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7화 (7/173)

< 등장 (1) >

2019년 4월 9일.

땅끝 마을, 해남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있는 도훈.

그리고 그 버스엔, 도훈 또래의 장정들이 가득.

“당신의 꿈에 도전 하십시오! 2020 나이키 더 찬스!”

나이키 더 찬스.

나이키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축구인재 발굴육성 프로그램.

도훈이 동굴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이 더 찬스에 참가 신청서를 내는 일이었다.

“축하합니다. 220명 안에 선발되셨습니다.”

마침 동굴에서 나오자 마자 이 프로그램이 열린 건 시기가 좋았다.

이런 기회만 있다면, 실력이야 이미 준비된 도훈.

이미 지역예선은 가볍게 통과한 상태였다.

전국의 4천여명이 참가한 지역예선서 도훈은 우수한 성적으로 본선인 220인 안에 선발이 되었다.

그리고 그 220인이 다시 1박2일 동안 치뤄지는 본선에서 88인으로 추려지게 된다.

물론 도훈은 이미 88인이 아닌, 한국 최종선발 2인, 그리고 세계선발 8인에 초점을 두고 있는 상황.

“자, 다들 내리세요.”

본선이 치뤄지는 해남에 도착한 버스.

이제 막 동굴에서 나온, 생짜 아마추어인 도훈이 축구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이나 다름 없는 순간이었다.

“이 곳 해남까지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날이 따뜻한 훈련장에 모인 220명의 참가자들.

사회자가 큰 목소리로 본선의 시작을 알렸다.

“...”

도훈은 슥 주위를 둘러 보았다.

[부산 1 김성령]

[전남 1 윤종철]

각자 지역, 번호, 이름이 적혀진 조끼를 입고 있는 참가자들.

번호는 지역예선의 성적순대로 붙여진 것.

[경기 4 백도훈]

도훈은 4번이었다.

지역예선때, 테스트 부분은 체력과 개인 기술이었다.

물론 지역예선의 합격은 도훈으로선 당연한 것이었기에, 불필요한 힘을 빼지 않았다.

그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테스트에 임했고, 그럼에도 도훈은 참가자가 가장 많았던 지역인 경기에서 4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는 물론 일반 아마추어 참가자와 엘리트 참가자들을 모두 포함한 순서.

“본격적으로 시작될 오늘의 테스트는, 바로 '뽑힐 때까지 뛰어야 한다, 지옥의 레이스!' 입니다! 참가자분들은 전반 15분, 후반 15분으로 치뤄지는 11대11 실전 시합을 치루게 될텐데요. 이 시합을 지켜봐주실 심사위원들이 전반, 후반이 끝날 때마다 합격자를 '2명씩만' 뽑으실 겁니다. 그렇게 추려져 합격자가 총 88인이 되었을 때, 오늘의 예선이 끝이 나는 겁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그 중 처음의 4명은 오늘 경기를 참관해주실 특별 손님께서 직접! 선발을 해주실 건데요.”

참가자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말한 그 특별 손님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

“전 국가대표 감독! 박지성 선수를 발굴해낸 허정무 전 감독님을 소개합니다!”

“와아아-!”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인사하는 허정무 전 감독.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16강으로 이끈 장본인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박지성을 발굴해낸 그가 오늘 이 곳에서 원석을 발굴해내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낸 것이었다.

그런 그가 직접 4명만을 선택해 선발을 한다고 한다.

“제가 중점적으로 볼 것은 개인 기술,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그 4명에 자신이 들어야하는 건 당연하다고 도훈은 생각했다.

11명씩 팀이 나눠졌다.

총 20개의 팀이 각자 대결을 벌인다.

그 시합을 허정무 감독과,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여러 명의 지도자들이 지켜보며 합격자들을 선발하게 될 것이었다.

“부산 김성령.. 이 친구가 FC서울 유스 출신이라던 그 친구인가?”

“그렇습니다. 예선 성적이 월등했습니다.”

시합이 펼쳐질 운동장을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허정무 감독.

허 감독이 참관할 경기는 4경기.

지역예선서 가장 성적이 좋았던 8인이 속한 시합들이었다.

각각 전반 2경기와 후반 2경기를 참관한 뒤 4명의 선수를 선발할 예정.

“근데, 이 친구만 아마추어네?”

“예. 그 친구가 아마추어 중에선 가장 우수 성적입니다.”

흥미로운 듯 한 참가자의 프로필을 읽어보는 허 감독.

나이 17.

173에 63.

축구 경험 전무.

그럼에도 821명이 참가한 경기 예선에서 4위.

꽤나 흥미가 가는데.

“시작하자고.”

“삐익-!”

시합이 시작되었다.

도훈은 순서상 4번째 시합에 속해있었기에 앞선 참가자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빨간 팀 10번이 윤종철이고, 파란 팀 7번이 김성령이야.”

“쟤네 둘이 우승후보란 말이지.”

“축구하던 놈들이 참가하는 건 반칙 아니냐고..”

전남 1과 부산 1.

시합을 지켜보는 다른 참가자들이 앓는 소리를 했다.

그 둘은 이미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거나 밟았던 적이 있던 참가자들.

아마추어 참가자가 대부분인 이 곳에서, 그 둘이 유독 눈에 띄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타타탓-

뻐어어엉-!

철썩-!

“삐익-! 득점!”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부산 1, 김성령.

파란 팀의 공격수를 맡은 김성령은 아마추어들로 이뤄진 상대 수비를 개인 기술로 부숴내며 전반 6분만에 선취골을 뽑아냈다.

그 다음은 역시나 전남 1, 윤종철.

4분뒤 윤종철 역시 멋진 헤딩골로 응수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둘은 클래스가 달랐다.

“여기서 이미 두 장 날아가겠네.”

도훈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허 감독이라고 해도, 저 둘은 뽑지 않을 수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걱정인 건, 그 다음 시합에도 엘리트 출신 두 명이 속해 있다는 것.

운이 나쁘면 자신의 차례가 오기전에 이미 허 감독의 카드 4장이 모두 뽑혀버릴 수도 있었다.

“삐익, 삐익-!”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다.

“빨간 팀 10번, 파란 팀 7번.”

그리고 허 감독이 호명한 두 명은, 역시나 윤종철과 김성령이었다.

이제 남은 건 두 자리.

허 감독은 자리를 옮겨 다른 시합의 후반전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시합에서,

“파란 팀 5번, 신채수.”

서울 1번 신채수가 선발이 되었다.

“젠장. 역시 다 엘리트네.”

“별 수 있냐. 우리가 봐도 쟤네가 더 잘하는데.”

“이게 뭐가 숨은 인재 발굴이야. 대놓고 보이는 인재 발굴이잖아.”

지금껏 선발된 3인은 모두 엘리트 출신.

아마추어 참가자들이 볼멘소리를 하는 건 당연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아마추어 가산점 따윈 없었다.

오로지 실력으로 합격자가 선발될 뿐.

“9팀, 10팀 준비할게요.”

도훈에게 다행인 건 그래도 아직 한 자리가 남았다는 것.

여기서 선발되지 못한다면 한 시합을 더 뛰어야 한다.

체력적으로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난 이미 포기. 상대팀에 윤철규있네.”

“망했다. 망했어.”

도훈이 파란 조끼를 입고 있는데, 같은 팀 참가자들이 시합 전부터 자포자기한 듯한 말을 뱉었다.

“윤철규가 누군데요?”

“몰라? 강원 1위잖아. 이미 고교대회서 우승도 했다더만.”

“별명이 태백산맥이래요. 완전히 철벽이라.”

상대팀, 윤철규.

역시 김성령이나 윤종철과 마찬가지인 엘리트 출신의 수비수로, 남은 한 자리를 가져갈 것이 유력한 참가자였다.

허 감독의 시선도 이미 윤철규에게 향해 있는 듯.

“그래도 해봐야 아는거지, 자식들아. 잘 차는 애들이랑 공 차보는 것만 해도 재밌지 않냐?”

“형은 그래서 윤철규 쟤 이길 자신 있어요?”

“임마. 당연히 없지. 난 88인에만 들면 돼. 안 그래, 친구?”

같은 팀의 임찬주라는 참가자가 도훈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까 버스안에서부터 유독 말이 많던 녀석.

천성이 유쾌한 사람인지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다른 참가자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녀석이었다.

“아뇨, 전 아닌데요.”

“뭐? 그럼 그냥 탈락하겠다고?”

“제가 윤철규인지 뭔지, 이깁니다.”

“허, 허허..”

도훈의 시합이 시작 되었다.

센터서클 가운데 서 주위를 둘러보는 도훈.

공과는 이미 둘도 없는 친구고, 1대1 대결 역시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있는 상태.

하지만, 이런 넓은 잔디밭에서 11대11로 축구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게, 진짜 축구.

자꾸만 낯선 느낌이 들 때마다, 도훈은 발로 공을 굴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삐익-!”

그리고 경기가 시작 되었다.

도훈은 파란 팀의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맡았다.

공격수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허 감독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상대, 윤철규를 부수기 위해서.

파아앙-

뒷 편에서 공을 돌리고 있는 파란 팀 동료들.

곧바로 상대가 강한 압박을 가했다.

허 감독의 눈에 들 수 있는 건 오직 이 15분뿐.

당연히 모든 이들이 굉장히 의욕적으로 뛰고 있었다.

‘상황은 나한테 괜찮아.’

때문에 경기가 조직적인 팀플레이 위주로 흘러가고 있진 않았다.

같은 팀에 속해 있다 해도 근본적으론 모두 경쟁자고, 애초에 처음보는 사이들이니 팀플레이가 원활할 리가 없었다.

도훈은 공을 만져보기라도 하기 위해선 전방에 쳐박혀 있으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하프 라인 아래까지 내려가기 시작했다.

“야, 뭐야?”

그런 도훈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참가자들.

공격수가 위치를 지키지 않고 하프 라인 아래까지 내려오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확실히 아마추어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허 감독의 표정이 굳었다.

축구 경험 전무.

현재 도훈의 모습은, 자기의 역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아마추어 그 자체였다.

하지만,

파아앙-!

아래까지 내려간 도훈이 상대의 공을 쉽게 뺏어낸 뒤,

타타탓-!

순식간에 돌아서며 상대 진영을 향해 치고 달리기 시작했을 때,

“뭐, 뭐야 저건..?”

지켜보던 참가자들은 물론 허 감독의 표정이 180도로 바뀌었다.

< 등장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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