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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퀘스트-127화 (127/160)
  • 127화

    <변화>

    "다들 아시는 것처럼, 대이능부대원 들은 저마다 평행 세계의 꿈을 꾼다고 합니다. 꿈에서 퀘스트를 해결하고 나면 기술이나 능력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하죠. 그러나 그 퀘스트란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합니다. 오늘은 퀘스트에서 실패해서 죽은 부대원 한 명을 만나보겠습니다."

    화면 중앙에 서 있는 진행자의 말이 끝나고 화면이 전환되었다. 남자 군인이었다. 자막으로 ‘김택진 중위(25)’라고 나왔다.

    "오늘의 퀘스트는 어떠셨습니까?"

    "..."

    리포터의 말에 김 중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깨물며 괴로워했다. 한참 그러다가, 그의 얼굴이 그나마 평온해졌다.

    "...실패했습니다. 후우... 오늘은 퀘스트 말고 다른 걸 물어보시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후보자가 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김 중위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표정을 고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직 좀 전의 괴로움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모습은 TV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 됐다.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후우... 이제 좀 낫군요.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모든 것은 갑자기 시작했고, 저는 힘들게 이 삶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보상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습니까?"

    "보상이라..."

    김 중위는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을 중심으로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그걸 보는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이런 게 보상이라면 보상일 수 있겠죠. 덕분에 사람들도 지킬 수 있고요. 하지만..."

    "하지만...?"

    "...댓가가 너무 큰 게 아닌가.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중위의 씁쓸한 표정을 크게 잡으며, 화면이 전환되었다. 흰 가운은 입은 중년의 의사였다. 자막에 정신과 의사 허인(56)이라고 나왔다.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꿈에서 겪는 죽음의 강도가 어떤지 짐작할 수 없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미 트라우마가 생긴 걸로 보이는군요. 당장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하지만 저들은 몬스터들이 나타날 때마다 출동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되는 대로 치료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정신적인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입니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화면은 다시 진행자에게로 넘어왔다.

    "현재 대이능부대원들은 대부분 많은 시간을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제가 봐도 많이 힘들어 보이는군요. 시청자분들 가운데선 저 모습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보단 '저런 사람들이 힘을 가지고 있어서야 되겠어?'하고 질문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마음 한 편에선 그런 걱정이 듭니다. 하지만 대이능부대는 아직 우리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런 상태도 계속 지속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평소 모습을 한 번 볼까요?"

    화면이 바뀌었다. 카메라가 책상 여러 대가 있는 사무실을 비췄다. 사무실에는 군복을 입은 이들이 여럿 앉아 있었는데, 화면은 그중 가장 안쪽으로 움직였다. 화면에 나온 사람은 김철곤 중령이었다.

    삐익-

    강민의 아버지, 재규는 중령이 나오자 아들이 말한대로 TV를 꺼 버렸다. 지낼 곳을 마련해 준 고마운 분이긴 했지만, 아들의 설명대로라면 말로 사람을 조종한다 했다.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그런 능력이 필요하다는 데는 그도 동의했다. 그러나 직접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아들은 괜찮을까요?"

    강민의 어머니, 미려는 걱정했다. 아들이 겪고 있을 정신적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사회적 압박도 장난이 아니었다.

    "대이능부대는 물러가라! 대이능부대는 물러가라!"

    "그놈들을 죽여! 그놈들 때문에 몬스터가 나타나는 거잖아!"

    "옳소! 영웅은 무슨! 그들은 괴물이다!"

    "이상한 꿈이나 꾸고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놈들이다! 지구에서 추방시켜야 해!"

    대이능부대를 비롯한 외국에 나타난 영웅들이 꿈을 꾸고 능력은 얻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미국의 한 토크쇼에 나온 영웅이 이야기를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그에 맞춰 적절히 보도자료를 준비했다. 그건 몬스터 대침공 거의 바로 직후였고, 국내든 해외든 그 이야기와 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대대적으로 언론에 뿌렸다. 동정심 유발 작전이었다.

    그 덕일까? 영웅들은 대체로 환영받았다.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바치는 사람이라고.

    물론, 영웅들을 배척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지금 국방부 앞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몬스터가 나타날 때 죽은 사람들의 친지들이었다.

    "우리 아들을 살려내! 우리 아들을 살려내라고!"

    "내 친구를 돌려줘! 흐아아앙!"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사라진 사람들의 친지들도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더욱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들은 시체조차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돌려 달라! 찾아내라! 우리 딸! 우리 아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친구를! 돌려 달라! 찾아내라!"

    "돌려 달라! 찾아내라!"

    몬스터가 나타나면, 작게는 한두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의 사람이 사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언론에서는 보도되지 않았고, 정부에서는 쉬쉬하며 그냥 사고사로 취급했지만,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었다.

    "돌려 달라! 찾아내라!"

    시신조차 돌려받지 못하는 가족들의 아픔이 담긴 목소리가 미려의 가슴을 때렸다. 군부에서 안전가옥이라고 내어준 곳은 국방부 건너편의 주택이었다. TV를 끄자마자 시위대의 소리가 조용한 집안을 채웠다.

    삐익-

    "이어 대이능부대에서는..."

    재규는 다시 TV를 켰다. TV소리에 시위대의 소리가 다시 묻혔다. 그는 예지를 떠올렸다.

    "아가가 있으니까 잘 할 거야."

    "...그렇겠죠? 걔는 어디서 그런 애를 찾았나 몰라."

    미려는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예쁠 뿐 아니라, 요즘 아이답지 않게 예의가 바르고 싹싹했다. 당장이라도 며느리 삼고 싶은 아이였다. 아들이 완전히 푹 빠져 있는 게 가끔 기분 나쁘기도 했지만. 게다가 이런 상황이 되니 예지의 존재 자체가 고마워졌다. 예지가 아들을 지탱해주지 않았으며, 아들이 어떻게 됐을지... 그녀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물 좀 가져와 봐."

    "물은 왜요?"

    "오늘따라 목이 칼칼해. 공기가 건조한가?"

    "당신도 그래요? 저도 좀 이상한데..."

    재규와 미려는 골치 아픈 생각을 떨치고, 공기로 생각을 넘겼다. 그저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오늘따라 공기가 정말 이상했다.

    + + +

    "이거 봐, 이거. 검은 검사님이야!"

    한 여고생이 다른 여고생에게 건넨 핸드폰에는 모자를 푹 눌러쓴 강민이 나오고 있었다. 강민은 한창 오거를 도륙하는 중이었다. 워낙 빠르게 움직였기에 화면에는 희미한 그림자와 피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고생들은 뭐가 좋 지 꺅꺅거렸다.

    "진짜 멋있다. 여긴 어디야? 누가 찍은 거래?"

    "신촌. 사람이 많으니까 어디선가 찍었겠지. 그런데 얼굴 찍힌 건 없다?"

    "아, 왜 그렇게 얼굴을 숨기고 다니시는 거지?"

    “너무 잘생겨서 그런 거 아닐까? 잘생긴 얼굴까지 드러나면 너무 인간 같지 않잖아. 이미지 메이킹,”

    그 소리에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여고생이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읍."

    "야, 뭐야. 지금 우리 검은 검사님 무시해?"

    "아, 아니야. 검은 검사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그런 가정은 좀 이상하지 않아? 얼굴이 잘생겼으면 공개해야지. 무슨 이미지 메이킹? 아, 메이킹이긴 하겠네. 얼굴이 못생겼을 테니까."

    웃은 여고생도 검은 검사를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따지자면 실버 서퍼 파였다. 검은 검사에게 꺅꺅거리던 여고생들은 그걸 공격했다.

    "못 생기긴! 그러는 너는 믿을 거라곤 은색 판대기밖에 없는 애보다는 훨씬 멋있으시거든?"

    "실버 서퍼님이 어디가! 얼마나 호쾌한 미남이신데! 실력은 조금 떨어져도, 얼굴을 자신 있게 밝히신다는 점이 중요한 거라고. 검은 검사는 분명 추남일 게 틀림없어."

    "이, 이게! 아니라고!"

    반의 다른 학생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저 셋은 유독 후보자들에게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고,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만큼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이젠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유일하게 근질거리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뭐, 우리 오빠가 기찬 오빠보다는 솔직히 못생겼지. 그렇다고 추남은 아닌데...'

    바로 강민의 동생, 지희였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이사한 이후, 학교를 옮겼다. 학기 중 전학이었고, 그 덕에 반강제로 아웃사이더가 됐다. 그녀는 현 상황을 타개하고 싶었다. 그럴 수 있는 무기도 있었다. 자신이 검은 검사의 동생이란 말만 하면, 금세 유명인이 될 터였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오빠가 신신당부했다. 자기 정체를 밝히지 말라고.

    '핏. 오빠 말이 아니라, 언니 말이니까 들어준다.'

    오빠가 푹 빠져 있는 예지 언니. 아름다운 언니를 그녀도 좋아했다. 그래서 오빠가 좋다며,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반 친구를 보면 좀 우습기도 했다. 예지 언니가 반 친구보다 몇 배는 아름다웠다. 그런 언니를 좋아하는 오빠가 반 친구를 돌아보기나 할 것인가.

    "잘생기셨거든?"

    "못생겼을 거거든?"

    싸움은 점점 유치해져서, 서로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반 아이들은 여전히 그러려니 했다. 이쯤 되면 알아서 정리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쾅!

    "조용히...?"

    이 반에 있는 유일한 일진은 시끄러움이 도를 넘어선 여학생 셋에게 평소처럼 한소리 하려고 책상을 쳤다. 분명 평소처럼 가볍게 쳤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쩌저적. 쿵.

    플라스틱으로 된 책상이 반으로 쪼개져 넘어졌다. 당사자가 가장 놀랐고, 다른 이들도 하던 말을 멈추었다.

    띵동띵동.

    종소리가 울리며 쉬는 시간이 끝났다. 그러나 모두 얼이 빠져서 선생님이 들어올 때까지 침묵한 채 일진의 책상만 바라보았다. 일진의 손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 + +

    마나, 마나가 왜 현실에서?

    "중위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

    "강 중위님?"

    중위라는 직위가 익숙지 않아, 두 번째 부름에서야 나를 부른 걸 깨달았다. 마나의 존재 때문에 잠시 멍하니 있었다.

    "아, 아닙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뒤처리를 맡겨도 되겠습니까?"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검은 검사님이십니다."

    검은 검사라는 단어도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저 말은 사실 대이능부대에서 만든 거다. 기찬의 별명인 실퍼 서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라나? 효과는 있는 것 같다. 이름 때문은 아니고, 중령의 힘 덕분에.

    "그럼, 가보겠습니다. 윈디!"

    하늘에 떠 있던 바람의 정령이 내 쪽으로 왔다. 이 이름도 내가 붙인 건 아니다. 정령왕을 제외하고, 정령에겐 따로 이름이 없었다. '윈디'란 이름은 부대에서 사용해달라고 요청한 거였다. 이것 역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 일환이었다.

    "오호, 저게 예의 그 새군요."

    경찰이 눈을 반짝이며 보는 것도 역시 익숙하지 않았다. 퀘스트 내에 있을 땐 수많은 사람이 나를 쳐다봐도 괜찮았는데, 현실에선 좀 부담스럽다. 이 세계에서 내 본성은 나서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딱히 대꾸할 말도 없어 나는 그 자리에서 훌쩍 뛰었다. 4m 이상 뛰어오르며, 윈디의 발을 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래에서 나를 구경거리로 삼는 경찰과 군인들이 보였다.

    구경거리도 싫지만, 괴물보다는 낫지.

    그들을 뒤로하고 윈디 위로 올라간 다음, 최고 속도로 날아갔다. 안전한 곳에서 시험해볼 일이 있었다.

    탁.

    오피스텔 옥상에 내려 정령 소환을 취소하고는 방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예지는 이프리타와 함께 밖에 나가 있었다. 예지와 떨어져 있을 땐 항상 이프리타를 붙여줬다. 그녀를 소환하는 것 자체는 크게 힘이 들지 않아 가능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단검을 꺼내 양손으로 잡았다. 정신을 집중했다. 이번엔 검기를 일으켜 보기로 했다. 검령을 깨워 만들어내는 검기나, 검강이 되지 못한 뼈대가 아니라, 마나로 만드는 검기.

    그러나 검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시스템이 익히게 해준 라이트닝 소드에는 일반 검기를 만드는 방법도 들어 있었다. 한 번도 해보진 않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건 이상했다. 시스템의 보정은 각인 수준이니까. 뭐라도 반응이 있어야 했다.

    째깍째짝

    한동안 시계 소리만 방안을 채우고 나서야, 뭐가 부족한지 깨달았다.

    마나.

    마나는 지금도 느껴지고 있었지만, 내 몸 안에서 느껴지는 마나는 없었다. 외부 마나를 일부 이용하는 검강과 달리 검기는 체내의 마나만을 이용했다. 검기를 사용하기 전에 먼저 외부에 흐르고 있는 이 마나를 체내로 끌어들여야 했다.

    마나 호흡법.

    베르트랑의 세계에는 마나가 존재했고, 라이트닝 소드에도 그와 관련한 기술이 있었다. 머릿속에서만 익힌 호흡법을 떠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발을 앞뒤로 벌리고, 몸은 옆으로 돌려 정면에서 명치가 보이지 않게 섰다. 단검을 들고 있는 오른팔은 적당히 들었다. 마치 펜싱 자세와 같은 라이트닝 소드의 기수식.

    호흡법은 여기서 시작했다. 마시고 내뱉는 순서를 유의하면서, 라이트닝 소드의 연계기를 천천히 사용하는 것, 그게 라이트닝 소드의 마나 호흡법이었다. 무협에서 말하는 동공과 같았다.

    "흐읍, 흐, 후우."

    천천히, 호흡에 주의하면 몇 번이고 펼쳤던 라이트닝 소드의 연계기를 펼쳤다. 마나가 내 호흡에 달려 몸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다가, 일순간 내 동작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팟.

    일부 마나는 손과 검신을 지나 검날에 도착했고, 검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잠시지만, 푸른빛이 검에 맺혔다.

    "오오옷!"

    푸른 검기. 내 영혼으로 만드는 검은 검기가 아니라, 마나 본연의 색인 푸른색의 검기. 현실에서는 처음 보는 거였다.

    한 8개월 전부터, 현실에서 수련은 라이트닝 소드 경험치에 눈곱만큼도 도움이 안됐다. 그래서 현실에서 따로 수련한 게 없었다. 그런데 이제 수련할 게 생긴 것 같다.

    마나를 쓰려면 모아야 할 테니까.

    아, 그전에 정이 든 가검을 꺼내야겠다. 아무래도 단검으로 호흡법을 펼치는 건 좀 어렵네.

    ============================ 작품 후기 ============================

    원고료 쿠폰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강민은 강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압도적으로 강하진 않습니다.

    100개 다 깨고나면 압도적으로 강해지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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