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18화 (118/160)
  • 118화

    <후보자>

    챙! 캉! 캉!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다.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검을 피하며, 그 검의 주인을 벤다.

    촤아악.

    피가 튄다. 쉴 틈이 없다. 눈에 티는 것만 막고, 한 발작 내딛으며 검을 찔러 넣는다. 검이 비늘 사이에 걸린다. 힘을 더 준다. 검이 단단한 근육을 찢어버리는 게 손목을 통해 전해진다.

    "크르릉!"

    그 뒤에서 이족 보행하는 도마뱀이 괴성을 지르며 무식한 대검을 내려쳐 온다. 동족과 나를 같이 베어버릴 기세다.

    발끝에 힘을 주고 땅을 밀어낸다. 온몸으로 리자드맨에 부딪히고, 연이어 그 뒤에 있던 리자드맨도 넘어뜨린다. 대검은 내려오다가 베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진다.

    그리고 검을 들어 힘껏 땅을 찍는다. 검은 리자드맨 두 마리를 뚫고, 땅에 박혔다.

    푸우우욱.

    "크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리자드맨을 두고, 재빨리 일어난다. 그 자리에는 또 다른 리자드맨의 대검이 동료의 시체를 파고들었다.

    크아아--!

    챙! 채앵!

    퍼엉.

    베고, 베고, 또 베었다.

    그런데도 끝이 나지 않았다. 낮부터 이어진 전투는 자정이 넘도록 끝날 기미도 안 보였다.

    [서른네 번째 퀘스트, 로이터와 함께 이 전투에서 승리하세요!]

    들어오자마자 퀘스트 메시지가 떴다.

    쉽겠네.

    하지만 오산이었다. 리자드맨은 끝도 없이 밀고 들어왔다. 이틀 동안 10시간이 넘도록 2,000마리쯤 벤 거 같지만, 그거로는 판세를 뒤집을 수 없었다.

    리자드맨은 10만이었고, 인간은 고작해야 5천이었으니까. 내가 들어올 때 그랬고, 지금은 더 벌어졌다.

    이렇게 하나하나 베어선 퀘스트를 깰 수 없었다. 라이트닝 소드 그랜드 마스터가 되긴 했지만, 내가 난리 부르스를 쳐도 검으로 죽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다른 곳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마법.

    이 몸의 주인은 마법사다. 그것도 마스터급 마법사. 그는 큰 마법을 실패해 마력을 다 소진하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내가 들어온 건 그 시점이었다.

    나는 지금 그의 마력이 회복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본디 이렇게 격렬하게 움직이는 동안엔 그 어떤 것도 회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몸을 움직이는 건 나고, 그의 정신은 편히 자고 있으므로 완전히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했다.

    촤아악.

    또 하나의 리자드맨이 피를 뿌리며 넘어졌다. 힘겹게 그 녀석을 상대하고 있던 병사에게 웃어주고는 다시 다른 이를 향해 움직였다.

    그 순간,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다.

    '일어나! 로이터!'

    ‘...자네로군. 꿈이 아니었나.'

    '아니니까, 빨리 정신 차려! 아니, 정신 차렸겠지?'

    '일단은 그렇다네.'

    '그럼 아까 얘기했던 대로 하겠어.'

    '그, 그게 되는가?'

    '해보면 아는 거지!'

    로이터는 멍한 한편으로 열망하고 있었다. 이 전투에서 이기기를, 이 전쟁에서 인간이 살아남기를.

    그 간절한 마음을 나누었다.

    분심.

    나는 마음을 나누고, 거기에 완전히 회복한 마력의 사용권을 주었다. 분심 레벨이 오르자 이런 조정이 가능했다.

    '오, 진짜 되는군.'

    그의 마음은 이 와중에도 강한 호기심을 내비쳤다.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물론 그걸 완전히 꺼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여느 마법사완 달랐다.

    '그럼 부탁해. 그동안 내가 시간을 끌어 볼 테니까.'

    '맡겨만 주게나.'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집중에 들어갔다. 그의 주문이 이어짐에 따라, 희미하게 느껴지는 마력이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계속 몸을 움직여 리자드맨을 베어 넘겼다.

    검과 마법을 동시에. 예전 해리가 검과 주술을 동시에 쓰는 것과 같은 상태였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길을 열어!"

    리자드맨으로 가득 찬 평원에서, 지난 10시간 동안 나는 계속 서쪽으로 부대를 움직였다. 서쪽엔 강이 있고, 그 강을 넘어가야만 했다. 그래야 마법의 위력을 피할 수 있다.

    2시간 안에 갈 수 있을까. 물소리가 조금씩 나긴 하니, 거기에 걸어볼 수밖에.

    2시간.

    지금 그가 사용하려는 마법은 주문을 외우는 데만 2시간이나 걸리는 마법이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그가 실패한 마법. 이 상황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절대 마법.

    미티어 스트라이크.

    그는 운석을 소환하고 있었다.

    + + +

    하늘이 열렸다.

    하늘에 검은 선이 그어지더니, 쩍하고 벌어졌다. 그 너머에는 검은 우주와 커다란 운석이 있었다. 운석이 열린 공간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우우웅--.

    처음에는 야구공 정도의 크기였다. 느릿느릿하게 움직였고, 소리도 작았다. 리자드맨이고, 인간이고 아무도 눈치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이내.

    쿠르르르르릉---!

    굉음에 놀라 모두가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땐, 이미 가속을 시작한 후였다. 10m 크기의 돌덩이가 눈 깜짝할 새에 머리 위로 다가왔다.

    "물로! 물로 뛰어들어! 빨리!"

    부대는 겨우 강에 다다랐고, 아까부터 뛰어내리라고 목이 터지라고 외치는 중이었다. 지휘관이었던 파소 백작이 이미 죽고 없었기에, 전부 내가 해야 했다.

    "저, 저게 뭐야?"

    "운석이다!"

    "미티어 스트라이크야!"

    "살았다!"

    병사들은 운석을 알아보고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운석 낙하 예상지점은 강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그 여파는 그 주변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까지 오는 것이다.

    "빨리 뛰어들어! 그래야 그나마 살 수 있다! 그리고 강을 빨리 넘어가야 해! 빨리!"

    병사들은 내 말에 긴가민가하면서도 일단 강으로 뛰어들었다.

    "크와악!"

    "크라랑!"

    리자드맨들은 아우성이었다. 인간을 공격하는 것도 잊고, 하늘에 그려지는 흰 선을 가리키며 괴성을 질러댔다.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는 놈들도 있었지만, 평원은 리자드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망갈 수 없었다.

    운석이 땅에 떨어졌다.

    번쩍---!

    빛이 시야를 가렸다.

    쿠와아아아앙---

    큰 소리는 귀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 덕에 땅이 파도처럼 솟아올라 밀려오는데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반쯤 녹은 리자드맨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땅.

    그 땅은 20m 높이로 솟아올라 떨어진 곳으로부터 밀려왔다. 그 뒤로 지각이 그보다 더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한 조각이 1m 정도 되는 조각들이 수십 미터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리자드맨들은 이미 첫 폭발에 반쯤 죽었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위로, 솟아오른 돌들이 비처럼 떨어졌다.

    쾅! 쾅! 쾅! 쾅!

    그사이로 낙하지점에서부터 붉은 구름이 부풀어 올랐다. 구름은 부풀어 오르다가 멈추고는 땅으로 내려오며 넓게 퍼졌다.

    "끄아아악!"

    귀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귀에선 서서 타들어 가고, 돌에 짓눌려 죽어가는 비명만 들렸다.

    "도망가!"

    "빨리!"

    "건너가야 해!"

    일부 휘말린 병사도 있었지만, 병사 대부분은 강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떨어지는 돌에 맞고, 폭발의 여파에 화상을 입었지만, 아직 살아는 있었다. 그들은 뜨거워지는 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헤엄치며 강을 건너가는 중이었다.

    나는 아직 강에 들어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었다. 이들을 지켜야 했다.

    적을 유인하여 평원으로 모으고, 그 위로 운석을 떨어뜨린다.

    원래 계획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수의 리자드맨을 대상으로 인류가 준비한 비수.

    몸의 주인, 로이터를 포함해 이 병사들은 자살특공대였다.

    그의 나라는 이미 망했다. 꾸역꾸역 밀려오는 리자드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모든 지역을 내주고 말았다. 그가 지키고 있던 지역과 그의 휘하에 있던 병사들만 겨우 지켰다. 그러나 혼자 남은 자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그가 선택한 게 이 작전이었다. 그의 근처에 있던 가장 큰 리자드맨 무리, 아마 왕에 준하는 녀석이 있을 것으로 파악되는 그 무리를 지상에서 없애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죽을 것이 눈에 뻔히 보였지만, 그는 기꺼이 실행에 옮겼다. 그의 나라는 망했지만, 인간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저 리자드맨을 막지 않으면 인간은 현재의 위치를 누리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해야 했다. 망한 나라에 슬퍼하기보단, 인간 전체를 먼저 생각했다. 일상을 누리고 있는 대륙의 많은 사람을 위해서, 리자드맨들의 일상적인 준동이라고 생각하고 돕지 않았던 다른 나라들을 위해서, 그는 목숨을 걸었다.

    후회는 없었다. 그는 살 만큼 살았으니까.

    그래도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같이 죽어야 하는 이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열심히 도망가고 있지만, 지금 평원을 채우며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붉은 구름에 닿으면 순식간에 타들어 갈 게 뻔했다. 인간의 발로는 저 구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 섰다. 평원의 리자드맨은 거의 다 죽고, 이제 퀘스트도 끝났겠지만, 아직 살아 있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휘우우웅.

    붉은 구름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돌이 그대로 기체가 되어 생겨난 구름. 뜨거웠다. 열기에 단련되지 않은 마법사의 육체가 타들어 갔다. 고통스러웠다. 검을 들었다. 리자드맨의 손에 죽어간 어느 이름 없는 병사의 검이었다. 검이 내 의지에 따라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밀어내면 된다. 로이터의 예상대로라면, 이 구름은 강을 넘으면 거의 사그라들 테니까. 조금만 막아내면 병사들이 강을 건널 거고, 그러면 절반 이상은 살 수 있다.

    검을 아래에서 위로 내렸다. 이어 좌에서 우로, 우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좌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슥! 슥! 슥! 슥!

    검기 공간을 가를 때마다 검은색 검기가 날아갔다. 날아간 검기는 붉은 구름에 닿아 조금 진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는 무력했다. 하지만 2개, 3개, 4개... 검기가 이어질 때마다 사라지는 건 붉은 구름이었다.

    스스스스슥!

    검기가 구름을 밀어내기 시작하자, 다른 방향으로도 검기를 쏘아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나를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의 검은 막이 생겼다. 검은 막은 사라지고 생겨나고를 반복하며 붉은 구름과 싸웠다.

    그렇게 1분.

    주변을 가득 채웠던 열기가 조금 식었다. 붉은 구름은 이쪽으로 오기를 포기하고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고도 몇 분을 더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허억, 허억."

    중간에 체력이 완전 다 떨어졌지만, 천강지체 lv.7에 달린 특전 [한계 너머]로 버티며 검막을 유지했다.

    '너, 너는 대체?'

    안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로이터가 놀란다.

    '훗, 나만 믿으랬지.'

    절반은 죽었지만, 실패한 계획을 이 정도로 마무리했으면 잘 한 거 아닌가?

    '그, 그래도...'

    '그럼 안녕!'

    '뭐, 갑자기 어딜?'

    '그냥 편하게 생각해. 신이 너를...'

    + + +

    "좋게 봐줘서 도운 거라고... 나와 버렸군."

    혼잣말이 아닌 혼잣말. 갑자기 외로워졌다.

    으음, 예지한테나 가볼까?

    ============================ 작품 후기 ============================

    '저녁노을로'님 후원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