌발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니들 이런 거 본 적 없제?’

    파리 생제르맹의 수마레였다.

    공을 잡고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하는 수마레.

    이윽고 맞닥뜨리는 상대 하나.

    수마레는 멋진 걸 하나 보여줄 심산이었다.

    스르륵-

    슈우웅-!

    “쟤 뭐야.”

    프랑스 벤치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수마레가 레인보우 플립, 즉 사포를 시도했기 때문.

    하여간 재밌는 녀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사포를 시도하다니.

    하지만, 그런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

    수마레의 앞을 가로 막은 것이 도훈이었으니까.

    < 백문이 불여일견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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