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2화 (12/173)

< 큰 물로 (1) >

“삑, 삐익, 삐이익-!”

대망의 더 찬스 마지막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그러나, 사실 경기가 끝나기 수십분전부터 이미 경기의 긴장감은 제로.

9대2.

결승전은 파란 팀의 말도 안되는 압승이었다.

모두 9도움을 올린 도훈 때문.

도훈은 디프런트 레벨, 언터쳐블이었다.

“감독님도 이런 심사는 처음이시죠?”

“솔직히 내가 감히 심사를 해도 되나 싶은 그런 정도의..”

“아니, 감독님. 무슨 그런 말씀을..”

기겁하는 관계자.

그러나 차 감독은 진심이었다.

아무런 경력이 없는 아마추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볼 게 아니었다.

차 감독의 눈에, 분명히 도훈의 실력은 진짜였다.

"아주 훌륭한 친구야.."

남들이 보기엔 차범근 정도 되는 레전드가 생 아마추어에게 해주는 립서비스로 비출진 모르겠으나, 정말로 진심이었다.

“모든 참가자분들, 이제 마지막 결과만이 남았습니다. 차범근 심사위원님.”

“예, 뭐. 이제 이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두 명뿐입니다. 하지만, 결과를 떠나서 모두 정말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도 꿈을 향해 포기하지 마시고. 여러분 모두 아주 될성부른, 자질이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끝까지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자, 하지만 이제 두 명의 이름만을 호명해주셔야 하는 위원님입니다. 채점표는 이미 나와 있구요, 감독님도 결정을 마치셨습니다. 지금, 바로 발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일단, 먼저 제가 두 명을 뽑은 기준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기준은 제가 직접 봤던 준결승, 결승의 두 경기에서의 활약. 그리고 적극성, 성실함, 하고자하는 의지입니다. 앞으로 세계 본선에서도 경쟁력을 가지고, 그 사이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거란 모습이 보이는 선수 두 명을 선발했습니다. 물론, 이 두 명 외의 선수들도 모두 그 가능성이 보였습니다만, 어쩔 수 없이 두 명을 뽑아야하는 이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자, 발표 하겠습니다.”

꿀꺽.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긴장 가득한 침 삼키는 소리.

“먼저, 파란 팀 5번. 백도훈 참가자.”

“예.”

차 감독의 입에서 도훈의 이름이 불리고, 도훈이 담담하게 손을 들며 앞으로 나왔다.

“휴.”

“이건 뭐 당연한 거고.”

역시나.

나머지 참가자들은 예상했다는 듯 놀라지 않았다.

도훈의 선발은 그 어떤 이견이 있을 수 없는, 당연한 결과.

중요한 건 이제 남은 한 자리인데.

“두 번째 선수는, 파란 팀 8번.”

“뭐?”

“8번?”

두 번째 생존자의 번호가 호명되었을 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변이었다.

“임찬주 참가자.”

“와아아악-!”

최종 2인은, 도훈과 임찬주였다.

의아함을 가지고 억울함을 내보이는 참가자들.

그러나 차 감독의 선택을 받은 건 이 둘이었고, 이 둘이 마침내 2020 더 찬스, 세계 본선에 진출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ㆍㆍㆍ

“뭐? 유럽? 네가?”

더 찬스 우승.

그리고 가게된 유럽.

자초지종을 들은 아버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너 뭐 이상한 사기 당한 것 아니냐?”

“아니에요.”

“아니, 근데 전국 축구 대회에서, 네가 우승을 했다고? 어떻게? 너 공 차는 거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아버지가 믿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평소 하도 운동하는 걸 싫어해 등산이라도 억지로 끌고 가던 아들인데, 갑자기 축구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니?

게다가 세계대회를 위해 유럽에 가게 되었다니?

하지만 아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여기요."

나이키 더 찬스의 우승 축하를 알리는 축구 용품들과, 이태리행 비행기 티켓까지.

-[영상] 차원이 다른 백도훈 참가자의 스피드 챌린지!

-[영상] 괴물 등장! 결승전 백도훈 볼터치 모음

게다가 인터넷에 올라온 아들의 영상.

영상으로 본 아들의 모습에 아버지는 헛웃음이 나오는 걸 감출 수가 없었다.

“이게 진짜 너냐?”

한번도 보지 못한 아들의 모습.

아버지는 충격이었다.

아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기에, 전혀 알고 있지 못했던 아들의 모습을 보니 충격일 수밖에.

분명 영상 속의 아들은 축구를 엄청나게 잘하는 듯해 보였다.

이 정도로 잘 하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으음.."

하지만, 생각해보면 축구뿐만이 아니다.

가난을 핑계로,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핑계로 가족들에게 소홀했던 자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선 한 마디를 안했던 적도 많다.

그만큼, 아들에게 관심이 없던 것도 사실이고.

어쩜 아들이 이렇게 잘하는게 있었는데 그 동안 알지도 못했던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국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이었다니?

“6개월의 시간만 주세요. 보여 드릴게요. 제가 축구로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를.”

“허, 참...”

아직도 이 어린 녀석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도훈의 눈빛에서 아버지는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을 찌를듯한 자신감과, 그 자신감이 자만심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진심을.

“정말 비용은 그 뭐야, 회사에서 다 대주는거냐?”

“예. 돈 걱정은 안하셔도 돼요. 앞으로도요. 이걸로 성공하면, 그깟 돈 우습게 벌 수 있을 거에요.”

현실적인 걱정부터 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

미래가 막막했던 건 사실이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들과, 중학생인 딸.

둘 모두 대학까지 보내려면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더 잡부 인생을 살아야 한다.

50년을 넘게 쓴 노구를 이끌고 노가다일을 한다는 게 쉽진 않은 일.

정말 어깨가 무거웠다.

헤쳐나가려고 하면 할 수록 어두워지는 듯한 삶의 팍팍함에 지쳐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말 뿐이지만, 아버지는 도훈의 말에 가슴 깊은 곳에서 환한 빛이 발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뭐, 잘 해봐라. 맨날 알아서 하겠다고 하던 놈이니까.”

“예. 잘 할 겁니다.”

몇 주 전부터 이상하게 말투도 어른스럽게 바뀐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헛웃음을 지었다.

“오빠, 이탈리아 간다고?”

“어.”

“며칠?”

“한 달 넘게 있을 수도 있어. 아버지 잘 챙겨드리고 있어.”

바쁜 아버지 밑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야 했던 남매.

고작 3살 터울이지만 도훈은 동생 소윤에게 아빠같은 오빠.

사춘기가 도진 이후부턴 대화 시간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소윤은 도훈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오빠가 갑자기 집을 비운다니 동생 입장에선 막막한 기분에 휩싸일 수밖에.

아버지랑은 이제 어색하고 불편할 뿐인데.

“걱정 마. 오빠가 성공해서 아무 걱정없이 살게 해줄게.”

“똥 싸는 소리하네..”

아빠와 등산을 다녀온 뒤로부터 이상하게 낯간지럽게 바뀐 오빠에 괜히 방으로 들어가는 소윤.

당장은 아버지나 소윤이나 당황스러울 것이고, 자신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미래는 결정되어 있다.

‘내가 모두 행복하게 해줄 거야.’

믿음, 수련의 성과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도훈은 그 동안의 수련, 그리고 더 찬스의 경험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실력으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성공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이제, 그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그 운명은 이제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백도훈이라는 사람은 세계 최고의, 아니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가 될 것이라는 걸.

ㆍㆍㆍ

“자, 이 두 자리 쓰면 됩니다.”

“와, 겁나 좋네.”

더 찬스, 세계 본선이 열리는 이탈리아로 합류하기까지 남은 7일.

한국 예선의 최종 2인인 도훈과 임찬주는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실제로 훈련을 치루는 파주 트레이닝 센터에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 국가대표들과 함께 훈련을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혜택까지.

도훈이나 임찬주같은 아마추어들에겐 많은 것들을 배워갈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뭐, 도훈에겐 큰 기회로 다가오지 않겠지만.

‘마지막으로 붙었던게 베켄바우어라는 선수였지.’

동굴 안에서의 1대1.

마지막으로 상대했던 건 베켄바우어였다.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아무리 한국 국가대표라고 해도 베켄바우어에 비교하면 레벨이 한참이나 떨어지는 게 사실.

당장에 실력만 놓고 본다면 자신이 국가대표에 뽑혀도 이상하지 않다고, 아니 그게 당연하다고 자신할 정도인 도훈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머지 않아 찾아 왔다.

“와 쫄린다..”

티비에서나 보던 선수들을 직접 마주하는게 긴장이 되는 듯한 임찬주.

대한민국 국가대표.

그러니까, 한국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곳.

같은 훈련장에서 공을 찬다는 것만으로도 일반인이라면 벌벌 떨릴 수밖에 없는 현장.

“그냥 이런 훈련들을 하는구나, 하는 걸 배우면서 따라가기만 하세요.”

아무리 최종 2인에 뽑힌 둘이라지만, 국가대표의 훈련을 따라갈 순 없음을 아는 코치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몸풀기부터 가볍게 훈련이 시작되었다.

“삑!”

가볍게 운동장을 도는 것으로 훈련을 시작하는 국가대표.

도훈과 임찬주도 대열에 껴 러닝을 시작했다.

“빠르구나.”

시작부터 임찬주는 혀를 내둘렀다.

가벼운 구보를 시작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뒤로 쳐지는 임찬주.

선수들은 분명 가볍게 뛰고 있었는데, 임찬주로서는 시작부터 반쯤은 전력질주를 해야 겨우 대열에서 뒤쳐지지 않을 정도.

하지만 도훈은 달랐다.

표정이나 호흡의 변화없이 선수들 사이에서 평온하게 뛰고 있었다.

이게 원래 제 속도라는 양.

아니, 오히려 아직은 답답해보일 정도.

“삑!”

그리고 호각 소리가 울릴 때마다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

이어 세 번의 호각이 울렸을 땐, 선수들의 속도는 거의 전력질주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뒤에 있으려나.’

호각을 물고 있던 코치가 문득 뒤를 돌아 보았다.

훈련에 참가한 아마추어 두 명이 뒤에 있겠거니, 하고.

그러나 뒤로 쳐져 있는 건 한 명뿐이었다.

‘어라?’

나머지 한 명은 오히려 대열의 선두권에서 발을 맞춰 뛰고 있었다.

제법이었다.

뭐, 신체 능력은 타고난 타입인가.

꽤나 인상 깊었다.

일반인이 이 속도를 따라잡는것으로만 해도 대단한 일이기 때문.

하지만, 그 정도로 놀라기엔 일렀다.

“후우, 후우..”

러닝이 끝났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숨을 고르며 호흡을 다시 되찾는 시점.

그러나 도훈은 역시나 평온했다.

오히려 가장 먼저 공을 꺼내 리프팅으로 몸을 풀기 시작하기까지.

퉁-

퉁-

가볍게 발등으로 시작해 무릎, 허벅지, 어깨, 이마로 공을 다루는 도훈.

능숙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다루는 코치가 보기에도.

어쨌든 진짜 훈련은 이제부터 시작.

두 명씩 짝을 지어 패스 훈련을 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 되었다.

파아앙-

파아앙-

임찬주와 짝을 이뤄 패스를 주고 받는 도훈.

그러면서 도훈은 주위의 선수들을 지켜 보았다.

임찬주와 공을 주고 받는 정돈 보지 않고도 가능했으니까.

뻐어엉-!

뻐어엉-!

‘강한데.’

주위의 선수들은 패스의 소리부터가 달랐다.

거의 인사이드로 슈팅을 때리는 정도의 세기로 패스를 주고 받는 선수들.

일부러 평소 시합에서보다도 강하게 패스를 주고 받는 것이었다.

그래야 훈련이 되니까.

뻐어엉-!

퍽-!

“아야, 야! 갑자기 그렇게 세게 주면 어떡해.”

“저희도 슬슬 ‘제대로’ 훈련 해야죠.”

갑작스럽게 세게 날아온 패스에 당황하는 임찬주.

하지만 역시 임찬주도 주변의 선수들을 보고 의욕이 고취된 건 마찬가지.

뻐어엉-!

임찬주 역시 패스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물론,

툭-

도훈은 아주 가볍게 그 패스들을 받아 냈다.

뻐어엉-!

퍽-!

여전히 임찬주는 도훈의 패스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이, 친구!”

“예, 저요?”

“이 쪽에 와서 한 번 해보겠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코치가 도훈을 불렀다.

훈련 파트너를 바꿔서 패스를 주고 받아 보라는 것.

그 상대는, 임찬주가 우상이라고 입에 달고 살던 FC 서울의 미드필더, 고요한이었다.

< 큰 물로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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