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31화 (131/160)
  • 131화

    천수가 출동한 후에 나도 한 번 출동했다. 그 후엔 다시 국방부 상황실로 돌아와 대기했다.

    상황실 디스플레이에서는 전국의 사건 발생 상황이 계속 갱신되고 있었다. 침공 시작 후, 3시간 경과했고, 몬스터 침공 횟수는 합계 80번이었다.

    '국지전이 80번 발생했다는 건데, 예상보다 반발이 적다. 그게 다 저 사람 때문이겠지.'

    상황실 중앙엔 중령이 앉아 있었다. 그는 지금 상황실 통제를 함과 동시에, 언론 대책을 세우는 중이었다. 그는 바빴다. 그가 매번 그의 힘으로 언론과 사람들의 의문, 반발은 억눌러도, 그건 다시 올라왔다.

    이 조그만 나라에 총격전이 하루에 80번씩 발생한다. 오늘 하루 잊더라도, 내일이 되면 다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건 왜 이러는 거지?', '나라에선 뭐하는 거야.', '밖에 나가도 될까?' 등등.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의 침공이 더 심해지니, 그는 그만큼 더 강하게 눌러줘야 했다.

    그중에 가장 큰 문제는, 사라지는 사람들이었다.

    몬스터 침공과 동시에 사라지는 사람들, 시체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 사람들 사이에 불안이 사라질 수가 없었다. 요즘은 군대와 경찰의 대처도 좋아졌고, 사람들의 대피도 빨라져서 몬스터에 의한 직접 사상자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80번의 침공이 발생한 오늘도, 실제 사망자는 5명, 부상자는 10명 수준이다. 그러나 실종되어 사라진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났다. 지금 파악된 것만 해도 500명.

    '매일 500명이라니... 다시 봐도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의문인 수준인데?'

    국방부 앞에서 항의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만 갔다. 그에 따라 그걸 파헤치는 사람도 늘었다. 중령이 온 힘을 발휘하여 막지만, 그의 손이 다 막을 수는 없었다.

    [대이능부대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저들이 모든 것의 원흉이다!]

    상황실 한쪽에는 국방부 정문을 보여주는 CCTV도 있었다. 안타깝긴 했지만, 한편으론 야속했다. 실종자 수를 제외하고, 우리가 건넬 수 있는 정보는 다 내줬다. 그런데 저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이 위치에서 나오고 싶다고.

    "그래도 우리 상황은 나은 편이라네."

    중령이 내 시선의 방향을 안 모양이다.

    "네?"

    "아프리카 쪽은 난리도 아니라는군. 우리나라에는 보도가 잘 안되지만, 이미 망해 쪼개져 버린 국가가 몇 개 되네."

    "심각하군요. 그쪽은 정신계통 능력을 갖춘 후보자가 없나요?"

    "있긴 하겠지만, 통신 인프라도 미흡하고, 나라 자체가 넓으니까. 몬스터도 해결이 잘 안 되는 모양이더군."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잘 될 걸세. 나는 그렇게 믿고 있네."

    중령은 그 말을 끝내고 수화기를 들었다. 잠깐 이야기 하더니, 그가 나를 봤다.

    "출동입니까?"

    "음... 출동이라고 해야 하나?"

    "출동이 출동이지, 뭐 다른 게 있습니까?"

    "나도 가봐야 알 것 같아. 같이 가 보세나. 자네가 도움될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오늘 침공은 곧 끝날 테니, 조금만 기다리게나. 김 중위가 곧 오겠지."

    무슨 일이지?

    + + +

    천수, 중령과 함께 광주로 이동했다. 이동하기 전에 동영상 하나를 봤다. 놀라웠다. 영상 안에서, 도복을 입은 한 남자가 오크를 줘 패고 있었다.

    퍽, 퍽, 푹, 퍼어억! 쿵! 와장창!

    마지막에 가해진 그의 발차기에, 오크는 훨훨 날아가 건물에 처박혔다. 딱 보기에도 오크는 즉사. 화면의 남자는 분명 후보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저런 위력이라니.

    '무술가인 모양이네. 자네를 보고 싶다고 하는군.'

    '저를 왜요?'

    '싸워보고 싶다는데?'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다... 뭐, 이런 건가?

    "충성! 오셨습니까, 중령님."

    "충성. 그 남자는... 저 사람인가 보군."

    내 눈에도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남자가 보였다. 중년의 남자는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봤다. 부담스러워서 천수를 돌아봤다. 천수를 보니, 아침에 그가 보여줬던 똘망똘망한 눈이 떠올랐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요즘은 다들 다혈질인가?'

    "안녕하십니까. 대이능부대 부대장 김철곤 중령입니다. 저희 부대원을 찾으셨다고요."

    "그렇습니다.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령님께서 오실 줄은 몰랐군요. 바쁘신 분을 오라 가라 하다니... 하하하,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사람을 모으는 게 제 임무입니다. 당신이 조건을 잘 지켜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이죠. 그럼,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남자의 들뜬 목소리에 중령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내가 자신과 싸워 이기면 부대에 들어오겠다고 했다. 나도 그 조건을 수락했다. 영상으로 봤을 때, 그는 내 아래였다.

    "좋습니다."

    중령과 천수, 광주의 후보자는 나와 남자를 남겨두고 멀찍이 떨어졌다. 광주 근처에 새로 신설된 주둔 부대 건물 뒤에서 나와 도복을 입은 남자가 서로를 마주 봤다. 남자가 포권을 취했다.

    "지리산 천왕용문 52대 문주, 천구왕이라고 합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인사에 살짝 당황하다가 뒤늦게 인사했다.

    "아... 저는 대이능부대 제1 전투대 중위 강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검은 안 꺼내시는 겁니까?"

    "아, 네."

    그의 눈썹이 움찔했다. 잘못했나? 하지만 그의 실력은 검을 꺼낼 정도가 아니었다. 그게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라도,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하앗!"

    땅을 박차고 나에게 달려오는 그는 빨랐다. 단거리 육상 선수의 속도보다 빠를 듯했다. 그러나 내 눈엔 훤히 보였다.

    탁.

    그의 주먹은 내 팔에 막혔다. 묵직했다. 영혼을 담지 않았다면 팔이 부러졌을 것이다. 그의 공격이 이어졌다. 이번엔 아래. 그는 자세를 낮추며 다리로 내 아래를 쓸어왔다. 가볍게 뒤로 뛰어 피했다. 그는 그것도 예상한 듯, 당황하지 않고 바로 주먹을 뻗어왔다. 물 흐르는 것처럼 아름다운 연계 공격이었다.

    팡, 탕, 퍽, 턱.

    하지만 그뿐, 그의 공격은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스피드가 나보다 느렸고, 허를 찌를 만한 기상천외한 공격도 없었다. 그 나름대로는 몇 번 회심의 일격을 한 모양이지만, 눈에 보이니 그게 회심의 일격인지 분간이 잘 안 갔다.

    탁, 타닥.

    실력 차가 컸다. 그에게 좀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검을 들게 하기엔 너무 실력이 부족했다.

    "헉, 하아앗!"

    그는 최선을 다했다. 공격이 다 막히는 걸 보면서도, 힘을 더 쏟았다. 그의 공격은 처음보다 빨라졌고, 강해졌다. 주먹 하나하나에 의지를 더하는 그를 보니, 이러고 있기에 미안했다. 그의 실력은 충분히 봤으니, 슬슬 공격할 시점이었다. 그의 주먹을 피하며 가슴을 손바닥으로 쳤다.

    펑!

    그의 몸이 공중에 떠 뒤로 멀찍이 날아갔다. 그는 공중에서 다시 자세를 잡고, 착지했다. 바로 일어났지만, 충격은 충분히 가해졌다. 그의 왼손이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허억. 하아. 하아."

    "계속하시겠습니까?"

    다치지 않게 힘 조절은 했다. 그래도 이 이상은 무리일 것이다. 그의 눈빛도 흔들렸다. 그는 잠시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더니,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했다.

    "제가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즐거운 대련이었습니다."

    중령이 앞으로 나왔다.

    "천구왕씨? 놀라운 실력입니다."

    "부족한 솜씨입니다. 강민 중위야말로 정말로 뛰어나군요.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던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좀 더 정진해야겠군요."

    "하하하.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강민 군은 후보자입니다. 일반인인 당신과는 출발도 과정도, 전부 다 다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게 당연하지요."

    그게 맞다. 마나가 나타난 지 이제 이틀. 그 사이에 벌써 마나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그의 실력이야말로 놀라웠다. 나야, 그저 시스템 빨일 뿐이다. 상응하는 대가는 치렀다고 생각하지만.

    "후보자라... 좀 전에 듣기는 했는데, 그게 대체 뭡니까? 제가 지난 몇 달 동안 산속에서 수련을 거듭하다 보니, 세상에 좀 어둡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게 바뀌었더군요."

    많은 게 바뀌었다. 고작해야 몇 달 사이에. 퀘스트를 시작한 거로 치면, 고작해야 1년하고도 2달. 그 짧은 시간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부분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들어가서 하도록 하죠."

    "좋죠."

    "강민군? 자네도 같이 가게나. 김 중위도 같이."

    "알겠습니다."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후보자와 몬스터, 그리고 마나에 관해서.

    그는 마나, 즉 기가 어제부터 생겼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그동안 했던 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기를 쓸 수 있는 건 그 수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자, 다시 기뻐했다. 좀 오락가락했지만, 결국 즐거워했다. 어쨌든, 평생의 소원을 이뤘으니까.

    그는 약속했던 것처럼 부대에 들어왔다. 중령은 그를 싸움보다는 교육에 쓰려고 했다. 중령은, 그와 같이 스스로 마나를 사용하는 자들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 일반인들에게도 마나를 가르치고, 싸움의 기회를 주려고 했다.

    그렇게 천왕용문 52대 문주, 천구왕은 대이능부대 제3 전투대 소속이 되었다.

    + + +

    "어때요, 괜찮아요?"

    천구왕 상사. 제3 전투대 최고참이자 계급이 가장 높은 이. 이제 부대에는 그 말고도 일반인이 열 사람 정도 더 있었다. 그 이후로 그처럼 마나를 깨우친 수련자들이 나와 몬스터를 없앴고, 중령은 바로바로 가서 스카웃 해왔다.

    그들의 계급은 부사관으로 정해졌다. 급박한 상황일 때는 후보자들의 명령을 듣지만, 평소에는 서로 존중해줘야 하는 사이. 군부대 소속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평균 연령이 높은 제3 전투대원들은 군의 계급에 상당히 민감해서 이런 구분이 필요했다.

    현재 천구왕 상사, 나나 재희씨가 천 아저씨라고 부르는 남자는 라이트닝 소드의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중령의 부탁으로 서로의 기술을 교환하는 중이었다. 어느 기술이 더 뛰어난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렇다 치고, 그가 흔쾌히 허락했다는 것에 조금은 놀랐다. 나야 느끼고 있는 부담감이 장난 아니고, 모두를 강하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내놓은 거였다. 그렇지만 그는 52대나 문을 이끌어 온 사람이었다. 문의 비전을 내놓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중령에게 세뇌라도 당한 건가? 혹은 우리의 심정에 동의하는 건가? 궁금증이 솟아올라 시작하기 전에 물어봤다.

    '제가 손해 볼 것이 어디 있습니까? 척 봐도 강 중위님의 능력이 더 좋아 보입니다. 이런 건 행운이라고 해야 맞지 않습니까?'

    '그래도 기술을 내놓으면 다른 이에게 전수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강 중위님의 행동에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제 행동에요?'

    '꼭꼭 숨기고 가지고 있어 봐야 발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혼자 천왕권을 발전시키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이 함께 고민하는 게 더 빨리 발전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강해지기를 원할 뿐입니다.'

    천왕권은 그의 문파, 천왕용문의 비전 권법이다.

    이 사람은 검귀 하인리히 백작과 비슷했다. 이런 마음가짐이면, 금방 마스터에 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별로입니다. 제 몸에는 안 맞는 듯합니다. 혹은 천왕권과 호환이 안 되는 경우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의 주변 마나의 흐름으로도 알 수 있었다. 천왕권을 펼칠 때보다 주변 마나의 움직임이 정적이었다. 그는 잠시 더 라이트닝 소드를 펼치다가 죽도를 내려놓았다.

    "그럼 제 차례네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일단 가부좌를 할까요?"

    "맞습니다."

    천왕권에 있는 심법은 무협지에 나오는 것처럼 가부좌를 하고 호흡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가부좌를 하니까, 그가 내 등 뒤에 와서 섰다.

    "혈도 몇 곳을 찍어 드리겠습니다. 제가 찍는 곳으로 기... 그러니까 마나를 움직이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운공 중에는 입을 열지 마십시오. 아프더라도, 참으셔야 합니다."

    "..."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손가락을 댄 곳은 단전이었다. 라이트닝 소드는 단전에 마나를 모으지 않고, 심장 부근에 모았다. 그래서 심장에서 단전으로 마나를 움직여야 했다. 이어 그가 가리키는 대로 몸 곳곳에 마나를 움직였다. 걸리는 건 없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혈도가 깨끗하지 않으면 엄청나게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시원했다. 아주 상쾌한 느낌이었다.

    한 바퀴 돌리고 나자, 그가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시원하군요."

    "호오. 역시, 몸이 좋으신가 봅니다."

    "뭐, 그렇겠죠."

    그랜드 마스터의 몸이 안 좋을 리 없다. 내가 한 건 아니지만.

    "그럼 천왕권은 라이트닝 소드에 비해서 어떻습니까."

    그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라이트닝 소드가 강해보인다고 했지만, 은근히 기대하고 있나 보다. 천왕권이 더 좋은 기계이기를.

    그러나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B급 천왕심법을 배우셨습니다. lv.1 70.38%]

    이런 기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시스템은 알아서 알려줬다.

    "아쉽게도, 라이트닝 소드가 더 좋군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더 나아갈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언젠가는 라이트닝 소드를 뛰어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쉽지는 않겠지. 최소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기대하죠. 그러나 라이트닝 소드도 그동안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오호,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런데, 어째 확신에 찬 모습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그가 내 얼굴에 걸린 미소의 이질감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가 짐작한 대로, 내 미소는 단순한 호기가 아니다. 근거가 있었다.

    "내일 외국에서 S급 기예를 가진 자가 옵니다. 기술 교환차 오는 건데, 기대가 됩니다. 라이트닝 소드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아직 천왕권을 수련 중인 그와 달리, 나는 라이트닝 소드 그랜드 마스터였다. S급 마나 호흡법의 정수를 깨닫는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라이트닝 소드를 고칠 수 있다.

    "축하드립니다. 그럼 그 기술도 가르쳐 주시는 거겠죠?"

    "그거야 가보면 알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더 좋은 기술이 된다면, 아마도 나누게 되겠지. 그가 천왕권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다음'을 위해서.

    ============================ 작품 후기 ============================

    어제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웃어 주셔서 깜짝 놀랐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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