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문이 불여일견 (1) >
밀란과 셀틱의 4강전이 있은지 일주일 뒤.
유에파 유스 리그 결승전이 잉글랜드에서 열렸다.
밀란의 상대는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 유스팀.
결승전의 상대이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파리는 강팀이었다.
밀란보다도 예선이나 토너먼트에서의 성적이 좋았으며, 특히 대회 내내 8경기 동안 단 3실점만을 기록한 수비력은 유스 최고 레벨이라는 평을 듣고 있었고.
그러나 그런 파리가 결승전에서 내준 실점은 5점이었다.
8경기 동안 3실점을 했던 수비진이 한 경기, 그것도 결승전에서 5골을 내준 것.
물론 모두 도훈에게였다.
그 날 역시 선발로 출전한 도훈은 시종일관 경기를 휘저었다.
도훈이 공을 잡기만 하면 비상이 걸렸고, 수비 모두가 도훈을 집중 견제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건드릴 수조차 없었다.
온 더 볼, 그러니까 공을 가졌을 때 몇 명이든, 그 누구든 제쳐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도대체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도훈이 골을 넣겠다 마음 먹으면, 넣는 것이었다.
그렇게 도훈은 밀란에게 유스 리그 우승컵을 안겼다.
단 두 경기.
도훈이 밀란 프리마베라 팀에서 뛴 경기는 단 두 경기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증명은 끝.
도훈은 이 레벨에 있을 선수가 아니었다.
ㆍㆍㆍ
“잘 하네.”
밀란 오피서 미팅룸.
한 달의 한 번씩 주최되는, 밀란의 모든 코칭 스태프와 관계자들이 모이는 회의.
방금 스크린을 통해 재생된 것은 바로 그 프라미베라 팀과 파리의 결승전 영상.
결승전 영상이지만, 사실상 도훈의 하이라이트나 다름 없었던 영상이었다.
영상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감탄을 터뜨렸다.
말도 안되는 퍼포먼스였다.
마치 킬리안 음바페가 챔피언스 리그에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는 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누구도 상대가 되지 않았고, 누구도 도훈을 막을 수 없어 보였다.
“그래서, 바로 1군으로 올리시는 걸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프리마베라 팀 감독 알베르토는 발언을 마치며 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유스 레벨에 있을 친구는 아니네.”
알베르토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관계자들.
가투소 감독 역시 동감하는 바였다.
당장 1군에 콜업해 스쿼드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는 실력.
“근데.. 그러기엔 경쟁자가 너무 많은 걸.”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죠.”
1군 콜업.
실력만 본다면 당장 추진할 수 있는 일이다.
아직 당장 선발 명단에 끼워 넣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충분히 교체 자원으로 경험을 쌓아주다보면 훗날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정돈 확실했으니.
하지만 문제는 여러가지 현실적인 것들.
AC 밀란은 과거 세리에 전통의 명가였으나, 구단주나 여러가지 문제들로 세리에에서 마저도 중하위권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새로운 구단주와 함께 팀을 재건하며 새롭게 도약을 준비했고, 좋은 구단주의 투자 덕분에 즉시전력감 선수들을 여럿 영입하며 알찬 스쿼드를 꾸렸었다.
작년에 새로 영입해 팀에 합류한 선수만 넷.
그것도 모두가 공격쪽 자원들이었다.
그들을 위주로 새 시즌을 구상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굳이 당장 유스 선수를 1군에 합류시키기엔 내키지 않는 감이 있었다.
“그럼 임대를 보내시죠?”
“임대?”
“아, 그게 좋겠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임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
“그게 좋겠지. 아무래도.”
가닥이 모아지고 있었다.
유스 레벨의 실력은 아니니, 타 팀이든 타 리그든 임대를 보내서 성인 무대의 경험을 쌓게 하자는 것.
“지금으로썬 그게 가장 합리적인 것 같네요.”
“근데..”
그러나 가투소 감독은 생각이 조금 다른 듯 입을 열었다.
“굳이 임대를 보내야 합니까? 당장 합류시켜도 새 시즌부터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만.”
가투소 감독은 알고 있었다.
이미 도훈의 실력이 어떤지.
물론 표본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유스에서 두 경기를 씹어 먹었다고 프로에 올라와 곧바로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가투소 감독은 본인이 느꼈던 외계인을 마주한 듯한 충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 나이땐 실전에 나서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자네도 알지 않은가? 이적을 보내자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1군에 올려도 벤치 자원으로 둘 거라면, 뛸 수 있을만한 곳에 임대를 보내는 게 선수에게도 도움일세.”
“아뇨. 누가 벤치로 둔답니까?”
가투소 감독의 말에 눈이 커지는 구단 관계자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가투소 감독은 말을 이었다.
“중심 자원으로 쓸 생각이었습니다만, 저는.”
“으음..”
의견이 좀처럼 좁혀 지지 않았다.
거액의 연봉을 받고 있는 선수들을 벤치에 두는 한이 있더라도 도훈을 쓰겠다는 가투소 감독.
그럴 수는 없다며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관계자들.
결국 토론 끝에 모아진 결론은 이러했다.
“그 조항은 무조건 넣어주셔야 합니다. 그건 보장해 주세요.”
“그건 확실하게 하도록 하겠네.”
임대는 보낸다.
다만, 기본적으로 1년 임대이며, 계약서에 가투소 감독이 원하는 조항 한 가지를 무조건 명시할 것.
그 조항이란 임대 이후 반 시즌이 지난 시점인 겨울 이적 시장 기간에, 밀란이 원할 경우 무조건 반 시즌으로 임대를 끝내고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결국 합의는 이루어졌다.
곧 회의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ㆍㆍㆍ
2020년 6월 13일.
밀란 트레이닝 센터.
“몸은 좀 어때?”
“상당히 좋습니다.”
도훈은 밀란 1군 훈련에 합류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도훈에게 전해진 두 가지 소식.
“임대요?”
“괜찮겠나? 일단 우린 전적으로 자네의 의견을 존중할거야. 어린 나이에 이 나라 저 나라 옮겨다니는게 쉬운 일도 아닐테니까..”
한 가지는 임대에 관한 소식이었다.
구단이 자신을 다른 팀으로 1년간 임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것.
물론 선택은 도훈 본인의 몫이라는 말도.
“유스 팀으로 가는 게 아냐. 1군에 들어간다는 보장이 계약에 있을걸세. 분명히 좋은 경험이 될거야.”
“음..”
도훈의 나이는 열일곱.
그러나 유스팀에서 뛰기엔 너무나 큰 재능이고, 도훈은 스스로가 그걸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한 시 빨리 프로로 올라가고 싶었고.
이건 그 기회.
생각보다도 빨리 찾아온 기회였다.
“저는 좋습니다.”
“정말인가? 천천히 생각해봐도 괜찮네.”
“아뇨. 좋습니다. 하루 빨리 성인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많이 했으니까요.”
“그렇군. 좋아. 그 얘기는 내가 구단에 전달하겠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리고 두 번째 소식.
그것은 고국에서 온 소식이었다.
“올림픽 대표팀이요?”
“정식적으로 요청이 왔네. 자네를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시키고 싶다는 군.”
이건 전혀 생각치 못한 소식이었다.
올림픽 대표팀이라.
2020 도쿄 올림픽은 당장 다음 달 중순 개막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해들에 걸쳐 예선을 통과한 한국 대표팀은, 이제 최종 명단을 추리고 있었고.
도훈과는 전혀 접점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들이 예선을 치루는 동안, 도훈은 축구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대표팀이 자신을 부른다라.
자신의 실력은 어찌 알았을꼬.
‘협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군.’
요즘은 정신을 차리고 일을 제대로 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정말 금메달이 따고 싶다거나.
“재밌겠네요.”
ㆍㆍㆍ
2020년, 6월 16일.
초청받은 기자들만이 참가한 가운데 미디어 공개 없이 벌어지는 기자회견.
“안녕하십니까.”
시간에 맞춰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도쿄 올림픽호의 사령탑, 김학범 감독이었다.
오늘 이 자리는, 올림픽호의 최종 예비 명단 스물 두명을 공개하는 자리.
이 22명이 소집되어 최종 담금질에 들어간 뒤, 다시 최종적으로 18명이 추려지고 나머지 넷은 예비 명단에 소속되게 된다.
김학범 감독은 기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본격적으로 종이를 꺼내며 명단 발표를 시작했다.
“골키퍼 세 명입니다. 고려대 민성준. 함부르크 최민수. 포항 스틸러스 강현무. 강현무 와일드 카드입니다.”
타타타탁-
김 감독이 이름을 호명하자 노트북을 두들기는 기자들의 자판 소리가 회견장을 가득 채웠다.
이어 쭉쭉 명단을 발표하는 김 감독.
그리고 미드필더까지 명단을 호명했을 때, 기자들의 반응은 무난하다는 반응이었다.
깜짝 발탁은 없었고, 지금까지 예선을 함께했던 선수들 위주.
그나마 수비의 정승현이나 미드필더의 권창훈 등 와일드 카드를 발표할 때 정도가 주목을 받았다.
이젠 공격수들을 호명할 차례였다.
김 감독은 한 명 한 명 또박또박 이름을 호명했다.
“바이에른 뮌헨 정우영. 헬라스 베로나 이승우. AC 밀란 백도훈.”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했던 기자들이 고개를 든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백도훈? 지금 백도훈이라고 하셨습니까?”
“백도훈? 누구지?”
웅성이기 시작하는 회견장.
“뭐? 더 찬스?”
“그래. 취재해본 적이 있어. 잘 하긴 했지. 근데.. 프로 경험이 전혀 없는데 얘는?”
도훈을 아는 몇몇 기자들이 자기들끼리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응은 당황.
전혀 모르는 선수의 이름이 불리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완전히 깜짝 발탁.
“발탁의 이유가 뭔가요?”
“프로 경험이 전무한 선수인데, 뭐 때문에 뽑으신거죠?”
곧바로 질문들이 날아 들었다.
모두 백도훈을 발탁한 이유에 대한 질문들.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생수로 입을 적시는 김 감독.
“올림픽을 위해 일해주시고 계시는 고문분들의 추천을 받은 선수입니다. 추천을 받고 다양한 방법으로 검토를 했습니다. 선수가 시합을 뛰는 영상도 직접 검토했고,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지켜본 코치들의 의견도 들어 봤습니다. 밀란 구단에 정보를 요청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일단은 발탁을 했습니다.”
강직한 목소리로 발탁의 이유를 설명하는 김 감독.
그러나 도훈을 모르는 대부분의 기자들에겐 그 정도의 설명도 여전히 부족했다.
“조영욱 선수는요? 명단에 없는데요.”
“전술 상 공격 자원은 지금으로 충분합니다. 오히려 여기서 덜어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백도훈 선수도 낙마할 수 있겠죠. 확실히 말씀 드리지만, 이건 최종 명단이 아니니까요.”
발표된 건 22명.
여기서 4명은 올림픽에 함께 할 수 없다.
도훈을 이 예비명단에 포함시키는 결정은 김 감독이 했다.
하지만 아직 도훈에 대한 의문이 가장 많은 것 역시 김 감독이었다.
아직 직접 도훈을 본 적은 없었으니까.
때문에 도훈이 18명 안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선, 김 감독은 확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
“어쨌든, 이것으로 발표는 끝입니다.”
기자회견은 그렇게 의문이 남은 가운데 끝이 났다.
-올림픽호 예비 22인 명단 발표.. 아마추어 출신 백도훈 깜짝 발탁
ㄴ백도훈이 누구임? 예선 폭격했던 조영욱은 왜 안뽑는데?
ㄴ모르는 사람은 더 찬스 영상들 찾아보기 바람.. 근데 솔직히 나도 얘 뽑힐 줄은 몰랐다.. 아직 별 다른 경험도 없는데 바로 뽑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ㄴ더 찬스에서 잘한 거 알고 있음. 그걸로 AC밀란이랑 바로 계약한 것도 알고 있고. 근데 그거랑 올림픽이랑 같나? 전혀 다른 이야기잖아. 뭘 믿고 바로 뽑는건데.
-과거 인맥발탁 논란 있었던 김학범 감독, 이번에도? 백도훈 발탁 놓고 의견분분
ㄴ그 때랑 지금이랑 상황 자체가 다름. 황의조는 이미 성남이랑 감바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있었음. 그걸 바탕으로 발탁된거고. 그런 황의조도 논란이 있었는데, 백도훈은 뭐냐? 아직 아무것도 보여준 거 없는 애를..
ㄴ솔직한 말로 그 때도 결과가 좋으니 넘어간거지, 인맥 논란 완전히 정리 된 거 아니었잖아? 김학범 또 이러네.. 이건 누가 봐도 인맥이잖아..
다음 날.
기자들은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여론은 곧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포커스는 모두 깜짝 발탁된 도훈.
수많은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논조는 모두 비슷했다.
발탁에 대해 상당한 의문이 있다는 것이었다.
네티즌들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부분.
비록 더 찬스를 통해 도훈이 미디어와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노출된 것은 맞았다.
하지만, 더 찬스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축구팬들 중에서도 소수.
수많은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프로그램 자체는 아니었다.
따라서 여전히 많은 이들이 도훈에 대해 알지 못했고, 그런 선수가 뜬금없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니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결정타는 따로 있었다.
도훈의 발탁 논란에 기름을 부어버린 그 기사가 며칠 뒤 메인 뉴스로 올라간 것이었다.
-[단독] 백도훈 발탁, 허정무 부총재 추천인 것으로 밝혀져... 인맥논란 점화
······ 본 지 기자의 취재 결과, 김학범 감독은 허정무 고문의 추천 이전엔 백도훈을 전혀 구상에 넣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 감독이 백도훈을 관찰한 것은 허 고문의 추천 이후 단 두 차례의 경기 뿐이었으며, 그 두 경기만을 가지고 올림픽호에 발탁한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따라서 이번 논란은 쉽게 넘어갈 부분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며 ······
< 백문이 불여일견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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