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8화 (8/173)
  • < 등장 (2) >

    도훈이 공을 잡은 위치는 거의 파란 팀의 페널티 박스 근처쯤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부터 공을 몰고 올라가기 시작하는 도훈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눈앞의 모두를 제쳐내고, 골대 안에 공을 쳐박는 것.

    그것 뿐이었다.

    타타탓-

    툭-!

    “오오!”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며, 상대를 하나둘씩 제쳐내고 올라가는 도훈.

    번개같은 속도.

    자신을 막아내려는 빨간 조끼들은, 솔직히 동굴에서의 돌들보다 못했다.

    너무 쉬웠다.

    “정말 아마추어 확실한가?”

    “마, 맞습니다..”

    눈이 커진 허 감독.

    믿기 힘들었다.

    저 아마추어의 17세 소년이 방금 허수아비처럼 제쳐낸 선수들 중엔 우수한 성적의 엘리트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혀 상대가 되지 않고 있었으니.

    “여기!”

    “이 쪽!”

    좌우에서 같이 침투해 들어가던 파란 팀 동료들이 패스를 달라고 손을 들었다.

    그러나 도훈은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패스라는 건, 아직 도훈에겐 필요가 없는 개념일 뿐.

    타타탓-!

    그리고 여섯 명.

    도훈은 삽시간에 여섯 명을 제쳐내고 빨간 팀 박스까지 다다랐다.

    ‘뭐하는 녀석이지?’

    빨간 팀의 윤철규는 몸을 긴장시키며, 달려드는 도훈을 응시했다.

    사실, 윤철규에게 이러한 장면이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었다.

    고교 레벨에서 한 명의 선수가 월등한 재능을 보이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

    윤철규도 고교 대회를 치루며 난다 긴다하는 공격수들을 수도 없이 상대해봤다.

    그리고 그 날아다니던 녀석들은, 언제나 자신의 앞에서까지 날진 못했다.

    윤철규는 이번에도 그렇게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직 다른 초식을 쓸 필욘 없겠어.’

    도훈은 이미 윤철규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 너머를 보고 있었지.

    타타탓-

    툭-!

    “...!”

    상체를 비트는 바디 페인팅.

    그리고 이미 붙은 속도를 이용해, 윤철규의 옆을 지나친다.

    뒤늦게 뻗은 윤철규의 다리는 허공을 가를 뿐이었고, 도훈은 그런 윤철규를 지나 박스에 진입하는데 성공해 있었다.

    애초에 속도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윤철규까지..!”

    경악으로 물드는 경기장.

    지금 이 순간, 경기장 안의 모두가 도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는 실력이었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고, 골..!”

    윤철규를 제쳐낸 도훈은 지체 없이 슈팅을 가져갔다.

    결과는, 당연히 골.

    도훈의 슈팅은 골문 구석에 정확히 빨려 들어갔고, 경기장에 적막이 감돌았다.

    어떠한 환호성이나 감탄도 내뱉을 수 없는 충격.

    “삐익-!”

    골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나서야 경기장이 웅성거림으로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충격적인 골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도훈의 골이 터진 이후, 허 감독은 경기를 제대로 지켜보지도 않았다.

    관계자들을 수소문시켜 도훈의 신상정보를 알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아무런 경력이 없습니다.. 쌩 아마추어입니다.”

    “이럴 수가.. 이건..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군.”

    혀를 내두르는 허 감독.

    백도훈.

    이 친구야 말로 이번 더 찬스의 취지에 걸맞는 참가자였다.

    이런 원석을 발굴하기 위해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것 아니겠나.

    그러나,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실력으로 여태까지 축구를 하지 않은건지.

    “파란 팀 3번, 백도훈.”

    “감사합니다.”

    전반이 끝난 뒤 허 감독의 마지막 선택을 받은 건, 당연히 도훈이었다.

    “이건, 내 명함일세.”

    그리고 모든 시합이 끝난 뒤, 따로 허 감독의 명함을 받은 건 윤종철도 김성령도 아니었다.

    도훈이 유일했다.

    ㆍㆍㆍ

    “임찬주.”

    “오예-!!”

    마지막으로 이름이 불려 포효하는 참가자.

    해남에서의 첫 날.

    88인의 생존자가 모두 결정이 되었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은 곧바로 버스로 귀가.

    그리고 번호가 붙여진 조끼가 재분배 되었다.

    도훈이 새로받은 조끼엔,

    [한국 1 백도훈]

    이라고 적혀 있었다.

    “살아남은 분들에게 모두 축하를 보내고, 이제부터는 다시 22명씩 4팀으로 나눠질 겁니다. 이번 테스트는, 바로 멘토스쿨입니다!”

    해남에서의 둘째 날.

    88인의 생존자 중 다시 44인의 생존자를 가리는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바로 멘토스쿨.

    4명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에게 직접 멘토링을 받으며 훈련할 수 있는 기회이자, 멘토가 그 중 각각 11인을 선발해 생존자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식.

    “1번부터 선택을 해주십시오.”

    멘토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은 번호순.

    도훈은 가장 첫번째로 일어나 멘토를 선택했다.

    “황희찬 멘토를 선택하셨군요!”

    멘토 선택이 끝난 후, 직접 멘토를 대면하는 시간.

    “황희찬 선수를 모십니다!”

    “와아-!”

    도훈과 함께 황희찬을 멘토로 고른 참가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들에게 국가대표를 눈앞에서 만난다는 건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일.

    게다가 직접 멘토링까지 받을 수 있다니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수준 좀 볼까.’

    하지만, 도훈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쉽게 말해, 이 나라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 중 하나가 바로 저 선수.

    동굴에서 대련하던 습관이 남아있어 그런지, 저 선수와 자신의 실력을 비교해보고 싶을 뿐인 도훈이었다.

    물론, 승패는 이미 정해져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훈련법은 스피드 챌린지라고 하는 건데요. 이렇게 뒤돌아 있다가 휘슬을 불면 일어나서 고깔 순서대로 공을 몰고 마지막에 슈팅까지. 이 기록을 재는 거에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죠.”

    “오오. 이게 국대 훈련이구나.”

    국가대표들이 실제로 하는 훈련 중 하나를 소개하는 황희찬.

    ‘동굴에서 하던거랑 비슷하네.’

    이미 도훈이 동굴에서 해오던 것이나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자, 먼저 시범을 보여주시겠습니다!”

    “삑-!”

    타타탓-!

    툭-

    툭-

    뻐어엉-!

    “오오!”

    황희찬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속도는 엄청났다.

    휘슬에 반응하는 순발력부터, 공을 다루며 고깔을 통과하며 방향을 전환하는게 확실히 클래스가 달랐다.

    “이게 국대구나!”

    “대단하다..”

    감탄을 연발하는 참가자들.

    도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18초! 와, 정말 빠릅니다! 역시 황희찬 선수!”

    나쁘지 않았다.

    사실 생각보다도 훨씬 빨랐다.

    분명히 우리나라는 축구 강국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국가대표는 수준이 높았다.

    이 정도라면, 세계의 수준은 얼마나 더 높을까.

    “그럼, 이제 참가자들 한 명씩 나와서 기록을 재볼게요.”

    “으으, 긴장돼.”

    스피드 챌린지를 직접 해보기 위해 나서는 참가자들.

    티비로만 우러러보던 국가대표가 직접 지켜보는 앞.

    당연히 모두가 긴장을 했고,

    “22초!”

    “25초!”

    평소보다도 못한 모습들이 속출.

    “예, 저도 이해합니다.”

    그런 모습에 황희찬도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긴장을 풀라고 말해줘도,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음은, 백도훈 참가자!”

    그리고 도훈의 차례가 왔다.

    담담한 표정으로 스타트 라인에 서는 도훈.

    “어제 엄청난 모습을 보여줬던 백도훈 참가자인데, 과연 스피드 챌린지에서는 어떤 기록이 나올지!”

    모두가 지켜보고, 황희찬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삑-!”

    휘슬이 울리자 마자 도훈이 달려 나갔다.

    툭-

    툭-

    타타탓-

    뻐어어엉-!

    “어...?”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도훈은 긴장한 기색 없이 순식간에 스피드 챌린지를 끝내 버렸고, 시간초를 재던 관계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잘못.. 쟀나?”

    “몇 초인데요?”

    “십... 사초요.”

    얼떨떨한 참가자들.

    당황하는 사회자.

    그리고 묘해지는 훈련장의 분위기와 황희찬의 표정.

    도훈의 기록은 무려 4초나 황희찬의 기록을 앞서고 있었다.

    “17초!”

    “16초!”

    머쓱한 웃음을 터뜨리는 황희찬.

    그러나, 분명히 미묘한 기류가 황희찬의 표정에 흐르고 있었다.

    처음엔 가볍게 시범을 보였을 뿐.

    하지만 도훈이 월등한 기록을 선보이자, 황희찬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몇 번이나 더 시도를 했다.

    그러나 측정되는 기록은 계속해서 도훈의 기록을 앞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도달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뭐, 백도훈 참가자가 스피드 하나는 엄청나네요!”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사회자.

    어쩌다 그럴수도 있긴 했다.

    이 스피드 챌린지가 곧 축구 실력을 의미하는 건 또 아니니까.

    어쩔 땐 동네에서 프리킥만을 연마한 아마추어가 프로보다 프리킥을 잘 찰수도 있는 법.

    부분적인 것으론 이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황희찬 스스로는 절대 납득할 수 없었다.

    ‘난 대표팀에서도 빠른 기록인데.’

    14초라는 기록은, 대표팀 안에서도 빠른 기록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15초를 넘었던 선수가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

    그런 스피드를 가지고 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도 17살의 생 아마추어라는 녀석이.

    “자, 이제 연습 시합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색한 분위기와 함께 멘토스쿨은 종료.

    이어서 참가자들간의 시합이 시작되었다.

    멘토인 황희찬은 그 경기를 지켜보며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생존자 11명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경기를 지켜보며, 황희찬이 받았던 충격은 배가 되었다.

    ‘축구까지.. 잘해?’

    단순히 스피드가 빠른 게 아니었다.

    백도훈이라는 참가자.

    충격적인 경기력이었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전반에만 혼자서 3골.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나 패스를 하지 않는 등의 단점 따윈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황희찬의 뇌리에 남은 건 오직 믿을 수 없는 도훈의 개인 능력뿐.

    부러울 정도였다.

    현 시점 대표팀의 에이스는 자신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정도의 황희찬이.

    “축하합니다! 11명의 참가자들이 황희찬 선수의 선택을 받아 생존하시게 되었습니다!”

    도훈은 당연히 첫 번째로 황희찬의 선택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

    총 44인안에 안착하는 도훈이었다.

    “고생했어.”

    “형, 다음 스케쥴 뭐에요?”

    멘토스쿨의 스케쥴을 마치고 차에 올라타는 황희찬.

    황희찬의 물음에 매니저가 핸드폰을 훑은 뒤 대답했다.

    “그 너네 동네 형들이랑 풋살 뛰기로 한건데. 왜?”

    “그거 취소해줘요.”

    “응? 갑자기?”

    “예. 훈련장으로 갈 거에요.”

    갑자기 스케쥴을 바꾸자는 황희찬에 매니저는 고개를 갸웃이며 차를 출발시켰다.

    “...”

    알 수 없는 생각에 잠긴 황희찬.

    백도훈이라는 참가자.

    황희찬은 그 때 직감했다.

    아마추어들이나 관심있는 이 프로그램에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할 물건 하나가 나올수도 있겠다는 것을.

    < 등장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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