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아들입니다."
"네?"
"아들입니다."
"..."
정철은 말을 잊지 못했다.
'아들? 아들? 아들!?'
기뻐해야할 아버지가 멍하니 있자, 의사는 정철을 불렀다.
"선생님?"
"아들이라고요?"
"네, 네. 아들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철은 의사의 손을 잡고, 90도 이상 허리를 숙였다. 기쁘면 눈물이 나는 걸 처음 경험하고 있었다. 모든 게 기적 같았다. 아내가 대견했고, 잘 나와 준 아들에게도 고마웠다.
"제가 뭘요. 아내 분께서 수고하셨죠."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의사는 아직 미혼이었다. 그래서 아직 정철의 마음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수많은 부모들을 보면서, 자신도 저렇게 되는 걸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게 다였다. 한 편으론 자신도 저렇게 되고 싶었다. 갓 부모가 된 이들이 내뿜는 밝은 기운엔 그런 힘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만 하세요. 이제 잘 키우시기만 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흑."
정철은 기뻤다. 정말로 기뻤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그리고 동시에 무거움을 느꼈다.
책임감.
결혼 할 때와 비슷하게, 묵직한 것이 가슴 위에 올라온 느낌이었다.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할 일이 많았다. 돈도 벌어야 했고, 아이도 돌봐야 했고, 배워야 했고, 가르쳐야 했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아직 보지 못한 아이지만, 아들이 자라서 기고, 걷고, 뛰어다니는 게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옆에서 같이 걷고, 뛰는 자신의 모습도 연상됐다. 더 시간이 지나 학교에 들어갈 아들과, 입학식과 졸업식의 풍경도 그려 보았다. 수험 공부를 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고...
그 모든 것을 벌써 본 듯, 그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웃고 있는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좋아, 열심히 하자.'
그는 굳게 다짐했다.
아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 + +
휴게소에 도착해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나니, 마침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에요?"
"추풍령이야."
"밥은 먹었어요?"
"응, 먹었지. 대호는?"
"지금 자고 있어요. 저녁은 잘 먹었고요."
"사진 좀 찍어서 보내 줘. 보고 싶어."
"많이 있으면서, 진짜 주책이에요."
"그래도 보내줘. 자기 전에 심심해."
"보내 줄게요. 잘 때는 담요 잘 덮고 있어야 해요."
"알았어. 대호 잘 봐줘.“
"맨날 대호, 대호. 저는 이제 신경도 안 쓰고..."
"내, 내가 뭘.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피, 당황하는 게 다 보이는데요?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 들으니까 기분은 좋네요."
"사랑해. 보고 싶어."
"저도요. 운전 조심해요. 밤이라고 막 달리면 알죠? 당신 없으면 우리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어. 그럼 자, 나도 조금 자야겠다. 아직 시간 좀 남았으니까."
통화를 마치고 잠시 기다리니, 휴대폰이 진동했다.
위이잉.
정철은 재빨리 휴대폰을 열었다. 아내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아들인 대호의 사진이었다. 대호는 많이 컸다. 이제 3살. 한창 움직일 나이였고, 그 덕에 아내가 고생하고 있었다. 그래도 자는 모습은 아직도 천사 같았다. 포동포동한 젖살이 너무 귀여웠다.
대호는 아내를 더 많이 닮아 남자답지 않게 귀엽기만 했다. 조금 아쉬웠다. 남자라면 선이 굵은 자신을 닮아야 했는데... 하지만 나중에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그나저나 신기했다. 선이 가는 데도 자신의 얼굴이나 분위기가 보이는 걸 보면, 역시 아들은 아들이었다. 정말로 신기했다.
그는 사진을 저장하고, 저장되어 있는 다른 사진을 꺼냈다. 휴대폰에는 저장 용량 한계까지 사진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가 직접 찍은 것도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받은 것도 많았다. 데이터 사용료가 비쌀 거라는 생각은 약간 들었지만, 그는 계속 사진을 받았다. 많이 떨어져 있는 만큼 사진이라도 계속 보고 싶었다. 이건 그가 부리는 유일한 사치였다.
그렇게 사진을 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저녁 간단히 먹고, 눈 좀 붙이려고 들어온 휴게소인데, 쉬지도 못하고 출발할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미소만 한 가득이었다. 아들 생각에 피곤하기는커녕 힘만 나는 것이다.
"휘유후우우."
운전석 위에 붙여 놓은 아들 사진의 위치를 한 번 조정하고 그는 화물차를 움직여 휴게소를 빠져나갔다. 그의 입에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휘파람이 계속 흘러 나왔다.
+ + +
"오늘도 못 들어와요?"
"으, 응. 그럴 것 같아."
아내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그도 마음이 아팠다.
"잠은 잘 자는 거예요?"
"당연하지. 차 넓은 거 잘 알잖아? 완전 젖히고 타면 침대 같아."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아무리 편해도 침대 같겠는가. 그리고 춥다. 조금이라도 아낀다고 히터를 안 틀다 보니, 모포로는 한계가 있었다.
"침대는 무슨... 꼭 이렇게 까지 해야겠어요? 밖에서 자면 몸만 상할 텐데..."
"돈 벌어야지. 돈 벌어서 당신이랑 대호랑 행복하게 해 줄 거야."
아이가 커갈수록 돈이 더 필요해졌다. 학용품도 사야하고, 학원도 다녀야 했다. 정철은 자신이 공부를 못한 만큼 아들은 잘 했으면 했다. 다행히 대호는 공부가 적성에 맞는지 잘 따라왔다. 문제는 자신이었다. 대호는 더 많은 것을 배우려 하는데, 그를 지원해 줄 게 없었다. 지금도 빠듯한데, 앞으로는 더 그렇게 될 게 뻔했다.
그래서 그는 일을 늘렸다. 일을 늘리니 집에 들어갈 일이 잘 없었다. 전에도 휴게소에서 자거나 대충 길가에서 쪽잠을 자는 게 일상이었지만, 아내와 대호를 위해 며칠에 한 번씩을 꼬박꼬박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20일을 밖에서 보내고서야 하루 들어갈까 말까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면 뭐해요. 당신이 건강해야지."
"난 건강해. 나 몸 빼면 시체잖아? 당신도 그것 때문에 좋아했으면서."
"그러니까, 그 몸 좀 잘 지켜요. 안 그러면 확 도망가 버릴 테니까."
"...무서운데? 그나저나 대호는?"
"자죠. 이 시간에 뭘 해요."
벌써 11시. 초등학생이라면 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건 정철 때나 통하던 이야기였다.
"조용히 가 봐. 안 자고 있을 지도 몰라. 혹시 게임하고 있더라도 너무 다그치진 말고... 잠은 제때 자라고 해."
"설마... 아닐 거예요. 우리 애가 어떤 앤데... 진짜, 게임하고 있으면 가만 두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나가면 오히려 더 한다니까... 성적도 좋고, 친구들도 잘 사귀는 데 너무 몰아붙이지 마."
대호는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정철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철도 대호 나이 때에 한참 놀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을 시작할 무렵에는 PC방이 막 생겨서 미친 듯이 게임만 한 적도 있었다. 그 마음을 아니까, 게임 하지 말라고 막지는 못했다. 대호가 학교 성적이 안 좋거나, 혹은 게임만 너무 해서 외톨이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대호는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줬다. 게임도 곧 스스로 적당히 조절 할 수 있을 거라고 정철은 믿었다. 자신이 결혼하고 대호를 낳으며 성실해진 것처럼.
"당신은 너무 오냐오냐 해요. 이런 건 어릴 때 끊어야 한다니까요."
아내는 그런 정철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걱정이 많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심하게는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천사 같은 아내의 성격을 잘 아니까. 대호에게 별 것 아닌 소리 들었다고 자신에게 전화해서 수십 분 동안 눈물로 호소하는 게 아내였다.
그런 아내의 뾰로통한 표정을 보니, 갑자기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 적당히 해. 나는 이제 출발해야 할 것 같아."
"운전 조심하세요! 사랑해요, 여보."
"나도 사랑해."
마지막 말은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카메라를 가리고 했다. 그리고 바로 영상통화를 끝냈다. '사랑해'란 말은 아내가 못 들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듣지 못한 게 다행일 거라는 생각도 했다. '사랑해'라고 할 땐 이미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끅."
정철도 알았다.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또 절대로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아내와 아들 사이에 있고 싶었다. 게임을 같이 하며 어린애가 둘이라고 한 소리 듣고 싶었다. 아내가 아들에게 잔소리하면 옆에서 말려주고도 싶었다.
"끅, 끅."
외로웠다. 아내와 아들이 자신을 소외시키는 건 아니지만, 설사 그렇게 생각하지도 안겠지만, 그는 스스로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흑..."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는 애써 스스로를 다스렸다. 아내와 아들이 모를 리 없고, 자신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아들과의 시간은 나중에 보상받으면 된다. 그보다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일해야 했다. 아들은 자신과 같은 일을 겪으며 안 되니까. 그러려면 자신이 그 아래를 든든히 받쳐줘야 했다.
부르릉.
그의 화물차가 어두운 고속도로를 다시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 + +
"다녀왔습니다."
"...왔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대호는 반겨주는 정철을 보며 조금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빠! 오늘 쉬는 날이었어요?"
"응, 갑자기 그렇게 됐어."
"이게 얼마 만이에요!"
"음... 한 달 만인가?"
"그렇죠. 벌써 한 달 만이에요. 그동안은 어디 계셨어요?"
정철은 머릿속으로 지난 한 달을 떠올렸다. 딱히 어디 있다고 하기 힘들었다. 전국을 돌아다녔으니까.
"부산에도 갔다가, 서울에도 갔다가, 광주도 갔다가... 강원도 쪽만 안 갔네."
"우와, 그럼 전국일주 한 셈인 거네요?"
"그, 그런가?"
"대단해요."
그러나 그는 그 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에게는 화물차 기사밖에 안 된다는 자격지심이 있었다. 대호가 그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위축되는 게 있었다. 그래서 '대단하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 립서비스로만 들렸다.
그는 어색하게 웃다가, 대호에게 물었다.
"그보다 너는 어떻게 지냈니?"
"저야 뭐... 공부했죠. 지금도 학원에 가야 해요."
"그래? 그렇게 학원을 많이 다니니? 힘들겠구나."
"힘들어도, 해야죠. 이제 곧 시험인데요..."
"그래, 열심히 해. 결과야 어찌됐든, 후회는 남기면 안 되니까."
"네, 그럴게요."
정철은 그 다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종일 차 운전만 하다 보니까, 사람을 만날 시간도 없었고, 누군가와 대화할 기회도 없었다. 대호는 그의 아들이었지만, 성장기와 사춘기 때 떨어져 있다 보니 어색하기만 했다. 그건 대호도 비슷해서, 둘은 서로 마주보고만 있었다.
"대호야, 왔니? 어서 씻고 밥 먹어. 학원 가야지!"
"네, 엄마."
"그래, 그럼 들어가 봐라."
"네."
방으로 들어가는 대호의 뒷모습을 보면서, 정철은 옛날을 후회했다.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열심히 일하던 그 때, 조금만 더 에너지를 내서 대호와 만났으면 되지 않았을까? 아니, 아예 다른 길을 선택했어야 했을까?
...열심히 하면, 최선을 다하면 후회는 없을 거라고 방금 대호에게도 얘기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더라도 후회하는 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 + +
"대호는 뭐 하려나..."
"그렇게 궁금하면 전화라도 해보지 그래요?"
"그게..."
정철은 차마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대호가 중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는 학비를 대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 덕에 대호는 좋은 대학교에 등록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었지만, 그 탓에 그와 대호는 멀어졌다. 그 전에도 사이가 가깝진 않았지만, 지금은 정말 어색했다.
전화를 하면 안부나 나누고, 한두 마디 하다가, 서로 침묵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게 무서웠다. 그런 전화가 반복되면, 대호가 자신을 더 어색하게 여길까 봐 두려웠다. 그럼 더 사이가 멀어질 테고, 전화를 걸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공부하느라 바쁘겠지."
"논다고 바쁘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집에 한 번 찾아오라고 할까요?"
"됐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잘 지내는 애 리듬 깨서 뭐하려고."
대호는 다른 지방에서 자취하며 취업 준비중이었다. 다녔다. 집까지 오려면 오가는 데 하루는 잡아야 했다. 대호도 자기 계획이 있고, 리듬이 있을 텐데, 그는 그걸 망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공부해야 할 때였다.
"취직... 잘 될까?"
"잘 될 거예요. 뭐가 그렇게 걱정이 많아요. 당신이 그 취업 사이튼가 뭔가 본다고 알아요? 애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 것을... 당신은 좀 쉬어요. 왜 그렇게 쉴 줄을 몰라요? 정 심심하면 산악회나 등록해서 다니던 지요."
그는 지금 일을 줄이고 있었다. 이제 큰 돈 들어갈 일은 없었으니까. 조금 더 하다가 화물차는 팔고 버스 회사에나 취직해 볼 생각이었다. 안 되면 개인택시 면허증이라도 사던가.
어쨌든 시간이 남았으니 좀 쉬면 좋을 텐데, 매일 일만 하던 그는 잘 쉬지도 못했다. 그리고 아들 걱정에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었다. 입사 일정은 언제인지, 면접은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
"당신은 싫다며?"
"저 몸 움직이기 싫어하는 거 아시잖아요? 이제 와서 뭘 운동이라고... 당신이나 갔다 와요. 왜, 이제 와서 젊은 것처럼 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는 건 아니죠?"
사실은 그렇지만... 그는 무심하게 얘기하는 아내가 속상했다. 늙을수록 여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는 말이 사실인 듯했다. 결혼을 너무 늦게 한 탓일지도.
+ + +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눈을 떴을 때, 나는 잠시 멍하니 있어야 했다. 이제까진 하룻밤 8시간을 넘지 않았는데, 이번 퀘스트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 장면까지, 자그마치 60년 가까이를 '김정철'로 살았다. 그것도 현재의 내가 가진 기억은 하나도 없는 채로.
멈춰 있던 현실의 기억에 정철의 기억이 융합되는 건 꽤 오래 걸렸다. 거의 한 시간 동안 내 속에서 두 개의 기억이 적절히 융합되고, 오랜 시절의 경험들이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예지가 일어나 있었다.
"오...빠? 괜찮아요?"
"아니..."
"그럼요? 왜 울어요?"
그 말을 듣고서야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알았다. 당연했다. 한 남자의 생을 온전히 살고 왔는데, 그 삶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걸 느꼈는데, 무엇보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 30년을 살았는데...
우는 게 당연했다. 정철의 기억 때문이기도 했고, 대호의 기억 때문이기도 했고, 내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이기도 했고, 나 스스로에 대한 자책의 눈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엇!"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모양이지만, 나는 최대한 조심히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고마워."
"...뭐가 고마워요. 에휴... 일단 울어요. 울고 나면 말할 정신이 좀 나겠죠. 지금은 우는 것도 아니고, 안 우는 것도 아니고... 제가 이러고 있으면 돼요?"
그녀가 내 품에 더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녀 말대로 울기는커녕 미소만 지어졌다.
"고마워."
"...울다 웃으면 안 좋은 곳에 뭐 나는 거 몰라요?"
알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결혼하자."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우리 결혼해야 해."
"...제가 왜요?"
어리둥절 당황한 척 하지만, 닿고 있는 가슴에서 그녀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바보 같다. 내가 그녀 앞에서 아무것도 숨길 수 없듯이, 그녀도 숨길 수 없는데.
몸을 돌려 그녀의 위로 올라갔다.
스윽.
"가, 갑자기 뭐, 이러면 제가 그냥 승낙할 거 같아요? 무드도 없고..."
얼굴이 빨개진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건 멈추지 않았고, 목도, 귀도, 다 빨개졌다. 그녀의 붉은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너, 이제 엄마야."
"...네?"
"너, 이제 엄마라고, 나는 아빠고."
"...네?"
부끄러움은 다 어딜 갔는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의심은 타당했다. 우리는 매번 피임을 잊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그녀의 뱃속에서는 자그마한 영혼이 분명 느껴지는데...
그리고 그 영혼은 나에게 의지를 보낸다.
[아빠!]
라고....
크크큭, 크크큭.
"푸하하하하!"
박장대소를 터트리면서 그녀의 위에서 내려오자, 그녀가 일어나 내 가슴을 쳤다.
"오빠!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장난치는 거예요? 장난이면 진짜 가만히 안 둘 줄 알아요!"
"푸하하하하!"
신도, 세상도 잊고서, 오랜만에 즐거웠다. 아버지를 뵙고 싶었다. 나도 아빠가 되었으니까.
============================ 작품 후기 ============================
HerbPia님 후원 쿠폰 감사드려요! 늦게 봤어요ㅋ
드뎌 100개가 끝이 났네요ㅋ
클리어 보상은 내일 나오겠지만...
그러고 보니... 이러면 과부엔딩인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일단 신을 죽이고 보죠. 하지만 죽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