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38화 (138/160)
  • 138화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상황실 한쪽 화면에 틀어져 있는 뉴스에서 상가 밀집지역을 비춰줬다. 리포터의 말대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문을 닫아 버린 가게도 여럿이었다.

    [없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착찹하네요. 엊그제 그런 일이 터졌으니 당연한 거긴 한데... 이게 회복이 될까요?]

    인터뷰에 응한 여성은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녀의 뒤에 진열되어 있는 화장품들이 보였다.

    가벼운 목소리가 그 장면을 보고 평을 했다.

    "이런 시국에 화장품을 사러 오겠냐, 생각이 없는 사람이군."

    목소리의 주인공은 박종훈 중위였다. 김택진 중위가 그 말을 받았다.

    "이런 시국인데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거잖아.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야지."

    "그렇게까지 생각했을까? 그냥 습관처럼 나온 거 아냐? 저기 그저께 사고 난 곳 근처잖아?"

    그저께 은평구에서 두 번째로 대형 몬스터가 나타났다. 거대 흑곰이 나타난 지 사흘만이었다.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는 건 그 근처 상가지역이었다.

    "...어쨌든 다행이잖아. 강남에서 일이 일어났을 때보다는 상황이 좋아 보이네."

    "그렇지..."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끊겼고, 상황실에는 다시 침묵과 뉴스의 소리만 맴돌았다.

    [이번에 나타난 대형 몬스터에 의한 피해는 저번 보다 줄었습니다만, 사람들의 불안은 여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은평구에서 나타난 건 몸길이 100m의 본 드래곤.

    지금처럼 후보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재빠르게 대응했고,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사라진 사람 300명을 제외하면, 실제 피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투가 벌어진 북한산은 초토화가 됐지만, 인명피해는 첫번째 대침공에 비하면 1/100 수준이었다.

    일단 대형 몬스터가 나타나는 건 대침공이라고 불렀다.

    대침공에 관해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주기라 침공처럼 하루 단위가 아닌 건 확실하지만, 이제 두 번째라 확신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침공과 같은 지역을 공유하는지도 의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은평구에서만 나타났는데, 일본이나 중국 일부 지역에 나타난 대형 몬스터의 수는 변함이 없었다. 지역을 공유하는 건지,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건지... 가설은 세울 수 있지만, 주기보다 정보다 더 부족했다.

    "..."

    상황실에는 일곱 명의 후보자와 장교 둘, 병사 몇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말이 없었다. 그나마 말이 많은 박종훈 중위와 김택진 중위가 몇 마디 하는 게 전부였다.

    모두 평소와 달랐다. 우울해 보였다. 사태가 심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분위기가 나쁠리 없는데... 다들 죽은 건가? 나처럼?

    사실, 내 상태가 제일 나빴다. 연속 네 번이나 죽었으니까.

    [예지야.]

    [네, 오빠.]

    예지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바로 답이 왔다. 그녀도 오늘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아침부터 수백 번 정도는 메시지를 보냈으니까...

    어제까진 티를 안 내려고 발버둥을 쳤다. 세 번의 죽음까지는 어떻게 커버가 됐다. 그동안의 깜냥덕이었다. 그러나 네 번째까 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예지야.]

    [네, 오빠. 저 여기 있어요.]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그녀를 여기에 불러오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녀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눈치챌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멈추라고 하겠지? 자신은 죽어도 상관없다면서.

    [죽음도 내 사랑을 멈출 수는 없을 거야.]

    [저도 그래요. 사랑해요. 오빠.]

    오늘만 수십 번 반복된 사랑의 고백. 이 정도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그녀는 잘 받아줬다. 그게 또 고마웠다.

    [고마워.]

    [뭘요ㅎ 제가 더 고마워요. 오빠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 + +

    "중령님! 국방부 바로 앞입니다!"

    "..."

    상황장교가 말하는 게 뭔지, 다들 한눈에 알았다. 상황장교의 몸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프리타를 불렀다.

    [이프리타!]

    [왜 그러는가?]

    [예지는, 예지는 괜찮아?]

    [괜찮다.]

    [잘 살펴 봐. 이 주변에 몬스터가 나타나고 있어!]

    창밖으로 노란 털을 가진 사자가 보였다. 키는 약 30m.

    [괜찮다. 그녀의 존재는 아직 이 세계에 속해 있다.]

    [부모님은, 동생은?]

    [그 쪽도 문제 없다.]

    [...고마워.]

    [얼마든지.]

    긴 한숨을 내쉬곤 유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냐 누나는? 괜찮아?]

    [괜찮아. 무슨 일이...]

    그녀도 본 모양이다. 아니면 느꼈던지. 사장님의 오피스텔은 이 건물에서 눈에 보이는 위치에 있으니까.

    [다른 이들도 확인해 줘.]

    [처리는?]

    [이쪽에서 책임지고 처리할게.]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중령의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김천수 중위!"

    "네!"

    "지금 당장 가서 저 빌어먹을 놈을 한강에 처박아 버려!"

    "네!"

    천수도 만만치 않게 화가 나 있었다.

    + + +

    노란 사자는 금방 죽었다. 사라진 사람은 백 명. 그 중 대이능부대 소속 인원들이 56명이었다.

    중령은 돌아오자마자 대이능부대원 전원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들은 한국에서 '사라진다'는 게 어떤 뜻인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없이 슬픈 날입니다."

    모두가 표정으로 동의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 보던 사람들이 사라진 거다. 주변인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나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갔다.

    "정말로, 한없이 슬픈 날입니다."

    "흑!"

    중령의 반복에 울음을 터트리는 여성 대원이 있었다. 그 사람 말고도 다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 듯했다.

    "지금이라도 방으로 돌아가면 친절하게 맞아줄 것 같은 동료가, 이젠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리로 돌아가면 더 슬플 겁니다. 그가 쓰던 책상, 그가 앉았던 자리, 그가 쓰던 펜이 눈에 들어와 마음을 아프게 할 겁니다."

    중령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도 울기 직전이었다. 한두 번 심호흡을 하며 눈물을 삼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슬퍼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여기에 머무르는 건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자가 바라는 바입니다. 비록 우리는 그 정체나 목적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슬픔을 분노로조차 바꿀 수도 없지만, 여기에서 일어나는 것만은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다시 일어납시다. 움직입시다. 그러지 않으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최전방에 서 있는 우리가 머뭇 거리면, 우리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입니다. 몬스터는 우리를 죽이고, 우리의 친지들을 죽이고, 이 도시를 죽이고, 마침내는 이 세상을 죽일 것입니다."

    "이것은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의 문제도, 도시의 문제도, 나라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정체불명의 적에게 침공당하고 있고, 우리는 그에 대응해야 합니다. 그들은 가만히 있으면 사라지는 적들도 아니고, 도망칠 수 있는 적들도 아닙니다. 길은 오직 하나, 싸우는 겁니다."

    "싸웁시다. 우리를 침탈하는 적들에 대하여, 우리를 죽이려는 적들에 대하여, 우리의 의지를, 지구의 의지를, 인간의 의지를 보여줍시다. 적들은 강대하고 우리의 힘은 약하지만, 분명 길은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중령의 말엔 힘이 있었다. 그의 능력이 아니라, 그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는 분명 우리의 승리를 믿고 있었고, '그다음'을 바라보는 자였다.

    다들 그걸 느꼈는지, 울음을 삼키며 눈을 빛냈다.

    나 역시 마음을 다잡았다.

    10번 연속으로 죽고 나서, 결국 어제 퀘스트를 한 번 깼다.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하필 오늘 이런 일이 일어났다. 큰 상관관계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퀘스트를 깬 것과 몬스터가 나타나는 위치가 연결되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경고로서는 충분했다.

    시스템, 혹은 그 뒤에 있는 자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제든 네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어. 좀 더 발버둥쳐 봐.'

    그래, 발버둥 치자. 적어도 사라지는 걸 막을 방법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 + +

    "오빠?"

    "..."

    "오빠?"

    예지가 눈앞에서 손을 흔들고서야, 나는 그녀의 부름을 눈치챘다. 20번쯤 자살을 경험하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아, 미안, 잠시 딴 생각 좀..."

    "...괜찮아요?"

    숨긴다고 숨겼는데, 표정이 안 좋은 모양이다. 아니, 표정이 없는 걸 테다.

    "괜찮아.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해서."

    "..."

    "요즘 잘 되고 있어. 계속 늘어나던 침공 횟수가 요즘은 정체 상태라잖아? 다 잘 될거야."

    아마도 내 자살의 효과다. 그게 없었으면, 예지가 있더라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효과가 있으니, 예지가 사라질 확률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니까 계속 해야 했다.

    "..."

    "이젠 횡설수설까지 하나?"

    "...?"

    갑자기 들려온 유비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가, 겨우 진정시켰다. 그러고보니, 오피스텔로 올라가다가 유비랑 마주친 거였다. 그 사실을 순간 까먹었던 것이다.

    하하하, 진짜 미쳐 버리겠군.

    "예지야, 잠깐만 자리를 비켜줄 수 있을까? 할 이야기가 있어서."

    "...네, 유비 언니. 그럼 먼저 올라갈게요. 오빠."

    예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 보다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이프리타의 눈도 슬퍼 보였다.

    "...고맙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유비의 말이 왠지 이해가 됐다. 그녀는 내 퀘스트 진행방식에 대해 알고 있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을 눈치챈 건지도 모르겠다.

    "뭘?"

    "...고맙다고."

    "...알았어."

    "그리고 예지에게 잘 해줘."

    "...?"

    "내가 알았는데, 예지가 모르겠어?."

    "아..."

    "그럼."

    그 말을 남기고 편의점으로 가는 유비. 그녀의 등은 어쩐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녀도 많이 죽고 있는 건가?

    그보다 예지... 미안하고, 고맙고... 후우...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 + +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 작품 후기 ============================

    어제 올라간 뒤 바로 읽으신 분들께는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텍스트를 그대로 붙여 넣기 했더니 알아서 줄이 나뉘어 져서...ㅠㅠ3개월 바로 뛰려다가 아무래도 뭔가 적어야 할 것 같아서... ㅎㅎㅎ 어제 편의 문장은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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