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28화 (128/160)

128화

우우웅.

특수한 철로 만든 단검이 허공에서 저 혼자 울었다. 명을 기다리고 있다는 표시일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마음속으로 명했다. 그러자 검은 미세하게,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흐음. 아직 이걸로는 안 되나.

좀 더 정신을 집중했다. 검의 움직임이 좀 더 빨라졌다. 그 다음은 손으로 방향을 지시했다.

슈우웅.

그제야 검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갔다. 금세 방을 가로지르고, 창문에 도달했다. 멈추라고 명령하고, 손짓했지만, 늦었다.

쩌정!

단검은 속도를 약간 잃었을 뿐, 창문을 깬 후 밖으로 나갔다. 한 10m쯤 더 날아가고서야 내 의지가 닿았는지 멈췄다.

뛰어가 창문 아래를 내려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없었다.

후우...

다행이다. 아래 누가 지나가기라도 했으면 유리 조각에 맞고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검의 기본 상태가 공중에 떠 있는 것도 다행이다. 중력에 끌려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귀찮은 일이 벌어졌겠지.

이기어검.

그랜드 마스터가 쓸 수 있는 기술이었다. 검에 의지를 담아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기술. 다만 쓰려면 주위 마나와 동조해야 해서 지금까지는 쓸 수 없었다.

돌아와.

검은 천천히 돌아왔다. 조금 전보다 빠른 속도였다. 머릿속에만 있던 감각과 기술이 슬슬 몸에 적용되었다. 물론, 아직 연습이 필요했다. 검강도, 검기도, 라이트닝 토네이도도 마찬가지다. 체력기반에서 마나기반으로 바꾸고, 능숙하게 펼치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했다.

부대에 연습장 같은 게 있나 문의해 볼까? 다른 건 몰라도 라이트닝 토네이도 같은 건 집에서 할 수 없으니까.

위이잉.

마침 중령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럴 거로 생각했다. 이 변화에 대해 할 말이 있을 테니까.

"강민군? 몬스터는 잘 잡았다고 들었네만. 수고했네."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용건이 있으시겠죠?"

"그렇지. 자네도 느꼈을 거라 생각하네. 일단 부대로 오겠나? 오늘 침공은 이제 막 끝났다네."

몬스터 대침공이 시작된 지 약 50일 정도, 벌써 11월이 다 되었다. 그간 밝혀진 게 하나 있었다. '오늘 침공'이란 말은 거기에서 나왔다.

몬스터는 해가 떠 있는 시간에만 나왔고, 그중에서도 한정적인 시간에만 등장했다. 9시에 시작했으면 12시까지, 12시에 시작했으면 오후 4시까지, 이런 식이었다. 그 시간은 날이 갈수록 계속 늘어났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몬스터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몬스터를 잡은 게 거의 두 시간 전인데... 그동안은 서울 쪽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계속 나온 모양이었다.

여기서 다른 지역이란 한국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북한에 일본, 중국 일부를 포함한 거다. 부대는 다른 나라와 연계해 오늘의 침공 시간을 파악하고, 침공이 끝났다고 공개하게 된다.

"가죠."

나가기 전에 사장한테 전화했다. 유리 깨진 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니까 마구 화를 내더니 자기가 알아서 하겠단다.

그는 가게를 접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알바를 구할 생각도 없고, 예지가 없으면 손님도 없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 덕에 바리스타 누님은 실직자가 되셨지만, 임대업자 남자친구가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사회는 나름 잘 돌아가고 있었다.

분위는 흉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전보다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준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한정적인 시간에만 침공이 일어나서인지, 그 밖에 큰 문제는 없었다. 중령의 정신 조작도 단단히 한몫했다.

여기에 마나가 더해지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 + +

국방부 건물 중간쯤에 있는 회의실에 들어갔다. 몬스터 대침공 이후 수면 위로 올라온 부대는 국방부 건물을 마음껏 사용 중이었다. 요즘 가장 핫하니, 그만큼 입김도 샌 듯했다. 그러지 않더라도 중령이 있으니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절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중령은 착한 사람? 아무튼,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니까. 중령이 '미친 후보자'들처럼 미쳐 버렸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미친 후보자.

칠곡에서 폭발을 일으키고, 백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던 후보자 공준수. 우리는 그 사람을 미친 후보자라 불렀다.

미친 후보자는 그 이후로도 몇 명 더 있었다. 8명 정도인가? 내가 사살에 참여한 것만 다섯 명이니, 더 있긴 할 것이다. 굳이 알아보진 않았다. 죽은 이들에 관해 물어보는 건 께름칙했으니까. 미친 후보자는 예외 없이 다 죽음을 맞이했다. 중령은 그 죄의 경중과 상관없이 매번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정신 조작에 굴복하지 않았다.

후보자들끼리 모였을 때도 그에 관해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다들 두려운 거겠지. 누가 언제 그런 상태가 될지 모른다. 미쳐 버린 후보자들만 특별히 정신력이 약하다고 볼 순 없다. 우리는 죽음을 매일 맞이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세상이 처한 상황은 그 정도로 어려웠다.

큰 프로젝터에 회의용 큰 테이블이 있는 회의장. 그 안에는 일곱 사람이 앉아 있었다. 중령을 포함해 모두 후보자였다. 나는 이들과 함께 서울 경기를 방어했다. 그 중 인형술사, 성재희씨가 나를 보고 인사했다.

"강민씨, 여기에요!"

하이톤의 목소리, 아기자기한 얼굴, 풍성한 웨이브 머리까지. 군부대에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여성분이 옆자리를 가리키며 나를 불렀다. 그녀는 나처럼 대침공 이후 부대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처럼 부대에 이름만 올리고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서울 경기 쪽에는 그런 사람이 그녀와 나밖에 없어서 그런지, 그녀는 나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도 그녀가 편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나를 강 중위, 강 중위라며 딱딱하게 부르는데, 그녀만은 나를 일반인으로 대해줬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옆자리에 가 앉았다.

"어서 오게.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시작해도 되겠나?"

"네."

중령이 자리 옆에 있는 마이크에 대고 '연결하게'라고 말했다. 잠시 기다리니, 프로젝터 화면이 50개 정도로 분할되었다. 분할된 화면에는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잡혔다. 총 합해서 60명. 현재 대이능부대에 소속된 후보자들이었다. 배경을 보니, 회의실에 있는 사람도 있었고, 밖에서 휴대기기로 접속 중인 사람도 있었다. 기찬과, 그나마 친숙한 한 소위를 보니 반가웠다. 모든 화면이 매끄럽게 움직이자, 중령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건 오랜만이군. 아, 인사는 생략하도록 하지."

경례를 붙이려는 몇몇 군인들을 보며, 중령이 제지했다.

"오늘은 수고했네. 그만큼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이렇게 부른 건 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네."

중령의 말에 대부분 후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마나를 느낀 모양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들 알고 있는 모양이군. 낮부터 현실에서도 마나가 느껴지기 시작했네. 이건 한국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일어난 일이네. 가장 빨린 느낀 사람은 한국 시각으로 12시 00분. 혹시 그보다 빨리 느낀 사람이 있는가? 보고가 의무가 아닌 사람도 있으니..."

중령은 그러면서 나와 재희씨를 바라봤다. 그리고 화면에 몇 없는 사복 입은 사람도 한 번씩 훑었다.

내가 몇 시쯤에 마나를 느꼈더라? 잘 모르겠다. 나야 보고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니까. 그래도 12시는 확실히 지난 것 같은데. 옆으로 보니 재희씨가 그 작은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

"없는 모양이군. 좋아. 그럼 마나가 생겨난 것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지.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 퀘스트 내에서 알아낸 정보가 있다면 말해 보게나."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퀘스트 때마다 이것저것 알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퀘스트를 해결하는 게 먼저니까. 다른 이들도 비슷해 보였다.

"이것도 없나?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퀘스트에 들어가면 닥치는 대로 정보를 모아주기 바라네. 외국 부대들에게서도 아무런 정보가 안 나오니... 쉽지는 않겠지만. 아, 대답도 됐어. 알아듣기만 해. 지금 이야기 하면 시끄러울 테니까."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소수가 답을 하려고 하자, 중령이 또 제지했다.

"그럼 이에 어떻게 대처하면 되겠나. 그걸 얘기해 보자고. 일단 나부터 하지. 마나가 있으면 우리가 쓰는 기술의 위력이 강해진다는 건 다들 알고 있겠지? 그럼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네. 심법이든, 호흡법이든, 마나를 모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거지."

그 말에 즉시 반박이 뒤따랐다. 김창수 중위였다.

"이전까지 그에 관한 기술은 배울 수 없다고 나왔습니다. 바뀐 것입니까?"

그 말은 시스템이 한 거였다. 나도 한 번은 심법을 배우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허용하지 않았다. 나의 세계에서는 마나가 없으니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모르지. 그러니까 이렇게 급하게 모은 거 아닌가. 오늘 퀘스트를 끝내는 사람이 있다면, 꼭 확인해 보게. 될 수 있으면 배우도록 하고."

김창수 중위가 또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배우는 것보다는 개인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누가 배워서 가르쳐주면 되지 않는가? 이제 마나가 생겼으니 배울 수 있겠지. 단전호흡 같은 것도 효과를 나타낼 수 있고."

그 말은, 내 라이트닝 소드를 가르칠 수 있다는 건가? 가능할 것이다. 라이트닝 소드의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머릿속에 들어 있으니까.

"그래서 하나 더 묻지. 자네들 중에 마나를 모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나? 있으면 공유해주게나. 들어가서 배운다고 좋은 기술이 나오리란 법은 없잖은가? 다들, 숨기고 있는 게 있으면 꺼내 보게. 부대 만들어질 때부터 얘기했지만, 이런 일로 자네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는 않을 걸세."

중령은 그러면서 모두를 둘러봤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 능력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이상을 알려고 들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이름만 올려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모든 후보자에게 그랬던 것이다.

군대의 형식을 빌렸지만, 말 빼고는 군대와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

후보자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 유비의 '얼음'도 그렇지만, 그동안 들어본 그들의 기술은 본능에 가까웠다. 애초에 마나가 필요 없는 능력이었다.

'나'라는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어떻게 할까.

라이트닝 소드는 A급 기술이고, 가르칠 수도 있다. 검술에 쓰는 마나와 마법에 쓰는 마나는 다르지만, 마스터쯤 되면 혼용해서 쓰는 건 일도 아니다. 대부분 마스터 급은 되었으니, 일단 가르쳐만 주면 능력에 보탬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몬스터를 좀 더 쉽게 잡을 수 있다. 지금도 쉽게 잡는 편이다. 사람이 부족해서 문제지. 그러나 그건 지금 상황에 이야기일 뿐, 대비해야 하는 건 지금이 아니다. 드래곤 급의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를 대비해야 했다. 나와 이들의 실력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하루에 한 마리? 그것도 확신할 순 없다. 그리고 그 경우, 모두가 살아난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전투에 참여한 사람 중 몇몇은 죽을 확률이 높다.

중령이 이렇게 사람을 모아 얘기하는 것도, 그 나중을 위해서다. 여기에 있는 모두는 그 문제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되어 있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것. 그건 외국의 후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침공 직후부터 국제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된 건 그런 이유다.

나도, 거기에 동참하는 게 맞지 않을까? 불안을 느끼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일이 벌어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지.

"없는가? 안타깝군. 없으면 복잡해지는데..."

"제가 하죠."

내가 말을 끊자 중령이 미소를 지으며 쳐다봤다.

"오호, 강민군, 설마?"

"네. 제 검술에 있는 마나 호흡법을 공유하겠습니다."

중령은 그런 나를 잠시 보다가, 일어나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큰 결정, 고맙군. 내가 인류를 대신하여 인사하겠네. 자네의 결정은 길이 남을 거야."

"...별 말씀을요."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 조금 부끄럽다.

============================ 작품 후기 ============================

현재 강민의 라이트닝 소드 레벨은 그랜드 마스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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