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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퀘스트-130화 (130/160)
  • 130화

    "피하십시오! 유언.... 쿨럭."

    암살자들은 긴말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줬다. 유언과 십 년 동안 같이 지냈던 집사 한스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대신 그의 피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네 놈... 크헉!"

    호위 기사 크럭스도 운명을 같이했다. 그 역시 유언과 오래도록 같이했던 사람이다. 유언의 마음이 찢어지려 했다.

    "으아각!"

    "살려... 우윽!"

    하지만 상황은 그의 마음이 찢어질 시간도 주지 않았다. 데리고 온 사람들은 급이 다른 암살자들의 손에 동시에 죽었다. 유언만이 남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움의 비명을 질렀다.

    '안, 안 돼!'

    그러나 그의 말은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내가 그의 몸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몸에 들어왔지만, 나는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학자답게 육체 성능이 최악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마나가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칼로 싸우는 것보다는, 다른 수를 써야 될 것 같다.

    "이프리타!"

    화르륵.

    [없애 버려!]

    [오랜만에 시원한 명이군. 알았다.]

    "..."

    암살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불꽃 여우에 움찔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달려들었다. 불꽃이 있다면 피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몇몇은 멀리서 단검을 던지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쓸모가 없었다.

    화라락.

    단검은 이프리타가 생성한 막에 막혔고, 직접 공격해 들어오는 자들은 불에 타 넘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불을 끄려고 땅 위를 이리저리 뒹굴었지만, 이프리타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슈우웅.

    이프리타의 꼬리가 여러 개로 분리되더니, 놀라고 있는 암살자들에게 날아갔다. 이 세계는 이능이란 게 없다. 그들이 암살자의 본분을 잊고 정신을 판 걸 비난하긴 어려웠다. 그게 그들의 죽음과 관련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채찍에 목이 졸려 타들어갔다.

    이프리타는 뒤처리도 깔끔하게 했다. 그녀의 불은 정확하게 암살자들만 태웠다. 암살자들이 나뒹군 풀도, 그들이 기대었던 나무도, 그 어떤 것도 타지 않았다.

    [죽은 사람은 어떻게 하지?]

    [잠깐만.]

    죽은 사람에 대한 처리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을 못 하는 유언이 진정된 후에 결정할 문제였다.

    '이... 이게?'

    [마흔한 번째 퀘스트, 유언과 다일럼 부흥군이 만날 수 있도록 도우세요!]

    퀘스트는 쉽군, ...쉽겠지?

    + + +

    퀘스트를 거의 완료할 뻔했다. 바람의 정령을 보내, 다일럼 부흥군의 위치를 확인했으니 구부능선을 넘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찾은 후, 정령을 타고 날아가는 데 퀘스트가 끝나 버렸다.

    아쉽군.

    하지만 한 편으론 다행이다. 내일 밤은 편히 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눈을 뜨니 천장이 보였다. 이 방에서 눈을 깬 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그건 내 코에 닿는 찌개 냄새 때문일 거다. 원래 내 방엔 이런 냄새 따위 나지 않았다. 이건 김치찌개인가?

    슬며시 상체를 드니, 예지의 등이 보였다. 그녀는 앞치마를 두르고 싱크대에서 요리하고 있었다.

    아침, 여자친구, 앞치마.

    간밤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거 꿈꾸는 건 아니겠지?

    천천히 일어나 예지에게로 다가갔다. 뒤에서 확 놀라게 해주고 싶어 조용히 움직였는데, 가까이 가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요리하고 있었다. 나는 뒤에서 그녀를 안았다.

    확.

    그런데 생각보다 무덤덤하다. 놀랄 줄 알았는데.

    "어? 알고 있었어?"

    이어폰 한쪽을 빼서 내 귀에 꽂는다. '외국에서 찍은 영상입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꽂고만 있었던 건 아닌데, 어떻게?"

    "바보, 싱크대에 다 보이거든요?"

    그녀가 싱크대 선반을 가리켰다. 집 싱크대가 반질반질해서, 거울 수준은 아니어도 형상은 대충 보였다. 그곳에 내가 움직이는 게 보인 모양이다.

    "바보 맞네."

    "그런데 아침부터 뭘 듣고 있었던 거야."

    "들어봐요. 화면은 저기."

    냄비와 도마 사이에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화면에는 레이저로 몬스터를 도살하는 장면이 나왔다. 귀에서는 앵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러시아에서 개발한 신무기라고 합니다. 충전도 전기만 있으면 돼서 간편하고, 반동도 거의 없다고 하는군요. 보시다시피 위력도 강력합니다. 몬스터를 한 방에 없앨 수 있습니다.]

    레이저라, 특이한 능력이네...? 뭐, 신무기?

    "이, 이건 뭐지? 뭐 이런 게?!"

    "어제부터 뉴스에 나오던 건데, 모르고 계셨어요?"

    "응. 처음 들어."

    "영국에서 그저께 선보인 거예요. 우리도 들여와야 한다고 난리예요."

    확실히 좋아 보이긴 했다. 그런데 저런 걸 들여올 수 있나?

    "관리가 어려워서 들어올 진 잘 모르겠지만요.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데요?"

    "응? 아..."

    지금 그녀를 뒤에서 안고선 그녀의 목에 턱을 괴고 있었다. 볼과 볼을 맞대고 있으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계속 있으면 안 될까?"

    "...저야 상관없지만, 연락이 왔어요."

    "...쳇, 누구한테?"

    "천수씨한테요. 일어나면 빨리 보내 달래요. 다 외웠다는데요?"

    어제 동영상 찍어 가더니, 밤을 샌 건가? 퀘스트 끝나고 쉬는 기간이라더니... 나는 왜 차별이야? 밤새면 퀘스트 하는 동안 멍해서 그런 짓 못하잖아.

    "그런데 왜 다들 너한테 연락하는 거야?"

    "...몰라요."

    그녀의 볼이 뜨끈뜨끈해지는 이유는 뭘까? 내가 너무 자랑하고 다녔나?

    + + +

    "그렇게 급했냐?"

    "당연하지. 마나! 마나! 마나!"

    아침부터 부르는 건, 그만큼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은 나를 보자마자 보채는 천수를 보자 싹 사라졌다. 이 자식, 그냥 검기를 쓰고 싶은 거야.

    "일단 해 봐."

    "오케이!"

    천수는 죽도를 쥐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엔 한도 끝도 없었지만, 그의 동작은 나름 정확했다. 호흡법을 가르쳐줘도 괜찮아 보였다.

    "후우... 어때?"

    "좋아, 그 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호흡법을 알려 줄게. 첫 동작을 할 때, 길게..."

    그는 정말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가했다. 얼마나 집중했던지, 단 한 번 만에 내가 말해주는 걸 다 외웠다.

    "그럼 해 봐."

    다 외우고 나서, 그가 기수식을 취했다. 일식은 찌르기로, 그의 죽도가 앞으로 쭉 뻗어 온다. 죽도의 끝이 흔들리지만, 호흡은 가르쳐 준대로 계속 내쉬고 있다. 그리고 그의 팔이 끝까지 펼쳐져 죽도가 더 나아갈 곳이 없어졌을 때, 그는 호흡을 멈췄다.

    "흡."

    동작이 계속 이어졌다. 베기로, 찌르기고, 내려치기로... 호흡은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강조했던 강약 조절도 말 했던 대로 잘 되고 있었다. 호흡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동작은 개판 수준이 되었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형은 유지되었다.

    우우우.

    주변 마나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의 호흡과 동작을 따라 그의 몸 주변으로 끌려갔다. 그도 그걸 느낀 듯, 잘 해오던 호흡 조절이 흐트러졌다.

    "집중해. 호흡 흐트러진다."

    그는 다시 집중했다. 마나의 흐름에 힘과 속도가 더해졌다.

    우우웅.

    마침내 그의 몸에 마나가 안착했다. 그 뒤로도 그는 계속 몸을 움직였다. 표정이 풀어졌다. 신기한 모양이다. 재밌겠지. 신기한 감각일 테니까.

    이대로 있으면 무아지경으로 들어가 그의 마나가 대폭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방해하는 소식이 있었다.

    위이잉.

    "강민군? 아직 수업 중인가?"

    "거의 끝났습니다."

    "다행이군. 자네는 올라오고, 김 중위에게는 대학로로 가라고 하게나. 지금 빨리."

    "알겠습니다."

    "부탁하네."

    천수는 아직도 라이트닝 소드를 펼치고 있었다.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럴 때는 무작정 부르면 안 된다. 한 동작이 끝나고, 다음 동작이 이어질 때를 기다렸다.

    ...지금!

    "김천수 중위!"

    "...?"

    큰 소리에 천수의 동작이 멈췄다. 어리둥절한 표정 앞에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나가야 해. 연락 왔어."

    "...어?"

    "나가야 한다고!"

    "아, 알았어. 어딘데?"

    "대학로. 지금 당장."

    "오케이."

    그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이전과 달리 그의 주변에서 마나가 요동쳤다. 1초도 안 지나 그는 사라졌다. 마나도 일부 끌려간 듯했다.

    역시, 물꼬만 열어주면 알아서 하는 건가? 그가 하는 걸 보니, 더 가르칠 필요가 없어 보였다.

    + + +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크하하하하핫!"

    지리산 깊은 곳에 있는 계곡. 보이는 거라곤 돌과 나무, 물뿐인 그 곳에서 상의를 탈의한 남자가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햇빛 아래 드러난 상체는 조각 같았다. 울퉁불퉁한 근육이 입체감을 주고, 세세하게 나눠진 근섬유가 디테일을 살렸다.

    그는 주먹을 들어 바위 덩어리를 쳤다.

    콰아앙!

    그의 주먹은 커다랗고 네모난 게, 망치처럼 생기긴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쇠도 튕겨낼 바위 덩어리가 깨지는 건 이상했다.

    콰아앙!

    그의 주먹이 움직일 때마다, 계곡의 곳곳이 박살 났다. 수십 년 동안 물의 흐름을 겪어낸 돌덩어리가, 수십 조각으로 부서져 공중으로 날았다.

    "크하하하핫!"

    비결은 그의 몸 안에 있었다. 그의 배꼽 아래에 모여 있는 작은 양의 마나가 그의 주먹까지 이어졌다. 실처럼 가는 연결이었지만, 그의 주먹은 그것만으로 말 그대로 망치가 되었다.

    "반백 년 고련이 헛되지 않았구나!"

    그는 정말로 기뻤다. 무술에 빠져 기를 찾아 헤맨 지 30년, 그는 드디어 기의 존재를 밝혀냈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좀 짧군요.

    내일은 많이 올리도록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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