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가 좁다 (2) >
급류보법의 2성.
‘폭포오르기.’
도훈이 다리로 기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2성에 해당하는 기를 방출시켰고, 도훈의 발이 하늘을 날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속력이..”
다른 사람이 보기엔 부스터를 쓴 것처럼 급가속이 붙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모두가 입을 벌렸고, 차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촤아아아-
파아앙-!
공이 터치라인을 나가기 직전.
도훈이 잔디 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가까스로 공이 나가는 것을 멈춰 세웠다.
툭-
타타타탓-!
곧바로 벌떡 일어나 공을 몰고 달려가기 시작하는 도훈.
"미친.."
말도 안되는 도훈의 플레이에 욕지거리를 뱉으며 뒤늦게 뛰기 시작하는 빨간 팀 수비수들.
그러나, 어째 따라가려고 하면 할 수록 도훈의 등 뒤에 붙어있는 5번이라는 숫자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도저히 따라붙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무인지경.
‘와라.’
빨간 팀의 골키퍼 유호준은 침을 꿀꺽 삼키며 두 팔을 벌렸다.
어떻게든 차 감독의 눈에 들어야 하는 상황이건만, 시종일관 팀이 공격만해 기회가 없었는데 차라리 잘된 판이었다.
이런 1대1.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는 건 오히려 공격수 쪽이다.
이걸 막아낸다면 단번에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
하지만,
‘1대1은 지겹도록 해왔어.’
도훈은 평범한 공격수가 아니라는게 문제였다.
툭-
툭-!
두 번의 터치.
도훈은 두 번의 터치로 유호준을 제쳐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파도가 치는듯한 상체 속임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
유호준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엉덩방아를 찧었고,
툭-
철썩-!
도훈은 빈 골대에 공을 가볍게 밀어 넣으면 될 뿐이었다.
파란 팀의 선취득점.
그리고,
“저 친구.. 허허허.”
차 감독이 어이 없는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이었다.
“녀석을 너무 쉽게 봤어.”
“그걸 잡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어이가 없는 실점.
빨간 팀 선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종일관 주도권을 잡고 공세를 펼친 빨간 팀이었다.
그러면서도 백도훈이란 녀석이 있으니 방심은 하지 않았고.
정확히 말한다면 도훈을 쉽게 본 게 아니었다. 분명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멋대로 부숴버린 미친 속도라니.
그건 자신들의 능력 외의 일이었다.
“넌 임마 무조건 합격이다.”
“부럽다. 부러워.”
도훈에게 말하는 파란 팀 동료들.
해남에서의 본선 때부터 느낀 거지만, 도훈은 누가 봐도 최종 2인에 선발될 실력이었다.
그런 실력에 비해 축구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도가 떨어지는 건 이해할 수 없지만, 그만큼 녀석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천재.
남들이 보기엔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삐익, 삐익-!"
전반전은 그렇게 1대0으로 종료.
“후반전도 그대로 가자. 잘 버티기만 하면 결승이야.”
“오케이. 힘내자고.”
한 점만 지켜내면 마지막 경기까지 갈 수 있다.
파란 팀 참가자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후반전을 준비했다.
“삐익-!”
시작된 후반전.
후반전 역시 경기 양상은 전반과 다르지 않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뒤지고 있는 한 점을 만회하기 위해 더 강하게 몰아 붙이는 빨간 팀.
그 파상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온 몸을 던질 기세인 파란 팀.
그리고 그 전장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긴장중인 빨간 팀의 수비수들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도훈.
“다들 절박하네.. 절박해..”
더욱 치열해진 후반전을 지켜보며 차 감독은 인상이 깊으면서도, 한 편으론 안쓰러운 눈길로 참가자들을 바라 보았다.
여기서 탈락한다고 해도 끝이 아닌 참가자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기서 탈락하면 이제 다신 축구를 하지 못할 참가자들도 있다.
그런게 눈에 너무도 잘 보였다.
마지막이라는 절박함.
몸이 으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남고 싶다는 몸부림.
가능하다면 그 모두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면 저들도 저렇게 처절하게 싸우진 않겠지.
누군가는 탈락하기에, 그 누군가가 되지 않기 위해 저렇게 절박한 것일 것이다.
“너 또 이상한 거 하고 다니는 거냐?”
“이상한 거라뇨.”
“축구는 이제 취미로 하기로 했잖냐! 근데 또 학교까지 빼먹고 어딜 간다는 거냐!”
“정말 마지막이라구요. 진짜 한 번만요. 제발 한 번만. 결과로 보여 드릴게요, 결과로. 이번에도 안되면, 제가 안한다구요 이젠.”
시종일관 유쾌한 것처럼 보이는 임찬주 조차도 마찬가지.
말로는 더 찬스에 같이 공 찰 친구 사귀러 왔다던 그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절박했다.
이 시합이 인생의 마지막 축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모든 걸 건 것이다.
비단 임찬주 뿐이랴.
필드 위의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파아앙-!
“뛰어!”
뻐어어엉-!
때문에 불협화음이 일기도 했다.
다시금 찾아온 파란 팀의 역습 상황.
워낙 필사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던 빨간 팀인지라 또 한번의 무주공산 찬스.
“가운데! 도훈이한테 줘!”
박스 가운데 도훈이 있었고, 공을 잡은 동료가 박스 오른편을 파고드는 상황.
수적으로 우세한 상황이었기에 효과적인 패스 플레이를 펼친다면 꼼짝없이 추가골로, 경기를 완전히 끝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주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러나 공을 잡은 송호영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백도훈은 이미 누가 봐도 차 감독의 선택을 받을 인재였다.
더군다나 오늘 골도 넣었고.
그런데, 여기서까지 양보하란 말이냐?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모든 축구 인생이 달렸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럴 순 없지.
절대.
절대로.
뻐어어엉-!
기어이 슈팅을 날리는 송호영.
각은 좁았다.
수비도 붙어주고 있었고.
송호영은 알아야 했다.
거기서 패스를 하지 않고 슈팅을 때린 선택이, 오히려 자신을 탈락의 길로 몰고가버렸다는 것을.
파아앙-!
“바로 올라가!”
뻐어어엉-!
제 자리에 무릎을 꿇고마는 송호영.
송호영의 슈팅은 골키퍼의 손에 잡혔다.
그리고, 곧바로 재역습을 시도하는 빨간 팀.
“저 친구는..”
송호영을 바라보는 차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빨간 팀의 공세는 계속해서 거칠었지만, 파란 팀의 수비는 신기할 정도로 공세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아무래도 임찬주가 있었고.
“사람 잡아, 사람! 공간 주지 마!”
임찬주는 계속해서 동료들에게 소리치고, 지시하며 정신을 일깨웠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도록 격려했다.
딱히 임찬주가 그 외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훈은 분명 임찬주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것..’
스승님이 했던 말씀.
그 의미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히 눈에 띄지 않는 선수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선수 역시 존재한다.
‘재밌네.’
동굴에서 하던 축구와 지금의 축구.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금의 축구가 훨씬 재밌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재밌어질 것 같다는 느낌 역시 들었고.
“삑, 삐익, 삐이익-!”
“이겼다-!!”
결국 전후반 90분이 모두 지났고, 시합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최종 스코어는 놀랍게도 5대1.
결과적으로는 파란 팀의 완승이었다.
내용은 오히려 반대였지만, 4번의 역습으로 5골을 만들어낸 도훈 덕분.
1골은 역습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의 프리킥 골이었고.
“이제, 마지막 단 한 경기로 2019 더 찬스 최종 우승자 2인이 결정되게 되겠습니다!”
어느 덧 더 찬스의 한국 예선도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었다.
ㆍㆍㆍ
“축하한다.”
“뭘요?”
“넌 이미 선발이잖아.”
“...”
이제, 이 기회도 남은 건 하루.
그리고 한 시합.
짧은 시간이지만 그 동안 함께 해온 참가자들이 숙소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역시 도훈이나 다른 엘리트 출신 참가자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아무리 아마추어들을 위한 오디션이라곤 하지만, 애초에 레벨이 달랐다.
자신들이 봐도 기회를 주고 싶은 참가자들은 정해져 있었고.
그 중에서도 도훈은 누가 봐도 최종 2인에 들 것이 분명한 실력이었다.
“근데,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거야? 경력도 없어, 축구부도 안해봐. 근데 어떻게?”
“야야, 타고난거지 임마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이 실력이면, 그냥 타고난거지.”
자신을 두고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에 피식 웃는 도훈.
그들의 눈엔 그렇게 보일 수밖에.
하지만, 100년의 시간을 오롯이 수련에 몰두한 결과로 얻은 축구 실력이 이 정도라면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만큼 도훈이 타고난 재능이 형편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만약, 100년을 수련한 게 도훈이 아니라 메시였다면?
아니, 메시까지 갈 것도 없이 김성령이나 윤종철만 되었어도 비교가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전 이만 일어날게요.”
“벌써 자려고?”
“아뇨, 잠깐 운동장에 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있나.
운동장이라도 뛰다 자야지.
“난 제일 무서운게 저거야. 말도 안되는 재능 같은게 아니라.”
도훈이 방을 나간 뒤 고개를 젓는 참가자들.
“절대 방심 안하는거.”
“그러게. 볼 때마다 사람들이 ‘넌 이미 합격이야’ 라고 하는데도. 나 같으면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가서 게으름 피웠을텐데.”
“그러니까 우리로선 더 골치지.”
“하.. 뭐 좋은 방법 없을까. 남은 건 시합 하나뿐인데, 우리도 뭔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이기긴 해야 한다.
하지만 이젠 이긴다고 끝이 아니다.
최종 2인을 선발하는 건 순전히 차 감독의 선택뿐.
지금으로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도훈과 윤종철, 김성령, 윤철규 정도.
그러나 이 넷은 둘, 둘로 팀이 나뉘었기에 두 명은 선택 자체를 받을 수 없다.
어차피 포기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그나마 두 명 중 한 명만 밀어낼 수만 있다면, 그게 자신이 될 수 있다면 아직은 해볼만한 일 아닌가.
“아무래도.. 뭐 그런 방법밖엔 없지 않겠어요?”
“무슨 방법?”
“경쟁자를 넘을 수 없다면, 경쟁자를 끌어 내려야죠.”
한 참가자의 말에, 다른 참가자들이 솔깃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가 오네?’
불이 꺼진 운동장.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훈련을 미룰만한 비는 아니었다.
‘유령신보.’
동굴 안에서 수련했던 응용 보법 중 하나, 유령신보.
속세에선 라 크로케타, 일명 팬텀 드리블이라고 불리우는 것과 비슷한 드리블.
그 유령신보의 2성을 하루 빨리 완성해야 했다.
때문에 도훈이 공 하나를 들고 나서는데, 이미 누군가 공을 차고 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찬주 형?’
임찬주였다.
아까 방에서도 안보이더니, 혼자서 훈련을 하고 있던건가.
의외인데.
“뭐에요, 이 날씨에.”
“엉? 도훈이냐? 비오는데 훈련하려고?”
“그러는 형은요?”
“하하, 뭐. 좀 긴장돼서.”
파아앙-
툭.
리프팅을 하고 있던 임찬주가 공을 차 도훈에게 넘겼고, 도훈은 공을 받아 튕겼다.
“긴장되다뇨?”
“내일, 한 시합 남았잖냐. 넌 마음이 편하겠지만, 난 아냐. 내일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파아앙-
다시 공을 넘기는 도훈.
의외였다.
항상 유쾌한 모습만을 보였던 임찬주도 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건가.
“글쎄요.”
“응?”
“왜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요?”
“두 명밖에 선택받지 못하잖아. 위에서 두 명. 내가 낄 자린 없어 보이는게 현실 아니겠냐.”
“선택받지 못하면, 축구 그만 둘거에요?”
“그래야지. 나도 벌써 스물하나인데, 스물하나 먹은 아마추어가 앞으로 축구를 해봐야 길이 있겠냐. 안되면 끝인거지 뭐.”
파아앙-
퉁, 퉁...
“우는 건 아니죠?”
“뭔 소리야. 빗물이잖아 짜식아. 몸 차가워진다. 한 바퀴 뛰자.”
처벅, 처벅.
밟을 때마다 빗물이 베어 나오는 인조 잔디 구장을 뛰는 도훈과 임찬주.
말 대신 차오르는 숨으로 대화를 나누며 도훈은 생각했다.
축구라는 것의 의미.
도훈의 꿈은 축구 선수가 아니었다.
이상한 구덩이에 빠진 뒤로, 거기서 오랜 시간을 버렸으니 그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축구 선수가 되려는 것뿐이었다.
또한 그것으로 인생을 역전할 수 있으니까.
축구를 세계에서 제일 잘하면, 아니 어느 정도만 해도 예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돈을 벌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그 돈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니까.
이 정도면 누구보다 강한 동기부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축구라는 것.
축구 선수라는 것.
누군가에겐 이토록 원하는 꿈.
“심장을 태우는 그 뜨거운 무언가가 없다면, 천하제일인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명심하거라. 가장 중요한 건 기술도, 체력도 아닌 바로 그것이다.”
스승님이 했던 말을 떠올리는 도훈.
솔직히 그 땐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 도훈은 임찬주에게서 자신에겐 없는 그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지는 듯 했다.
< 무대가 좁다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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