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9화 (9/173)
  • < 무대가 좁다 (1) >

    해남에서의 본선 1박2일 일정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

    이어지는 더 찬스 한국 파이널은 서울로 자리를 옮겨 치뤄지게 되었다.

    “이야, 너 황희찬보다 빨랐다며.”

    “용케 여기까지 오셨네요.”

    반갑게 인사하는 임찬주.

    “마지막에 뽑혔어. 내가 운 하나는 지린다니까.”

    이제 마지막 일정은, 44인으로 이뤄진 4팀의 단판 토너먼트.

    오늘 준결승, 그리고 곧바로 내일 결승이 치뤄지는 일정.

    여기서 최종 우승을 거두는 한 팀의 11명만이 생존자가 되며, 이 팀의 2명만이 최종 선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더 찬스, 한국예선 파이널! 한 달전 지역예선부터, 오늘 이 자리까지 살아남으신 참가자들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자, 내일 이 대장정의 마지막 생존자, 단 두명이 선발이 되게 될텐데요. 이 중요한 선발을 직접 맡아주실 특별 손님을 지금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가자들의 마지막 두 경기를 직접 지켜본 뒤 최종 2인을 선발해줄 심사위원.

    그가 모습을 나타내자 참가자들에게서 거대한 환호성이 일었다.

    “바로 차범근 전 감독님이십니다!”

    대한민국의 전설.

    갈색 폭격기.

    레전드 차범근.

    오늘 최종 2인을 선발할 심사위원은 바로 차범근 전 감독.

    “저의 기준에 맞추려고, 뭔가 보여주려고 뛰지 마십시오. 그대들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선보이십시오. 저는 모든 부분에서 점수를 드릴 것입니다. 자, 모두 화이팅!”

    “화이티이잉-!”

    힘찬 함성과 함께 한국 파이널이 시작되었다.

    “어떤 부분을 제일 중점적으로 보실 계획이십니까?”

    “저는 말씀 드렸듯이,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볼겁니다. 물론 개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 소위 멘탈이라고 하죠. 이게 정말 중요한 겁니다. 이게 여기서 선발이 되면, 해외로 다시 나가는 것 아닙니까? 외로운 싸움일 겁니다. 나가서 처음보는 외국인들이랑 몸을 부대끼며 경쟁하는게 쉽지 않을 거에요. 그걸 이겨낼 수 있는 자질이 있는가. 저는 그걸 보겠다는거죠.”

    해외진출 1세대인 차범근 전 감독.

    차 감독이 선발하고자 하는 건 그런 선수였다.

    이것은 국내에서만 인재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한국 선발은 시작일 뿐이고, 최종적으론 세계에서 8명을 선발한다.

    그 8명 안에 한국 선수가 꼭 들어갔으면 하는게 차 감독의 바람.

    차 감독은 그런 경쟁력있는 근성을 보여주는 선수를 선발하는게 목표였다.

    “1팀과 2팀의 경기가 먼저 있겠습니다.”

    도훈이 속한 팀은 3팀.

    도훈이 경기하기 앞서, 1,2팀의 경기가 먼저 진행이 되었다.

    여기까지 온 44인.

    그에 대한 평가는,

    “확실히 남을 사람들이 남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예선을 돌파한 엘리트들 대부분이 44인에 남았고, 예상을 뒤엎는 실력을 보여준 아마추어는 도훈과 몇몇 소수뿐.

    1팀과 2팀의 시합은 고교전국대회, 혹은 프로 유스팀들간의 시합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 잘하네. 다들 실력들이 괜찮아.”

    경기를 지켜보는 차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흔네명 중에서 2명을 선발하기가 미안할 정도.

    여기서 떨어진다고 해도 직접 나서 다른 기회들을 주고 싶을 정도로 실력들이 괜찮았다.

    분명히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선수들은 존재했다.

    능숙한 볼 컨트롤로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윤종철이나, 호쾌한 슈팅으로 골문을 위협하는 김성령.

    모두 미리 귀띔을 받은 선수들이었다.

    과연 괜찮은 선수들임은 분명.

    그러나, 차 감독의 눈을 더욱 이끈 건 따로 있었다.

    “이이익!”

    공을 빼앗겼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결국엔 공을 되찾아오고,

    “뒤! 다시! 돌아 들어가!”

    중앙에 서서 동료들에게 패스 길을 지시해주는 그런 선수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악기.

    눈빛에서 쏘아져 나오는 독기.

    그 모습이 차 감독의 눈에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차 감독이 보고 싶은건 그런 모습이었다.

    “참가자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첫 번째 경기가 끝이 났다.

    승리는 윤종철과 김성령이 속한 빨간 팀.

    “파란 팀도 만만치 않았는데, 다 탈락이네.”

    “어차피 빨간 팀에서도 최소 10명은 탈락인데 뭐.”

    이겼다고 해도, 최종으로 선발될 수 있는 건 단 둘.

    우승후보로 꼽히던 선수들이 우수수 탈락했다.

    이젠 그럴 수밖에 없는, 최종결선.

    “이겼다아악!”

    결승에 진출한 참가자들이 내지르는 기쁨의 포효를 뒤로 하고 곧 2경기에 나설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일단 이겨야 된다. 이기고 봐야 차 감독님의 눈에 들든 말든 하니까. 이기는데에만 집중하자.”

    시작 전, 임찬주가 선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야기했다.

    임찬주의 말에 도훈도 고개를 끄덕.

    마냥 유쾌한 형인줄만 알았는데, 임찬주는 꽤 리더십이 있는지라 도훈도 믿을 수 있는 참가자였다.

    물론, 아직까지 패스를 줄 맘까지 드는 정도는 아니다만.

    “그러니까, 공격은 도훈이한테 몰아주는거야.”

    임찬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참가자들.

    도훈에게 공을 몰아준다.

    현재로썬 가장 쉬우면서도 확실한 공격 전술이었다.

    비록 그렇게 되면 도훈이 너무 눈에 띄어버리고 말지만, 일단은 이기는게 먼저니까.

    “삐익-!”

    그리고 경기가 시작 되었다.

    파이널에 올라온 참가자들인 만큼 빨간 팀이나 도훈의 파란 팀이나 기본적인 실력들을 갖춘 건 당연했다.

    하지만 팀을 짜는 방식의 특성상 빨간 팀의 우세가 점쳐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두 조로 나뉘어, 그 조 1위인 도훈이 파란 팀으로 배정됐을 때, 그 다음 2,3,4위는 빨간 팀으로 배정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5,6,7위가 파란 팀으로 배정되는 식.

    그러나 축구라는 건 팀이 하는 스포츠.

    1위 한 명보다 2,3,4위 세 명이 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훨씬 클 수밖에 없었고, 역시나 경기 양상은 빨간 팀의 주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왼쪽 막아!”

    “도훈아! 내려 오지마! 버틸 수 있어!”

    빨간 팀의 파상공세.

    공격수 위치에 서서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도훈은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이것이 전술이라는 것.

    “모두가 수비를 할 수도 없고, 모두가 공격을 할 순 없잖아. 왜 수비수, 공격수가 나뉘어져 있겠어. 도훈이는 상대 골대 앞에 있는게 오히려 수비를 도와주는거야. 그래야 상대 수비가 도훈이 때문에 못 올라오니까.”

    임찬주의 말은 맞는 말.

    그래서 답답해도 참으며 수비가 버텨주길 기다릴 뿐.

    도훈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

    공은 이미 먼 발치에서 투닥거린 지 오래.

    하프라인을 넘어 빨간 팀의 진영에 넘어온 건 수분전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비 셋이 도훈과 함께 이 곳에 남아 있었다.

    혹시라도 공이 넘어와 역습을 당할 수 있으니.

    “저 친구, 스피드가 좋은가보지?”

    “달리기도 좋고, 드리블도 좋습니다. 개인 능력으로는 참가자들 중 단연 돋보이는 참가자입니다.”

    빨간 팀 수비 진형을 보며 말하는 차 감독.

    파란 팀 5번, 도훈의 위치는 그리 높은 위치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하프라인에서 5미터, 10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

    그러나 그 정도로도 빨간 팀의 수비수들은 자기 진영의 절반 근처에서 머무르고 있는 수준.

    과연, 얼마나 빠르기에 저 정도로 경계를 하는 것인가?

    “나 정도 되나?”

    농담을 던지며 너털웃음을 짓는 차 감독.

    그러나 잠시 후, 차 감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파상공세를 견뎌내던 파란 팀이 상대 진영으로 공을 걷어낸 순간이었다.

    뻐어어엉-!

    전진 패스라고 하긴 어려운, 말 그대로 걷어낸 공.

    공은 상대 진영 오른편 구석으로 향하고 있었고, 빨간 팀 수비수들이 반사적으로 달려가려다 다리를 멈췄다.

    “나간다.”

    나갈 공이었다.

    공은 빨랐고, 방향도 터치라인을 향하고 있었으니.

    때문에 경기장의 모두가 멈춰선 그 순간.

    타타타탓-!

    도훈이 뛰고 있었다.

    홀로 멈추지 않은 채.

    “자, 잡나?”

    볼펜을 꽉 쥐며 지켜보는 차 감독.

    모두가 포기했을 때 끝까지 달려가는 것만 해도 이미 가산점이었다.

    하지만, 저 공을 잡아낼 스피드까지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한 자리는 낙점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늦었나?’

    그러나 사실 달려가는 도훈으로서도 긴가민가했다.

    이미 터치라인에 근접한 공은 속도가 빨랐고, 아직 거리는 멀었다.

    “...”

    슥 주변을 훑는 도훈.

    아무도 쫓아오지 않고 있었다.

    절대 잡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겠지.

    뭐, 그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순 없다.

    이건 보통 사람이라면 못 잡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모르는게 하나 있었다.

    여기서,

    타타타탓-!

    더 빨라질 수 있다면.

    “저, 저게 뭐야..?”

    도훈이 속도를 더 높이기 시작했다.

    < 무대가 좁다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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