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2화 (2/173)
  • < 동굴 (1) >

    “운명인 듯 하구나.”

    “이상한 소리 좀 마시고, 빨리 나가는 길을..”

    “없다니까. 애초에 들어올 수 없는 곳에 들어왔으면, 나갈 방법도 없다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아니, 할아버지 저 진짜 급하다니까요?”

    17살의 소년, 백도훈은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었다.

    아버지와 설악산을 산행하던 중 등산로 옆으로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말았고, 그걸 주우려다 발을 헛디뎌 이상한 굴에 빠지고 말았다.

    굴은 깊었다.

    도대체 나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뭐하는 할아버지세요?”

    소스라치게 놀랐다.

    동굴 안엔 사람이 있었다.

    백발이 무성한, 흔히 말하는 도사처럼 생긴 할아버지.

    “본좌는 축구도사다.”

    “...빨리 나가게 좀 해주세요. 아빠가 기다린다고요.”

    정신나간 불쌍한 노인이 사는 굴이 분명했다.

    도훈은 한 시 빨리 이 곳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 곳은 속세가 아니거늘.. 뭐, 속세의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군.”

    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도훈은 슬슬 노인이고 뭐고 욕지거리가 목까지 차오르는 기분.

    “나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요!”

    “한 가지뿐이다.”

    “진작에 가르쳐주지! 어딘데요.”

    “내가 등선하는 날, 문이 열릴 것이다. 그 날 너도 속세로 돌아갈 수 있겠지.”

    도훈은 뒤돌아섰다.

    역시 정신이 나간 노친네가 분명했다.

    저 노인에게 길을 묻고 있을 바에야 나가는 길을 직접 찾는게 나았다.

    “뭐가 이렇게 어두워.”

    정신없이 굴러 떨어지던게 기억은 나는데, 대체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세워봐도, 바람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았고.

    “이봐, 소년.”

    “...”

    “시계를 봐보게.”

    “와 진짜.”

    애써 무시하려던 도훈은 헛웃음을 지었다.

    “어그로 진짜 잘 끄시네.”

    시계를 내려다 보는 도훈.

    왜 시계를 보라 한건지 의문이 드는 순간, 도훈이 고개를 갸웃였다.

    “먹통인데 이거..?”

    그럴 리가 없었다.

    도훈이 차고 있는 시계는 튼튼하기로 유명한 전자시계로, 배터리 간지도 얼마 되지 않은 새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멈춰 있었다.

    “멈춘게 아닐세. 느리게 가는 것 뿐일세.”

    느리게 간다고?

    아까부터 자꾸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노인.

    도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엥...?”

    “그대가 못믿어 하니 본좌의 진수를 보여주겠다.”

    노인이 빛나고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그리고 그의 발 아래엔 축구공 하나가.

    “축구도사라니, 이게 무슨..”

    휘리릭-

    파아앙-

    파아앙-!

    도훈의 입이 쩍 벌어졌다.

    도사가 공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훈은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유명한 선수들이 나오는 경기를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저렇게 유려하게 움직이는 선수는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축구도사가 있다면, 저런 모습이겠거니 싶었다.

    “이제 믿겠나? 본좌가 하는 말을.”

    “...”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없었다.

    여긴 정말 속세에서 벗어난 세계이고, 저 노인은 축구도사란 말인가?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자네는 나갈 수 없네. 하지만 걱정 말게. 나갈 수 없는 건 지금 당장일 뿐이고, 100년이 지나면 반드시 나갈 수 있다네. 그 때가, 나의 등선이니까.”

    “뭐라고요? 아니, 그럼 뭐야?”

    “자넨 어쩔 수 없이 꼬박 100년을 나와 함께 있어야 하네. 그러게 여길 왜 들어왔어.”

    도훈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등산 중 핸드폰을 떨어뜨린 대가가 100년을 이런 동굴에 갖혀 있어야 하는 거라니?

    “본좌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운명이네. 본좌는 인생을 바쳐 비기를 완성시켰지만, 그에만 몰두하느라 제자를 두지 못하여 비급을 전승할 이가 없었네. 하지만, 자네가 나타났네. 이것이 운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비급이요?”

    축구도사, 호산(豪山)은 고개를 끄덕였다.

    “100년. 하지만 이 곳의 100년은 속세의 10분과 같은 시간이네. 자네같은 범인이 비기를 깨우치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 그러나 어느 정돈 흉내낼 수 있을 것이네. 그리고 그 정도만 해도, 자네는 속세 제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네. 축구로써 말일세.”

    도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100년간 훈련한다면, 비기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축구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호날두의 초호화 저택을 소개합니다. 드넓은 거실에, 마당에 수영장은 물론, 엄청난 슈퍼카들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차고도 있네요.>

    막연히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축구는 물론 운동엔 영 재능이 없으니 꿈도 꾸지 않았지만, 언제나 멋진 축구선수들을 동경한 적은 많았다.

    그들의 막대한 부와 명예가.

    지독했던 가난은 어머니와 이별을 해야했던 이유였으니까.

    “해볼텐가?”

    “안하면요?”

    “100년간 가만히 있어야지.”

    “...나가게 해줘.”

    “못나간다네.”

    호산은 웃었다.

    도훈의 복장은 터졌고.

    운명의 장난.

    그렇게 도리 없는 100년간의 수련이 시작된 것이었다.

    < 동굴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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