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루카스>
'신은 죽지 않습니다.'
"크허억."
"크악."
의지를 일으키는 것만으로 눈앞의 마족들이 죽어갔다. 공기가 내 의지에 반응하여 안에서부터 공격했기 때문이다.
'육체는 죽일 수 있습니다. 영혼과의 연결을 끊어 버리면, 육체는 죽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불멸입니다. 정확하게는, 불멸의 영혼을 가진 자를 신이라고 부릅니다.'
"끼아아악!"
이마에 뿔을 달고 붉은 피부를 한 작은 악마가 내게 다가오는 도중에 저 혼자 쓰러졌다. 아키로의 기술은 아키로만이 막을 수 있었다. 이 몸의 상태가 삼도천 앞에 서 있다 하더라도, 이런 잡것들은 껌이었다. 수억이 몰려와도 버틸 수 있었다.
'신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죽는 걸 선택하게 하는 겁니다.'
"갑자기 쌩쌩해졌군! 좋아, 오라! 내 너를 단죄하리라!"
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미노타우르스가 10m 정도 앞에서 포효했다. 그는 단순한 미노타우르스가 아니었다. 5m 키에 날만 3m 정도 되는 더블 엑스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육체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영혼의 격도 남달랐다. 자연스레 뿜어져 나온 기세에 주변 마나가 흔들렸고, 공기가 떨고 있었다.
지상에 올라온 마왕 폴룩스.
아키로 급에 근접한 그 힘을 막을 자는 지상에 없었다. 그랜드 마스터의 끝을 바라보는 이 몸의 원주인, 루카스가 십만의 병사를 이끌고 몇 시간동안 막았지만, 남은 건 저주에 걸린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자살을 하게 만들려면, 일단 그의 영혼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의 영혼 안으로 들어가, 그를 안에서부터 죽여야 합니다.'
루카스 외엔 다 죽고 말았다. 소드 마스터도 수십이었는데, 다 죽고 말았다. 그도 멀쩡하진 않았다. 저주에 걸린 몸뚱이는 흩어지는 게 결정된 상태였다.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었지만, 시간 문제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죽어야 합니다. 그에게 죽어, 그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든일곱 번째 퀘스트, 루카스에게 친구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퀘스트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정신을 모아 흩어져가는 육체를 붙잡아야 했다. 나조차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30분 정도. 그 시간 안에 저 마왕을 없애고, 그의 친구를 구하러 가야 했다. 그의 친구 블레이크는 이 전장의 왼쪽에서 또 다른 마왕 카스토르를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들어간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최소한 그와 동등한 영혼의 격을 가지고 있어야 그의 안에서 의지를 가지고 버틸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의 안에서 자유의지를 잃고 녹아 없어질 것입니다.'
"크윽, 이, 이건... 크아아악!"
마왕도 육체를 가진 생명체였고, 호흡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간 공기의 공격에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마왕은 마왕. 그는 버텨냈다. 내장을 다 마나로 감싸고 있는 듯했다.
'우리 세계에서 그게 가능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와 동등한 신이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시스템의 보정을 받고 있는 우리는 동등한 신이 될 수 없습니다.'
"대단하군, 크흑. 전투 중에 한 단계 성장하다니! 그러나! 나도!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아아앗!"
그의 포효에 내 뜻을 따르던 공간이 그에게로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 위에 인간의 영혼이 겹쳐졌다. 원래부터 지상에 존재했던 그의 반쪽, 카스토르의 영혼이었다. 카스토르의 영혼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풀룩스와 카스토르.
하나의 영혼에서 출발해 둘이 된 자들. 지저와 지상 세계를 각각 살아가는 둘은 서로에게서 힘을 빌려올 수 있었다.
원인은 달랐지만, 현상은 아키로가 되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힘과 비슷했다. 다른 지성체의 영혼을 불러와 힘을 얻는 거였으니까.
안 그래도 그랜드 마스터의 끝을 바라보는 두 마왕이 서로의 영혼에게서 도움을 받으니 십만 병사의 도움으로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루카스의 저주도 카스토르의 작품이었다. 영혼을 상대로 공격해 들어오는 카스토르의 힘을 제대로 막지 못했던 거였다.
'하지만 당신은 가능합니다.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저와 언니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만, 당신만이 이 세계를 구할 수 있습니다.'
'땅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오는 위협을 막기 위해, 한 몸처럼 살아가는 두 사람을 구원자로 보내니라.'
루카스와 블레이크가 한 집 건너 같은 날 태어났을 때, 대륙에서 가장 큰 세를 자랑하는 타시우 교단에선 직접 신이 강림하여 신탁을 내렸다. 루카스와 블레이크는 그 신탁이 자신들 이야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이야기였다. 이웃에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지내온 둘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친구였다. 그동안 쌓아온 이야기는 일주일 내내 풀어내도 끝나지 않을 정도였고, 둘은 서로를 자신의 몸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이 세계의 모든 영혼들을 구해 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했던 다리아의 얼굴엔 강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말뿐 아니라, 영혼으로도 그녀의 의지가 전해져 왔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몇 번이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또 그녀는 슬퍼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모든 영혼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고, 나를 구하지 못한다는 것에 슬퍼했다.
어떻게 잘 모르는 나를 위해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퀘스트 속, 평행세계의 나 중에는 그런 마음을 품은 이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잘 와 닿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건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아니라, 예지였으니까.
물론 이 경우엔 누구를 위하든 결과는 같겠지. 어차피 이 세상의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루카스도 비슷했다. 그는 절대 다수를 위해 싸우고 있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 특히 블레이크를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싶어서 말이다.
"죽어라아아아!"
내 키만 한 도끼가 음속을 넘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어떤 방어도 무시하고 한 번에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담긴, 아니 그렇게 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담긴 공격이었다.
그 의지는 공격을 빠르고 강력하게 만들 뿐 아니라, 내가 피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할도 했다. 폴룩스의 의지가 내 정신 방어벽 앞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콰앙!
주변 50m의 땅이 1m 정도 깊이로 꺼졌다. 타격이 직접 닿은 땅은 2m 정도 들어갔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날에 갈라지기 전에 납작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공격을 피하고 그의 머리 위에 있었다. 내가 아키로가 아니었다면 그의 의지에 의해 피하는 게 제한 당했겠지만, 나는 아키로다. 반쪽 아키로지만, 아키로도 되지 못한 이의 의지에 방해받을 수준은 아니었다.
"아, 아니... 크아아악!"
그의 머리 위에 서서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공기를 직접 통제했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내 통제력은 강해졌고, 카스트로의 영혼으로도 방어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는 피를 한주먹 토해내며 땅으로 쓰러졌다.
탁.
"허억, 허억."
숨이 찼다. 싸움은 쉬웠지만,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정신력을 몸을 유지하는 데 써야만 했다. 오른 손으로 검을 들었다. 무형검을 만들 여력도 아끼고 싶었다. 이 몸 상태로는 블레이크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우우웅.
검에 검은 강기가 어렸다.
"쿨럭. 천 년을 이어온, 큭, 내가, 크헉, 이렇게..."
스윽.
바닥을 짚으며 일어나려는 풀룩스의 목을 강기로 베어 버렸다. 이미 육체와 영혼이 끊어져 가고 있던 지라, 그의 목은 쉽게 잘렸다. 본래 육체만으로도 강기를 막던, 말도 안 되는 육체의 소유자로서는 허무한 끝이었다.
"크륵, 크르르륵!"
"끼아아악!"
"크아아악!"
단발마도 내뱉지 못하고 죽은 풀룩스. 그의 존재감이 사라지자 그의 부하 악마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풀룩스를 따르느라 자제했던 폭력성이 한 번에 해방되어 미쳐 버린 것이다. 그 폭주는 나를 향했다.
아직 남아 있던 수백 마리의 악마들이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귀찮아..."
주변 공간을 지배하에 두면 정말 편하게 잡을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카스토르를 상대할 여력을 남겨 두어야 했다. 영혼의 반쪽 풀룩스가 죽었지만, 카스토르 역시 그랜드 마스터였다.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지금은 잠시나마 공간을 지배할 수 있었지만, 잠시 후에도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따.
스윽, 스윽.
"크아악!"
"아악!"
베고, 뛰고, 베고. 쉼 없이 움직이며 블레이크가 있는 전장으로 향했다. 거리는 약 3km. 5분은 달려가야 했다.
'살아 있어라. 블레이크.'
이건 루카스의 생각이기도 했고, 나의 생각이기도 했다.
다리아와 알리나의 예언을 쫓아 내가 죽든 죽지 않든, 혹은 그 일을 성공할 수 있든지 없든지, 그 전에 먼저 아키로 마스터에 올라야만 했다. 그러지 못하면 그 어떤 일도 허무맹랑한 꿈일 뿐이었다.
다리아는 신의 분신체, 정확하게는 신의 힘을 담을 육체가 만들어지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했다. 그녀의 말대로, 그가 나타난 뒤로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신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신이 다시 나타나기 전에 퀘스트를 빨리 깨야 했다.
============================ 작품 후기 ============================
좀 짧지만... 오늘은 이것밖에...ㅠㅠ공지 새로 등록했습니다ㅎ 아래는 그 내용입니다.
이 글은 4월 중순 쯤에 완결되고, 4월 말에 삭제됩니다. 그리고 다른 플랫폼으로 옮길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다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