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39화 (139/160)

139화

김천수는 저 멀리 쓰러지고 있는 투 헤드 오우거 세 마리를 보면서 김철곤 중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령님, 여기는 다 처리했습니다.]

[수고했네. 바로 갈 수 있겠나?]

그는 좀 전에 치러진 전투 양상을 떠올렸다. 투 헤드 오우거 세 마리는 대형 몬스터 치고는 약했다. 같이 온 그의 동료들은 손쉽게 적을 처리했다.

[저 말고는 다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자네가 고생하는 군. 고맙네.]

[저보다는 중령님께서 더 고생하시는 것 압니다.]

그의 말처럼, 김철곤은 퀘스트 들어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업무에만 집중했다. 국내 혼란을 잠재우고, 다른 나라와 조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닐세. 좌표를 보내주지.]

[이번에는 뭡니까?]

[위성 영상으로는... 뱀처럼 보이는 군.]

[뱀 말씀이십니까? ...꽤 힘들것 같습니다.]

그들은 거대 뱀과 두 번 정도 싸웠다. 굉장히 힘겹게 잡았다. 비늘이 꽤 미끄러워 성재희의 곰돌이가 제대로 제압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부탁하네. 더이상 몬스터가 판을 치게 둘 수는 없네.]

[알겠습니다.]

천수는 그걸로 전화를 끊고 동료들에게로 향했다. 동료들은 모두 다해 10명으로, 한국을 방위할 수 있는 인원들을 남기고 전국에서 모인 후보자들이었다. 그 중에는 김택진 중위도 있었다. 그는 공중에서 나타난 천수를 쳐다 봤다.

"또 이동해야 해?"

"그래. 이번엔 뱀이래."

그 말엔 옆에서 듣고 있던 성재희가 반응했다. 그녀는 뱀이 싫었다. 물론 도망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뱀이 싫고, 웬만하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 뿐.

"배, 뱀이요....?"

"아, 네.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다음은 뱀입니다."

"...어쩔 수 없죠."

그녀의 표정은 시무룩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좋진 않았다. 뱀은 상대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럼 가겠습니다. 이쪽으로 모여 주시겠습니까?"

천수의 말에 따라 10명의 후보자들이 모였고, 그들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 + +

상황장교가 상황실의 지도를 업데이트했다. 산둥성에 있던 빨간 점 하나가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천수 일행이 있었던 곳이다.

"지원팀은 지금 어디에 있지?"

"칭다오시입니다."

"투 헤드 오우거가 있던 지역엔 주민들이 없나?"

"파악된 바로는 없습니다. 지원팀 일부를 보내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대로 실행하고. 지원팀에 '실드'는 도착했나?"

"1시간 뒤에 도착합니다."

"다행이군."

김철곤 중령은 고개를 들어 국방부 밖에 설치돼 있는 '실드'를 바라 보았다. 실드는 철제 탑이었다. 뾰족하고, 거칠었다. 디자인 적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실드를 설치하고 4일 째, 서울에서 몬스터가 나타난 적은 없었다. 일반 몬스터고 대형 몬스터고, 실드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만 나타났다.

'아예 안 나타나나 했는데...'

철곤은 그런 기대도 품었지만, 몬스터는 여전히 나타났다. 대신 저번처럼 사람이 사라지거나 하진 않았다. 실드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실드 안에 있는 사람은 안전했다.

'그대신 동물들이 사라졌지.'

처음에는 몰랐다. 동물들을 실시간 감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알 방법이 없었다. 사실을 밝혀낸 건 미국쪽이었다. 그쪽도 정신이 없었지만, 미국에는 동물과 교감하는 후보자가 있었다. 인디언 출신 여성이었다. 그녀는 몬스터가 한 번 나타날 때마다 수십에서 수백 마리의 동물들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고 했다. 사람이 사라질 때보다 그 수가 훨씬 늘었다.

그래서 철곤은 동물개체 수를 늘리는 방법을 생각 중이었다. 동물들이 다 사라지면, 실드의 효력을 뚫고 몬스터가 침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드를 만든이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답변해주지 않았다.

'내가 이런 걸 고민할 줄은 몰랐지만...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군.'

상황장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철곤의 정신을 환기시켰다.

"중령님. 회담 시간입니다."

"아, 벌써 그렇게 됐군. 연결하게."

"화면 전환하겠습니다."

상황장교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서 지도가 사라지고 사람의 얼굴이 떴다. 모두 세 사람이었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처음엔 셋 다 눈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가, 이내 정면을 바라보며 철곤과 눈을 맞았다.

그때가 정확하게 한국 시간으로 열두 시. 현 세계를 암중에서 좌지우지하는 대이능부대 4자 회담 시간이었다.

미국 대표 크리스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거추장스러운 건 다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넘어갈 수가 없군요. 다리아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알리나님께도요."

"별 말씀을요.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알리나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러시아 대표로는 다리아가 나와 있었다. 그녀는 원래 러시아측 기술부장이지만, 요 근래 몇 번의 회담에선 대표로 참석했다. 그녀가 설명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알리나와 함께 '실드'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저희도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독일 대표 슈나이더도 한 손 거들었다. 물론 철곤도 빠지지 않았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분이 없었다면 인류가 어떻게 되었을지... 당신들은 인류의 희망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인류의 희망은 앞에서 열심히 싸우시는 여러분입니다. 저희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리아는 강민을 떠올렸다. 어떤 방식인지 잘 몰랐지만, 그가 시간을 끌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형 몬스터의 숫자가 늘어나면 대응이 늦어지고, 대응이 늦어지면 지구 인구는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을 게 뻔했다. 그러면 또 몬스터들의 침공이 늘어났을 것이다.

차원 융합.

평행 세계가 겹쳐져 있는 세계에 대한 표현이라면, 차원은 평면적으로 이어져 있는 세계에 대한 표현이다. 세계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평행 세계와 달리, 각 차원은 평소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서로 다른 두 차원은 상호 작용할 만한 연관성이 전혀 없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도, 다른 차원에서 넘어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길고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차원이 서로 부딪히는 일이 간혹 생겼다. 사람들은 그걸 '차원 융합'이라고 불렀다.

차원 융합이 일어나면 두 차원에 있던 것들이 교환된다. 가장 먼저 교환되는 건 생명체로, 그 덕분에 원래 세계에 없었던 생명체가 나타난다. 그다음에 교환되는 건 마나. 둘 세계 다 마나에 대한 조건이 같다면 변화가 없겠지만, 어느 한쪽이 마나가 활성화된 세계라면, 융합되는 다른 한쪽도 마나가 활성화된다. 마지막으로 일어나는 게 지형의 융합인데, 이 일은 정말로 마지막, 차원 융합이 거의 완료될 시점에 일어난다.

이게 한달 전쯤 독일의 한 후보자가 퀘스트 내에서 알아낸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흘 전, 다리아의 능력 '전지(全知)'의 레벨이 오르면서 추가된 내용이 있었다. 융합이 완료되는 시점은 생명체의 교환이 반쯤 일어났을 때라는 것, 그리고 생명체의 교환은 개체별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영혼별로 이루어지고, 생명체의 교환 속도는 살아있는 영혼의 수가 작을수록 빨라진다는 것이었다.

즉, 사람이 많이 죽으면 몬스터는 더 많이 늘어나고, 차원은 더 빨리 가까워진다는 이야기였다.

이 내용은 즉시 각국의 후보자들에게 공유되었고, 후보자들은 머리를 맞대로 의논에 들어갔다. 여러 주장이 있었고, 꽤 격렬한 토론도 벌였지만, 후보자들은 단 하나의 명제만은 동의했다.

'융합 속도를 늦추자.'

융합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전지'의 다리아가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속도라도 늦추고 싶었다. 후보자들이 보기에 이 세계는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이대로 융합하면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 처할 것이 뻔히 보였다.

작은 몬스터들은 문제가 없었다. 일반 화기로도 충분히 타격을 입힐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대형 몬스터가 문제였다. 그들에게는 일반 화기도, 미사일도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핵이 통하지 않는 개체도 있었다.

후보자들이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다리아는 후보자의 영혼의 격이 높기 때문에 후보자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말은 저쪽 차원에도 영혼의 격이 높은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넘어오는 대형 몬스터가 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상황이었다. 이대로 융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늦추고 싶었다.

이제 마나를 깨우치기 시작한 일반인 능력자들이 많아질 때까지, 다리아의 '전지' 레벨이 올라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때까지, 알리나의 '기술' 레벨이 올라 대형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실용활할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그때까지는 말이다.

지금 이 네 사람이 모여 회담을 하는 건 그 일을 위해서였다. 크리스가 다시 화제를 넘겼다.

"감사는 이쯤합시다. 서로 모르는 것도 아니니. 남아메리카 쪽은 10% 정도 대형 몬스터를 제거했습니다. 실드 공급만 원할하다면 한 달이내에 남아메리카도 진정시킬 수 있을 겁니다."

"중국은 이제 시작했습니다. 일본과 인도도 도와준다고 하니 역시 문제는 없습니다."

철곤도 자신있게 말했다. 한국이 이 세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건 철곤의 처신과 한국 후보자들의 능력 때문이었다. 그들의 능력은 평균을 훨씬 욷돌았다. 그리고 그 능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천수가 데리고 있는 팀의 이동 속도는 매우 빨랐다.

하지만 자신있는 철곤과 달리 슈나이더는 난색을 표했다.

"아프리카는... 어렵습니다. 이집트를 시작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몬스터가 많고, 자주 발생하고, 사람들이 불신에 가득차 있습니다. 저희가 너무 늦게 움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문제는 접어두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도 실드가 생기기 전에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는 게 더 중요합니다. 남아메리카 상황은 괜찮으니 정리된느 대로 아프리카는 함께 공략하도록 합시다."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지금 우리가 남 좋으라고 움직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다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그건 그렇게 하고, 러시아쪽은 어떻습니까?"

러시아는 땅은 넓은데 후보자 수는 적어 사실 이 회담에 나올 형편이 못되었다. 하지만 다리아와 알리나의 존재는 러시아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그 두 사람은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시베리아쪽 생존자들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실드 소형화에 성공했습니다. 대량생산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 그거 좋은 소식이군요."

미국이 반길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미국은 국토가 넓고 인구밀도가 낮아 실드로 커버하기가 애매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소형화되면, 더 많은 이들을 사라지는 것에서 지킬 수 있었다.

"필요한 나라가 있으면 러시아에 말씀해 주십시오.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지'는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퀘스트는 노력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알리나의 말에 철곤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직인가...'

많은 것을 알아냈고, 이제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미지에 쌓여 있었다. 특히 후보자에 대한 것은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융합이면 융합이지, 후보자는 왜 있는 것인가?

============================ 작품 후기 ============================

주인공 이야기는 내일 나오겠군요... 일단 자살은 끝입니다. 급한 불은 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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