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55화 (155/160)

155화

"맞아, 이럴 시간 없어. 빨리 움직이자."

"네? 아까부터 계속 무슨 소리예요!"

"다시 말해줘야 해? 너 엄마, 나는 아빠."

"그러니까 그게!"

예지는 아직 납득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복부에 한 손을 대고, 그녀의 머리에 또 한 손을 댔다.

[엄마?]

"...엄마?"

"그래, 엄마."

[엄마!]

그녀는 멍하니 아기의 의지를 듣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야, 느껴지지? 우리 아들이야."

"..."

그녀의 영혼을 약간 개방해놓은 덕에, 그녀는 내 말이 아니라도 모든 걸 알았을 것이다. 그녀의 뱃속에 새생명이 잉태 되었다는 것과, 그게 우리의 아이들이라는 것고, 마지막으로... 어?

[아...빠?]

"오, 오빠, 하나가 아닌데요?"

"쌍둥인가 봐!!!"

"에?"

"쌍둥이야, 쌍둥이라고! 그것도 남매! 우와! 예지야, 진짜, 진짜 사랑해."

"..."

하나도 기뻐 죽겠는데, 둘이라니! 예지는 아직 멍한 듯했지만, 나는 그냥 날아갈 것만 같았다.

"예지야, 그러니까 빨리 준비해. 너희 부모님부터 찾아가자. 결혼승낙 받아야지."

"...?"

"뭐야, 그 표정은 나랑 결혼하기 싫어?"

"...아,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아직도 멍한 그녀를 안아 올려서 욕실로 움직였다.

"자, 그럼 일단 씻자."

"꺅. 오빠, 지, 지금 뭐하는..."

그녀는 욕실에 들어가기 전에 문틀을 잡고 버티려 했다. 하지만 내가 몸을 슬쩍 돌려 피했다.

"왜 그래. 한두 번 같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그래도, 지금은 너무, 꺅! 오빠!"

모르겠다. 지금은 마냥 즐거울 뿐이다.

+ + +

예지네 부모님은 당황하셨지만, 어쨌든 승낙하셨다. 오늘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도 어떻게든 받아들이셨고, 내가 빠른 시일 내에 죽는다는 것과, 예지에게 쌍둥이가 생겼다는 사실도 인지는 하셨다. 다 내가 기세로 누른 탓이다. 퀘스트를 완료한 탓일까, 하고자 하면 중령처럼 할 수도 있을 듯했다. 예지네 부모님께 그 정도는 하지 않았지만, 강한 의지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받아들이냐, 안 받아들이냐의 상황으로 만들기는 했다. 그런 상황이 되자, 예지네 부모님은 그냥 받아들이는 걸 선택하셨다. 애초에 공인된 사이이고, 우리의 결혼을 생각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지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했다. 좀 몰아붙여도 이해해 달라고. 너와의 결혼식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고, 양가의 축복을 받고 싶다고... 내 이기심을 용서해 달라고.

다행히 그녀는 넘어가 주었다.

실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였다. 그녀가 꾸며진 것이나마 행복한 결혼식을 하길 바랐다. 이 결혼은 추억으로 삼아, 이 이후의 시간을 잘 버티길 바랐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좀 더 공을 들였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퀘스트 완료 후 내 안의 무언가는 변했고, 그건 나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이 날 거라고...

그러나 우리 부모님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예지네 부모님은 이후에 예지가 어떻게 할 수 있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없어지게 되니까.

"아빠가 된 것 같습니다."

"...축하한다."

"어머, 어머, 어머... 아가야? 진짜니?"

"...네, 어머님."

"언제부터?"

"...오늘 알았어요.“

예지의 대답을 내가 보충했다.

"아마 1주 정도 됐을 거예요."

"네가 어떻게 알아?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아는 거지."

"아니에요. 오빠가 알려 줬어요."

"...?“

어머니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셨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엄마,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다시 해요.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없다고?“

“네, 오늘 결혼할 생각이에요.”

"오늘? 결혼은 찬성이지만 왜 오늘이야?"

"...?"

아버지도 나를 쳐다보셨다. 나는 두 분을 번갈아 본 후, 천천히 또박또박 얘기했다.

"내일이면, 제가 죽기 때문입니다."

"...?"

"...그게 무슨 말이냐?“

아버지는 침묵으로, 어머니는 말로 나를 다그치셨다. 다시 한 번, 단어 하나하나를 눌러가며 얘기했다.

"저는 내일 죽습니다."

"...그, 그게 무, 무슨 말이냐니깐!"

"조용히 해!"

아버지가 흥분하는 엄마를 제지했다.

"신이..."

예지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했다. 어머니가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못 알아 들으셔서 여러 번 했다. 그러고도 어머니는 받아들이시기 어려운지, '그, 그게 무슨.'하고 작게 혼자 말을 하셨다.

이야기를 다 들은 아버지는 한 마디만 하셨다.

"...꼭, 그래야 하는 거냐?"

"네. 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지만, 해야 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셨듯, 나도 내 아이를 위해 할 게 있고, 해야 할 게 있으니까. 이렇게 한 번에 모든 것을 넘겨주는 식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아가, 너는 괜찮은 게냐?"

"..."

"..."

예지가 머뭇거릴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눈물을 한 번 훔치고 대답했다.

"...네, 아버님. 각오는 했습니다.“

그 말에 내가 깜짝 놀라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죽는다는 이야기를 할 때부터 눈물을 멈추지 못하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단단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럼 됐다. 오늘, 언제라고?"

"민이 아버지!"

"당신은 가만히 있어."

"준비하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양가 부모님과 친한 사람들 모셔서 조촐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래, 그렇게 해라."

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좀 전부터 눈이 빨개지셨기 때문인 듯하다. 그 맘을 헤아려 예지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아!“

어머니가 목소리와 아버지의 소리 없는 눈물이 내 뒤를 따라왔다.

+ + +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 외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천수가 많이 도와줬다. 예지가 이동하는 것도, 올 사람들을 모으는 것도 다 천수가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장소가 호텔 소규모 연회장이고 참석자는 20명 남짓인 작은 결혼식이었다. 주례는 중령이 맡아 주었다.

“신랑 강민은 어떠한 경우에도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진실한 남편으로서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신부 전예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남편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진실한 아내로서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기뻤으면 좋겠는데, 예지는 그 대답을 끝으로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럼 이 서약을 바탕으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증인이 되어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짝짝짝짝.

우리 부모님과 예지네 부모님은 울고 계셨다. 박수치고 있는 후보자들도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많았다. 영문을 모르는 건 예지의 절친 몇 뿐.

“윽, 흑...”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눈물을 흘리는 예지. 방수 화장을 한다고 했는데, 눈물이 너무 많아 소용이 없었다. 검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래도 예뻤다. 너무 아름다웠다.

빙긋 웃으며 그녀의 입에 키스했다.

+ + +

"항아버지!"

"어이쿠, 우리 애기 왔어?"

정철은 조그만 녀석이 달려오는 걸 받아 높이 안았다. 이제 3살이 된 지철은 그의 턱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지철의 뒤를 이어 나타난 건 편안한 복장을 한 세영이었다. 그녀는 정철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철아, 그렇게 세게... 아버님, 괜찮으세요?"

"괜찮다. 나 아직 팔팔해."

대호와 대호의 다리를 붙잡은 소녀도 문 안으로 들어왔다. 7살 가을이는 요새 정철을 어려워했다.

"저 왔습니다."

"그래, 잘 왔다. 대호야."

"어여 들어와, 과일 깎아 놨다. 짐 놓고 앉어."

"네, 어머님!"

"할머니!"

현관에 서서 아들과 며느리를 부르는 아내, 가을이는 아내를 발견하자마자 쪼롬히 달려가서 안겼다. 가을이는 아내를 정말로 좋아했다. 어쩌면 그 엄마 세영보다 더.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과일을 중앙에 두고 둘러앉았다.

"항아버지! 따기! 달기!"

"그래, 딸기가 먹고 싶구나?"

정철은 딸기를 하나 짚어 무릎 위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지철에게 건넸다. 옆에서 아내도 무릎 위의 가을이에게 사과 한 조각을 집어 줬다.

"얘들아, 이제 그만 내려와야지? 할아버지, 할머니 힘들다니까."

"싫어, 난 할머니가 좋을 걸. 할머니도 내가 좋지?"

"그래, 가을아. 우리 가을이가 최고지."

"봐, 엄마. 엄마는 맨날 가을이만 미워해."

"가을아, 그게 아니라... 아, 어머님..."

"뭘 그렇게 보느냐?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손녀를 안아 보겠누."

"꺄하하하."

아내가 가을이를 꼭 안자 가을이가 자지러졌다. 정철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손자 손녀를 보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삶이 진짜 온 거라고는 아직도 안 믿겼다. 품에 안긴 지철의 무게는 현실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전혀 안 느껴져서,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그래, 이제 자리는 좀 잡았느냐?"

"네, 아버지. 이제 좀 널널합니다."

대호는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았었다. 회사의 사활을 건 일이었다. 성공하면 대박이었지만, 실패하면 책임을 지고 나가야 했던 일이었다. 그 일을 하느라 자그마치 2년이나 회사에 살다시피 했다. 그래서 가정은 세영이 맡고, 아이들을 키우는 건 정철 부부가 도와줬다.

"그럼, 이제 자주 오지 말 거라."

"네?"

"이 꼬맹이들과 자주 놀아. 너희들보다 우리를 더 좋아하지 않느냐. 그러면 안 돼."

"..."

대호는 갑자기 먹먹해졌다. 옆에서 정철의 아내도 거들었다.

"우리야 너희들이 찾아오지 않아도 우리끼리 잘 논다. 애들이나 신경쓰거라."

"어머님..."

"할머니?"

"응? 아무것도 아니다, 가을아. 사과 또 먹을래?"

"응!"

정철은 지금이라도 시간이 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을이 7살, 지철이 3살. 관계를 쌓기에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늦어도 어쩔 수 없었다. 삶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저 자신이 투자했던 시간보단 줄어들어서 다행이었다. 그가 여유로워 졌을 때, 대호는 이미 대학을 졸업했었으니까.

그는 자신의 노력이 보상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대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런 표정 할 거 없다. 영영 안 볼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혼자라도 올게요."

대호는 그 말을 하고는 불쑥 일어났다. 그의 등에 대고, 정철은 무심히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내 집이 네 집이다. 아무 때나 오든지."

"항아버지!"

"지철아, 왜?"

"달기! 따기!"

그는 어린 아이의 보챔에 따라 손을 움직였다. 평화로운 어느 오후였다.

+ + +

[축하합니다. 100번째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셨습니다. '아버지 김정철'로부터 소정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 투자하시겠습니까?]

친구 루카스

연인 박재현

그리고 아버지 김정철.

나는 경험치를 투자할 곳으로 라이트닝 소드를 선택했다.

[[라이트닝 소드-개]가 [Akiro 94.87%]에서 [Akiro Master]로 변합니다.]

[100개의 퀘스트를 모두 클리어하셨습니다.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영혼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이 힘을 끌어내는 것은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또한 그동안 겪은 평행세계의 영혼들과도 연결됩니다. 이 힘을 끌어내는 것 역시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잠, 잠깐만...!"

그러나 시스템은 기다려 주지 않고, 나를 원래의 세계로 추방했다. 눈을 뜨니, 오른 손이 공중으로 뻗어 있었다.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끝내냐..."

조금, 아니, 많이 아쉬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