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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퀘스트-148화 (148/160)
  • 148화

    후우우우웅!

    기찬의 온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서퍼 보드에서도 빛이 났다. 은색의 빛은 로호프가 만들어내는 노란 빛 사이에서도 넓게 퍼졌다. 그리고 보드가 더 넓게 펼쳐졌다. 아주 넓게, 기찬이 한 번도 만들어 보지 못한 크기로. 거의 빛 기둥을 다 덮을 만큼 커졌다.

    "뭐지?"

    로호프는 갑자기 자신의 공격을 막는 은색 판대기의 등장에 의문을 가졌다. 그 전에도 용케 잘 막는 놈이라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정신공격에 죽을힘을 쏟아 붓는 걸 주저하고 있는 걸 확인했었다. 그런데 불현듯 그 힘이 강해졌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어떻게 자살을?"

    그는 호기심에 기찬의 정신을 들여다봤다. 완벽하게 보진 못해도 그 생각을 대충 읽을 수는 있었다.

    "...미친놈이군."

    그는 기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롯이 혼자 서 있기를 갈망하는 그는 기찬이 다른 여러 사람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그 중 하나 따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게 궁극적으로는 '살고 싶다!'로 연결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늦었나..."

    기찬의 서퍼 보드, 그가 모든 힘을 다해 키운 방어막은 정신 공격도 막아 주었다. 그래서 이제껏 머뭇거리고 있던 후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파아앗!

    [뒷일을 부탁합니다.]

    화라라라라락!

    [사라져라!]

    쏴아아아아!

    [여보, 미안해! 나 없어도, 끝까지 살아!]

    곳곳에서 큰 힘이 터져 나왔다. 빛이, 불꽃이, 해일이, 얼음이, 번개가, 어둠이, 폭풍이...

    "이 차원은 미쳐 돈 곳이군. 다음번에 오면, 그냥 다 쓸어 버려야겠어."

    로호프는 자신을 향해 오는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지금 쓰고 있는 이 육체를 소모하며 공격해도, 피해를 줄 수 없음을 알았다. 공격은 밀어내도, 은색 판때기를 뚫지 못할 거였다.

    그는 다음을 기약하며 각종 속성 공격에 몸을 내주었다.

    콰아아아!

    온갖 속성이 한데 어우러지며 큰 폭발이 일어나고, 빛이 났다. 흰 빛, 흰 빛은 정말로 밝게 빛났다. 시안은 물론이고, 중국전역에서 그 빛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게, 또 넓게.

    + + +

    "끝났군."

    자신과 함께 막 도착한 중령은 흰 빛을 보며 그렇게 평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단번에 알았다. 지난 싸움에서 신의 영혼을 바로 옆에서 수도 없이 봤었으니까. 이 전장에 그가 없다는 건 그냥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정기찬! 기찬아! 어디야!]

    [...광고 하지 마.]

    희미해지고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윈디를 불러 그쪽으로 날아갔다. 천수를 불러 텔레포트를 하기에도 시간이 아까웠다.

    "기찬아!"

    [...안 들려.]

    그는 도로 한 중간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그의 몸은 흩어지는 중이었다. 이미 사지는 투명해져서, 바닥이 그대로 보였다. 꿈속에서나 보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고 있었다.

    [...괜찮... 을 리가 없군...]

    [괜찮아. 나는 괜찮아. 너가 살아 있고, 중령님이 살아계시고, 한국에 있을 부모님이나 친구들도 다 살아 있으니까. 아직은 괜찮아.]

    [...그게 무슨...]

    [그러니까 지구를 지켜 줘. 그럼 괜찮아. 그러지 못하면 괜찮지 않겠지만...]

    그의 몸도 이젠 투명해졌다. 머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 정도만 겨우 남아 있었다.

    [아... 하나는 아쉽다. 한 소위에게 고백했어야 했는...]

    [기찬아!]

    기찬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서 흩날리는 빛을 움겨 쥐어 보지만, 빛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그리고 거의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의지가 전해져 왔다.

    [중위님!]

    한 소위가 저쪽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중위님!]

    그녀가 날 부르는 게 아님은 분명했다. 나는 아직 흩날린는 빛가루에서 물러났다. 그녀는 좀 전의 나처럼 그 가루를 움켜쥐려 했지만, 빛가루를 그녀의 몸을 비켜 공기 중으로 퍼질 뿐이었다.

    "흑, 흐윽, 흐아아앙!"

    그녀의 마지막 의지를, '저도 사랑해요.'라는 말을 기찬이 들었을까.

    + + +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그만 일어나세요."

    블레이크는 무릎을 꿇을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건 루카스의 부인 마이야다. 마이야는 블레이크가 루카스에게 소개시켜 준 사람이었다. 블레이크는 더욱 미안했다. 그녀는 자기 때문에 이런 고생을 겪고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죄송합니다."

    "..."

    마이야는 요지부동인 그 앞에 같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된 상태였다.

    "저보다, 당신은 괜찮으신가요?"

    "..."

    "부군이 사라졌다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분은 당신이 틀림없겠죠."

    "..."

    "당신이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어쩔 수 없었다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였을 테니까요."

    "...부인."

    "이만 일어나 주세요."

    마이야는 블레이크의 어깨를 잡고 일으키려 했다. 그는 그녀의 청을 받아 천천히 일어났다.

    "부군이 떠난 건 슬픈 일이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그분이 바란 걸 테니까요. 당신도 편하게 사십시오. 그게 부군이 바란 걸 겁니다. "

    "하지만..."

    "부군이 죽은 이상, 저는 부군의 대리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제 말을 그의 말이라 생각하고 들어주세요. 당신은 짐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시겠어요?"

    "..."

    그녀는 그럴 수 없다는 듯이 서 있는 그를 보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자주 찾아와 주세요. 부군의 죽음을 위로해 줄 사람이라고 해봐야,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아니, 당신만이 위로할 수 있으니까요. 슬퍼질 때마다 그분을 추억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

    "지금은 어떠신지요?"

    "...하지만."

    "제 말은 그의 말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당신은 당신을 위해 죽은 친구의 말을 안 들을 셈인가요?"

    "아,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블레이크는 그녀의 말에 양손을 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그녀에게, 그의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만 잔뜩 이었다. 그 마음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 몰랐다. 아니, 풀 수 없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여기서 이렇게 고집을 피울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런 그를 보며 질투가 났다. 그는 부군의 생전에도 자신보다 부군을 더 좋아하는 듯했고, 지금도 그렇게 보였다. 죽은 이의 말이라고 하니 빠릿하게 움직였으니 말이다.

    '당신은 죽어서도 편안하시겠어요. 이렇게나 생각해주는 사람이 많으니.'

    당연하지만, 그녀도 블레이크 못지않게 슬펐다. 하지만 루카스가 아낀 블레이크를, 루카스 대신 위로해 주기 위해 애써 참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루카스가 바라는 바일 테니까.

    '고마워요.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어서.'

    그녀는 정원으로 나오며 저 멀리 성문 앞에 건설되고 있는 석상을 보았다. 블레이크가 복귀하자마자 온힘을 다해 만들고 있는 석상, 바로 루카스를 기리기 위한 석상이었다.

    그 석상의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메시아 루카스 데 프로이드 1895-1949]

    + + +

    "흑, 끅."

    한 소위는 벌써 몇 시간째 울고 있었다. 저 작은 몸 어디에서 물이 그렇게 솟아 나오는 건지...

    "...제가 할까요?"

    "흑, 아, 아닙니다. 끅, 제가 하겠습니다."

    한 소위가 한 걸음 나서며 초인종 앞에 섰다. 그러나 그녀는 또 초인종을 누르지 못했다.

    "흑, 끅, 그, 그래도 제가, 흑, 하겠습니다..."

    그녀의 고집을 꺾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있는 곳은 기찬의 집 앞이었으니까. 그녀는 이제부터 기찬의 부고를 가족에게 전해야 했다. 그녀가 자원했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따라왔다. 친구로서 그 가족을 챙겨야 했다. 중령도 오고 싶어 했지만, 행정적인 뒤처리가 복잡했다. 그는 나중에 따로 찾아뵙겠다고 했다.

    "흑..."

    그녀의 울음을 듣고 있자니 나도 슬슬 실감이 났다. 빛으로 화해 사라진 기찬이,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게.

    띵동.

    [누구세요?]

    [안녕하십니까. 대이능부대 한주희 소위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아, 주희씨? 들어오세요.]

    인터폰에서 나오는 부인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녀는 한 소위가 누구인지, 아들이 한 소위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들에게 어떤 일이 닥쳤는지 모르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런 생각에 한 소위도 다다랐는지, 겨우 멈췄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

    "흑, 끅, 흑."

    "..."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녀는 손대면 더 크게 울것만 같았고, 그녀를 두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나 역시 먹먹해져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안 들어오고..."

    결국 기찬의 어머니가 직접 밖으로 나오셨다. 어머니는 예전에 여러 번 뵜었다. 그때 모습이 아직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알아보고 놀란 눈을 하시다가, 한 소위의 눈물에 굳어 버리셨다.

    "너는 민이냐? 그리고 주희씨는 왜..."

    "흐아아아."

    한 소위가 어머니의 품에 달려가 안겼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한소위를 받아 들였다.

    "주희씨? 왜 울어요? 주희씨?"

    "흐아아아."

    "...설마..."

    그녀는 한 소위의 등을 쓸어내리던 걸 중지하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문채 그녀를 마주 보았다. 내 눈이 흐릿했다. 그 때문일까,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안 모양이다.

    "..."

    "흐아아아."

    기찬의 어머니는 주륵하고 눈물을 토해내셨고, 한 소위는 어머니 대신 온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

    중령이 최대한 선처하겠지만, 나는 나대로 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만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예지를 두고 떠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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