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5화 (15/173)

< 외계인 (1) >

두 번째로 나선 것은 도훈이었다.

패널들의 가운데 선 도훈.

“삑!”

기계음과 동시에 오른편의 패널에 불이 들어왔다.

피식 웃음을 짓는 도훈.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기구만 첨단화가 되었을 뿐, 비슷한 수련을 동굴에서도 했었으니까.

“여기다.”

아니, 어쩌면 더욱 첨단화되었던 건 동굴에서였을까.

그 땐 스승님이 직접 도훈의 주위를 ‘순간이동’을 하며 패널의 불빛 역할을 했었으니까.

파아앙-

파아앙-

“와...?”

흘러나오는 탄성.

무서운 집중력으로 프로그램을 수행해나가는 도훈.

그 동작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단 1퍼센트의 주춤거림 따위도 없었다.

군더더기없이 정확하고 빠른 동작.

분명 기계를 통한 사람의 훈련인데, 도훈의 모습은 기계가 기계를 상대하는 듯 보였다.

“...”

훈련을 하는 건 도훈인데 숨을 죽인 건 구경꾼들.

코치마저 숨을 멈추고 지켜보는 가운데,

“삑!”

도훈이 프로그램을 마쳤다.

그리고 전광판에 나타나는 도훈의 훈련 기록.

35.

“사, 삼십 오...!”

도훈의 기록에 참가자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물론 코치도 마찬가지.

“너, 넘버 식스티, 사우스 코리아 백...”

코치는 허겁지겁 서류를 뒤져 도훈의 번호와 이름을 찾아 기록을 적어 넣었다.

아마추어에게 기대하기란 말도 안되는 기록.

이건 시즌 중 페르난데즈 수소가 기록했던 밀란의 최고 기록보다도 4개 많은 기록이 아닌가!

수소는 이 훈련 프로그램의 최강자였다.

수소가 기록한 31개는 밀란 내에서도 깨지지 않았던 기록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소조차도 몇 번이나 시도해서 찍었던 기록이란 말이었다.

그런데,

그걸 단 한 번의 시도만에 앞서버리는 아마추어라니.

그것도 무려 4개나!

이건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몬스터..!"

괴물이었다.

그 훈련 이후로 도훈은 단숨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도훈 이후로 28명의 참가자가 기록에 도전했지만, 누구도 35개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아니, 애초에 30개 이상을 기록한 참가자 조차도 없었다.

그나마 가장 근접했던 참가자가 27개.

그마저도 도훈과는 8개 차이가 나는 기록.

“거기도 없어? 놀라운 일이군. 사실 없을 줄 알았어.”

다른 훈련장의 코치와 연락을 나누는 코치.

역시나 어느 훈련장에도 없었다.

35개란 기록은.

35개는 전체 참가자를 통틀어 도훈이 유일했던 것이다.

“네 덕분에 괜히 내 어깨가 으쓱해진다, 야.”

임찬주의 말.

경쟁자지만, 도훈의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시선은 동경이 가득했다.

단순히 운이 아니었다.

훈련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도훈은 더욱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참가자들과 코치를 놀라게 했고, 완전히 다른 레벨임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한국 예선에서 뿐만이 아니라, 도훈은 세계 본선에서도 어나더 레벨이었다.

큰 물로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마저도 도훈에겐 좁았던 것이다.

“여긴가?”

그리고 잠시 후.

훈련장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코치진이 도훈이 있는 훈련장을 찾아왔기 때문.

다름 아닌 가투소 감독이었다.

“이제 게임이지?”

“예. 바로 시작할 겁니다.”

“저 친구인가?”

“예. 60번, 백도훈입니다.”

훈련의 마지막은 5대5 미니게임.

훈련 내내 유럽이나 남미 참가자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훈련장에서 훈련을 참관했던 가투소.

그러나 코치의 다급한 부름을 받고 백도훈이라는 선수를 보기 위해 이 쪽 훈련장을 찾은 것.

“페르난데즈보다 빨랐다고?”

“예. 그 뿐만이 아니라, 그냥 잘합니다. 다른 참가자들이랑 수준이 달라요.”

“흠.”

입을 삐쭉 내미는 가투소.

그 때까지만 해도 가투소의 생각은 그러했다.

‘호들갑이 심하구만.’

어쩌다 기록이 잘나왔겠지만,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일뿐.

당장에 프로 경험이 조금 있는 2,3부리거만 데려와도 여기선 ‘다른 레벨’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도 다급히 부르니 오긴 왔지만, 가투소는 코치의 호들갑이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미니게임이 시작되고, 도훈이 참가자들 틈에서 공을 잡았을 때.

그 때부터 가장 호들갑을 떨게 된 건 가투소 감독 본인이었다.

“저것 좀 봐!”

스르륵-

툭-

풋살장보다 좁은 크기로 경기장을 좁혀놓고 펼쳐지는 미니게임.

좁은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연 섬세한 볼 컨트롤과 빠른 판단일 것.

그 두 가지가 수반되지 못한다면, 이 좁은 곳에서 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건 찰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도훈은 오래도록 공을 가진 채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히 공을 빼앗으려는 벌들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러나 부드러운 발바닥 컨트롤과 페인팅, 빠른 다음 동작으로 도훈은 계속해서 공을 지켜내고 있었다.

아주 여유롭게.

나비처럼 우아했다.

“기술적으론 흠 잡을데가 없는데. 17살이라고 했지? 아직 키는 더 클 수 있겠어. 아시아인은 성인이 되어서도 크더라고.”

침을 튀기며 도훈의 한 동작 한 동작에 흥분하는 가투소 감독.

원래 가투소 감독이 감정표현에 솔직한 건 맞으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아마추어들의 미니게임을 보며 이렇게 흥분한다는 건 의미가 있는 일.

하긴 누구나 아무도 찾지 못했던 보석을 눈앞에서 마주한다면 이 정도로 흥분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기 말이에요. 여기서 우승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승하면요?”

게임을 지켜보던 가투소 감독이 갑자기 코치가 아닌 더 찬스 관계자에게 물었다.

“나이키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다시 훈련을 받게 되죠.”

“거기 누가 참여하는데요? 코치진으로.”

여러 이름들을 읊는 관계자.

가투소는 그 이름들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 코치진들이 더 나아. 그 우승자들은 누가 채가는 겁니까?”

“아카데미에 참가한 감독들이 데려가거나 하는게 보통이죠. 여기 저기 추천을 하기도 하고..”

“지금 데려갈 수는 없습니까?”

가투소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어깨를 으쓱이는 관계자.

“탈락자들이야 마음대로 접촉이 가능하시겠지만, 프로그램 도중에 하차시키기엔..”

“본인이 동의하면 가능하잖아?”

“뭐, 그렇겠죠.”

“됐어, 그럼. 내가 물어보지.”

가투소 감독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당장에라도 팀에 데려가고 싶다는 듯 말을 한 가투소 감독.

대체 뭘 봤다고 벌써 거기까지 생각한 것일까.

단순히 미니 게임을 20분 정도 지켜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도훈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솔직히 그럴만 했다.

그냥 군계일학.

도훈은 혼자 다른 세계에, 다른 시간의 인물인 듯 보였다.

공을 다루는 모습은 마법을 부리는 듯 했고, 그 주변의 모두가 엑스트라처럼 보일 뿐.

이것이 하나의 영화라면 분명히 주인공은 도훈일 것이었다.

"외계인.."

과거, 외계인이라 불리던 동료와 함께 뛰었던 적이 있는 가투소 감독.

그는 지금, 그 때의 그 충격을 다시금 떠올리고 있었다.

처음 외계인을 봤을 때의 그 충격.

이 세상의 축구가 아닌 듯했던 그 충격을.

툭-

출렁-

현란한 양발 드리블로 다시 골망을 흔드는 도훈.

이로써 벌써 7득점째.

도훈을 막을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고생했어요, 모두.”

그렇게 첫 날의 훈련이 끝이 났다.

도훈도 장비들을 챙겨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호방한 목소리가 도훈을 불러냈다.

“뭐지? 뭐야?”

“설마 벌써 눈에 띄어버린건가, 저 친구?”

그리고 쏟아지는 부러움의 시선.

도훈에게 다가온 남자는 다름 아닌 가투소 감독이었다.

도훈과 같이 훈련을 했던 참가자들은 모두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훈이 보여줬던 퍼포먼스는 비록 훈련일 뿐이지만 대단했으니까.

그리고 그걸 직접 본 감독이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눈다라.

대화 내용을 듣지 않아도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지 않은가.

그러나, 실제 가투소 감독의 이야기는 그들의 짐작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했으면 좋겠는데.”

“예?”

뜬금없는 하차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이는 도훈.

뭔가 문제가 있던 것인가?

설마 말로만 듣던 인맥 때문에 튕겨져 나가는 것일까?

하지만, 이어진 가투소 감독의 말 뜻은 전혀 그런게 아니었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우리 팀의 유스 클럽과 계약해보지 않겠나? 우리 선수로서 소속된다면 여기에서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훈련으로 자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네.”

가투소 감독의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일개 아마추어에게 곧바로 계약을 하자고 나선 것이니까.

그러나 도훈은 담담하게 반문했다.

“생각 좀 해보고 답해도 될까요?”

누가 들으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었다.

도훈은 아마추어였다.

그런데,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 이 곳에 온 참가자가 지금 생각을 좀 해보고 대답하겠다고 했으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거늘.

“그러게나. 잘 생각해보고 대답해주게.”

가투소 감독도 물러났다.

이후 숙소로 복귀하려는데 기다리고 있던 한 무리의 참가자들이 도훈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야.”

“뭐라고 했어? 가투소 감독님이 뭐라고 한거야?”

“빨리 말해줘! 계약하자고 하시더냐!?”

궁금증이 폭발한 참가자의 질문에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터져나오는 부러움의 탄성.

“첫 날 바로 스카우트라니!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멍청아, 당연히 알겠다고 했겠지!”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뭐라고!?”

이번엔 참가자들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이들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았는데, 냉큼 수락하기는커녕 생각해보겠다고 했다고?

"대체 뭔 생각으로?"

“솔직히 세계 최고의 팀은 아니잖아.”

"너.. 뭐하는 놈이냐?"

이 새끼 뭐냐는 눈빛들의 참가자들.

이 무슨 배부른 소리란 말인가.

도훈은 참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지난시즌 조별리그 탈락, 올해는 16강...”

작년, 새로운 구단주와 함께 명가재건을 위해 노력한 AC 밀란은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는 더 나아가 16강까지 진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세계최고의 선수가 되려면 당연히 세계최고의 팀에서 뛰어야하지 않을까.’

도훈의 목표는 세계최고가 되는 것.

최고가 되려면 응당 소속된 팀도 최고가 되어야할 것이었다.

현재의 AC 밀란은 세계최고완 거리가 멀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실력은 최고이나 아무런 명성도 없는 상황.

단번에 아무런 연고도 없이 최고의 팀, 그러니까 최근 가장 많이 챔스 우승을 한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같은 팀으로 가기엔 불가능할 것이었다.

지금으로써 필요한 건 기회였다.

당장 최고의 팀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먼저.

증명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빠를 수록 좋겠지.”

수련을 할 때 배운 것처럼, 모든 일엔 단계가 있다.

정점에 오르기 위해선 그 계단을 착실히 밟아 올라가는 방법 뿐이고.

AC 밀란은 도훈에겐 첫 계단일 뿐.

도훈은 마음을 굳혔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한거야.”

다음 날.

도훈은 가투소 감독을 직접 찾아가 제의를 수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가투소 감독은 반색을 하며 기뻐했고.

기회가 필요한 아마추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온 가투소 감독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오히려 본인이 기회를 거머쥔 것처럼 기뻐했다.

그럴만했다.

단 하루.

도훈의 모습을 지켜본 건 단 하루 동안의 훈련뿐.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가투소 감독은 직감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껏 숨겨져 있었던, 세계최고가 될 수 있는 재능을 발견했다는 것을.

“그럼, 게으름 피울 것 없이 바로 계약을 진행하지.”

관계자를 불러 이런저런 서류들을 갖고 오게하는 가투소 감독.

친절히 한글로 번역된 계약서를 받아든 도훈은, 이때껏 시종일관 담담하던 모습과 달리 눈이 커졌다.

< 외계인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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