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36화 (136/160)
  • 136화

    이대로는 안 돼.

    하지만 그전에 곰의 공격을 피해야만 했다. 곰은 공중에서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를 정확히 노렸다. 윈디를 소환해 한 번 피하고, 윈디를 해제해 또 피했다. 곰의 주먹이 내 몸을 스쳐가며 내는 바람 소리가 섬뜩했다.

    쌔애앵.

    그러는 사이에 후보자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휘이잉. 펑펑펑펑.

    칼날처럼 가늘고 센 바람이 곰의 몸을 훑고 지나가면, 그 위에 폭발이 일었다. 한 번, 한 번은 그리 큰 상처가 아니었다. 하지만 곰의 전신을 돌며 수십 번 바람과 불의 연계가 이어지자, 곰도 타격을 입는 듯, 움찔거렸다.

    쿠와아아아.

    폭발은 폭발로 끝나지 않고 곰의 상처를 벌려 태워 버렸다. 그걸 끄려는지, 곰은 한강에 드러누워 뒹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닌 동작이었지만,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바람은 물에 의해 약해졌고, 뒹굴기 시작하면서 바람과 불의 연계도 어려워졌다.

    그리고 곰이 한강을 뒹구는 것만으로 주변이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물이 둑으로 넘쳐흐르고, 바닥에 고이 잠자던 흙이 비산했다.

    그걸 보면서 헬파이어를 준비했다. 전심전력을 다한 헬파이어였다.

    쿵! 쿵! 쿵!

    헬파이어를 외우고 있는 중에 하늘에서 작은 곰 세 마리가 떨어졌다. 작다고 해도 검은 곰에 비해서 작은 거지, 크기가 10m는 넘었다. 재희씨의 곰이었다. 철제 갑옷에 날카로운 무기를 들긴 했지만, 천으로 되어 있는 몸에 동글동글한 생김새라 사람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었다. 크기는 이제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컸다. 그 탓에 참전이 좀 늦은 듯했다. 대신 그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크아앙!"

    작은 곰 세 마리가 양 팔과 한쪽 다리를 봉쇄하니 곰이 멈췄다. 짜증을 내며 몸을 비트는 데도, 작은 곰 세 마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왼팔을 잡고 있는 곰 어깨 위에 재희씨가 손을 들고 흔드는 게 보였다.

    멈춘 곰 위로는 다시 바람과 폭발의 연계가 계속됐다. 이번엔 가슴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왼쪽 가슴의 살과 가죽이 다 사라지고, 뼈가 드러났다. 곰은 고통스러워 했다. 유일하게 자유로운 한쪽 다리가 아래위로 요동치며 사방으로 강물을 튀겨댔다.

    슈우웅.

    드러난 뼈 위로 김창수 중위의 미사일 같은 킥이 날아갔다. 좀 전과는 힘과 속도가 달랐다. 철갑을 두른 발 위에 망치 같은 형상이 겹쳐져 있었다. 저 한 방으로 곰의 내부를 진탕시킬 생각으로 보였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곰도 그걸 느꼈는지 더 발악이 심해졌다. 하지만 작은 곰들이 자기 무기를 곰의 몸에 박아 넣으며 저지했다.

    결국 김창수 중위의 킥이 곰의 왼쪽 가슴에 직격했다.

    쿠와아아아앙!

    곰의 몸이 1/3쯤 땅에 박히고, 곰을 중심으로 강물이 사방으로 밀려나며 순간 강바닥이 드러났다. 재희씨의 작은 곰들도 그 여파를 버티지 못하고 공중을 날았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강 주변 건물들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째재재쟁.

    굉장한 위력이었다. 나 역시 윈디가 애쓰면서 자리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훨훨 날아갔을 것이다.

    "캬아아아악!"

    그러나 곰은 열기구만한 피의 덩어리를 토해내며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상처도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움푹 들어갔던 왼쪽 가슴이 눈에 보일 정도의 속도로 다시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때 마침 내 주문이 완료됐다. 나는 두손을 뻗어 곰의 오른쪽 가슴을 노렸다. 주문을 외우며 마나의 흐름을 관찰한 결과, 오른쪽 가슴에도 엄청난 마나가 몰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장이 두 개이거나, 그에 준하는 기관이 있을 터였다. 그걸 파괴해야 곰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펑, 펑, 펑.

    불꽃은 수십 개로 나뉘어 곰의 오른쪽 가슴 주변을 타격했다. 한두 번 폭발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폭발이 수십 번 이어지자, 가슴이 움푹 패여 사라졌다. 그 위로 헬파이어의 정수가 떨어졌다. 불은 오른쪽 가슴을 시작으로 곰의 전신으로 옮겨 붙었다. 그 불 탓에 다시 밀려들어오던 강물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증발하는 수증기 사이로 김창수 중위와 재희씨의 곰들이 물러나는 게 보였다. 사전에 주의를 주지 않았는데도 헬파이어의 위력을 알아본 모양이다.

    "크아아아아!"

    곰은 아직 죽지 않았다. 강바닥을 뒹굴며 타오르는 온몸을 비벼댔다. 하지만 그걸로 헬파이어의 불이 꺼질리 없었다. 저러다 죽을 운명이었다.

    "크아아아!"

    문제는 그 시간이었다. 타들어가고 있는 속도를 보면 금방 죽을 것 같진 않고, 그럼 피해가 눈더미처럼 불어날 것이다. 곰의 크기만으로도 피해가 막심한데, 지금은 헬파이어 때문에 배이상 늘어나 버렸다. 곰이 조금만 더 굴러서 강둑을 넘어 시내로 들어가면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과 다름없게 된다.

    그 일이 지금 막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강바닥을 다 태우던 곰이 강을 벗어나려고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대로라면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게 뻔했다.

    피시식.

    그러나 그 전에 곰의 동작이 멈췄다. 헬파이어 때문이 아니었다. 고막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어나오다가 불에 증발되어 피의 안개를 만들었다. 지독한 냄새가 멀리가지 퍼졌다. 뇌가 곤죽이 된 듯했다. 다리 위를 쳐다보니 숨을 헐떡이고 있는 중령이 보였다. 그가 어떻게 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아무래도 시내에서 헬 파이어는 쓰지 말아야 할 것 같군.

    곰은 그렇게 한강을 태우며 사라져갔다. 천천히 다리로 돌아가는데, 중령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빠르게 움직이니, 중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재희양 좀 데리고 오게! 다른 곳에서도 큰 놈이 나타났어! 모여 있는 우리가 가야해!"

    갑자기 너무하는 군, 젠장.

    + + +

    또 다른 몬스터는 다행히도 광주시 외곽에서 나타났다. 외곽이라고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퇴근길의 회사 건물 주변보단, 퇴근길의 주택가가 나았다.

    광주시에 나타난 대형 몬스터는 30m 크기의 큰 늑대였다. 송곳니가 건물 기둥만한 괴물은 곰보다 재빨랐다. 재희씨의 곰인형이 재빨리 제압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큰 피해가 날 뻔했다. 한번 잡히고 나니까 곰보다는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속도가 빠른만큼 재생력이라든가, 방어력이 별로였다. 어쩌면, 다른 급의 개체인지도 모르겠다.

    후보자들의 싸움은 그걸로 끝이 났다. 다들 지쳤지만, 누구도 크게 다치진 않았다. 공중에서 바람에 날라다니던 재희씨가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한강물에 강하게 처박힌 김창수 중위가 온몸에서 근육통을 호소한 게 다였다.

    앞으로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곰과 늑대의 공격은 강했고, 자칫 잘못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혼자 싸웠다면 이기지 못하거나, 이겨도 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후보자들은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두셋, 혹은 그 이상이 모여 서로서로 방어하고, 공격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 후보자들을 모아야하고, 때로는 몬스터를 옮겨야 할 천수는 죽을 맛이겠지만, 그걸 제외하면 이번에 나타난 대형 몬스터도 후보자에게는 큰 위협은 아니었다.

    문제는 일반인과 능력자들.

    후보자들의 싸움은 끝났지만, 중령의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강남에서 2,000명, 한강에서 300명, 광주에서 400명이 죽었다. 죽은 사람만 그 정도였고, 부상자까지 포함하면 만 명 정도 사상자가 났다.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숫자였다. 한 번이라면 모르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죽음이 늘 눈앞에 있는 것이다. 삶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억눌러진 폭력성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가.

    한국은 어떻게 정리가 됐다. 언론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중령의 능력을 사용했다. 사고 규모는 축소 보도 되었고, 대피만 잘 하면 죽을 일은 없다고 홍보했다. 보상은 국가에서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하니, 사회가 크게 동요하진 않았다. 물론 전보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조용했다. 사람이 넘쳐나던 홍대, 신촌, 대학로에도 먼지만 풀풀 날렸다.

    대이능부대 전원이 죽어라고 일을 한 결과였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한국처럼 넘어갈 수 없었다. 특히 텔레포트 능력자가 부족한 곳이 문제였다. 대도시의 중심에 떡하고 떨어진 몬스터를 외곽으로 보낼 수도 없었고, 몬스터를 막기 위해서 후보자들을 모아오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이전엔 그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은 몬스터들은 일반 화기로 죽이거나 저지하는 게 가능했다. 텔레포트 능력자가 없이도 충분히 시간을 끄는 게 가능했고, 그 후에 죽이면 됐다.

    그러나 대형 몬스터에게는 대전차급의 화기도 통하지 않았고, 대함, 대공 미사일도 결정타를 먹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시내에서 핵을 사용할 순 없으니, 후보자들이 도착할 때까지 사람들만 무수히 죽어나갔다.

    중국이 가장 심했다.

    텔레포트 능력자가 부족했던 중국은 많은 은거기인들과 군인숫자로 몬스터들을 저지, 해결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고, 능력자들과 군인들은 초기대응을 하다가 대부분 죽었다. 그 후 사람들이 셀 수 없이 죽은 건 당연했다.

    폭동이 일어났고, 치안이 완전히 무너졌다. 힘 있는 자들은 스스로를 지켰지만, 힘이 없는 자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죽어 갔다. 군인들을 잃은 정부는 손쓸 도리가 없었다. 혼란을 막는 것도, 앞으로 나타날 대형 몬스터를 대비하는 것도.

    중국은 그렇게 무너졌다.

    아프리카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정부가 무너진 나라가 여럿이었다. 그나마 정부가 있고,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곳들도 대형 몬스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다 무너졌다.

    나라를 잃고, 힘도 없는 사람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움직였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했고, 중국 사람들은 서해를 넘어 한국으로 향했다.

    중령은 그 일도 처리해야 했다.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은 서해를 넘지 못하고 죽었다. 중령은 자신의 손으로 중국인들을 서해에 수장시켰다. 그 사람들을 받는 순간,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유럽도 비슷했다. 겨우 유지되고 있는 나라에, 도움도 안 되는 피난민을 받아들일 나라는 없었다. 아프리카를 떠난 이들은 대부분 지중해에 잠기거나, 보트피플이 되어 지중해를 떠돌았다.

    간혹 그런 생활이 더 안전하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바다에서는 몬스터가 나타난 적이 없었으니가. 그러나 그런 글에는 항상 반박하는 사람이 있었다. 배 위에서 몬스터가 나타나 다 전멸했다고. 그 글을 쓴 사람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오빠, 이제 어떻게 될까요...?"

    예지의 목소리에는 불안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땅 넓이에 비해 후보자의 수가 많은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괜찮아. 이번엔 처음이라 피해가 컸을 뿐이야. 다음에는 괜찮을 거야. 너는 내가 꼭 지켜 줄게."

    "믿고 있어요."

    "그래. 걱정하지 마. 너도, 우리 가족도, 너희 가족도, 사장님이나 아냐 누나도, 다 내가 지킬 테니까."

    그러나 내 목소리는 내 의지와 달리 떨렸다. 내가 느끼는 불안은 그녀와 다른 거였다.

    200명.

    이번에 대형 몬스터가 나타나면서 사라진 사람들 숫자였다. 이젠 내일 그녀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결단을 내려야할 때가 왔다.

    ============================ 작품 후기 ============================

    으음.... 오타나 이상한 부분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바로바로 고치겠습니다!

    그외엔.... 어째 할 말이 없군요.

    내일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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