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내 공격은 다시 빗나갔다. 실망하지 않았다. 그가 내 공격을 막지 않았다는 게 중요했다. 막았으면 내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거니까. 않은 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지금은 배제하기로 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어차피 이길 수 없었다.
[중령님. 전달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싸운 과정입니다.]
그의 공간을 벗어나면서 중령에게 말을 전달했다.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렇지만, 실제로는 기억을 전달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말로하면 길겠지만, 영혼으로 전달하면 금방이었다. 그와 싸우면서 알게 된 몇 가지, 내가 생각한 대응방법, 협공 순서 등이 중령을 통해 전체 후보자에게 전달될 것이다. 직접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시간이 걸리고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중령이 각국의 대표 혹은 정신계 능력자에게 전달하고, 그들이 전달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그의 원, 그가 장악한 공간 속에 들어 있던 후보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 주변의 공기를 장악하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의 공간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나 혼자서는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의 정신력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전선을 펼치자 그의 공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두 번째로 움직인 건 왼쪽에 있던 그룹이었다.
채찍 같은 불꽃이 올라오더니, 바람을 따라 회오리치며 그에게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불꽃 뒤를 따라 불꽃이, 마나가, 바람이 이어지며 직경 3m정도의 화염폭풍이 공중을 날아 그를 집어 삼키려 했다.
화랄라라락.
있는 그대로 풀어놓으면 도시 몇 개는 그냥 날아갔을 만한 위력의 공격. 그도 경시할 순 없었던지 주변에 우윳빛의 막을 만들어냈다. 공방의 역할을 겸하던 공기의 막과는 달리 오로지 방어와 배제를 위한 것 같았다.
콰라라라락!
바람은 찢어 발기려했고, 불꽃은 태우려 했고, 마나는 뭉개 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우윳빛 방어막은 반응하지 않았다.
콰라라라락!
그러나 화염폭풍 역시 건재했다. 왼쪽의 후보자 그룹은 여전히 폭풍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불꽃과 마나와 바람은 끊임없이 생성되어 그를 향해 날아갔다. 한 번이 안 되면 수십 번, 아니면 수백 번이라도 공격할 기세였다.
다른 그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노란 번개가 오른쪽 그룹에서 날아왔고, 그의 뒤쪽에 있던 후보자들은 검, 창, 총탄, 화살 등의 모양을 한 금속을 쏘아 보냈다.
파지지직!
카가가가강!
콰라라라락!
세 방향에서의 공격은 금방이라도 그가 펼친 막을 갈아먹을 것 같았지만, 막은 흔들릴 낌새도 없었다. 그의 주변 공간을 거의 다 빼앗은 후보자들이 그 막을 와해하려고 직접 공격 중임에도 그러했다.
오히려 그 쪽에서 공격해 왔다
파앗!
거대한 광채가 우리를 감쌌다. 나는 그 순간 그 장소를 벗어났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보았다.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빛기둥이 형성되어 땅과 하늘을 이었다. 로스엔젤레스를 초토화시킨 기술인 것 같았다. 기술의 범위 안에는 후보자들 전부가 들어가 있었다.
그 정도는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수백 명 분량의 힘을 감당해내고 있었지만, 공격할 여유가 없을 거라고 과소평가하진 않았다. 당연히 그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었다.
사라라라라.
얼음이 빛에 부서지며 반짝였다. 후보자들 머리 위쪽을 덮고 있는 막은 대부분 마나였고, 일부는 얼음이었다. 마나로 된 부분 그냥 막기만 했지만, 얼음으로 된 부분은 빛기둥을 반사시키며 그 힘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었다.
[공격은 빛 속성으로 올 가능성이 높으니 얼음으로 반사시키시거나 마나로 막아야 합니다.]
중령이 보내고 있는 전체 메시지였다. 미국에서 그가 한 공격의 정보가 공유된 거였다.
콰라라라락!
파지직!
카가가강!
빛기둥이 사라진 자리에는 다시 공격이 이어졌다. 빛에 가려졌을 뿐이지, 빛 속에서도 공격은 계속 된 것 같았다. 물론 우윳빛 막도 건재한 듯 보였다.
일차 공방은 호각인 듯했... 아니, 우리의 패배였다.
[이 정도는 우습다!]
파아아앗!
그의 의지와 함께, 빛기둥이 다시 작렬했다. 후보자들이 만든 막이 다시 보강되며 빛을 막았지만, 좀 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빛기둥이 더 강렬해졌다. 얼음은 생성보다 녹는 속도가 빨라졌고, 마나의 막은 쉽게 금이 갔다.
나라도 가서 공격해야 하나 생각하는 순간, 지원군이 나타났다.
빛의 기둥 밖에서 5개의 무리가 나타났다. 총합 300명쯤 되어 보였다. 그 후보자들은 오자마자 저마다의 속성으로 공격했다. 그 중에 불과 바람의 반대 속성은 없었다. 방금 도착했지만, 상황은 전달 받은 모양이었다.
지지직!
우우웅!
파아앗!
그 공격에 빛기둥이 좀 전 수준으로 약해졌다. 그의 힘과 우리의 힘이 겨우 대등한 위치에 다다른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번개가 되었다.
파지지지직!
번개가 된 나는 그의 영혼의 중심을 관통했고, 그걸로 그의 영혼과 육체의 연결이 끊어졌다. 그러자 빛의 기둥도 우윳빛 막도, 주변을 누르고 있던 그의 존재감도 사라졌다. 희미한 의지만이 남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에는 내가 졌다고 해두지. 그런데, 나도 그냥 가지는 않는다고?]
[피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한순간이었다. 희미하던 그의 의지가 증폭된 것도, 내가 피해야 한다는 의사를 중령에게 전달한 것도, 중령이 그 의지를 모두에게 전파한 것도, 내가 라이트닝 소드로 최대한 먼 곳으로 벗어난 것도, 그리고 다른 후보자들이 그 자리를 피한 것도. 모든 것은 찰나에 일어났다.
화아아아아아악!
주변은 산소 분자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림판에서 지우개로 지운 듯, 그를 중심으로 지름 1km 정도의 빈 반구가 생겼다. 남아있는 것은 깨끗한 절단면을 가진 땅 뿐이었다.
휘이이이익.
기압이 0이 되어 버린 지역으로 미친 듯이 바람이 불며 폭풍을 형성했다. 경계에 있던 후보자들의 몸이 빨려 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흡입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했다. 그의 최후 공격을 피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으니까. 대충 500명 정도는 죽은 듯했다. 그 중에 한국인은 없었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기는 했지만, 내가 중령에게 전달한 게 먼저였기 때문이다.
"이걸로 끝인 건가?"
"아니요. 아닙니다."
멀리서 그 광경에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못한 내 말에 대답한 건 어느새 나타난 다리아였다. 그녀의 옆에는 알리나와 내가 모르는 사람 몇이 함께였다.
"지식이 열렸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저 신은 몇 번이고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 + +
전지全知.
다리아가 가진 능력이자, 이제 막 아키로 레벨에 오른 능력이기도 했다. 그녀는 98번째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경험치를 많이 얻지 못했다. 그녀의 능력이 지식만 제공하는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평행세계 속의 그녀도 대부분 그녀처럼 지능형 캐릭터라 매번 어려웠다고 했다. 내게서 검술을 배워간 이후 조금 나아졌지만, 그땐 이미 50번째 퀘스트를 진행 중이었단다. 그래서 이제야 그녀 자신의 능력이 아키로 레벨에 오른 것이다.
어쨌든 그 덕에 그녀는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신神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났던 그는 자신이 말하던 대로 신이었다. 물론 우리 세계의 신은 아니고, 지금 우리 세계에 융합되려 하고 있는 차원의 신이었다. 그 외의 가능성은 없었다. 차원이 융합되지 않으면 다른 차원에 간섭할 수 없었다. 가능한 신도 있지만, 그건 창조신급은 되어야 했다.
그럼 왜 신이 우리 세계로 온 걸까?
그 질문에 답하려면 일단 차원 융합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차원 융합은 길고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한 차원의 신에 의해 의도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신이 그런 일을 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교류에 있었다. 무수히 많은 평행세계의 조건이 전부다 다르듯, 각 차원의 조건도 전부 달랐다. 그런 다름과 그 다름에서 자라난 다른 영혼들의 모습에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는 게 신이 원하는 교류, 창조신이 원하는 바였다.
하지만 다른 용도로 융합을 이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배支配.
다른 차원의 생명체들, 정확하게는 그 영혼들을 지배하기 위해 융합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건 단순한 통치나 혹은 포교가 아니었다. 통치나 포교처럼 영혼에게 그 선택을 맡기는, 영혼을 존중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런 상냥하고 신사적인 방법이 아니라, 영혼을 강제로 굴복시키는 폭력적인 방법이었다.
한 영혼을 신의 영혼 안에 넣어서, 신의 영혼을 커지게 하는 방법.
개인의 특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그 신의 뜻만 남게 되는 것.
그게 지배였다.
그건 교류와 변화를 바라는 창조신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신은 지배를 막기 위해 차원마다 장치를 해두었다. 그게 바로 방어 시스템이다.
신이 있는 세계에는 그런 게 필요 없었다. 언제 신이 되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신이 있다면 세계는 다른 차원의 신에 일단 대응할 수 있었다. 차원의 모든 이들이 신에게 힘을 모으면 되니까.
그러나 신이 없는 세계, 내가 사는 세계에서는 그런 게 불가능했다. 따라서 다른 차원의 신은 땅에 떨어진 돈을 줍듯 영혼을 자신 안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 시스템이 필요했다. 다른 차원의 신이 신이 없는 세계를 자기 뜻대로 유린할 수 없도록, 그 신을 막을 수 있는 자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즉, 이 퀘스트의 목표는 신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질리 없었다. 아키로에서도 마지막 단계, 지성체의 영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신이었다. 수억 번의 환생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려운 게 당연했다. 시스템은 신을 만들려고 각 세계마다 다른 방법을 구현하며 애를 썼지만, 신이 되는 자는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일정 수준에 이르러 신이라 불릴 만한 능력을 끌어내는 자도 거의 없었다.
결국 신이 없는 세계의 운명은 대부분 지배당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우리 세계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건 그녀의 말처럼 이게 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신은 우리의 공격에 물러갔지만, 그건 신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몬스터가 나타날 때마다 사라졌던 5천만 명을 흡수한 신이 그 만큼의 힘을 떼어내어 만들어낸 분신체였다.
그런 분신체를 죽인다고 신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더 강해져서 나타나게 된다. 이번엔 후보자 500명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 흡수해 갔으니까.
반쪽 아키로라지만, 후보자 500명은 일반인 500명과 그 영혼의 크기가 달랐다. 다음에 나타날 분신체은 이번보다 갑절은 강해질 터였다.
그리고 그 때 신의 분신체를 죽인다해도, 그다음엔 더 강해질 게 뻔했다. 그 분신체를 죽이느라 또 누군가가 희생될 확률이 높았다. 물론 그다음에 오는 분신체도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의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다음의 다음의 다음은?
...그러다가 영혼의 반이 저쪽으로 넘어가면, 차원 융합이 완료되고, 신은 본신 그대로 이 세계에 강림하게 된다.
그러면 어차피 끝이다.
다른 차원의 영혼을 지배하기 위해 융합을 시도하는 신이다. 자신의 차원에 속한 영혼은 이미 다 흡수 했다고 봐야 했다. 그동안 나타났던 대형 몬스터들에게 지성이 없었던 것이 증거였다. 그가 있는 차원에는 영혼 없이 힘만 있는 빈껍데기만 가득한 것이다.
한 차원의 모든 영혼을 독식한 신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우리 세계에 없었다. 설사 신이 있더라도 무리였다. 그가 시도한 차원 융합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미 몇 개의 차원을 먹어 힘을 키운 신은 누가 와서 막겠는가?
시스템이 퀘스트를 진행할 때마다 세상을 열어주는 것은 그것과 관계가 있었다. 영원히 해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개방 시켜 버리는 것이다. 지배는 창조신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지만, 정체는 더더욱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후보자들 중에 한 명이 그렇게 물었다.
우리는 다른 차원의 신이 만들어 놓은 공터에서 다 같이 모여 다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통역이 필요 없는 마음의 대화로.
[딱 한 가지 있습니다.]
"딱 한 가지 있습니다."
"...?"
다리아의 근처에 있던 나는 그녀가 이전과 달리 마음으로 말하는 동시에 한국어로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중령을 보았지만, 그도 영문을 모르는 듯했다.
[여러분들 중에 누군가가 먼저 신이 되어야 합니다. 최소한 아키로 마지막 레벨까지는 올려야 합니다.]
"당신밖에 가능한 자가 없습니다. 신이 되어 주십시오. 강민씨."
"...네?"
내 놀람에도, 그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세계를 위해서, 그 신에게 먹힌 다른 차원을 위해서 죽어주십시오.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죽어주십시오.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중령이 나를 돌아보는 것 보니, 이건 분명히 나를 향해 하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소릴까? 나보고 죽으라고?
============================ 작품 후기 ============================
이틀이나 쉬어 버리다니... 죄송합니다ㅠㅠ아래는 현재 강민의 스킬입니다. 혹시 궁금하실까 싶어서ㅎㅎㅎ
[S급 라이트닝 소드-改 Akiro 11.16%]
[S급 헬 파이어 lv.8 65.01%]
[S급 천강지체 lv.8 35.65%]
[S급 이프리타 소환 lv.9 30.28%]
[D급 힐 lv.8 21.12%]
[S급 분심 lv.7 0.88%]
[R급 드래곤의 키스 Master]
[B급 중급 바람의 정령 소환 lv.8 19.02%]
[B급 중급 화술 lv.8 97.23%]
[S급 디멘젼 서클(Dimension Circle) lv.6 78.14%]
[B급 천왕심법 lv.4 23.09%]
[D급 교습법 lv.9 17.56%]
[C급 불마법 Grand Master 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