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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퀘스트-123화 (123/160)

123화

기차에서 내려, 나와 김 중령, 김 중위는 바람의 정령의 도움으로 날아 사건의 장소로 갔다.

펑펑펑펑

주변은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더 처참했다. 매캐한 연기와 먼지가 가득했다. 이물질들은 감각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폭발 너머에 있는 남자의 존재는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 앞, 은색 반구 안에 있을 기찬의 기척은 더 희미했다. 이건 서프보드 때문이겠지.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보고 있게."

우리가 있는 곳은 폭주하는 남자의 시야에서 건물로 가려져 있었다. 중령은 그 건물을 벗어나 남자의 시야 안에 들어갔다.

펑펑.

중령의 앞에서 약한 폭발이 두 번 터졌다. 두 가지 힘이 느껴졌다. 하나는 남자의 힘, 하나는 중령의 힘이었다. 그의 힘은 정신조작만은 아닌 듯했다.

"얘기를 좀 하겠나?"

중령의 목소리에는 강대한 힘이 실려 있었다. 소리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소리는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며 남자가 준비한 모든 폭발을 도중에 터트렸다. 소리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폭발 소리조차 다 잡아 먹어버린 듯, 중령의 목소리만 들렸다.

"윽, 으윽."

"나는 얘기를 좀 하려고 왔을 뿐이야."

"윽, 으으윽."

효과가 있었다. 주위를 가득 채웠던 폭발이 사라졌다. 남자는 괴로운 표정으로 중령을 쳐다봤다.

"어떤가?"

"으으아아아악! 닥쳐!"

퍼버벙!

이번 폭발을 좀 컸다. 은색 반구가 일순 흔들렸다. 대신 범위가 좁아 우리가 있는 곳까지 닿진 않았다. 기찬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뛰쳐나가려 했다. 이미 미친놈이다. 이야기를 들을 리 없다. 그러나 중령이 손으로 제지했다.

"그 정도만 하는 게 어떤가."

"닥쳐! 닥쳐! 닥치라고!"

퍼엉--

"뭘 원하는 건가. 원하는 걸 말해 보게. 할 수 있는 거라면 들어주지."

"으윽, 일단 이거 좀 어떻게 해! 날 그냥 놔두라고!"

"그렇게 하지."

중령의 목소리에 실린 힘이 줄어들었다. 남자의 표정도 약간 풀어졌다.

"넌 뭐냐."

"대이능부대 부대장 김철곤 중령이라고 하네."

"큭, 이거 유명한 분이 납셨군."

"별로 유명하진 않다네."

남자와 나의 거리는 약간 떨어져 있었지만, 대화를 듣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중령도, 김 중위도 그런 듯했다. 김 중위는 나처럼 감각이 뛰어난 걸 테고, 중령은 소리 관련 능력이 있는 건가?

"당신들이 유명하지 않다면 누가 유명한 거지? 요즘 TV에서 당신들 이야기가 안 나오는 곳이 없던데."

"...그런가? 요즘 TV를 잘 안 봐서 말이지."

"웃기는 소리! 언론 통제를 안 할 리 없다! 내가 바본 줄 아는가!"

"내가 실제로 보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일만 주야장천 하느라 피부로 느낄 새가 없다네."

"크크크큭. 뭐, 아무튼 좋아. 왜 여기까지 왔지? 드디어 내게 관심이 생겼나?"

"드디어... 라고 하기엔 너무 두문불출하지 않았나? 자네 소식은 오늘 처음 들었네만.“

그 말에 남자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좀 전부터 느꼈지만, 지금 그는 종잡을 수 없는 상태다.

"그래, 그랬지. 빌어먹을! 다 너희 때문이야!"

"...그게 무슨 말인가?"

"너희가 다 망쳐놨어! 한 달 전까진 모든 게 완벽했는데! 몬스터 대침공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는데! 너희가! 너희가 모든 걸 망쳤어! 내가 나타나서 몬스터를 쓸어버리고, 화룡점정의 한 수를 찍었어야 했는데!“

"...이제라도 늦지 않았네. 우리 부대에 들어오지 않겠나. 원한다면 부대장 자리도 줄 수 있다네."

"흥, 그딴 자리. 이미 내 유일성이 사라진 이상 관심도 없다. 너희만 아니었으면, 내 삶은 완벽해지는데... 크아아아악!"

퍼버버벙!

이제까지 중에 가장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김 중위가 중령님- 하고 외쳤지만, 중령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나올수록 자네만 괴로울 뿐이네. 이제 멈추는 게 어떤가?"

"이미 돌이킬 수 없어. 이 주변에 죽은 사람만 몇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무마해 주겠네. 우리는 위기에 직면해 있어. 약간의 반발이야 있겠지만, 사람들도 이해해 줄 거야."

"닥쳐! 그래놓고 나를 죽일 속셈인 거 알고 있다! 내가 바본 줄 아는가! 선택지는 한 가지밖에 없어! 너희를 다 죽이고! 이 세상을 없앨 거다!"

중령의 모든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정신조작을 하는 힘이. 그런데도 남자는 분노만 가득했다.

‘파이레스’가 떠올랐다. 그의 반응과 비슷했다. 딸을 잃고 세상에 분노하던 그와. 그러면 저 남자는 뭘 잃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죽음.

불현듯 모든 것이 이해됐다. 김 중위나 중령의 표정에 안타까움만 가득한 것도 그런 이유인가.

"더 얘기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군. 김 중위, 강민군. 일단 제압해주게. 힘이 빠지면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지."

"알겠습니다!"

"...그러죠."

김중위가 건물에서 튀어 나갔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우리는 남자에게 일직선으로 달렸다.

"네놈들은 또 뭐냐!"

펑펑펑.

남자는 인사대신으로 폭발을 날렸다. 김 중위의 손짓에 따라 나는 왼쪽으로 피했다.

"그런다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퍼버버버벙.

폭발이 바로 뒤를 따라왔다. 다르게 말하면, 폭발은 나를 맞추지 못했다. 김 중위도 마찬가지인 듯, 남자의 당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뭐, 뭐야. 너희 왜 그렇게 빨라?"

"..."

그러나 나도, 김 중위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럴 성격이 아니었고,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남자를 사이에 두고,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흥, 가까이 온 건 너희들의 실수다!"

퍼어엉!

그 말처럼, 바로 앞에서 터진 폭발의 여파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검막 채로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하지만 그 뿐, 피해는 없었다. 다시 달렸다. 이제 코앞이다. 그러나 한 번 더 폭발이 터질 것도 같은데... 젠장!

펑!

사방에서 폭발이 터졌다. 삼면은 검막으로 막았지만, 뒷면은 막지 못했다. 등이 화끈했다. 몸 안에서 기를 돌려막았지만, 제법 큰 상처가 난 것 같았다.

"당할 뻔 했군. 그걸 견뎌내고 오다니, 하지만 이걸로 끝... 윽!"

남자는 기고만장했지만, 뒤에서 나타난 김 중위의 발에 머리를 세게 맞고 땅에 쓰러졌다. 지금 김 중위는 내게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특수 능력인가?

"윽, 어떻게? 아악"

김 중위가 남자의 등을 누르고 팔을 뒤로 꺾었다. 그러나 그는 일반인이 아니다. 그걸로 제압될 리 없었다.

"윽, 이런 걸로!"

퍼펑!

큰 폭발은 아니었다. 작은 폭발이 남자의 등 뒤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김 중위가 있는 위치에 그대로 폭발이 일었고, 그의 모습이 먼지에 가렸다. 설마... 아직도 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기에,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하하하... 윽! 뭐, 뭐야, 어떻게."

"..."

김 중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강민, 비켜! 창수도!"

그 순간 기찬이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나는 재빨리 물러났고, 김 중위도 남자의 팔을 한 번 세게 꺾고는 물러났다. 남자는 또 비명을 질렀다. 퀘스트를 하는 것치고는 고통에 대한 면역이 부족한 것 같았다.

그사이 기찬은 남자에게 다가갔고, 남자의 위에 서프보드를 올렸다. 서프보드가 반구처럼 변해 남자를 감쌌다.

"큭, 이, 이게 뭐야!"

툭툭.

안에서 무언가로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은색 반구는 꿈쩍도 안 했다.

"뭐, 뭐야! 이거 안 없애! 다 부숴 버릴 거야!"

"해 봐. 어차피 안에서밖에 안 터질 걸. 너도 아까 못 터트렸잖아."

"으아아아악! 치워! 치우라고!“

"중위님! 괜찮으십니까?"

"당연하지. 나보다는 민을 치료해 줘.“

“알겠습니다.”

작은 소녀가 다다다 뛰어왔다. 한 소위다. 그녀의 능력은 치유다. 그녀가 내게 다가와 등에 손을 댔다. 아픔이 금세 사라졌다. 감사의 말을 전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옅게 미소 짓는 그녀. 그녀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나까 말투가 좀 어색했다. 어째서 이런 소녀까지 싸움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된 걸까.

그녀에 이어 중령도 달려왔다.

"제압은 완료했나?"

"네, 중령님."

"좋아. 그럼 다시 한 번 시도해보지."

중령은 반구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큰 힘이 담겨 있었다.

“이거 치워! 안 치우면 다 죽여 버린다!”

"...정신 차리게. 자네는 지금 분노에 휩싸여 있어. 이대로 죽을 셈인가? 조금만 마음을 가다듬게. 죽음이 이번 한 번은 아니지 않은가. 참아보게나."

"닥쳐! 너희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너희가 죽음을 알아!"

"알지. 다 아네. 우리도 자네와 같은 경험을 했고, 같은 고통을 겪었네. 동료가 생긴 것으로 생각해 줄 수 없겠나? 우리는 자네를 적대할 생각이 없네."

"필요 없어! 동료 따위는 필요 없다고! 나는 영웅이 될 거였는데! 너희가 다 망쳤어! 으아아아악!"

악을 지르는 소리. 거기에는 분노만 가득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의 발악을 마냥 미친 것으로 넘길 수 없었다. 다들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쯤 각자가 겪었던 죽음을 떠올리고 있겠지.

나처럼.

오늘 아침에 겪은 죽음이, 아까부터 계속 아른거린다. 마치 처음 죽었던 날 같다.

"한 소위, 정신 안정화는 안 되겠는가?"

"죄송합니다. 아까부터 계속 시도했지만, 오히려 화만 돋웠습니다."

"...어쩔 수 없군. 김중위,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김중위가 반구 앞에 섰다. 김중위가 손가락 세 개를 들었다. 기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큭."

김 중위가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김 중위가 손가락 하나를 더 접었다. 이제 하나 남았다.

"크아아아악!"

이제 하나를 막 접으려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기찬의 힘 아래에서 거대한 힘이 모이고 있었다.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중령이 소리쳤다.

"피해!"

퍼버버버벙!

모두 뒤로 피했고, 그 위를 기찬의 서프보드가 덮었다.

퍼버버벙!

폭발은 계속 이어졌다. 일파, 이파, 삼파... 서프보드는 버텼지만, 계속 흔들렸다.

"으윽."

"중위님! 힘내세요!"

"으아아아!"

기찬은 기합을 내지르며 집중했고, 보드의 은빛이 강해졌다. 그 이후에도 폭발은 이어졌지만, 보드가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폭발이 잠잠해지자, 기찬은 보드를 걷었다. 그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남자의 마지막 발악은 역시나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휘이이잉.

폭발이 지나가고 바람만이 폐허를 지나갔다. 남자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먼지 사이에 먼지 같지 않은 굵은 알갱이들이 보였다.

"읍."

한 소위가 입을 막았다. 나도, 입을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돌아가지."

사태를 정리하는 중령의 말은, 어쩐지 '이제 시작'이라는 것처럼 들렸다.

============================ 작품 후기 ============================

HerbPia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에피소드가 연결이 잘 안된다는 의견은...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몇 부분 추가하는 방식을 시도해볼까 합니다.

선작수는 늘었는데.... 댓글이 줄었습니다ㅠㅠ여러분, 작가는 댓글과 추천을 기다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덧. 어제 부로 제 전작 <뱀파이어의 왕>이 티스토어 북스에 올라갔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봐주세요!! 표지가 굉장히 싼 편이지만... 내용은... 사실, 내용도 쌉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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