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43화 (143/160)

143화

슈우웅.

공기의 칼을 피해 옆으로 움직이자, 정확하게 그 위치에 새로운 칼이 날아왔다. 또 피해 보지만, 그곳에도 벌써 칼이 있었다. 내 움직임을 예측이라도 하는 듯한 연계였다.

무형검을 형성해서 잠시 막아야 하나?

하지만 공기의 칼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칼이 땅을 가르기라도 하면 그 위력과 강도를 짐작해 보겠지만, 칼은 내가 피하는 즉시 사라졌다. 둘중 하나다. 효율적이거나 힘이 없거나. 이 경우는 효율적인 게 몸이 배였다고 해야겠지. 그의 힘은 이 정도가 아니니까.

슈우웅.

다시 날아오는 칼을 피하며 마음을 나누었다. 정체불명의 공격에 검을 맞대는 것보다는 마법을 쓰는 게 나았다. 마법도 이미 그랜드 마스터.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 각 마법의 숙련도는 낮지만, 견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슈우웅.

하나의 마음은 몸을 움직였고, 다른 하나는 마나를 움직였다. 마법은 곧 발동되었다.

펑펑펑펑펑펑.

여섯개의 파이어 애로우를 그의 주변에 생성시켰고, 주변 산소를 활성화시켜 바로 터트렸다. 단순한 마법은 아니었다. 마나가 아니라 영혼을 직접 사용하는 아키로급의 기술이었다.

슈우웅.

슈우웅.

그러나 공기의 칼은 어김없이 날아왔다. 시야가 다 가려졌음에도 지독할 정도로 정확하게.

펑펑펑펑펑펑.

칼을 피하며 계속 그의 주변을 폭발시켰다.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정보가 아예 없으니 일단 계속 공격을 해야 했다. 계속 그러자 반응이 있었다.

"귀찮군."

그의 주변에 투명한 원이 형성되었다. 크기는 반경 5m 정도로, 경계는 내가 만들어낸 폭발이 보여줬다. 폭발은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좀 전, 그의 피부에 펼쳐져 있던 막이었다. 좀 전처럼 막 안의 산소는 내가 컨트롤하지 못했다.

주변 마나를 통제하는 마나역장과는 다른 차원의 기술이었다. 마나를 통제하는 건 물론이고, 주변의 공기도 통제하는 거니까.

슈우웅.

그 와중에도 공기의 칼은 쉬지 않고 날아왔다.

퍼버버버버벙!

나 역시 폭발을 멈추지 않았다. 시야가 가려서 귀찮은 거라면, 더 귀찮게 해주겠다는 일념으로 폭발을 늘렸다. 그도 그렇겠지만, 이 정도는 무한대로 늘릴 수도 있었다.

이내 그가 만든 투명한 원이 폭발로 감싸였다. 거대한 파이어 볼이 공중에 생긴 듯한 모양새였다.

퍼버버버벙!

슈우우웅.

어느샌가 부터 그가 날리는 공기의 칼은 사방에서 생성되어 날아왔다. 내 폭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보이지 않는 곳, 그의 뒤쪽에서도 저 알아서 터졌다.

[꽤 하는군. 반쪽 아키로치고는 꽤 해. 보통 수준은 아니야. 보정이 없더라도 그랜드 마스터 정도는 되겠어.]

그는 내 마음에 직접 말을 걸어왔다. 직접 마음에 와닿는 그의 존재감은 물리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컸다. 그는 산 같았고, 나는 그 산에 기어가는 개미 같은 존재였다.

그의 말을 따라 그의 사고가 느껴졌다.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호의를 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냥 즐기고 있었다.

나는 대항해야 했다. 그게 그가 바라는 바였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그냥 죽을 운명이었다. 사라졌다는 10명의 후보자처럼.

[너는 누구지?]

나도 그의 영혼에 직접 말을 걸었다. 식물 이상의 정신체의 힘을 이끌어낼 수는 없었지만, 의지를 전달하는 건 가능했다. 퀘스트 속에서도, 이프리타와도 늘 하던 일이었으니까.

[나? 나는 신이다.]

[...그럼 다른 차원의 신인가?]

[당연하지. 여기는 신이 없잖아?]

[그럼 왜 온 거지? 여기는 너의 차원이 아니잖아?]

[어차피 곧 내 차원이 될텐데. 아, 모르나? 지금 여기 근접하고 있는 게 내 차원인데.]

[그러니까 왜 온거냐?]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 같긴 하군. 신기한데? 이 정도로 방비하고 있었으면 다 알 줄 알았는데... 역시나 그 방어 시스템은 제멋대로란 말이지.]

시스템이란 뜻에 퀘스트 내의 딱딱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방어 시스템?]

[네가 떠올리는 그게 맞다. 정체도 제대로 모르나 보군. 하긴, 정체를 모르고 할 때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그의 대답을 해석하기 전에 정신 방어를 좀 더 공고히 했다. 영혼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지만 생각이 너무 읽히고 있었다. 막아야 했다. 퀘스트 내에서 이것저것 해본 탓에 그런 조절에는 익숙했다.

[오호? 방어만은 제법인데? 이건 아키로급에 근접했군. 방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거 치곤 제법이야. 간혹 방어 시스템에 당하는 멍청한 녀석들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면 당할 것 같기도 하고...]

신치고는 말이 많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토르 여신을 비롯해 그간 마주쳤던 여러 신들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었다. 저들은 인격신이지 무슨 법칙 같은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 생각하는 신에 가까운 건 시스템이겠지.

말하는 뉘앙스로 볼 때, 방어 시스템이란 건 저 녀석 같은 놈들을 막기 위해 만들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에겐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신있다는 걸까? 하긴 오자마자 10명의 후보자를 없앴는데, 저 정도가 정상이겠지.

[아, 내가 왜 왔는지 대답하는 중이었지? 나는 너희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러 왔다. 내게 복종하면 영원히 살게 해주지.]

말의 내용은 진짜 신 같았지만, 그 말투는 한없이 가벼웠다. 말로 설득하고자 하는 의향이 안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지? 오자마자 수천 명의 사람을 죽인 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는 거냐?]

[수천명? 아니지 나는 수만 명을 내 낙원으로 인도했다. 그들은 내 안에서 지금 영원한 삶을 누리고 있다.]

로스 엔젤러스 대이능부대 건물 주변에 살고 있던 건 수천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었던 모양이다.

젠장, 한 번에 수만 명을 죽이고, 그에 대해 저렇게 뻔뻔하게 생각하는 신이라니.

그들의 죽음은 그 자체로 나에게 유감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의 죽음이 그들만의 죽음으로 끝날 리 없어 보이는 게 문제였다. 자칭 신이라는, 아마도 신이 분명한 녀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을 테고, 마음만 먹으면 서울을 날려 버리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되다만 아키로니 이해하기 어렵겠지. 하지만 그들은 죽은 게 아니다. 내 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 뿐이지. 너도 내게 죽으면 알게 될 거다. 그럼 이제 죽어라. 죽어서 내 힘이 되거라!]

팟.

그가 만들어낸 원이 넓게 커졌다. 열심히 공기의 칼날을 피하고 있던 나는 그 순간 그 원 안에 들어갔다. 주위의 공기가 나를 압박했다. 이미 폐안에 들어간 공기부터가 공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영문도 모르고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게 낙원이라 해도. 물론, 낙원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내 힘이 되거라'란 말에 어디 그런 게 있는가?

찌른다!

라이트닝 소드가 발동되며 내 몸은 순식간에 5km 밖, 조금 전부터 봐둔 나무 근처로 이동되었다. 나무가 푸쉬시 하며 쪼그라 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다음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뉜 마음이 내 몸을 다시 움직였다. 이미 그가 따라왔기 때문이다.

팟, 팟, 팟, 팟.

열심히 도망쳤다. 맞서서 대응하면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했다. 시간도 끌어야 했다. 연락을 했으니 곧 올 것이다. 중령이든, 다리아든.

[언제까지 도망만 칠 셈이지?]

말 대신 몸으로 대답했다. 몸이 번개가 되어 아직 이름도 모르는 신을 향해 날아갔다. 눈으로 방향을 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의 영혼이 풍기는 존재감이 떨쳐낼 수 없을 정도로 내 영혼을 누르고 있었다. 그걸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파지직.

그러나 번개는 엉뚱한 곳에 작렬했고, 나는 그의 바로 옆에서 다시 사람의 몸으로 돌아왔다.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다시 번개가 되어 그 자리를 피했다. 미리 봐둔 곳으로 피한 뒤엔 힐을 써야만 했다. 그의 범위 안에 있었던 건 아주 잠시였다. 그런데 그 잠깐 만으로도 내 속이 엉망이 되었다.

쿨럭.

"뭐야, 그걸로 끝인가?"

"아니다!"

다시 번개로 변해 그를 공격했다. 결과는 같았다. 라이트닝 소드는 영혼과 영혼 사이의 최단 거리를 지나가는 검. 그 검을 막을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걸 하고 있었다.

쿨럭.

재빨리 피했지만, 다시 한 번 피를 한 주먹정도 토해냈다.

"이게 끝이라면 실망인데?"

"...이번에는!"

번개로 변한 내가 향하는 곳은 그의 영혼의 중심이 있는 곳, 다르게 말하면 그의 영혼이 가진 기운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매번 그의 영혼이 둘로 나뉘면서 나를 헷갈리게 했다. 나는 두 번 다 둘 중 힘이 더 강한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실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힘이 작은 영혼을 타겟으로 삼았다.

파지직!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나는 그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분명히 찔렀는데, 찌른 감각이 남아 있었는데도 그랬다. 내 감각이 이미 이상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파지직!

그런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는 다시 번개가 되었다.

팟, 팟, 팟, 팟!

연이어 검은 번개로 화해 그를 노렸지만, 번번히 빗나가기만 했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맞으면 뭐가 바뀌는 줄 아나?]

파지지직!

"크억!"

이번엔 그의 영혼이 둘로 나뉘어지지 않았고, 번개는 분명 그의 영혼에 직격했다. 하지만 번개는 다시 튕겨져 나왔다. 번개가 된 내 몸은 강제로 원래 상태가 되었다.

벽 같은 게 있었다. 그의 영혼과 같은 기운을 풍기는 두꺼운 벽 수십겹을 관통했지만, 끝까지 밀어내지 못하고 튕겨나온 거였다.

강제로 튕겼고, 공기는 내 몸 안팎을 잠식하며 들어왔다. 백분의 몇초 단위로 몸이 안 좋아졌다. 최대한 빨리 그가 통제하는 범위를 벗어났지만, 이미 온 몸이 삐걱댔다. 병원에 몇 달은 있어야할 부상이었다. 힐을 쓰고 마나를 있는대로 부어넣었다.

그는 그 사이에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적극적이진 않았다. 그건 나의 죽음에, 이 세상에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냥 늦든 빠르든 이 세계의 운명은 정해져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나오는 태도였다.

"천천히 회복해. 마나를 다시 모으는 시간도 기다려줄까?"

"...사양하지 않겠어."

"쓸데없는 자존심은 없어 보이는데, 그냥 내 안에 들어오는 게 어떨까?"

"무슨 소린진 모르겠지만, 네놈 안에 들어갈 일은 죽어도 없다!"

"놈이라... 풋.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몇 천만 년만인거지? 그런데 네 말은 틀렸어. 어차피 내 안에 들어오려면 죽어야 하거든. 그리고 네가 뭘 기다리고 있는 건진 알겠지만... 그걸로 뭐가 될까? 아, 지금쯤 올 거야."

슉슉슉슉.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양쪽에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한쪽은 중령을 비롯 한국의 후보자 48명. 다른 한쪽은 다리아와 알리나를 비롯 후보자 84명이었다.

우우우웅.

이어 또 다른 후보자 그룹도 나타났다. 그렇게 모두 다해 1000명 정도의 후보자가 한 자리에 모였다. 이런 경우를 상정하긴 했지만, 모이는 건 처음이었다. 아키로급, 그가 말한대로 라면 반쪽 아키로지만,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이가 1000명씩이나 모였다. 각자가 뿜어내는 힘에 가려 자칭 신의 기운이 가려질 정도였다.

그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약간 당황한듯 했다.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 변화는 그가 모든 걸 알고, 통제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자,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니까.

"정말 징하게도 몰려왔군. 그런데 그거 아나? 이렇게 모이면 나만 좋은 걸?"

"어디 한 번 해보시지!"

나는 다시 번개가 되어 그에게 날아갔고, 그것을 시작으로 후보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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