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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퀘스트-152화 (152/160)

152화

샤라라라락.

콰아아아!

얼음이 내 위를 가로 막았다. 얼음 너머는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 빛에 녹고 있을 텐데도, 얼음 너머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얼마나 두꺼운 걸까.

그리고 넓었다. 직경 10km는 될 법한 빛의 기둥, 내 위치에서는 그 끝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걸 다 막아내고 있었다. 완벽하게.

[뭐냐, 이건!]

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얼음벽 너머에서 빛이 강해졌다. 그래도 빛은 얼음을 뚫지 못했다.

[뭐나고 이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한국에서 이 정도의 얼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물론 그 사람도 그냥 할 순 없다. 희생을 해야 했다.

[이유비!]

[그럴 시간 없어. 공격해.]

내 부름에 그녀가 응답했다. 그걸로 그녀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녀는 마포대교 위에 있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그녀의 몸에서 빛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로는 안 돼.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야 해. 기다릴 수 있겠어?]

[한계야. 이제 1분도 견디기 어렵다.]

콰가가가.

얼음은 녹고, 다시 어는 것을 반복했다. 얼음의 두께엔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지만, 빛의 열기와 세기도 강해졌다. 다른 후보자들은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을 내어 놓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 주변은 여전히 신의 지배하에 있었다.

[한 번만, 몇 초만 버티면 돼. 할 수 있어?]

[...해볼게.]

[그럼, 내 신호를 들어.]

[알았어.]

방법이 있었다. 성공할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해 봐야 했다.

[우리의 비밀 병기지. 그 정도로 뚫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도발하려는 군.]

[그래, 도발이지, 도발이야. 그 뒤에는 함정이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오겠어?]

[함정... 큭. 함정이겠지. 네가 공격이라도 하는 거냐?]

[...]

역시 신은 신인가 보다. 내 어쭙잖은 생각 따윈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기에, 또 통하고 만다.

[좋아, 좋을 대로 해 봐라. 어차피 이 얼음이 짜증나던 참이었으니까 말이야!]

파아아아앗!

빛이 두 배로 강해졌다. 동시에 얼음벽도 두꺼워졌지만, 빛의 밝기는 밝아져만 갔다.

샤라라락.

얼음이 무섭게 녹기 시작했다. 무심코 유비를 돌아봤다. 저 멀리 마포대교 위에서 흰 빛이 얼음벽을 향해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그 중심에 있을 그녀의 영혼은 흐트러지고 있었다. 더 힘을 낼 상황이 아니었다.

파아아앗!

그러나 아직, 아직이었다. 조금 더 버텨야 했다. 신의 힘은 아직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다. 내 공격이 통하려면, 그의 힘을 좀 더 끌어내야 했다.

[다 죽어 버려라!]

그의 의지와 함께, 빛은 다시 한 번 밝아졌다. 얼음벽을 넘어오는 희미한 빛으로도 내 옷이 스러지고 있었다. 찰나 후면, 얼음벽은 깨지고 이 도시는 순식간에 날아갈 게 분명해 보였다.

...제길.

강력해진 신의 힘은 내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이젠 방법이 없었다. 내가 생명을 태워 힘을 낼 시간도 부족했다. 저 빛을 뚫고 공격이야 할 수 있겠지만, 나 혼자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순간, 다시 한 번 나를 치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이것만, 이것만 막으면 되는 거겠지! 강민! 이 빌어먹을 나쁜 놈아!]

유비가 터트리는 그 의지에는 두 가지가 들어가 있었다. 아냐 누나에 대한 걱정과 나에 대한 분노. 그녀는 그것만으로 다시 한 번 얼음벽을 두껍게 만들었다.

[됐다!]

얼음벽이 신의 공격을 막아내고, 신이 조금 더 힘을 쏟는 그 순간, 한 달 전의 상황이 재현됐다. 그의 힘이 완전히 전개되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파지지지지직!

그 틈을 노려 그의 영혼을 찔렀다. 이번 라이트닝 소드는 그의 영혼과 육체의 연결을 끊는 것은 물론이요, 그 육체 자체를 뒤로 밀어냈다.

[우아아아아앗!]

있는 힘을 다했다. 그는 또 자폭을 할 테고, 그러면 이제껏 막은 게 말짱 도루묵이 될 게 뻔했다. 할 수 있는 만큼 그를 멀리 떨어뜨려, 서울이 피해를 입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서울 상공 1km를 벗어나지 못했다.

[큭, 이게 끝인가? 이번에는 네가 이겼다고 해두지... 그래도 이 정도면, 이 도시는 받아갈 수 있겠군.]

희미하게 전해오는 의지에는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젠장!

그런데 그때, 다른 의지가 내게 전해졌다.

[피하게, 강민군!]

그제야 다리 위에서, 또 사방에서 커지는 영혼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수는 아니었다. 열 명 정도?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한국인으로, 자주 보던 얼굴들이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그 영혼의 존재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안도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며, 다시 번개가 되어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기기기기긱!

세상을 지우개처럼 지우는 폭발과 마지막 생명을 태우는 영혼의 힘이 충돌하자, 비명 같은 소리가 서울 하늘을 채웠다. 서울에 살던 모든 사람들은 뭔 일이 있나 하고 하늘을 쳐다봤다. 심지어는 지하에 있던 사람들도 나와서 확인할 정도의 굉음이었다. 그것 말고는 피해가 없었다.

신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 과정은 녹록치 않았지만, 결과는 그랬다.

휴우우우우우.

폭발이 사그라짐을 확인하고 유비에게로 갔다. 다른 사람도 안타깝지만, 그녀의 마지막은 왠지 내가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유비...]

[빌어먹을 나쁜 놈.]

[...미안.]

[큭, 미안하지 않다는 게 다 느껴진다고...]

영혼에서 영혼을 통한 대화는 진실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것만은 진짜였다.

[고마워.]

[고마우면, 아냐를 지켜 줘.]

[...]

[적어도, 그건 해주겠지?]

[...응. 그럴게.]

그녀의 몸은 좀 전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완전히 투명해져 빛으로 화할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마지막 의지는 겨우 나에게 닿을 정도로 약했지만, 분명히 닿았다.

[아냐에게 미안하다고 전해 줘...]

[유비...]

예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와 아냐 누나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걱정이 교차했다.

빌어먹을 신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 + +

오피스텔 입구에 예지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내가 나가기 전 복장 그대로인 잠옷 차림으로 입구를 서성거리는 중이었다. 그 옆엔 아냐 누나도 있었다. 누나는 예지를 말리고 있는 듯했다.

"오빠!"

내가 오피스텔로 들어가자, 예지가 달려와서 안겼다. 그녀는 내 품에 안기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흐아아앙. 그, 그렇게 가면, 흑, 나는, 나는."

"미안해, 미안."

"흑, 진짜, 흑, 죽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끅, 흐아앙."

우리를 지켜보던 아냐 누나는 궁금하단 표정이었다. 하지만 누나는 내색하지 않고 나에게 슬쩍 고개를 숙이더니 올라간다는 손짓을 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

"흐윽, 끅, 오빠?"

"예지야, 잠깐만."

예지를 떼어내고, 무슨 짓이냐며 놀라는 아냐 누나의 앞으로 갔다.

"유비가..."

"...?“

의문이 가득한 누나의 눈을 보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유비가 죽었어요."

"...민, 민아, 그, 그게 무, 무슨 말이야?"

"조금 전에, 우리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어요."

"..."

"누나에게 미안하다고 전해 달래요.“

한 번 열린 입에선 술술 말이 나왔다. 그와는 반대로 누나는 점점 굳어만 갔다.

"...거짓말 하는 거 아니지?"

"...죄송해요."

"..."

그리고 결국 누나는 정신을 놓아 버렸다.

풀썩.

쓰러지려는 누나는 뛰어가서 받았다. 누나는 진아처럼 온 몸에 힘이 없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도 누나가 가장 먼저 알아야하니까. 이런 문제는 충격을 완화시킬 방법도 없으니까. 그러나 스스로가 한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끅, ...오빠는... 괜찮아요?"

예지도 좀 전에 달려와서 누나를 받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람과 슬픔과 안도가 뒤섞여 있었다.

"지금은.“

"...그럼 다음은, 다음은요!"

내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싫었나 보다. 화를 냈다. 슬픔과 화, 그녀의 감정이 날뛰게 된 건 내 탓이었다. 나는 그걸 받아야 했다. 싫다고 회피해선 안 됐다.

"나는 죽을 거야."

"...내, 내가 언니처럼 이렇게 쓰러져도요?"

그건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다. 지금처럼 담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나는 네가 살길 원하니까. 나도 죽기 싫어. 할 수만 있다면 너랑 천년만년 살고 싶어. 그렇지만... 그럴 수 없는 걸. 그럴 수 없잖아. 저번에는 기찬이 죽었고, 오늘은 유비가 죽었어. 다음에는 또 누가 죽을까? 너? 부모님? 아냐 누나?"

"..."

"그전에 내가 모두를 구할 거야. 반드시 성공할 거야. 그러니까, 너는 살아 줘. 고통스럽겠지만, 살아 줘. 슬프겠지만, 살아 줘. 내가 이기적이란 거 알아.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너도 내 입장이 되면, 그럴 거잖아?"

"흑, 끅."

"...미안해."

"무리예요. 무리라고요! 오빠가 없는 삶을 제게 강요하지 마세요!"

타다다닥.

그녀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 세계의 그녀는, 나와 지독하게도 비슷한 그녀는, 분명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 줄 것이다. 지금 이렇게 받아들이지 못해도, 분명 나를 기억하며 살아가겠지. 혼자서, 행복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냐 누나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누나는 내 품에서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 머릿속에서 유비와 이별 중이길 바랐다.

“누나, 미안하고, 고맙고... 힘내요...”

+ + +

누나는 다행히 진아처럼 계속 쓰러지진 않았다. 일어나서 계속 울고, 먹을 것도 잘 안 먹었지만, 진아처럼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회복, 아니 진정이 언제 될지는 모르겠으나, 안 될 것 같진 않았다.

반나절 정도 누나를 돌보던 나는 형들과 교대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방엔 아무도 없었다. 예지 방으로 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 앞에서 잠이 들었다. 방 안에서는 예지가 울고 있었다.

후일담에서 진아는 예전처럼 밝은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때때로 슬픔에 잠겼지만, 그래도 금방 원래대로, 원래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건 그녀의 노력인 동시에, 그의 노력이었다. 함께 진실을 마주하려한 그의 선택이 없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 후에도 계속 그녀를 옆에서 지탱해주고,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밀어 주었다.

행복한 모습이었다.

예지의 옆에도 저런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 작품 후기 ============================

하강일로를 걷던 선작수가 조금 반등했습니다... 150편을 넘어서 그런가?

이제 에피 소드 두 개 정도 남았습니다.

100 번째 퀘스트와

신과의 싸움.

그리고 에필로그.

마지막까지 지켜봐 주시길!

덧.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ntr 아니고 과부 엔딩도 아니고... 완벽한 해피 엔딩은 아니지만, 해피해피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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