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32화 (132/160)
  • 132화

    마나가 발생하고 삼일, 중령이 나를 찾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강민군, 부탁이 있네."

    "...또 무슨 어려운 부탁을 하시려고..."

    "자네의 기술, 외국에 전파해도 되겠나?"

    빠르다.

    그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마나가 발생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정보가 이렇게 공유되고, 이런 요청이 들어오는 걸까.

    그리고 놀랐다. 이 사람은 대체 언제부터 외국의 후보자 그룹과 공조를 맺어온 걸까. 언제부터 이런 짐을 떠맡은 걸까. 나는 퀘스트를 깨는 것만도 벅찼는데, 그는 달랐다.

    다행이었다. 누군가 이렇게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인류가 따로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서로에게 빚질 수 있어서.

    "이미 공개된 것, 더 공개된다고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

    "고맙군."

    그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려 하는 걸 만류했다. 그의 인사를 받기에, 내가 한 일은 너무 작아 보였다.

    "괜찮습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보다 그럼 제가 가야 하는 겁니까?"

    외국이 어디를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천수가 있으니 거리와 상관없이 갈 수는 있다. 그가 좀 고생하겠지만, 그 정도야 흔쾌히 해줄 것이다. 그는 요즘 마나를 배우고 싱글벙글한 상태였다.

    "아닐세. 그 쪽에서 오기로 되어 있네. 두 사람이 와서 배우고 가기로 했네. 그럴 수 있겠나?"

    한국 내에 있는 후보자들에게는 내가 직접 가르쳤다. 천수 같은 몸치만 있는 건 아니라서, 다들 쉽게 쉽게 배웠다. 그걸 고려하면, 내게 배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가능할 것 같긴 하네요. 해보면 알겠죠. 문제가 생기면 그때 풀면 될 테고요."

    "그렇지. 좋은 자세야."

    "그럼, 내일쯤 오는 겁니까? 모레?"

    "자네가 허락했으니, 모레 아침 정도에 올 걸세."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모두 몸이 달아 있었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혹은 이 퀘스트를 끝내기 위해서 열심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괜찮다가도, 한 번 죽고 나면 눈이 돌아가니까. 이렇게 미치든지, 아니면 진짜 미치든지, 둘 중 하나다.

    "아, 그리고 자네게에도 좋은 소식이 있다네."

    "뭡니까?"

    "그녀들 중 한 명이 S급 마나 호흡법을 익히고 있다네. 자네에게 그걸 가르쳐 줄 수 있다더군."

    "오호, 좋은 일이군요. 그런데, 그러면 왜 굳이 제 기술을 배우러 오는 겁니까?"

    "호흡법이 조금 이상하다더군. 가르쳐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고 하네. 마나가 안착이 안 된다던가? 자네라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방문에는 그런 목적도 있네. 파악된 바로는 자네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호흡법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네."

    신기하네. 왜 그렇지? 움직이면서 배우는 거라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그랜드 마스터라서? 어쨌든, S급 기술을 배울 수 있다면 내게 좋은 일이지. 그쪽 예상처럼 나는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고.

    "궁금해지네요. 모레 아침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나도 기대하고 있겠네. 자네라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다시 한 번 고맙네."

    + + +

    그게, 그저께의 일이었다. 그리고 침공이 시작되기 전, 이제 막 해가 떠오르고 있는 이 시점에 나는 두 명의 후보자와 만났다.

    하얀 머리, 푸른 눈, 무표정한 작은 얼굴, 가슴에 겨우 올법한 키.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진 두 소녀는 옷도 나풀나풀 거리는 걸 입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게 현실이지, 영상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심지어 한 소녀에 입에선 유창한 한국어도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다리아 드미드리예바라고 합니다. 이쪽은 언니인 알리나. 언니는 한국어를 못하니 양해해 주세요."

    소녀, 다리아는 그렇게 말하곤 치마를 잡아 살짝 들면서 인사했고, 옆에 서 있던 언니, 알리나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강민이라고 합니다."

    허겁지겁 말을 이으며 허리를 꾸벅하고 숙였다. 왠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인사가 많이 늦어 버렸다. 중령이 '그녀'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이런 소녀들이, 그것도 아름다운 소녀들이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

    알리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데, 다리아가 알려줬다.

    "편하게 알리나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희가 어리니, 괜찮습니다. 한국에서는 그게 일반적일 테니까요."

    내 속에 들어와 본 듯한 태도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에 깜짝 놀랐다. 외모나 이름이 러시아 사람 같은데, 러시아에선 한국에 대한 교육을 따로 하는 건가? 아냐 누나도 그렇고, 형들도 그러더니, 이 사람까지...

    "그럼 알리나씨 라고 하겠습니다. 알리나씨도 잘 부탁드립니다."

    알리나, 그러니까 오른쪽에 서 있던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딱 봐도 쌍둥이인 둘은 구분하기가 매우 힘들어 보였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쪽이 동생, 못하는 쪽이 언니, 이런 거라고 없었으면 정말 곤란했을 것이다.

    "그럼 이제 시작하게나. 침공이 시작되면 부르지."

    우리가 있는 곳은 중령의 집무실이었고, 그는 축객령을 내렸다. 모든 일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진행하는 게 이 부대의 특징이니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만은 아닌 듯했다. 중령의 표정엔 다행이라는 게 드러나 있었다. 마치 이들을 내보내게 되어 기쁜 것 같았다.

    대체 이 아름다운 소녀들을 왜?

    + + +

    10분도 안 돼서, 중령이 지은 표정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

    "..."

    다리아와 알리나는 감정 표현이란 게 거의 없었다. 인형 같은 외모에, 무표정한 얼굴일 때부터 예상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말을 할 때는 그나마 낫지만, 그 말이란 것도 딱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

    나도 말을 길게 하는 편은 아니니, 사실 편해야 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이 둘에 대해선 어쩐지 편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침묵하고 있는 둘을 보면, 왠지 내가 한없이 잘못한 것만 같아 안절부절못했다.

    그래서 '어디에서 오셨나요?', '비행기는 어떠셨는지요?', '한국어는 어떻게 배우셨나요?' 등의 실없는 소리를 했고, '러시아입니다.', '편안했습니다.', '저절로 알았습니다.' 등의 딱딱한 대답만을 들었다.

    그렇게 무도장으로 이동하면서, 나는 겨우 대화를 이어가는 걸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면서도 한쪽에서는 계속 아쉬워했다.

    이 감정은 대체 뭘까? 외모 때문인가? 아니면 분위기?

    "너무 의문을 가지지 마세요. 이해로는 닿기가 어렵습니다."

    무도장에 도착한 후, 다리아는 이번에도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한 말을 했다. 나를 쳐다보는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고개를 두어 번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그녀의 말대로, 신경 쓰면 나만 손해일 것 같았다.

    죽도를 들고 와 나누어 주었다. 가는 팔에 죽도를 들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두 소녀는 가볍게 죽도를 들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가르치려는 건 '라이트닝 소드'의 호흡법입니다. 이 호흡법은 움직이면서 하는 거라, 라이트닝 소드의 기본 연계기를 따라 하셔야 합니다. 물론 이거 없이 할 수도 있지만, 동작을 따라 하면서 호흡하는 게 훨씬 접근하기 쉽습니다. 먼저 제가 한번 펼쳐 보겠습니다. 일단은 흐름이라도 익혀두세요."

    다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알리나에게 뭐라고 빠르게 말했다. 이어 알리나도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라이트닝 소드를 펼쳤다.

    탁.

    다시 원래의 기수식으로 돌아왔을 땐 5분 정도 지나 있었다.

    "자, 어떻습니까? 하실 수 있겠습니까?"

    못할 리는 없겠지만, 예의상 물어본 거였다. 외모는 이런 일을 전혀 못 할 것처럼 생겼지만, 그녀들도 후보자였다. 온갖 퀘스트를 겪었을 테고, 이 정도는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나처럼 죽도를 들더니, 라이트닝 소드를 펼치기 시작했다.

    스윽, 휭, 휘익, 화라락.

    죽도가 공기를 가르며 내는 바람 소리와 펄럭이는 치마가 내는 소리가 교차했고, 가는 팔과 작은 몸으로 만들어내는 곡선이 아름답게 허공을 수놓았다.

    "아..."

    아름다웠다. 그냥 아름다웠다. 완성도는 부족했다. 내가 라이트닝 소드 lv.5였을 때 펼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그냥 아름다웠다. 그리고 아쉬웠다. 무표정만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이 멀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데, 그러지 않는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탁.

    둘의 죽도는 다시 기수식의 위치로 돌아왔고, 그 끝이 천천히 내려가며 땅을 향했다. 두 소녀의 눈이 '이 정도면 됐습니까?'하고 묻고 있었다.

    "...완벽합니다."

    이번에도 내 반응은 늦었다. 꿈을 꾼듯 정신이 멍했다.

    "그, 그럼 이번엔 호흡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기수식 할 때부터, 다시 돌아올 때까지..."

    설명은 길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녀들은 이번에도 순식간에 흡수하더니, 이내 자기 걸로 만들었다. 그녀들의 움직임에 따라 마나가 흐르고, 그 몸에 들어가 원래 있던 마나와 합쳐졌다.

    "대단하네요.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한 번에 하실 줄은 몰랐는데..."

    "저희가 특이한 것일 뿐입니다. 대단한 건 당신입니다. 이 방법이라면, 다른 이들에게 충분히 가르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이번엔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다리아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배울 것이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녀들과 함께 있으면, 나사가 하나쯤 빠지는 느낌이었다.

    "설명하겠습니다. 심장에 원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안에 마나를 붓습니다. 마나가 머무를 때까지 계속 붓습니다. 마나가 회전에 회전을 거듭하다가, 결국엔 머무릅니다."

    "..."

    설명은 알 듯 말 듯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설명을 듣고 호흡법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였다.

    다리아와 알리나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라는 것이 생겼다. 내 반응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금세 사라졌지만, 분명 실망의 눈초리였다.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리아는 눈을 감고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마나는 두 손 사이에 모였고, 이어 가슴으로 들어갔다. 심장에는 큰 원이 있었고, 마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마나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심장의 원은 무슨 문처럼, 마나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신기한 점은, 원 안에 들어간 마나가 요동치는 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그러든 말든 그녀는 계속 마나를 집어넣었다. 마나는 넣으면 넣을수록 더 요동을 치다가, 폭발할 듯 날뛰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기적처럼 조용해졌다. 그녀는 조용해진 원을 작게 만들었고, 심장의 위에 놓았다.

    모든 과정이 끝난 후, 그녀의 마나는 약간 늘어나 있었다. 라이트닝 소드보다 효율이 높았다. 역시 S급 기술이었다.

    "어떻습니까?"

    "...알 것도 같군요. 시간을 좀 더 주시겠습니까?"

    퀘스트 속에서 마법사로, 정령사로, 검사로, 주술사로 있으면서 마나를 다뤘던 경험들이 합쳐져 무언가를 알려줬다. 그리고 라이트닝 소드 그랜드 마스터로서의 지식과 감각이,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어떤 것을 잡아냈다.

    "..."

    "..."

    "..."

    죽도를 들고, 죽도를 둥글게 만들었다. 그건 실제가 아니라, 내 안의 심상이었다. 검끝과 손잡이가 맞닿아, 검의 안과 밖을 나누었다. 그 안으로 마나를 이끌었다. 마나는 안으로,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안에서 요동치는 마나를 가라앉히고, 튀어나오려는 마나를 다시 집어넣고, 안에서 머무를 때까지 밀어 넣고, 또 밀어 넣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나가 가라앉았다. 마나는 자연스레 검 안, 죽도의 끝으로 들어가 한 바퀴 돈 다음 손잡이에 다다랐다. 그리고 내 안으로 들어왔다. 팔의 마나 로드를 따라 들어온 마나는 심장에 안착했다. 마나가 순식간에 두 배쯤으로 불어났다.

    그 뒤로도 나는 멈추지 못했다. 계속 죽도가 만들어낸 원 안으로 마나를 집어넣고, 가라앉히고, 몸 안으로 옮기고를 반복했다.

    그 과정이 수십 번쯤 반복되고, 가진 마나가 이전의 5배 정도로 늘었을 때, 나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칼춤을 췄다.

    탁.

    [S급 디멘젼 서클(Dimension Circle)을 배우셨습니다. lv.4 58.34%]

    [A급 라이트닝 소드가 S급 라이트닝 소드-改 로 바뀝니다. 레벨은 그대로 이어집니다. Grand Master 53.43%]

    "성과가 있으시군요. 축하합니다."

    아직 멍한 나를 반긴 건, 여전히 무표정인 다리아의 말이었다.

    ============================ 작품 후기 ============================

    @낡은이 예전에 마나가 있진 않았습니다. 평행 세계에서 발전한 무술이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긴팔 원숭이 제3 전투대는 일반인 능력자들을 위해 새로 만든 겁니다. 그 전엔 수도권 강원도를 책임지는 제1 전투대와, 남부를 책임지는 제2 전투대가 있었습니다. 포권은 뭐... 하하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