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물로 (2) >
“엉? 누구야?”
“그, 더 찬스 참가자입니다.”
“아, 누군가 했네.”
파트너로 나타난 도훈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 고요한.
피식 웃은 고요한은 말 없이 공을 찼다.
뻐어엉-!
슈우웅-
파앙-
일부러 짓궂게 장난을 쳐 아마추어 친구의 긴장을 풀어줄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강하게 찬 공.
그러나,
“...!”
도훈은 그 공을 가볍게 받아낸 뒤, 다시 공을 받아 찼다.
뻐어엉-!
퍼억-!
“어이쿠.”
그리고 도훈의 패스는 고요한의 정강이를 맞고 튕겨 나갔다.
머쓱하게 웃으며 공을 주워오는 고요한.
뻐어엉-!
곧바로 고요한도 진지한 얼굴이 되었고, 마치 탁구같은 핑퐁 패스가 오가기 시작했다.
빠르고, 강했다.
그리고 정확했다.
도훈은 절대 고요한에게 밀리지 않고 공을 정확히 받아 다시 보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밀리고 있는 느낌을 주는 건 고요한 쪽.
“삑!”
“후우, 대박인데, 친구.”
“고생하셨습니다.”
웃으며 도훈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휴식을 취하러 가는 고요한.
그러나 잠시 후 물을 마시는 고요한의 표정은 미묘했다.
‘내가 더 실수가 많아?’
참나.
고요한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자, 사다리 타자.”
잠시간의 휴식이 끝나고, 코치진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프리킥 토너먼트.
이번에 소집된 대표팀의 전담 프리키커를 선정하려는 것이었다.
사다리 타기로 한 명씩 대진표를 짜는 코치들.
“이야, 좋은 구경하네.”
도훈과 임찬주는 앉아서 구경이나 할 셈이었다.
그런데,
“한 명이 비네. 한 명 부전승으로 올라가야겠어.”
“음. 그러지 말고 그냥 깍두기 한 명 끼죠? 저 친구들 있잖아요?”
한 자리가 비어 부전승을 넣어야 하나 싶은 상황에 누군가 도훈과 임찬주를 가리켰다.
“그래, 잠깐만 도와주겠나?”
“도훈아, 네가 해라.”
도훈의 등을 떠미는 임찬주.
그렇게 엉겹결에 도훈도 구색 맞추는 용으로 전담키커 선정 토너먼트에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뭐야. 그럼 내가 지면 어떻게 되는건데?”
“하하. 그럴 일 없게 해라.”
룰은 간단했다.
벽 역할을 할 구조물을 세워놓고, 골키퍼가 골문을 지키는 가운데 두 키커가 번갈아가며 3번씩 차서 더 많이 넣은 선수가 승리.
그리고 최종 우승자가 이번 대표팀의 전담 키커를 하는 것으로.
“간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와우~!”
첫 번째 조부터 프리킥을 차기 시작하는 선수들.
그 멋진 궤적을 보며 임찬주는 감탄하기 바빴다.
솔직히 축구인의 꿈을 키우며 국가대표의 벽이라는 게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몸으로 느껴봤으면서도, 한 편으론 한 명의 축구팬으로서 그 동안 경기를 보면서 욕도 많이 했던 임찬주였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차원이 달랐다.
평소엔 킥이 좋다고 느껴보지 못했던 선수들도 메시나 호날두와 다를 바 없어 보일 정도로 멋진 킥을 선보이고 있었으니.
파아앙-!
“야이씨, 왜 내꺼만 기를 쓰고 막냐!”
물론 그 킥마저 막아내는 골키퍼들도 대단해 보였고.
“오케이. 선민이 올라가고. 다음.”
한 명 한 명씩 승자가 정해지고, 이제 다음은 드디어 도훈의 차례.
도훈의 상대는 전북 현대 소속의 최철순.
최철순은 프리킥을 많이 차는 선수는 아니지만, 정확한 크로스를 응당 갖춰야 하는 풀백이기에 킥 자체는 준수한 선수.
애초에 깍두기로 구색만 맞춰주는 아마추어가 상대였기 때문에, 누구도 최철순이 질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최철순 본인도 마찬가지.
“삑.”
뻐어어엉-!
슈우우웅-
파아앙-!
“오케이. 감 잡고.”
그런 최철순의 첫 번째 킥이 골 포스트를 맞고 튕겨 나갔다.
그러나 감 잡았다며 여유를 부리는 최철순.
어차피 세 번의 기회 중 하나만 넣으면 가뿐히 이기지 않겠냐는 생각.
다음은 도훈의 차례.
“더 가까이 놔도 되는데.”
“여기서 차겠습니다.”
최철순과 비슷한 위치에 공을 놓고 물러서는 도훈.
그리고 골문 왼쪽 상단, 그러니까 벽이 가리고 있는 위치 바로 위를 응시하며,
도훈이 공을 향해 달려 들었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
“와?”
도훈의 킥은 도훈이 응시하던 바로 그 위치에 정확히 빨려 들어갔다.
“잘 차는데?”
“철순아, 지겠다 너?”
구경하던 선수들과 코치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 자리에 서서 꼼짝 없이 킥을 바라보기만 했던 골키퍼도 박수.
제대로 감아찬 킥이었다.
궤적이나 스피드 역시 완벽.
하지만 그 킥이 너무도 완벽했기 때문에, 오히려 선수들은 놀라지 않았다.
속된 말로 ‘뽀록’ 하나 정돈 터질 수 있으니까.
방금 건 제대로 뽀록 하나가 터진 킥일 뿐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
“제대로 간다.”
이어지는 최철순의 두 번째 시도.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감 잡았다니까.”
성공.
도훈의 첫 번째 킥 성공으로 분위기가 묘해지긴 했지만, 최철순이 감을 잡은 이상 이변 없이 최철순의 승리로 끝이 날듯한 상황,
인 듯 했으나.
도훈의 두 번째 킥이,
뻐어어엉-!
철썩-!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완벽하게 빨려 들어갔을 때, 모두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뭐야?”
“잘 차는데? 진짜로.”
특히나 도훈을 바라보는 눈빛이 바뀐 건 코치들.
단순히 첫 번째 킥이 운이 아니었단건가.
도훈이 두 번이나 보여준 프리킥은, 과장이 아니라 지금 대표로 뽑혀 이 곳에 와있는 어떤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을만한 킥이었다.
그리고,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세 번째 킥까지 똑같은 코스, 똑같은 스피드로 킥을 성공시키며 결국 최철순을 꺾고 도훈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게 되자 훈련장의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여유부리다가 졌네. 하하.”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최철순.
쪽팔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절대 여유를 부리다 진 게 아니었다.
제대로 찼고, 졌다.
다시 대결을 붙는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짜식들, 긴장 안 해. 아마추어가 우승하겠어, 어?”
물론, 코치의 말은 농담이었다.
설마 진짜로 도훈이 우승할거란 생각은 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농담.
그랬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까지도 그건 농담이었다.
하지만,
뻐어어엉-!
철썩-!
“겜 끝. 다 일어나.”
토너먼트가 결승까지 치뤄지고, 결국 아마추어인 도훈이 우승자로 결정 되었을 때, 코치의 얼굴이나 말에선 장난기가 싹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10바퀴만 뛰고 정신 차리자.”
“...”“...예.”
그리고 전원이 코치를 따라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야, 너 뭐야 진짜.”
“뭐가요?”
“아니, 말도 안되는 놈이란 건 알고 있었는데 국가대표를 이겨 버리다니. 너 진짜 뭐하는 놈이냐고?”
“새삼스럽게 왜 그래요.”
국가대표들 사이에서 프리킥 우승을 하고 돌아와버린 도훈을 보며 임찬주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도훈이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단거야 임찬주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거야 더 찬스 내에서 비슷한 참가자들 사이에서의 이야기지.
방금 도훈이 제압해버린 상대들은 국가대표들이 아닌가.
무려, 국가대표.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인간 중에 가장 축구를 잘 하는 인간들이 모인 집단.
그런 선수들을 재야의 아마추어일 뿐인 도훈이 이겨버렸으니.
이건 뭐 김범수 콘서트에 온 관객 중 하나에게 노래를 시켰는데 김범수 뺨 싸대기를 후려 갈기는 노래를 불러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이 녀석 이거, 내 생각보다 훨씬 감당 안되는 놈일지도 모르겠는데.’
임찬주는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도훈이 임찬주의 상상을 뛰어넘는 인물인 것은 맞았다.
임찬주를 놀라게 한 건 프리킥으로 끝이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더 큰 놀라움은, 이어진 연습 게임에서였다.
“안녕하십니까.”
“준비 다 되셨습니까?”
“예,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훈련장에 한 남자가 한 무리의 선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유니폼에는 고려대라는 팀 이름이 쓰여 있었고.
오늘 대표팀의 컨디션과 경기 감각을 끌어 올리기 위해 초청된 연습 상대인 것.
고려대 축구팀은 올해 전국 대학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학 최강팀이지만, 당연히 대표팀 상대로는 괜찮은 연습 상대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네들도 고려대팀에 끼어서 뛰어보는 것 어떻겠나.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
뜻밖의 코치의 제안에 도훈과 임찬주가 고려대 유니폼을 입고 연습 게임에 뛰게 된 것이었다.
사실, 훌륭한 선수들과 팀을 상대로 뛰어보는 것만큼 좋은 훈련은 없었다.
좋은 기회.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좋은 훈련의 기회라는 건 임찬주에게만 해당하는 말이고.
도훈에게 좋은 기회라는 건 이 자리 그 자체.
도훈에겐 훈련의 의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를 담당하는 지도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기회였으니.
“삐익-!”
그렇게 도훈은 국가대표팀의 상대로서 연습 게임을 시작했다.
도훈의 포지션은 왼쪽 윙 포워드.
사실 이 포지션이 어떤 역할을 중점적으로 해줘야 하는 자리인지 도훈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도훈이 여전히 축구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오직 공이 오면 눈앞에 있는 상대들을 모두 제치고 골을 넣거나 도움을 올리면 된다는 정도.
하지만, 그게 딱 윙 포워드의 역할과 일치한다는 건 재밌는 일이었다.
“나이스~”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경기를 압도하기 시작한 쪽은 당연히 대표팀이었다.
모든 건 상대적인 법.
이제 막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는 대표팀 선수들이지만, 대학 선수들 상대론 저마다가 메시고 호날두였다.
“뒤!”
파아앙-!
반면 고려대 선수들은 공을 잡기가 무섭게 공을 빼앗기는 등 허둥대는 모습들.
이들도 나름 대학 무대에선 상대를 압도하는 실력이었지만, 이것이 국가대표의 벽.
이들간의 차이도 이러한데, 하물며 경력이라곤 아마추어들의 잔치 더 찬스 우승이 전부인 임찬주는 어떠했겠나.
애초에 공을 잡을 기회도 몇 번 없었지만, 어렵게 공을 잡을 때마다도 3번의 터치 이상을 가져가는 것도 어려워하고 있는 임찬주였다.
‘쉽지 않네.’
더 찬스 우승자로 뽑힌 뒤, 솔직히 큰 자신감을 얻었던 임찬주였다.
그래도, 역시 자신 정도면 축구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지 않을까하고.
하지만 경기를 뛰면서 임찬주는 급격히 위축이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딱이었다.
“여기!”
그러다 보니 사람이 수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뭘 해야할지 확신이 없어지다보니, 임찬주는 공을 잡자 마자 달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황급히 공을 넘겼다.
툭-
그리고 그 공을 받은 사람은 도훈이었다.
‘너라도 보여줘라.’
임찬주도 도훈이 걱정되긴 했다.
자신과 똑같은 기분일 것이 분명했으니까.
대표팀은 커녕 같은 팀으로 뛰는 고려대 선수들을 보며 위축이 되어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17살짜리 꼬맹이가 위축이 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도훈은 그냥 17살이 아니란 게 문제였다.
임찬주도 그걸 믿고 있었고.
툭-
“워.”
공을 잡아둔 뒤 제 자리에서 발끝으로 툭.
그 한 번의 터치에 탄성이 터져나온 이유는, 그 터치로 달려들던 국가대표 수비수 이용의 알을 먹여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번 국가대표의 친선경기 상대는 숙적 일본이었다.
일본의 약점은 뭐니뭐니해도 강력한 압박 플레이.
대표팀은 무조건적으로 강한 압박 위주로 플레이할 것을 주문받은 상태였고, 대학 선수들은 그런 강한 압박에 허둥지둥대기 바빴다.
그런데, 대학 선수도 아닌 꼬맹이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이용의 압박을 제쳐낸 것이었다.
그것도 상대가 가장 굴욕적이라는 알까기로.
하지만 도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타타탓-!
곧바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도훈.
도훈은 왼쪽 사이드 라인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수비 들어와!”
그 속도는 빨랐다.
이미 이용이 다시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고, 어쩔 수 없이 중앙 수비인 조유민이 사이드쪽으로 커버를 내려와야 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도훈.
도훈은 골 라인까지 갈 기세로 직진을 멈추지 않았고, 조유민은 중앙에서부터 사이드를 향해 대각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나는 지점에 도달하기 직전의 순간.
조유민은 축구를 시작하고나서 처음보는 광경을 마주했다.
‘공이.. 사라졌어?’
공이 사라져 있었다.
< 큰 물로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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