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33화 (133/160)
  • 133화

    <결단>

    라이트닝 소드-改.

    달라진 부분은 딱 하나, 호흡법뿐이었다. 그것만으로 기술의 등급이 달라진 걸 보면, 원래부터 좋은 기술이었다. 내가 기술 하나는 잘 골랐다.

    달라진 건 그것뿐이었지만, 위력은 거의 두 배로 뛰었다. 마나의 총량이 늘어난 게 하나의 이유고, 마나의 움직임이 더 자연스러워진 게 두 번째의 이유다.

    스겅.

    단검은 이전과 달랐다. 이젠 완전히 검의 형체를 갖췄다. 검강이었다. 전에도 썰리지 않는 게 없었지만, 지금은 더 쉽게 잘렸다. 저항조차 없었다. 잘린 단면도 깨끗했다. 다시 붙이면 붙을 정도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강 중위님."

    마지막 오크를 죽이고 나자, 전투지원을 나온 천 소위가 다가왔다. 가볍게 묵례를 하고, 좀 대화를 나눌까 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상황실 장교였다.

    "강민 중위님. 출동입니다. 구리시입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천 소위가 내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네! 수고하세요."

    윈디를 불러 타고 구리시로 향했다. 아쉬웠다. 오늘은 인사할 시간도 없군, 쳇.

    + + +

    구리시 수택 3동 한가람 아파트. 그곳에선 벌써 싸움이 한창이었다. 다만, 싸우는 건 총을 든 군인이 아니었다.

    퍽, 훅, 크헉!

    며칠 사이에 충원된 제3 전투대원들이 늑대인간들과 싸우고 있었다. 막상막하였다. 서로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제3 전투대원의 공격은 늑대인간의 재생력을 뛰어넘지 못했고, 늑대인간의 공격은 전투대원에게 닿지 않았다.

    나는 그 위로 떨어지며 늑대인간을 두 마리를 썰었다.

    쿵.

    "이제 제가 맡겠습니다."

    "오오오, 검은 검사님이다!"

    제3 전투대원 중엔 산속에서 수련에 힘쓴 사람만 있진 않았다. 일반인처럼 직업을 가지고, 평범한 삶을 살면서 힘을 키운 이도 있었다. 그런 이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학생도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팬이라며 달려들었었다.

    "그럼 저희는 뒤로 빠지겠습니다. 강 중위님."

    "넵!"

    나는 앞으로 달려나가며 검은색 검강을 형성했다. 늑대인간들이 소리를 지르며 내게 달려왔다.

    "아우우우!"

    + + +

    라이트닝 소드가 업그레이드되고 나서, 나는 이전에 가르쳤던 사람들에게 다시 라이트닝 소드-改를 가르쳐야 했다. 다리아와 알리나 자매에게도 마찬가지로 라이트닝 소드-改를 다시 가르쳤다.

    지금은 그 모든 과정이 대부분 끝나고, 마지막으로 초창기에 배웠던 중령과 김창수 중위에게 업그레이드된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도 거의 다 끝이 났다.

    "신기하군. 전보다 쏙쏙 들어오는데, 원래 이쪽에 재능이 있었나?"

    중령은 의문 반, 신기함 반으로 내게 물었다.

    "뭐, 많이 가르치다 보니 늘은 거죠. 중령님과 김 중위님이 마지막이잖아요?"

    "그런가..."

    실은 이유가 있었다. 벌써 며칠 전이지만, 유언의 퀘스트를 깬 후에 그의 능력 [하나를 가르쳐서 열의 효과를 본다.]를 배웠다. 그대로 배워봤자 lv.1이라 그냥 배우진 않았고,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교습법], D급 기술에 경험치를 옮겼다.

    그 후부터, 후보자들이 배우는 속도가 빨라졌다. 내 생각에는 달라진 게 없는데, 그들이 느끼기에는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는 듯했다. 다들 신기하게 생각했다. 예지도 '오빠에게 배우는 게 혼자 공부하기보다 쉽네요.'라고 했다.

    "어쨌든 수고했네. 이걸로 후보자들은 다들 배운 건가?"

    "네. 이제 남은 건 스스로 수련하는 거네요. 말 안 해도 다들 알아서 잘 하겠지만."

    정말 다들 열심히 했다. 하루 하루, 느껴지는 마나량이 달랐다. 천수는 그중에서도 가장 열심이라, 나도 곧 따라잡힐 것만 같았다.

    "좋네. 그럼 이제 그다음 일을 시작할 수 있겠군."

    "네."

    중령이 말하는 그다음이란, 새로 부대에 들어온 제3 전투 대원들과 선발된 군인들에게 라이트닝 소드를 가르치는 거였다.

    그런데 왜 그냥 라이트닝 소드냐고?

    그들에게 라이트닝 소드-改를 가르치지 않는 건 이유가 있었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몇 번 가르쳐본 결과, 그냥 라이트닝 소드는 쉽게 배웠지만, '개'는 어려워했다. 다 그런 건 아니고, 배우는 데 성공한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후보자에 필적할 만큼 강하다는 것. 마스터 급에 오른 사람이었다. 아마 마스터에 오르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프리타를 배울 때, 시스템이 마스터급 기술을 요구했던 것처럼 말이다.

    "부탁하네. 그들이 좀 더 활약해 줘야해. 그래야 사회가 좀 더 통합될 수 있어."

    "잘 알고 있습니다."

    후보자들은 마나 호흡법을 배우는 것으로 전투력이 두 배는 상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달랐다. 그들이 내 검법을 배우게 된다고 큰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오거도 처리하기 힘든 수준일 뿐이다.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게 될 군인들은,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조차도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령의 목소리엔 절실함이 담겨져 있었다.

    일반인과 군인을 가르치는 건 전투력과 다른 의미로 중요했다. 바람을 부르고, 불을 일으키고, 이상한 서프보드를 소환해내는 등, 후보자들의 능력은 후보자에게만 허락된 이질적인 거였다. 그런데 이제 현실에서도 마나가 생겨, 그 벽이 어느 정도 허물어졌다. 후보자가 아니라도, 물리 법칙을 뛰어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군인들.

    어제까지 마나의 '마'자도 모르던 군인들이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는 건, 일대 혁신이나 다름 없었다. 더는 이 모든 일의 책임을 후보자에게만 떠맡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도 이전보단 압박이 많이 줄었네."

    국방부 앞에 시위하는 사람들만 봐도 느낌이 왔다. 수가 절반 정도로 줄었다.

    "그러나 아직 일세. 이 일들이 좀 더 공론화되고, 후보자와 비후보자가 나뉘지 않아야 하네. 몬스터들의 수준이 이 정도에 머문다면, 현재 상태도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을 테니까. 군인들은 될 수 있는 한 많이 보내겠네. 그럼 그중 한 명은 마나를 깨우치겠지. 자네가 고생하겠군."

    "...괜찮습니다. 수당만 잘 챙겨주신다면야. 한 명이든 천 명이든 같으니까요."

    "하하하, 수당을 잘 챙겨 주겠네. 며칠 새에 마인드가 변했구먼?"

    "저도 '그다음'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딸린 식구도 많은데요."

    가족과 예지와 예지의 가족과... 이런저런 얼굴들을 떠올리는데, 김 중위가 정곡을 찔렀다.

    "아, 네가 입이 닳도록 자랑하는 동거인 말인가?"

    "네? 아, 하하하. 그렇죠. 뭐."

    물론, 내가 자랑은 많이 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김 중위가 너무 과묵해서 나만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닌가?

    + + +

    그로부터 두 달. 해를 넘겨 2016년이 되었고, 새해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세계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오크, 오거를 시작으로 리자드맨, 늑대인간, 거대 거미와 거대 개미까지, 각종 몬스터들의 홍수 속에서도 잘 버티고 있었다.

    세계를 유지하는 건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후보자의 존재. 몬스터와 동시에 나타난 후보자가 사회의 붕괴를 일차적으로 막았다. 두 번째는 정신 계통 능력을 쓰는 후보자. 그들의 힘은 사회 혼란을 막아 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헌터. 마나를 깨우쳐 몬스터와 싸우는 사람들은 사회가 둘로 나뉘는 걸 막았다.

    그 세 가지가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질 수 있었던 세계를 버티게 해준 공신이었다.

    그중 헌터는 최근에 생긴 직업이었다. 한국 정부에서 내어준 검법을 익혀 마나를 깨우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몬스터와 직접 싸우는 사람들의 총칭이었다. 대부분 정부나 군대에 속해 있었고, 유럽에서는 후보자와 헌터를 합쳐서 부르기도 했다.

    헌터는 마나를 쓰며 치고 받는 것만 하진 않았다. 러시아에서 푼 레이저 무기도 썼다. 물론, 어느 것을 쓰든, 그들이 죽음과 접해 있다는 건 다르지 않았다. 대신 그만큼 보수가 많았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에, 죽지만 않으면 충분히 안정적인 직업이었다.

    그 수가 아직 많지는 않았지만,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 싸움을 즐기는 사람들, 스스로의 능력을 시험하려는 자들이 헌터가 되었다.

    하지만 후보자들과 헌터들의 헌신과 활약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늘 아슬아슬하게 유지됐다. 몬스터가 나타나면서 사라지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마침내 내 주변에도 발생하고 말았다.

    그날은 오랜만에 출동한 거였다.

    가르치는 쪽을 담당하고 나서는 잘 출동하지 않았다. 몬스터가 나타나는 횟수는 늘었지만, 몬스터의 수준은 두 달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직도 최강 몬스터는 오거였다. 그 덕에 내가 나갈 일이 확 줄었다. 대부분이 다른 후보자들과 헌터들의 손에서 해결됐다.

    그러다 가끔 출동했는데, 그 날이 그런 날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검강을 형성하고 거대 거미들을 썰어갔다. 쉬웠다. 다른 거미들 보다 두세 배 몸집이 큰 대장격 거미의 공격만 조심하면 됐다. 다른 거미들의 공격은 가벼웠고, 느렸다.

    금방 끝냈고, 마침 담당이 천 소위라 잡담을 나누다가 돌아가려 했다. 출동은 없겠지만, 오늘도 가르칠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내 생각을 멈추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흐윽, 헝, 허."

    "아냐, 정신 차려! 아냐! 쿨럭. 제발, 정신 좀 차려 봐, 아냐!"

    정리가 한창인 몬스터 발생지로 달려가려는 아냐 누나와, 그걸 막는 유비가 보였다. 누나는 무표정으로 의미가 없는 소리만 계속 내며 몸을 움직였고, 유비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누나를 막고 있었다.

    둘 다, 슬퍼 보였다. 무슨 일인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우려했던 일이 결국 발생하고야 만 것이다.

    그쪽으로 달려갔다.

    "아냐누나, 유비누나. ...무슨 일이에요?"

    "강민? 너 마침 잘 왔어. 윽, 빨리 아냐를 좀 막아."

    "흐윽, 어어어."

    누나의 상태는 심각했다. 나도 못 알아볼 줄은 몰랐다.

    "빨리!"

    유비의 재촉에 누나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다. 유비가 힘이 부족해서 날 부른 건 아닐 것이다. 내 존재로 인해 누나가 안정되기를 바란 거겠지. 나는 고개를 바동거리는 얼굴을 고정하고, 초점 없는 눈을 바라봤다.

    "누나, 아냐 누나. 저예요. 강민. 민이에요. 아무 일 없으니까, 지금은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좀 진정해요."

    "어버버..."

    "...강민, 그것밖에 안 돼...? 욱. 젠장! 어떻게 좀 해 봐! 너도 아냐가 사라지길 바라진 않잖아!"

    사라져...?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불길한 예감만 가득했다. 누나를 꽉 껴안았다. 거미가 있는 장소로 움직이려는 누나를 멈추고는 귀에 대고 천천히 속삭였다.

    "누나, 정신 좀 차려 봐요. 누나, 제발요. 이러면 제가 슬퍼요. 누나, 저도 여기 있고, 유비도 여기 있고, 누나도 여기 있으니까... 정신을 차려야 해요. 쓸려 가면 안 돼요."

    "그래, 나도 여기 있으니까, 쿨럭. 아냐. 나도 여기 있으니까, 제발..."

    유비는 나와 누나를 동시에 안았다. 이제 보니 그녀도 정상이 아니었다. 한 번씩 기침을 하는데, 피 냄새가 확 풍겨왔다. 이건, 내가 예상한 것보다 심각한 일이 벌어진 듯했다.

    힐을 쓰고, 간절히 바랐다. 누나가 진정되기를, 누나가 돌아오기를.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까, 겨우, 누나가 입을 열었다.

    "...민...?"

    "네! 누나, 저예요! 민이에요! 정신이 좀 들어요?"

    아냐 누나의 눈에 초점이 들어왔고,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녀는 두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민이구나. 그런데 여기는..."

    "..."

    "..."

    유비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유비에게 눈치를 줬지만, 그녀는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지?

    "...유비야, 선희는? 선희는 어디 있는 거야?"

    "..."

    유비의 침묵에 누나는 나를 뿌리치고 유비의 어깨를 붙잡았다.

    "...왜 말이 없어? 선희는? 집에 먼저 간 거지? 그런 거지? 그렇다고 얘기해 줘! 그렇다고 얘기해 달라고!"

    "..."

    계속되는 유비의 침묵에 누나는 유비를 잡고 흔들다가, 무릎에 힘이 풀린 듯, 유비의 몸에 완전히 기대었다.

    "흑, 내, 내가 본 게 거짓말이라고 해 줘... 선희가, 선희가 왜..."

    "...미안해."

    "왜, 왜 그냥 뒀어? 너라면 구할 수 있었던 거 아니냐고! 왜! 흐으윽."

    "...미안... 너를 구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이었어..."

    유비의 뒷말은 내 귀에나 겨우 들릴 정도로 작았다. 그 말의 뜻을 깨달은 난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젠장.

    ============================ 작품 후기 ============================

    130편에서 나온 레이저 신무기 개발국을 영국 -> 러시아로 수정합니다.

    @tlstmdals 조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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