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35화 (135/160)
  • 135화

    "중령님! 강남역에서 괴생명체가 발생 중이랍니다!"

    김철곤 중령은 상황장교를 쳐다봤다. 몬스터면 몬스터지, 괴생명체는 뭐란 말인가?

    "자세하게 말해 봐!"

    "강남역 지상에 거대한 곰 발생 중! 키는 약 30m! 점점 더 커지고 있답니다!"

    드르르륵.

    중령이 앉아 있던 의자가 발사되듯 강하게 밀려나며 바닥을 달렸다. 중령이 소리쳤다.

    "김천수 중위 연결해! 아직 발생 중인가!"

    "네! 아직입니다! 영상 비추겠습니다!"

    사거리가 화면에 나타났다. 사거리는 평소와 달랐다. 달려야 할 차들은 대로 중앙에 서 있었고, 횡단보도를 채우고 있어야 할 사람들은 대부분 화면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차를 돌릴 수 없으니까, 차를 버리고 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화질이 안 좋아 잘 보이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놀람과 공포가 가득했다. 그들 중에는 갑자기 뛰다가 멈추는 이도 있었다.

    "얼마 전부터 저런거지?"

    "1분쯤 지났답니다! 곰이 더 커지고 있답니다! 현재 약 40m!"

    발생.

    몬스터는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갑자기 등장하지만, 현실에서 완전히 움직이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 그중 두 번째 단계가 '발생'이다. 발생 단계에서는 전자기기에 몬스터의 형상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희미하게 보인다. 희미하게 보일 뿐 아니라 통과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지금 화면에서처럼 사람들이 도망갈 수 있었다.

    발생 단계는 짧았다. 가장 길었던 적이 3초 정도고, 보통은 1초 전후로 끝이 났다. 지금처럼 긴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애초에 30m, 아니 그 이상의 몬스터가 나타난게 이상한 일이지만.

    "김 중위는! 아직 연락이 안 되나!"

    지시한 지 아직 5초 정도. 평소라면 중령도 참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기엔 마음이 조급했다. 발생이 끝나고, 대기 상태에 들어가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뻔했다. 그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됐습니다! 연결하겠습니다!"

    다행히 천수는 평소보다 빠르게 연결됐다. 중령은 테이블위에 있는 수화기를 거칠게 들었다.

    "천수! 강남역으로 가게! 좌표는 보내주지!"

    "무슨 일..."

    수화기 너머로 의문이 들려왔다. 중령은 그 목소리를 끊었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 곰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게나! 무슨 일이 있어도! 자네밖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천수는 중령의 조급함과 절실함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끊지!"

    중령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상황장교에게 소리쳤다.

    "강남역 좌표를 김 중위에게 보내! 그리고..."

    그는 곰을 어디로 옮겨야 되는 건지 생각했다. 40m이상의 괴물이 날뛰어도 아무런 피해가 없을만한 곳, 공간이 넓고, 사람이 없는 곳...

    "한남대교와 반포대교 사이 좌표를 보내! 곰을 거기로 보낸다!"

    "알겠습니다!"

    "다른 후보자들에게도 연락해! 국방부로 모이라고! 강민군에게는 내가 직접 연락하지! 김 중위에게도 곰을 옮긴 후에 그쪽으로 오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상황실에 있던 장교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 순간, 화면이 검은색으로 찼다. 키 50m, 덩치도 그에 못지 않은 거대한 곰이 빌딩 사이에 가만히 서 있었다.

    "..."

    중령을 포함하여 상황실에 있던 모두는 일순 말을 잃었다. 비현실적이었다. 몬스터의 등장도 그러했지만, 지금 그들이 보는 광경은 더욱 그러했다. 대침공 때 이상의 충격이 그들의 영혼을 때렸다.

    가장 먼저 회복된 건 중령이었다. 그의 사고가 멈춘 건 1초도 안 되는 짦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책했다.

    '이 바보 같은 놈! 저런 광경은 몇 번이나 보지 않았는가!'

    "다들 정신차려! 빨리 손을 움직여! 후보자들을 불러야 한 명이라도 더 살 수 있다!"

    "...네, 네! 알겠습니다!"

    + + +

    천수가 강남역 근처로 이동했을 때, 검은 곰은 막 발생을 끝내고 대기상태로 넘어갔다. 그도 상황실의 사람들처럼 일순 사고가 마비됐다. 덩치에 압도당하고, 곰이 근처에 뿌리는 존재감에 숨이 막혔다.

    '이, 이걸...?'

    생각은 그도 모르게 말이 되어 흘러 나왔다.

    "옮길 수 있을까....?"

    현실에서도 퀘스트 내에서도 저만한 크기의 물체를, 특히나 생명체는 옮겨본 적이 없었다. 그가 옮긴 것 중에 가장 큰 건 오크 다섯마리 정도였다. 그걸 옮기는 데도 꽤 힘들었다. 자신이 없었다. '실패'란 단어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 그를 일깨운 건 중령이 했던 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네밖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그는 양볼을 손바닥으로 쳤다.

    짝!

    볼이 얼얼한 만큼 눈이 맑아졌다. 핸드폰을 꺼내 한강의 좌표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마음을 다잡고 아직 움직임이 없는 곰의 바로 옆으로 이동했다. 눈에 보이는 곳은 생각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었다.

    팟.

    곰의 왼쪽 다리 옆에 그가 나타났다. 그는 자기 팔뚝만한 굵기의 털을 손으로 잡았다. 이제 곰의 전체를 인식할 차례였다. 어려웠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징그러운 검은 털과 더 검은 피부뿐이었다. 다리 조차도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속으로 욕을 삼키며, 마나를 뻗쳤다. 마나로 다리를 더듬고, 허벅지를 더듬고, 배를 더듬어 곰을 대충 반쯤 인식했다.

    거기까지 30초 정도.

    보통의 몬스터라면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곰도 그런 듯, 천수는 볼 수 없는 곰의 눈꺼풀이 서서히 올라갔다. 발생 시간이 분 단위였던 것치고는, 너무나 빠른 진행이었다.

    "크릉?"

    검은 곰은 하체를 감싼 정체불명의 기운을 느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아, 털어 버리려 다리를 살짝 들어 땅을 딛었다.

    쾅!

    곰으로서는 아주 살짝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아스팔트는 쪼개져서 날아갔고, 발을 중심으로 큰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그리고 지하게 문제가 생긴 듯, 땅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으억!"

    50m는 떨어져 있던 천수의 몸도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 와중에도 곰을 인식하고 있던 것을 놓치지는 않았다. 마나는 여전히 곰을 감싸고 있었다. 온힘을 다한 그의 발악이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지만, 그는 계속 집중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곰은 감각이 사라지지 않자 왼쪽 다리를 들었다. 천수는 그에 따라 다리에 매달렸다. 관리가 잘 안됐는지, 털은 거끌거끌 해 잡을 곳은 많았다. 그는 머리와 손과 발을 동시에 사용하느라 지독한 냄새는 그냥 넘어갔다.

    쿵, 쿵, 쿠르르릉!

    곰의 발구름은 계속 됐고, 결국 땅이 꺼지고 말았다. 곰은 갑작스런 이동에 기분이 완전히 나빠졌다.

    "크와와왕!"

    "젠장!"

    갑자기 푹 꺼지느라 놀란 건 곰 뿐만이 아니었다. 먼지를 잔뜩 뒤짚어쓰고, 돌에 생채기를 입은 천수도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위험했다. 생각을 멈출 뻔했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겨우 가슴께까지 인식했는데.

    '어떻게든 한 번에 해야 해!'

    그는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쉽지 않았다. 곰은 계속 조금씩 움직였다. 그건 그에게 세상이 흔들리는 것과 같았다. 그를 방해하는 건 또 있었다. 시끄러운 건 둘째로 쳐도, 먼지 너머로 보이는 건물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무너지면 어떻게하지? 사람은 다 대피한 건가?'

    강남역 주변에는 고층 빌딩들이 즐비했고, 그 건물들은 지금 지반약화로 무너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곰의 짜증은 그 과정을 가속화시켰다.

    콰아앙!

    곰은 기분 나쁜 감각이 사라지지 않자 난동을 부렸다. 시야를 막고 있는 반짝거리는 돌덩어리들을 향해 분을 풀었다. 곰의 망치 같은 손은 한 번 움직일때 마다 건물의 일부를 건물에서 떼어냈다. 반짝이는 유리창들이 공중을 수놓았다.

    아래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천수는 눈을 감았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는 곰을 인식하는 데 더 집중했다.

    '지금은 이게 먼저다. 건물이 다 무너지더라도 여기서 이 곰탱이 새끼를 떨어뜨려 놔야 해!'

    "크와와왕!"

    "으아아아!"

    곰의 괴성에 가려,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인 천수의 기합. 그러나 그는 끝내 곰을 이동시켰다.

    팟.

    쿠르르릉.

    곰이 사라진 빈 사거리로,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검은 곰이 날뛴 건 고작해야 1분. 그 사이에 강남역 주변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의 비명과 피가 곰이 사라진 빈 자리를 채웠다.

    + + +

    슈우웅.

    김창수 중위는 미사일처럼 곰에게 날아갔다. 그의 발은 묵빛의 철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일반인의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속도였다. 하지만 곰은 반응했다. 자신에 비하면 파리 같은 존재임에도, 팔을 움직여 처내려 했다. 보기에 그 움직임은 느릿느릿했지만, 실제로는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이대로 라면 김창수 중위는 파리채에 맞은 파리처럼 날라갈게 뻔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더 빨리 날아갔다. 대신 그를 보호해주는 이가 있었다. 김택진 중위였다.

    후우우웅.

    바람이 일었다. 길이 10m 정도 되는 작은 토네이도 다섯 개가 순식간에 나타나 곰의 팔이 움직이는 경로를 막았다.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곰의 팔은 속도가 줄어드는 듯하다가, 다시 빨라졌다. 대신 타이밍은 확실히 어긋났다. 김창수 중위는 곰의 방해를 피해 그 거대한 배에 파고들었다.

    푸우욱.

    끝없이 들어가 곰을 관통하고 나올 것 같은 기세였다. 그러나...

    슈우웅, 화아악.

    중위는 파고들었던 속도 그대로 도로 튀어 나와 한강에 처박혔다.

    "크와앙!"

    곰은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양 팔로 사방을 쳐댔다. 강물이 해일처럼 일어 우리를 덮쳤다. 나는 공중으로 올라가 물을 피하려 했는데, 그 전에 불꽃이 물을 증발시켰다.

    화라라라락!

    내 앞에서 시작된 불꽃은 부채꼴 모양으로 커지며 곰에게로 향했다. 곰은 피하려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불은 금세 곰을 덮었다. 불은 채찍으로 변해 곰을 쪼였다. 타는 냄새가 곰의 주변에 돌고 있는 토네이도를 따라 근방에 퍼졌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크와앙!"

    곰이 기합을 내지르자 토네이도와 채찍은 형체를 잃고 파편만 남았다.

    강하다. 집중한 공격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공격을 생채기 정도로만 막아냈다. 그 크기에서 짐작했지만, 이제껏 상대한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였다.

    단검에서 완벽한 검강을 뽑아냈다. 분명 검강은 저 곰의 살가죽을 베고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너무 작다는 거다.

    그래도 해야겠지.

    윈디와 함께 곰의 허리부근을 스쳐 지나가며 곰을 베었다. 곰의 입장에서 보면 종이에 베인 것 같은 상처가 허리에 났다. 최대한 길게 내려고 곰의 허리 굴곡을 따라 움직이는데, 곰의 팔이 다가왔다.

    후우우웅.

    다가오는 것만으로 공기가 요동쳤다. 벨 때까지는 방해가 없었다. 곰이 이곳저곳 신경쓰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처가 나고서는 나를 금방 찾았다. 모기 잡듯이 자신의 몸에 눌러버릴 생각인 듯했다. 윈디를 역소환시키며 아래로 떨어졌다. 급격한 방향전환에 곰의 팔은 유도미사일처럼 따라왔다. 하지만 간발의 차로 나를 잡지 못했다. 집채만한 팔이 만들어낸 공기의 폭주에 나는 이리 저리 떠밀렸다.

    이대로는 안 돼.

    ============================ 작품 후기 ============================

    급하게 써서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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