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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수련한 축구선수-4화 (4/173)

< 동굴 (3) >

“이제야 배울 준비가 된 겁니까?”

“그렇다. 이제 기본 초식부터 쌓을 단계가 되었구나.”

“젠장. 길었다. 어서 가르쳐주세요. 이젠 혼자 수련하는게 재밌어졌으니까.”

진심이었다.

처음 30일은 죽을 것만 같았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밖으로 나가고만 싶었다.

그 다음 30일은 미칠 것만 같았다.

정신이 돌아버리는 듯 했다.

하지만 다시 30일이 지나고, 6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난 지금.

거짓말 같겠지만 도훈은 재미가 있었다.

홀로 수련을 거듭하는 게.

점점 더 늘어가는 자신을 보는 게.

“진짜로 맛탱이가 간거죠. 자, 가장 먼저 배울 건 뭡니까? 스승님.”

“보법부터다.”

“보법?”

움직임의 기본이 되는 발.

그 발의 움직임이 곧 보법.

“단경보법부터 시작하자.”

“단경보법?”

“뭐, 속세에선 짧은 드리블이라고 말하는 것 같구나. 단경보법은 모든 보법의 기본이다. 의식을 하고 운용하는 보법이 아니라, 숨 쉬듯 항상 자연스럽게 운용할 수 있어야 하는 보법이다.”

짧은 단.

가벼울 경.

간단했다.

공의 방향을 짧게 짧게 바꾸며 몰고 가는 보법.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시범을 보이겠다.”

호산이 손짓하자, 돌들이 굴러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다닥다닥 붙어 얼기설기 세워진 돌들.

“이 사이를 빠르게 통과하는 훈련이다.”

“너무 좁은데요?”

호산이 공을 잡은 뒤 돌들 앞에 섰다.

돌들 사이로 길이 나있는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매우 좁았다.

이 사이를 그냥 지나가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단경보법이다.”

호산이 움직였다.

타타탓-!

툭-

툭-

툭-!

“오오..”

입을 떡 벌리는 도훈.

엄청난 움직임이었다.

호산은 공을 발에 단 채로 돌들 사이를 바람처럼 통과했고, 그 사이 공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완벽한 통과.

“이건 무리겠는데요.”

“이제 시작인데, 벌써 엄살을 피우는게냐?”

“아니.. 방금 그건 그 누구야, 메시도 힘들겠구만. 제가 아무리 지난 1년을 수련했다고 해도 초보자는 초보자라구요.”

호산은 웃었다.

“비급이라는게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호산이 책을 건넸다.

“이게.. 비급?”

“먼저 머리로 외우거라. 머리로 깨우치면 몸은 반복숙달만 할 뿐이다.”

“무대뽀로 하는 것보다.. 빠르겠죠?”

“수배는 빠를 것이다.”

“좋았어.”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펴는 도훈.

도훈은 곧 비급에 빠져 들었다.

일언반구도 없이 하루가 흘렀다.

도훈은 여전히 제 자리에 앉아 비급을 읽고 있었다.

머리로 깨우친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초식을 외우고, 이해한다.

단경보법은 쉬운 초식임에도 그랬다.

하지만 지난 1년동안 인내와 집중을 쌓은 도훈은 하루에 그걸 해냈다.

“이제 이걸 체화하면 된단 말이지.”

“외운대로 움직이거라.”

공을 가지고 돌 앞에 서는 도훈.

다시봐도 너무 좁다.

그래도 일단은 해봐야겠지.

“간다.”

타타탓-!

툭-

파아앙-!

툭-

파아앙-!

“젠장.”

그러나 얼마 안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도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말도 안되는 짓 같았다.

머리론 초식을 이해했다 생각했고, 돌 사이의 길이 눈에 보이기까진 했다.

그러나 막상 공을 몰고 그 사이를 통과하려니 여러가지가 겹치더니 왕창 꼬여버리는 느낌이었다.

“처음은 가장 쉬운 거지만, 가장 어렵기도 하다. 어쩌면 가장 쉬운 초식이 가장 오래 걸릴수도 있는 법이야.”

물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포기한다 해도 할 게 없으니까.

“기본을 깨우치면 1성이고, 통달하면 5성이라 했죠?”

“그렇다. 너는 아직 1성 근처도 가지 못한 수준이지.”

“1성까지, 몇 달 보십니까?”

“6개월이다.”

“주무쇼. 완성해 놓을테니.”

호산은 웃었고, 도훈은 다시 돌을 향해 달려 들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이번엔 호산도 마냥 명상만 한 것은 아니었다.

기본과 자세가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래도 지름길을 최대한 가르쳐주려고 노력했다.

때문일까.

6개월이 지난 지금, 도훈은 이미 단경보법의 1성을 지나친 상태였다.

타타탓-!

툭-

툭-

툭-!

“아! 성공할 뻔 했는데!”

돌들 사이를 잽싸게 돌파하는 듯 하지만 몇몇 돌뿌리에서 공이 걸리고 마는 도훈.

역시나 아직까지 완벽하진 않지만, 장족의 발전이었다.

도훈 스스로도 신기했다.

처음엔 전혀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죽기살기로 부딪히니 점점 길이 열렸다.

이젠 머리로 생각하며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그저 몸이 알아서 먼저 움직였다.

“그게 바로 체화지. 생각을 하면 이미 늦는다.”

“이제 다른 초식으로 넘어가는 겁니까?”

“그렇다. 한 번 1성을 뚫어 놓으면 그 다음부턴 스스로의 수련이 중요하니, 내가 있는 동안은 최대한 많은 초식을 가르쳐주려 한다.”

“그래서 다음은 뭡니까?”

“이젠 재밌어 진게냐?”

다음이 뭐냐고 먼저 묻는 도훈을 보며 웃는 호산.

“100년안에 이걸 다 깨우치기란 너무 짧다는 걸 알아버렸어요. 할 수 없잖아요? 서두르는 수밖에.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나가서 성공하고 싶다고요. 100년을 쓸모 없게 만들 순 없죠.”

“맞는 얘기다. 자, 가자.”

“어딜요?”

“동굴 깊은 곳에 급류가 있다.”

“급류요?”

호산과 도훈이 공을 들고 도달한 곳은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는 급류였다.

꽤나 길었고, 물은 엄청나게 세게 흐르고 있었다.

“급류보법. 그것이 이번에 배울 초식이다.”

“급류보법..?"

"급류를 거슬러 오르는 것이다."

"여길 오른다고요?”

“그렇다. 공을 가지고 말이다.”

“젠장. 역시 점점 더 어려워 지는구만.”

도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만히 서있기도 벅차보이는 급류였다.

그런데 여길 공을 가지고 거슬러 올라간다고?

“확실히 수련은 되겠어요.”

“되고말고.”

호산이 공을 들고 망설임 없이 급류로 걸어 들어갔다.

발목 주위로 갈라지는 물의 파문을 보니 역시나 엄청난 세기를 알 수 있는 급류.

호산은 공을 놓았고, 곧바로 발을 써 공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막았다.

“처음엔 공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막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이다.”

“그냥 서있는 것도 벅찰 것 같은데. 공 떠내려가면 어떻게 되는데요?”

“주워와야지.”

“...공 하나밖에 없어요?”

“이것도 훈련이다. 이 급류는 꽤나 기니까 고생을 좀 해야할거다.”

평온하게 말을 하면서도 발론 계속해서 공을 잡고 있는 호산.

물살이 거셌지만 호산은 편안해보였다.

저것이 도사의 경지.

물론 이것은 기본이고,

파파팟-!

호산은 거침없이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파아앙-

촤촤촤-!

세게 차내도 공은 곧바로 급류에 밀려 내려왔다.

물살이 워낙 세차 규칙적으로 내려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호산은 쉽게 공을 다시 차내며 급류를 거슬러 올라갔다.

“예, 예. 대단하시군요 역시.”

“그래도 넌 처음이니 시간을 좀 주도록 하겠다.”

공에 줄을 묶어 도훈에게 넘기는 호산.

"줄을 발목에 묶도록 해라."

"아하."

호산의 말대로 발목에 줄을 묶는 도훈.

이로써 공을 놓쳐도 떠내려갈 일은 없겠다만.

"들어가보거라."

"예."

도훈이 침을 한 번 삼킨 뒤 급류에 발을 디뎠다.

‘서있는 것도 쉽지 않아.’

팔을 펴고 균형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급류 가운데에 서는 도훈.

역시 서있는 것만으로 벅차다.

여기서 공까지 컨트롤하려면, 다리의 힘은 물론 섬세한 기술까지 필요로 했다.

거기에,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한다면 말할 것도 없었다.

“공을 놓아라.”

“알았어요.”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공을 수면 위에 내려 놓는 도훈.

그리고 몇 번 공을 잡아두는가 싶더니,

"이런!"

줄을 묶은 다리가 뒤로 쭈욱 빠지며 허둥 대는 도훈.

간신히 다시 중심을 잡긴 했으나,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건.. 정말 어렵겠는데요."

"내일은 곧바로 줄 없이 해볼 것이다. 그 때까지 연습하거라."

하루론 택도 없을 것이라며 도훈은 연습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도훈은 공에 묶었던 줄을 풀었다.

이제 공을 놓치면 공은 이 급류의 끝까지 떠내려갈 터.

"공을 놓거라."

심호흡을 한 뒤 공을 조심스럽게 놓는 도훈.

곧바로 떠내려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공.

그 공을 몇 번 간신히 막아두는 듯 하더니,

“안 돼!”

이내 공을 놓치고 마는 도훈.

공은 삽시간에 물살에 휩쓸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젠장.”

“다녀오거라.”

“깊어서 빠져 죽거나 하진 않겠죠?”

“그건 걱정 말고.”

도훈은 자포자기하며 다리의 힘을 풀었고, 곧 물살에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석 달쯤 되었는가.’

명상을 하며 도훈을 기다리던 호산이 눈을 떴다.

공을 가지러 내려간 도훈은 여지껏 소식이 없었다.

아마 하부에서부터 공을 발로 차며 올라오고 있는 모양.

한번만 실수해도 다시 처음부터니, 이 훈련은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훈련이었다.

‘하지만.’

곧 올것이라 호산은 믿었다.

분명히 녀석이라면.

‘이젠 나도 녀석을 제자라 생각하니..’

도훈은 스승이라 부르지만, 호산은 도훈을 제자라 부른 적이 아직 없었다.

하지만, 이 급류를 거슬러 올라온다면 이번만큼은 도훈을 제자라 부를 생각이었다.

뭐, 며칠이 걸릴진 모르겠으나.

호산은 다시 눈을 감았다.

첨벙-!

첨벙-!

인위적인 물장구 소리에 눈을 뜬 것은 다시 또 다시 석 달이 지나서였다.

빙긋 웃는 호산.

저 아래에서 도훈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촤촤촤-

여전히 거세게 흐르고 있는 급류.

도훈은 악에 받힌 얼굴로 공을 밀어내며 올라오고 있었다.

그 속도는 느렸다.

급류오르기 라는 말을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급류에서 떠내려가지 않고 버티기 정도가 더 어울렸지.

하지만, 분명히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건,

“이미 1성의 경지는 지나쳤군.”

“물론이죠. 이 개고생을 했는데.. 아아악!”

‘급류보법’ 의 1성을 뚫어냈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말을 걸고 그러십니까!”

“그만 됐다.”

갑작스러운 호산의 목소리에 무심코 대답하다 공을 놓치고만 도훈.

세상 잃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도훈의 모습에 호산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공은 또 있으니 주우러갈 필요 없다. 이제 그만 올라 오거라.”

“뭐야, 또 있었어요? 에라이!”

물장구를 일으키며 뭍으로 올라오는 도훈.

그 새 다리가 굵어진 것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

역시 급류오르기의 효능은 기대이상이었다.

“다음 초식을 익혀야지.”

“좋습니다. 가자구요, 스승님.”

“가자꾸나, 제자야.”

“예.”

동굴에 들어온 지 2년.

도훈은 이미 이 생활에 깊이 적응한 상태였다.

< 동굴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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