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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퀘스트-120화 (120/160)
  • 120화

    30년 전, 흑마법사 머글은 마계에서 마왕 바알을 소환했다.

    바알은 어린 여자아이 천 명의 피를 제물로 소환됐다. 그 덕에 그는 어떤 제약도 받지 않았다. 그는 마계에서 왕으로 군림하게 해준 강력한 힘을 지상계에도 쏟아 부었다.

    전멸.

    그 앞에서 살아남는 자가 없었다. 가장 먼저 머글이 죽었고, 그다음으로 당대의 드래곤 로드가 죽었다. 그는 사태를 수습하러 왔다가 기습에 힘도 써보지 못하고 뼈만 남아 바알의 갑옷이 되었다. 인간의 군대는 성냥개비만 못했고, 대마법사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그랜드 마스터가 그나마 버텼지만, 검을 다섯 번 휘두르는 게 고작이었다.

    인간이 가장 많이 죽었고, 오크가 그 뒤를 따랐다. 엘프나 드워프도 무사하지 못했다. 바알이 가는 곳엔 피의 강이 흘러넘쳤고, 그가 떠난 자리엔 마계가 펼쳐졌다.

    머글은 왜 바알을 소환했던 걸까? 그러나 그 이유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가장 먼저 죽었고, 바알은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상을 파괴하는 데만 전념했다. 마족의 오래된 염원, 지상 정복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그때, 한 영웅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성기사 알렉스.

    평범한 농부였던 그는 주신의 신전에서 성검을 발견했고, 성검의 힘으로 마족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처음 그의 힘은 미약했다. 하급 마족 하나를 겨우 상대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차츰 강해졌다. 몇 달 뒤엔 중급 마족을 죽일 수 있었고, 또 몇 달 뒤엔 상급 마족과 자웅을 겨뤘다.

    바알은 그의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상 정복에 가장 큰 걸림돌인 드래곤을 상대하느라 그는 바빴다. 1대1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수십 마리 드래곤이 동시에 모이면 그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견제와 계략을 통해 드래곤을 각개격파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래서 바알이 알렉스의 존재를 눈치챘을 때, 알렉스는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최상급 마족 몇을 가볍게 상대했다. 게다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강한 동료들도 함께였다.

    그들은 다 신의 힘을 바탕으로 한 성전사들이었다. 그들은 바알이 대비하기 전에 먼저 바알을 쳤고, 힘겨운 싸움 끝에 바알을 물리칠 수 있었다.

    승리.

    10년간의 암흑이 걷혔다. 10년 만에 자유를 되찾은 모든 종족이 환호했다. 그날은 기념일이 되었고, 얼마 되지 않는 식량으로 전 대륙이 축제를 열었다.

    물론, 모든 게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바알에게 그의 동료 다섯이 죽었다. 그중에는 알렉스의 연인, 엘프 마리나도 있었다. 그는 슬퍼했다. 자신의 반쪽이 죽었다. 그는 진짜 반쯤 죽어 버렸다.

    그러나 슬픔에 빠질 새도 없이, 그와 그의 동료들은 신의 뜻에 따라 일을 해야 했다. 마계화된 땅,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땅을 되돌려야 했다.

    그는 마계화된 땅에 성검을 박아 넣었고, 그럴 때마다 주변의 땅은 예전처럼 녹색 빛을 띠었다.

    10년.

    10년 동안 알렉스와 그의 동료들은 전 대륙을 돌아다녔다. 그들의 노력 끝에 대륙은 거의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아직 사람들은 적었지만, 자연은 다시 한 번 지상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알렉스는 영웅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그와 그의 동료들은 영웅이었다. 신의 선택을 받은 건 우연인지 몰라도, 그들은 목숨을 걸고 바알과 싸웠다. 땅을 되돌리는 것도 간단하진 않았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들이 한 번 땅을 정화할 때마다 그들이 가진 힘을 영구히 소모했다. 그들은 거저 얻은 힘을 자연으로 돌려줬다. 분명,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이름만 남은 그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다. 이리저리 이용만 당하다가, 대부분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영웅이었지만, 그들은 뒷골목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사람들은 그들의 말로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어디 갔지? 뭐, 잘 먹고 잘사는 거 아냐?'하고 대충 넘어갔다. 인구가 준 만큼 지상은 풍족했고, 삶은 평화로웠다. 천국에서 구세주는 필요 없었다.

    알렉스도 그런 죽음을 맞을 뻔했다.

    이름을 빌려준 단체가 뒤통수를 쳤다. 처음에는 잘해 줬지만, 나라가 세워지고,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그는 분노했다.

    가만히 죽으려고도 했었다. 마리나가 죽었을 때 그의 반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더 살아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왕좌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그를 반란군이 자극했다.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성녀 마리나를 마왕의 노리개로 내어준 저 비겁자를 처단하라! 저놈은 영웅이 아니다! 우리를 속였어! 저놈은 성녀를 내어주고 영웅을 사칭했을 뿐이야! 저놈을 죽이고! 마왕을 죽이자!"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게 싫었을 뿐이다. 다음에는 사람을 죽이는 마족에게 분노했을 뿐이다. 그게 이어져서 여기까지 왔다. 그가 어떤 보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지 않은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게 세상의 방식이란 말인가?

    "그런 세상 따위, 내가 조롱해 주겠어!"

    "무슨 헛소리냐! 거짓으로 꾸며낸 힘으로 무장한 놈이다! 놈은 힘이 없어! 놈을 죽여라!"

    반란군의 말처럼 그에게는 힘이 없었다. 성검으로 얻은 힘은 죄다 땅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그에겐 또 다른 힘이 있었다.

    "죽어라!"

    "태워라, 이프리타."

    화르르륵.

    "아아아아악!"

    "뭐야, 무슨 일이야!"

    "...정령!

    "...불의 정령왕이다!"

    "어떻게 된 거야? 알렉스의 힘은 다 떨어진 게 아니었어?"

    당황하는 반란군들 사이에서, 그는 크게 웃었다.

    "크크크크큭."

    "공격해! 공격하란 말이야!"

    지휘관의 말에 반란군이 활을 쏘았다. 하지만 활은 그에게 닿기 전에 공중에서 먼지로 타 버렸다.

    "죽어라."

    그는 마왕이 되었다.

    + + +

    "끄아아아악!"

    "이제 아프지 않을 때도 된 거 같은데, 아닌 가 봐?"

    알렉스는 대전 앞에 설치된 탕을 보고 있었다. 탕 안에는 기름이 팔팔 끓었다. 그 위에는 한 남자가 매달려 있었다. 몇 번이나 탕에 들어갔다 나온 남자의 온몸은 완전히 익었다. 그러나 아직 세포가 살아 있는 듯,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다시 내려."

    알렉스의 말에 시종들이 덜덜 떨며 쇠사슬을 내렸다. 남자는 더 큰 비명을 질렀다.

    촤라라라락. 풍덩.

    "끄아아아아악!"

    "좋군, 아주 좋아. 좀 더, 좀 더 비명을 질러 보라!"

    대전에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탕의 반대편에는 이 나라, 마왕 제국의 대신들이 앉아 있었다.

    "어떤가, 내가 준비한 만찬이. 밥맛이 좋아지지?"

    그는 그 앞에 차려진 한 상에서 돼지 뒷다리 통구이를 들었다. 그러자 대신들도 머뭇머뭇 고기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떨고 있었다.

    "자, 먹자고."

    "끄아아아악!"

    대신들은 고기를 잘 넘기지 못했다. 한두 사람은 다시 고기를 내려놓았고, 어떤 이는 입으로 가져가다가 떨어뜨리기도 했다.

    "크크크큭."

    반면 알렉스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에겐 저 비명도, 벌벌 떠는 대신들의 모습도 좋은 조미료였다.

    "아아아악..."

    결국 남자는 죽었고, 대전 안엔 쩝쩝거리는 소리만이 남았다. 그 소리는 알렉스에게서만 났다.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소리 내며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쩝. 이 봐, 들어 올리고, 다른 놈 데려와. 그 뭐냐, 성기사 알렉스를 추앙하는 놈들 있잖아? 그놈들 떼로 데려와. 미신을 퍼트려 세상을 어지럽히는 놈들이니까."

    "알겠습니다."

    철커덩, 철커덩.

    대전 앞에 서 있던 기사가 밖으로 나갔고, 기름 탕에선 남자가 올라왔다. 남자는 얼굴을 제외하고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소리는 좋았는데, 보기는 안 좋네. 치워야겠어."

    알렉스는 일어나 검을 꺼냈다.

    스르릉.

    검은 날을 가진 롱소드였다. 그는 검을 던졌다. 검은 빠르게 날아가 남자의 목에 박혔다. 굉장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장면이 이어졌다.

    남자의 몸에서 검은 것들이 꿀렁꿀렁 튀어나오더니,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남자의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꿀꺽.

    대신들은 눈을 돌리지도 못하고, 굳어 버렸다.

    "왜 그렇게 굳어 있나. 다들 즐기게. 어차피 자네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야. 자네들처럼 내게 잘 해주는 이들이 어디 있는가? 이것도 다 자네들이 모아온 돈으로 만드는 거니,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들게나."

    "...네, 폐하께서 베푸신 만찬, 즐겁게 먹겠습니다."

    대신 중 한 명, 유일하게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도버 공작의 말이었다.

    "좋아, 아주 좋아. 맘껏 들게나. 크하하하핫!"

    알렉스가 손을 뻗자, 검은 살아 있는 것처럼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마검 듀플렉시온.

    원래 성검이었지만, 이젠 마검이 되어 버린 검. 검의 기능은 변한 게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검은 사람의 감정과 마음을 빼앗았다.

    다른 게 있다면, 감정의 종류.

    성검이었을 때, 검은 마족에게서 영혼을 빼앗아 기쁨의 감정을 모았지만, 지금은 고통과 두려움만을 모았다.

    살아 움직이는 검을 본 대신들은 다시 한 번 움찔했다. 그럴 때마다 어두운 대전의 그림자 아래에서 검은 기운들이 마검으로 모이고 있었다.

    "크크크큭."

    알렉스는 그 광경에 웃다가, 다시 게걸스럽게 고기를 입에 넣었다.

    퀘스트에 들어왔을 때부터 퀘스트 메시지가 뜬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는 너무 나갔다.

    끼이익.

    귀신같은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이제 또 좀 전과 같은 광경이 펼쳐질 것 같다.

    퀘스트를 하면서 여러 광경을 봐왔지만, 이건 정말 더 보고 싶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HerbPia 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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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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