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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수련한 축구선수-5화 (5/173)

< 동굴 (4) >

급류보법의 1성을 뛰어 넘었던 때.

그 후로 계속해서 수련에 정진했던 도훈.

그 때로부터 8년이 지났다.

어떠한 준비도 없이, 갑자기 발을 헛디딘 죄로 이 동굴에서 보낸 10년.

그러나 도훈은 그 10년이 마치 100년처럼 느껴졌다.

처음의 그 황당한 감정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았을 뿐.

스승의 비급을 익히는 일은 이제 생활이 되었고, 도훈에겐 그것 뿐이었다.

“스승님.”

“왜 그러느냐.”

“10년간 쉼 없이 수련했습니다.”

“그랬지.”

“지금의 저는 어느 정도의 수준입니까?”

도훈의 물음에 호산은 물끄러미 도훈을 쳐다 보았다.

“강호에 나가면 어느 수준일 것인지 궁금한게냐?”

“궁금합니다.”

“리오넬 메시라는 선수가 있다. 아느냐.”

“압니다.”

“그 메시의 7살. 너는 현재 그 수준이다.”

“...7살이요?”

충격을 받은 듯한 도훈의 표정.

7살이라고?

메시라는 선수가 세계최고의 선수란 걸 분명히 알고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0년간 폐관수련을 한 자신인데, 고작 7살의 실력이라니?

“축구에 있어서 재능이란 그런 것이다. 20살의 메시가 가진 재능이, 7살의 메시가 가진 것보다 몇 배나 더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차원이 다르게 뛰어나겠지요.”

“그렇지 않다. 메시는 타고난 자이다. 재능이 태어날 때부터 완성되어 있었다는 뜻인거다. 너같은 범인이 고작 10년의 시간으로 메시의 7살 수준에 근접했다는 건, 오히려 대단한 성과라는 것을 알아둬라.”

“젠장...”

사실 그렇다.

이 동굴에 들어오기 전, 현실에서의 자신과 메시.

실력 차이는 어느 정도였을까?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었다.

당연히 평생을 노력한다 해도 그를 따라잡을 순 없었을 것이었다.

재능이란 녀석의 간극은 평생의 노력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 10년간의 비급 수련으로 7살의 메시와 비견된다는 건 다시 생각해보면 엄청난 성과이지 않은가?

“강호에 고수는 널렸고, 메시는 그 고수들 사이에서 천하제일의 재능을 타고 났다. 그런 자가 5살때부터 훈련을 시작했고, 15년뒤 천하제일인이 되었다. 메시도 15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그렇.. 겠죠.”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의 비급으로 실력을 습득하는 일은 확실히 엄청난 효율을 자랑했다.

하지만 역시 자신은 그저 범인에 불과할 뿐.

이제 10년을 수련한 것으로 제 깜냥을 가늠해보려던 게 실수였다.

“아직 너에겐 훨씬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느냐. 너는 분명히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10년.

그리고 앞으로 90년이다.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면 충분히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다는 스승의 말에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스승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냐?”

“현재 강호의 천하제일인이라는 메시에 비하면, 스승님의 실력은 어느 정도란 말입니까?”

도훈의 질문에 껄껄 웃는 호산.

“본좌가 수련에 정진한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얼마입니까?”

“오늘로 910년이다. 하물며, 나는 어릴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도훈은 들어도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근데 근래의 10년동안은 가만히 앉아만 계셨잖아요?”

“본좌는 이미 머릿속으로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수련이 되는 경지에 오른 자이다.”

정말 가늠이 되지 않았다.

ㆍㆍㆍ

그 대담이 있은 뒤로부터, 다시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도훈이 수련한지 30년째.

수련은 해가 지날수록 탄력이 붙었다.

그러나 동시에 진도가 더뎌지기도 했다.

도훈의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지만, 익혀야할 것들도 따라서 어려워지니 당연한 일.

그 동안 도훈이 1성을 돌파한 초식은 꽤나 여럿.

2성을 돌파한 초식도 3개는 되었다.

아직 1성을 체득하지 못한 초식이 수십개긴 하지만, 이 정도로도 공을 다루는데 있어선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도훈 스스로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이 쯤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겠구나.”

“다음 단계요? 다음 초식 말입니까?”

“아니다. 수련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무릇 축구라는 건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혼자서만 수련하는 것도 옳은 방법이 아니지.”

“오호, 대련이란 말입니까. 스승님이 상대해주시는 겁니까?”

호산은 고개를 저었다.

“난 지고는 못사는 사람이라 적당히 상대해주는 좋은 대련 상대가 되지 못한다. 대신 본좌는 빙의술을 익힌 적이 있다.”

“빙의?”

“쓸만한 녀석을 데려와 보겠다.”

호산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뜬 호산.

눈빛에서부터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어이. 날 제쳐봐라.”

“간다.”

거두절미하고, 대련이다.

도훈은 공을 오른발에 두고 자세를 취했다.

30년간의 수련.

지독했고 현재의 자신은 30년전에 비할 수 없을만큼 축구가 늘었다.

상대가 누구라도 제쳐내는 것 정돈 자신 있었다.

타타탓-

정면으로 달려드는 도훈.

항상 운용되고 있는 2성의 단경보법으로 공은 도훈의 발에 찰싹 달라 붙어 있었다.

이 정도로 공을 컨트롤하는 건 도훈에게 식은 죽 먹기.

‘내 속도를 보여주마.’

스승님이 어떤 수준의 상대로 빙의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지금까지 수련한 내공만 제대로 보여준다면.

다른 응용 보법도 필요 없었다.

그저 이 속도만으로 제쳐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휘익-

툭-!

상대의 정면으로 달려들다,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는 도훈.

그러나,

툭-

파아앙-!

불협화음이 일었다.

상대의 정면을 향해 달려가던 도훈이 방향을 꺾으며 지나치려는 순간.

상대가 발을 뻗으며 정확히 공을 쳐냈고, 도훈은 그 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큭..”

“뻔히 보여.”

너무나도 쉽게 갈린 승패.

도훈은 가만히 서 있는 상대를 제쳐내지 못했다.

“실수가 있었어. 다시 해보자.”

“얼마든지.”

인정할 수 없는 도훈은 다시 덤벼 들었다.

그러나,

타타탓-

파아앙-!

몇 번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도훈은 상대를 제쳐내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나다.”

“대체 누구에 빙의하신 겁니까, 스승님? 보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따지는 듯 묻는 도훈.

자신의 보법을 그렇게 쉽게 간파할 정도라면, 분명히 스승님만이 알고 있는 동료 도사라든가하는 고수임이 분명했다.

아니면,

“이런. 애초에 빙의한 척 하신 거죠?”

“하하하.”

껄껄 웃는 호산.

“빙의는 사실이야. 누군지 궁금한가? 놀라지 마라.”

“누굽니까?”

“영국이라는 나라의 7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무명 수비수다.”

“뭐라고요?”

충격이었다.

아직 강호의 시스템을 잘 알진 못했다.

하지만 7부라면, 누가 봐도 고수급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무명이라면.

도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 거짓말도 참..”

“거짓 아니다.”

단호히 말하는 호산.

믿을 수 없었지만, 단호한 스승님을 보자 도훈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년을 수련했다.

자그마치 30년이란 말이다.

그런데, 7부리그의 무명도 제쳐내지 못한다는 것인가.

인정할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이기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모르겠는데요. 혹시 스승님의 비급이 사실은 별 것 아닌..”

“요 놈 새끼가.”

딱!

“정말 모르겠어요. 보법은 틀리지 않았을텐데.”

“스스로를 수련하는데 바빠 아직 축구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있구나.”

“축구의 본질?”

“축구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아는데요.”

“그걸 아는데, 왜 네 것에만 신경쓰고 상대의 것에는 신경쓰지 않은거냐?”

상대의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

도훈은 뒷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복기해보면, 그랬다.

자신은 지금껏 수련해온 보법을 써보이기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상대의 움직임은 보지 않았다.

과연, 그것이 문제였나.

“다시 붙게 해주시죠.”

“좋다. 명심해라. 돌과 인간을 제치는 건 다르다.”

다시 호산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번엔, 제친다.

도훈이 다시 상대에게 달려 들었다.

‘돌과 인간을 제치는 건 다르다.’

도훈은 달려가며 상대의 자세를 확인했다.

이전과 달리.

돌과 인간은 다르다.

돌은 움직일 수 없지만, 인간은 움직일 수 있다.

때문에 당연히 인간을 제치는 게 더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속임수라는 게 통하는 존재야.’

돌을 속일 순 없어도 인간을 속일 순 있다.

스승님의 말 뜻은 그것이었다.

상대를 제쳐낸다는 건, 내가 얼마나 멋진 보법을 쓰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막으려는 방향의 반대로만 간다면, 아무 보법을 쓰지 않아도 제쳐낼 수 있는 것.

즉 내가 아니라 상대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슥-

상대와 한 걸음까지 가까워졌을 때, 도훈이 움직였다.

공은 건드리지 않은 채, 상체만 비틀었다.

상체 속임수.

그리고 눈으론 상대의 반응을 확인.

움찔-

보였다.

속임수에 반응하는 몸동작이.

그 찰나의 순간, 도훈은 발을 뒤틀며 공을 반대쪽으로 보냈다.

그 이후엔, 간단했다.

쉬이익-

타타탓-!

“이런..”

어정쩡한 자세의 상대를 지나치는 도훈.

지나쳤다.

공을 가진 채로.

아주 간단하게 제쳐낸 것이었다.

“잘했다.”

“방법을 알고나니, 간단했어요.”

충격이 가셨다.

무명조차 제치지 못한 건 수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직 이해가 부족한 까닭이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좋아. 이번엔 좀 더 걸맞는 녀석으로 불러오지.”

“얼마든지요.”

공을 가지고 다시 달려드는 도훈.

이것은 새로운 장이었다.

홀로 초식을 수련하는 것과는, 아예 다른.

그리고, 도훈은 불이 타오르는 듯한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 동굴 (4)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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