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S급 라이트닝 소드-改 Akiro 11.16%]
라이트닝 소드가 S급으로 업그레이드 된 건 좋은데, 그덕분에 더 많은 경험치를 필요로 했다. S급 기술로 경험치를 전환할 때 경험치 손실량이 더 많았다. A급으로 전환할 때와 비교하면 자그마치 10%. 50번째에서 80번째까지 검술만 25번씩이나 배웠는데도 이제 겨우 아키로 11%인 건 그런 이유였다.
아키로가 된 건 74번째 퀘스트를 마친 이후였다. 나는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아키로가 끝이라고 했으니까, 더 이상의 경험치는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키로는 겨우 시작일 뿐, 진정한 아키로가 되기 위해서는 또 경험치를 쏟아 부어야 했다. 그것도 이때까지 투자한 경험치의 총량 정도가 필요했다. 그러고서야 진정한 아키로가 될 수 있단다.
물론 그건 시스템의 말이었다. 아마 진정한 아키로는 될 수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보정일 뿐이겠지.
그 사실을 앞에 두고 잠깐 고민했다. 다른 기술을 배울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하던대 로 검술을 올리기로 했다. 이제 와서 다른 기술을 배워봐야 큰 효용이 없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중간 중간 마법사가 나와서 내 불마법은 그랜드 마스터에 올랐다. 그런데 그게 큰 도움이 안 됐다. 마법 쓰는 것보다는 검으로 싸우는 게 훨씬 편하고 간단하고 빨랐다.
나보다 강한 적이라면 다양한 공격 수단을 가지는 게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경우에는 되려 집중 투자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아키로 레벨의 효용은 기술을 뛰어넘어 존재했다.
아우우우!
늑대, 생긴 건 분명히 늑대였는데, 우리 세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크기였다. 대략 3m 정도. 대형 몬스터라고 하기는 그렇고, 오거 급의 몬스터였다. 그런 늑대 열 마리가 실드를 따라 설치된 펜스 밖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타다다당!
약간 올라간 언덕 지형에 설치된 진지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늑대 무리는 그걸 맞고 주춤했다. 두세 마리는 급소에 맞았는지 더 움직이지 못했고, 서너 머리는 거동이 불편한지 속도가 현저하게 줄었다. 하지만 한두 마리는 동료 늑대의 뒤에서 갑자기 뛰쳐나왔다.
"크아아앙!"
누런 침이 맺혀 있는 송곳니가 태양아래서 날카롭게 빛났다. 늑대의 점프력이라면 철제 펜스 따윈 금방 뛰어넘을 것이다. 어쩌면 머리로 쳐 올리고 돌진할 수도 있었다. 총의 성질은 본능적으로 파악했는지, 지그재그로 달려오는 늑대였다. 금방이라도 진지를 덮칠 것만 같았다.
나는 진지의 한참 뒤, 실제 거리로는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대형 몬스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주변 지역을 순찰하는 중이었다. 내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도와줄 생각이었다.
지금처럼.
정신을 늑대가 달리고 있는 땅에 집중했다. 늑대가 발을 디디는 땅에는 잡풀이 무성했다. 그중 하나에 말을 걸었다.
“너를 밟으려는 저 더러운 놈을 잡아.”
실제로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제일 이미지가 잘 그려졌다.
수우욱.
내 의지를 전달받은 잡풀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더니 늑대의 발목에 휘감겼다. 겨울이 다 되어 갈색으로 변한 풀은 분명 아이의 손으로도 쉽게 찢겨지는 연약한 존재였다.
"크이익?"
하지만 늑대는 그 잡풀에 발목이 잡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움직임을 멈춘 늑대에게 총알이 쏟아졌다.
타당탕탕탕!
"크아악!"
돌진하던 늑대를 막으러 진지 밖으로 나온 군인 둘은 늑대가 멈춘 게 이상했는지, 사방을 둘러보다가 내가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진지 밖으로 나온 둘은 마나를 깨우친 헌터였고, 1km 밖에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경례를 하는 그들에게 나는 손을 흔들었다.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처리했을 것이다. 그러려고 준비해둔 기관총이고, 그러려고 배치한 헌터들이니까.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나섰다. 그들을 도와주려는 목적도 있지만, 아키로급 기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였다.
방금 쓴 기술, 잡풀의 영혼에게 도움을 이끌어내는 게 아키로가 되어서 쓸 수 있는 기술이었다. 지금 숙련도에서는 식물 한두 개가 고작이지만,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움직일 수 있는 개체수도 늘어나고, 그 종의 범위도 확대된다. 식물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인간으로...
이건 이미 검술의 범주를 넘어 있었다. 그냥 영혼을 다루는 방법이라고 해야 했다. 그리고 그게 정확했다.
마스터는 자신의 영혼을 확장하여 물건에 담고, 그랜드 마스터는 그 물건을 이해하여 마나로만들어낼 수 있다. 자연히 그 다음은 다른 영혼과 교류하거나 간섭하는 게 될 수밖에.
그런 면에서 보면, 어느 기술이든 아키로에 도달하면 할 수 있는 건 비슷해졌다.
만류귀종.
결국 바다에 가면 하나가 되는 건지도.
아무튼, 그런 식으로 계속 검술에 투자 중이었다. 그런데도 100개의 퀘스트를 마칠 때까지 마스터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었다. 내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아키로 초반이 한계겠지.
위이잉.
슉, 탁.
생각에 빠져 있는 중에도 재빨리 꺼냈다. 마치 검을 뽑아내듯 빠른 속도였다. 평소에도 이러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오늘은 80번째 퀘스트를 완료한 날이었으니까.
30, 40, 50번째 퀘스트를 깨고 사건이 발생한 건 아직 잊지 않았다. 그래서 60, 70번째 퀘스트를 깬 후엔 긴장했다. 꼭 10번 단위로 일어나란 법은 없었지만, 과거를 비춰 보면 그럴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60, 70번째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뭔가 더 없는 건가? 그래도 안심할 순 없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마도 내 퀘스트 진행이 느리기 때문일 거고, 그건 아마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서 80번째 퀘스트를 깬 오늘도 긴장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정오인 지금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대형 몬스터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대로 오후만 넘어가면 아무 일도 없을 터였다. 마음도 그쪽으로 기울었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휴대폰에 뜬 발신자의 이름을 보니,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다리아.
전지(全知)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진 그녀는 쌍둥이 언니인 알리나, 기술, 정확하게는 실현(實現)의 특기를 가진 언니와 함께 있을 때 가까운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실드'의 제조법을 알아낸 것 외에도 그녀들이 이 세계에 있는 누구보다 중요한 이유였다.
그런 그녀에게서 연락이 온다는 건, 그게 하필 오늘이라는 건, 좋은 일일 가능성이 낮았다.
화면에 뜬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말이 없었다. 늘 먼저 인사를 해주던 그녀였는데.
"무슨... 일입니까, 다리아씨."
[...그냥 큰 일이 일어난다는 거 밖에는... 그 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분명 당신의 주변에서 일이 일어날 겁니다.]
미래를 보는 그녀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란 말인가?
"..."
[...]
그렇게 잠깐 침묵을 유지하는데, 화면 너머에서 이상이 일어났다. 그건 내 쪽도 마찬가지였다.
[&%$*$&%*$##]
위이잉.
[김철곤 중령에게서 연락입니다.]
다리아는 뒤에서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에 그 포커페이스가 깨졌고, 내 쪽에서는 휴대폰이 새로운 연락을 받고 있었다.
"지금..."
[모여 계십시오. 후보자들끼리 모여 있어야 합니다. 독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제가 유럽 사람들을 모아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때까지만 버티십시오.]
"무슨..."
[제 말대로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다리아는 그걸로 전화를 끊었고, 화면에는 중령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만 남아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중령의 연락을 받았다.
[강민군, 어디 있는가!]
"춘천 경계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미국이 당했네. 로스엔젤레스가 통채로 없어졌어. 거기 있던 후보자 10명도 연락이 끊겼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누가 핵이라도 쐈답니까?"
[그건 아닐세. 후보자들이 있던 건물과 그 주변 1km가 눈 깜짝할 새에 없어졌다네. 모든 게 증발했어. 범인은 알 수 없네. 후보자들을 아닐 거라고 생각하네. 후보자들이 했다면, 눈치 챘겠지. 우리가 이런 일을 벌이려면 긴 준비가 필요하니까.]
그보다 더한 일도 하긴 할 수 있었다. 메테오만 제대로 떨어뜨려도 1km가 뭔가? 반경 5km 정도는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마나가 집중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다른 후보자들에게 들키겠지.
"그, 그럼?"
[일단 모이기로 했네. 상대는 아마 우리보다 강하겠지만, 죄다 모이면 어쨌든 방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이대로 있으면 아마 각개격파 당할 확률이 더 높아. 미국에서 아시아로 건너올 진 의문이지만, 그래도 빨리 모이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러니까 어서 서울로 돌아오게나.]
"..."
중령도 아마 그 능력이 아키로급에 걸쳐 있을 것이다. 애초에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이다. 아키로급 기술과 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그의 예감은 그냥 예감만은 아니었다.
다만, 조금 늦었다.
[강민군?]
"...모두 불러와 주세요. 저는 목동리 쪽으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유비, 이유비를 데려와 주세요. 제가 아는 한, 그녀가 제일 강할 겁니다."
[강민군, 잠깐, 잠깐만 기다리게! 그게 무슨 말...]
전화를 끊었다. 이 정도만 해도 중령은 충분히 알아들을 것이다. 알아듣지 못한대도 상관없다. 아마 다리아가 전화를 걸 것이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는 한 사람이 떠 있었다. 그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선이 가늘었다. 몸매도 호리호리했다. 피부는 창백해서 병약해 보였지만, 그건 보이는 것만이었다. 그가 가진 힘, 그 안에 담긴 영혼은 저 높은 하늘에 있었다.
태양을 배경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흰색 가운. 우리 세계에서 흔히 그리는 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말이면 알아듣겠지?"
"..."
"과묵하군. 일부러 찾아온 사람에게 인사도 안 할 셈인가?"
"너는 누구지?"
"나? 나는 신이다."
가며운 말투에 광오한 말. 전혀 신같은 느낌이 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신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나를 짓눌렀다. 신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예감이 안 좋았다.
"크윽..."
"이것뿐이라면 실망인데...? 나를 이토록 기다리게 했으면 뭔가 더 있어야지 않겠나? 그래야 좀 재밌지..."
"크아아악!"
온힘을 끌어내 그의 힘에 저항했다. 주변 공기의 영혼까지 다 자극하고 나서야 조금 편해졌다.
"오호, 그래도 그나마 괜찮군. 좋아, 그럼 너하고는 대화를 좀 해볼까?"
그 대화는 말이 아닌 파동이었다. 날카로운 공기의 칼이 나를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그 속도는 음속에 가까울 것 같았다. 빠르긴 했지만, 대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흔들리던 정신을 집중했다.
모든 게 갑작스럽지만, 그런 것쯤 퀘스트가 시작됐을 때부터 늘 겪던 일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해줄 생각따윈 없었다. 그러려고 여태 버틴 게 아니다.
좋아, 해보자. 척봐도 나보다 강해 보이지만, 나도 2년 동안 놀고 먹은 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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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전전전 보스 쯤 되겠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