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3화 (3/173)

< 동굴 (2) >

마음을 정리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그리고 제대로 시작해보겠다는 의지를 세우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솔직히는 아직도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순 없었지만.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도훈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그것뿐.

이 축구도사라는 노인과 수련을 하는 것뿐이었다.

어쨌든 그리하여 도훈이 이 굴에 빠진지 하루가 지난 시각.

호산의 비기전승(祕笈傳承)이 시작되었다.

“스승님이라고 부르거라.”

“아, 예, 예.”

“기본적으로 골격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군.”

“뭐, 운동같은 건 아빠랑 억지로 등산하는 것밖에 없어서..”

“일단 공과 친해지는 게 먼저다. 눈을 감고서도 공을 다룰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기본 준비가 되는 것이다.”

축구라곤 학교 체육시간에 몇 번 해본게 전부.

공을 다룬다라는 느낌조차 모르는 도훈이었다.

오히려 운동 신경이 있는 편도 아니라 몸치에 가까웠고.

“그냥 이, 이렇게 움직이면 돼요?”

“기본 준비엔 왕도가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온 몸으로 공을 다룰 수 있도록 하여라.”

공과 친해지는 것은 시작의 단계일 뿐.

그러나 가장 어려운 단계이기도 했다.

도훈은 범재도 되지 못하는 인물.

전혀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도화지같은.

비급의 전승은 호산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 먼길을 떠나기 전 채비를 하는 건 온전히 도훈 스스로의 몫.

그게 바로 공과 친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훈은 전혀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은, 축구와 거리가 먼 일반인이었기에 어려운 것이 당연.

“어렵네요.”

“못해도 1년은 걸릴 것이다. 완벽히 기본을 갖추는데.”

“...지금 1년이라고 하셨어요?”

“이 곳이니 1년이지, 속세에서라면 몇 배가 걸리는 일이야.”

확실히 그렇다.

빠르면 5살때부터도 시작하는게 축구.

그런 신동들도 기본기를 확립하는데 몇 년이 걸리곤 한다.

하물며 노베이스의 도훈은.

차라리 1년이면 거저먹는 것이었다.

툭-

툭-

파앙-!

“아이고.”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공을 몰고 고작 몇 걸음을 가는데도, 구부정한 자세에 시선은 공에 고정된 것이 한 눈에 봐도 축구를 할 줄 모르는 것이 티가 났다.

공을 다루긴 커녕 공이 도훈을 다루고 있었다.

‘1년으로 되긴 할까.’

도훈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비록 마음을 다잡긴 했지만, 왜 여기서 이걸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이미 말도 안되는 상황에 빠진 자신.

이상하게 도훈의 마음에 오기가 피어 올랐다.

정말로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지만, 가끔 잠들기 전 이런 상상을 해왔었지 않나.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져 인생 역전하는.

솔직히 당장 나가게 해준다 해도 기다리고 있는 건 막막한 현실뿐.

“병신아, 좀 똑바로 움직여라!”

스스로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훈련에 집중해보는 도훈.

‘정말 운명인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그 모습을 보며 호산은 흡족히 명상에 빠져 들었다.

‘음..’

호산이 명상을 마치고 눈을 떴다.

시간의 흐름을 느껴보니 7일 정도 명상을 한 듯 싶었다.

그리고 도훈은 여전히 공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툭-

툭-

“제법 늘었구나.”

“7일 내내 이것만 했으니까요. 아니 근데, 무슨 바위 코스프레 하세요?”

“명상에 깊이 빠졌구나.”

여전히 엉성했다.

무릇 자유자재라함은 공이 곧 내 몸이고, 내 몸이 곧 공인 듯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저씨, 아니 스승님. 좀 가르쳐 주면 안되나요? 이런 식으론 1년도 더 걸릴 것 같은데.”

“기본기엔 왕도가 없다. 스스로 깨우칠 뿐이다.”

“쳇. 나보고 스승이라고 부르래놓고 잠만 자고 계시네.”

말은 그렇게 해도 다시 연습에 몰두하는 도훈을 보며 호산은 미소를 지었다.

‘보통 녀석이 아닌데.’

정말로 운명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게으름을 피우거나, 울고 보채며 악다구니를 썼을 것이다.

이 짓을 그만하게 해달라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 하루 아침에 이런 곳에 쳐박혀 하란다고 수련을 하는게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호산의 눈에는, 도훈의 악기가 보였다.

속세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몰라도, 이 비현실적인 환경을 그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한달이 되는 때에 다시 눈을 뜨마.”

“에라이. 말동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건 준비가 된 다음부터다.”

호산은 다시 눈을 감았다.

23일이 지났고, 호산은 눈을 떴다.

“더 늘었구나.”

“안늘면 병신이죠.”

퉁-

퉁-

허벅지로 공을 통통 차올리고 있는 도훈.

열개쯤 차는가 하더니 이내 공을 떨어뜨리고 말지만, 장족의 발전이었다.

자세만 봐도 알 수 있다.

공과 친한 사람, 공과 전혀 친하지 않은 사람.

현실에서라면 그것은 재능의 유무로 판별이 된다.

5살짜리 꼬맹이들끼리도 차이가 나니까.

하지만 이 곳에선, 타고나는 것 외엔 가질 수 없는 그 재능을 무식한 노력과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도훈에겐 점점 재능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제 익숙해졌느냐?”

“아뇨, 아직 멀었는데요. 아, 혼잣말을 하는데엔 익숙해졌네요. 정신이 나갈 것 같다구요.”

호산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 기본 수련은 단순히 공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과정뿐만은 아니었다.

100년.

인간에겐 평생이 넘는 긴 시간.

이 시간 동안 홀로 수련을 거듭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앞으로를 위해서라면 그 인내와 고독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였다.

지금이, 바로 그 인내를 기르는 시기.

도훈은 제법 잘 해내고 있었다.

“이제 바깥 생각은 좀 덜 나는가?”

“미치도록 생각나는데요. 배는 안고픈데, 치킨 한 마리만 뜯고 싶어요. 딴 것도 하고 싶고..”

“방법이 없다. 100년을 보내는 수밖에.”

“알아요. 그러니까 이 미친 짓을 하고 있는거지.”

“6개월이 되는 시점에 눈을 뜨마.”

“6개월? 하. 주무쇼.”

이젠 신경도 안쓴다는 듯 도훈은 다시 연습에 들어갔다.

호산은 눈을 떴다.

처음, 도훈이 수련을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6개월째가 되는 날.

“아, 오늘인가 보네. 잘 주무셨수?”

퉁-

퉁-

“어때요, 쓸만하죠?”

오랜만이라 그런지 신나게 떠들어대는 도훈.

그런 도훈을 보며 호산은 웃었다.

“제법 그럴싸 하구나.”

“1년이라고 했죠? 근데 어째요. 벌써 완성된 것 같은데요.”

공을 툭 찍어 올려 튕기다, 무릎, 가슴, 어깨를 사용해 머리 위에 공을 올려 놓는 도훈.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확실히 공을 수월히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이다.”

“예? 뭐가 아직이에요. 이 정도면..”

“줘봐라.”

호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을 호산에게 넘기는 도훈.

그리고, 호산이 공을 다루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는 도훈.

공을 다루는 호산을 보며 도훈은 정확히 느끼고 말았다.

'자유자재' 로 다룬다는 건 저런 것이었다.

“알았어요. 그 정도 해야 완성이라는거죠?”

“무슨 소리냐. 이 반의 반만 해도 완성이다.”

“얼씨구.”

정확히 다시 6개월.

도훈은 또 다시 홀로 수련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준비가 끝났구나.”

“빌어먹을. 해냈다.”

도훈은 자유자재로 공을 다루고 있었다.

< 동굴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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