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34화 (134/160)
  • 134화

    "..."

    아냐 누나는 울다 지쳤는지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선희라고, 아냐와 내 오랜 친구가 조금 전에 사라졌어..."

    유비가 대답했다.

    "...너는? 옆에 있었던 거야?"

    "바로 옆에 있었어..."

    "...'너를 구하는 것만으로 최선'이라는 말은...?"

    "...아냐도 끌려 들어갔어. 내가 알아차리는 순간 이미 절반쯤 진행됐, ...었어."

    담담하게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

    "그녀를 안으려 했는데, 안을 수가 없었어. 마나와 영혼을 일으키고 나서야 안을 수 있었어. 그동안 아냐의 몸은 더 희미해졌어. 무작정 잡아끌었는데, 잘 안 끌려왔어. 온 힘을 다했어."

    그녀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겨우, 겨우 아냐가 원래대로 돌아왔어. 나는 녹초가 됐고, 아냐는 말을 잃었지. 그리고 뭔가를 빼앗긴 듯, 계속 거미에게로 가려 했어. 윽."

    갑자기 그녀가 배를 부여잡았다. 아픈 건가?

    "...너는 괜찮아?"

    "괜찮아. 나는 괜찮아. 그런데 아냐는 괜찮을까? 온전한 상태인 걸까? 뭔가를 빼앗긴 건 아니겠지? 강민, 뭔가 아는 거 없어? 이제 어떻게 하면 돼? 후보자가 옆에 있으면 사라지지 않는다며! 이제 어떡하게 하면 좋은 건데... 윽, 흑, 끅."

    그녀는 한 손은 배를, 한 손은 입을 막고는 오열했다.

    몬스터가 나타나는 위치는 랜덤이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만 나타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갔다. 그건 사람들이 잘 안 모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내에 사람들이 없으니까 몬스터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주택가에서도, 회사에서도, 혹은 도시와 떨어진 산속에서도.

    후보자들은 대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최소한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대책은 없었고, 사람들을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소문만 떠돌았다.

    '후보자와 함께 있는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원래 이 문장은 '후보자'가 아니라, '마나를 깨우친 자'였다. 후보자들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얼핏 보기에 마나를 깨우친 자들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몬스터 침공은 일반인과 능력자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마나를 깨우치고 제3 전투부대에 들어왔던 남자가 사라짐으로써 가설은 거부되었다.

    그다음 가설이 저 문장이었다.

    나도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예지 옆에는 항상 이프리타를 붙여 두었고, 부모님과 동생 옆에는 이프리타가 소환해 준 불의 정령을 붙여 두었다. 정령은 마나가 모여 있는 것이기도 했고, 나와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후보자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프리타와 상의해서 내린 결론이었기에 틀릴 거라는 상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방금 깨졌다. 유비가 함께 있던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아냐 누나가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누나가 사라지는 걸 막은 것으로 그 말을 증명한 걸로 볼 수도 있지만... 유비의 태도를 보니 그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흐으윽...”

    처음 사라진 사람이 '선희'라는 분이 아니라 아냐 누나였다면, 유비는 못 구했을 거라고 몸으로 말하는 중이었다.

    + + +

    "...방법이 없는 겁니까?"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물음을 핸드폰 화면에 대고 건넸다.

    핸드폰 화면엔 다리아와 알리나의 얼굴이 나와 있었다. 그녀들은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에 직통 연락할 수 있는 번호를 주고 갔다. 그 뒤로 한 주 한 번씩은 연락을 했다. 주로 그녀들 쪽에서 연락이 왔다. 이유는 모르겠다. 전화 걸고서 말없이 얼굴만 보고 있는 경우도 많으니, 상상만 할 뿐이었다.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리아가 내 질문에 대답했다. 그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다리아와 알리나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에 나온 결론이었다.

    그녀들은 러시아에 나타난 레이저 무기의 주역이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오버 테크놀로지가 구현될 수 있었던 건, 그녀들이 가진 능력 덕분이었다. 그녀들은 과학과 정보 계통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녀들이 대침공 이후부터 쭈욱 집중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전에도 들었다.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화제는 그녀들과 대화할 때 자주 나오는 소재였으니까. 이전에는 대충 넘어갔다. 궁금하긴 해도 그 일은 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어떤 시간이 더 필요하십니까? 퀘스트를 더 깨는 겁니까? 아니면 연구가 더 필요하십니까?"

    "둘 다입니다."

    "얼마나 필요한지도 알 수 있습니까?"

    "기약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결할 수는 있습니다."

    "..."

    막막했다.

    지금 당장에라도 예지나 부모님이 침공에 휘말릴지 몰랐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아냐 누나처럼 직접 휘말린 거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는 넋 놓고 예지나 부모님이 사라지는 걸 보고 있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고 있던 다리아와 알리나 자매도 여전히 기다리라는 말밖에 없었다. 그것도 기약이 없단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기한이 있다면 희망을 품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약 없는 막연한 기다림에선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지? 운에 거는 거밖엔 없나...

    "죄송합니다. 도움이 못 되는군요."

    "...아닙니다. 아무튼 앞으로도 연구와 퀘스트에 힘써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러고 싶었다. 그러기만 한다면, 수십 번이고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이전에도 가벼이 여긴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미친 듯이 파고든 것 역시 아니었다. 좀 더 달려들어 사람들을 찾았어야 했다. 가설을 검증하고 해결책을 찾았어야 했다. 머리를 더 굴리고, 다방면에서 검토했어야만 했다. 당시에는 괜찮아 보이던 해결책이었는데, 지금 보니 임시방편으로밖에 안 보였다.

    영혼으로 연결된 정령이 후보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젠장, 그럴 수 있는지도 모르겠거니와, 그래 봐야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렇다면..."

    예상치 못하게 다리아가 입을 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말이었는데, 뭔가 있는 건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쏘아붙였다.

    "그렇다면 뭡니까? 말씀만 해 주세요."

    "...시간을 끌어 주십시오."

    "...네?"

    그거야 나도 하고 싶은 일이기는 한데... 그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방법은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습니다."

    점점 알 수 없는 말이 이어졌다. 의문은 내 표정에도 드러났다.

    "의문을 가지지 마세요. 이해로는 닿기가 어렵습니다."

    "..."

    그녀들은 만났을 때와 같은 말. 기묘한 울림을 주는 말 앞에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원래 말이 적은 그녀들은 내 막막함을 참아 주었다.

    "..."

    "..."

    침묵의 대화는 길게 이어진 거 같았지만, 몇십 초도 지나지 않아 외부의 힘으로 끝이 났다. 휴대폰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김철곤 중령에게서 전화가 와 있습니다.]

    "다음에 또 연락하겠습니다. 조언은 생각해 볼게요. 힘써 주시길."

    "그럼, 다음에 또."

    다리아와 알리나의 얼굴이 사라지고, 중령의 얼굴이 나왔다. 그는 다급해 보였다.

    "강민군! 거기 어딘가!"

    "집입니다만...?"

    "그럼 빨리 국방부로 오게! 시간이 없어!"

    "알겠습니다."

    "김 중위! 김 중위..."

    그는 나와 통화를 끊기 전에 다른 이에게 연락했다. 오늘의 침공은 끝났을 텐데, 무슨 일이지?

    창문을 열고 윈디를 불렀다. 동시에 이프리타에게도 연락을 했다.

    [이프리타, 예지는 괜찮아?]

    [아무 이상 없다.]

    [부모님쪽은?]

    [그쪽도 문제없다.]

    [...잘 부탁해.]

    [걱정하지 마라.]

    떨어져 있지만, 그녀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대책이 없다고 가만히 있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일단은 움직이자.

    국방부에는 1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 중령은 연병장에 나와 있었다. 그 옆에는 불을 사용하는 박종훈 중위가 있었다. 나는 윈디에서 뛰어내렸다.

    탁.

    "왔군. 잠시만 기다리게."

    "무슨 일입니까?"

    "다 오면 이야기하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창수 중위와 성재희씨가 국방부 입구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또 십 초가 지나지 않아 천수가 바람을 사용하는 김택진 중위를 데리고 나타났다.

    모두 다해서 일곱.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후보자들 전부였다.

    "다 모였군. 일단 가지. 모두 손을 잡게."

    중령의 말에 천수를 중심으로 모두 모였다. 천수만 빼고 다들 무슨 일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허억, 허억.”

    천수는 죽을 듯이 숨을 헐떡였다. 우리를 어딘가로 이동시키려는 모양인데, 제대로 될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두 눈을 부릅뜨더니 우리를 어딘가로 이동시켰다.

    팟.

    이동된 곳은 다리, 한강 다리 위였다. 도착하고 보니 왜 왔는지는 한눈에 알았다.

    "크아아앙!"

    한강 중앙에서 곰이 일어선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래, 한강 ‘중앙’에서 ‘일어선 채’다. 곰은 컸다. 한강 옆을 따라 늘어선 수십 층 높이의 빌딩과 맞먹었다. 주먹은 실제로 집채만 했다. 한 번 내려치기만 해도 한강이 범람할 것 같았다.

    곰이 외치는 소리는 더 컸다. 1.6km의 한강 다리가 그 소리에 흔들렸다. 그 소리 덕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주위엔 사람들이 도망치며 비명을 지르고, 자동차들이 격정을 울리고 있을 텐데, 곰의 울음소리 외에는 그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곰 무성 영화를 보는 듯했다.

    “*****”

    중령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았다. ‘저 곰을 처리해야 해.’ 정도겠지.

    김창수 중위가 먼저 다리를 벗어났고, 이어 다른 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윈디를 불렀다. 그러면서 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오늘 아침에 50번째 퀘스트를 마쳤었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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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도요!

    예비군 동원 훈련에 다녀왔습니다.

    비가 오는 데도 사격을 했습니다.

    다행히 밖에서 자진 않았지만... 참... 참...

    저는 안동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혹시 독자분들 중에 저랑 같이 훈련을 받으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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