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14화 (114/160)

114화

과거로 돌아온 애쉬튼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여러 고민도 하고, 조사도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냥 사는 게 다였다. 이게 죽음 이후에 꾸는 꿈이든, 진짜 과거로 돌아온 것이든, 혹은 이전에 경험했던 것들이 다 꿈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그리고 기억과 똑같이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서, 이번 삶은 다르게 살기로 다짐했다. 그를 지배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죽기 직전의 기억, 눈앞에서 아들과 딸, 손자 손녀들이 죽은 장면이었다. 그 일 만큼은 다시 겪기 싫었다.

가장 먼저 돈을 벌었다. 과거의 기억들을 통해 성공은 더 크게 만들고, 실패는 없애서, 돈을 있는 대로 쓸어 담았다. 예전에 그는 고만고만한 상인이었지만, 제임스 덕분에 정보 하나만큼은 빠삭했다. 거기에 한번 실패한 경험이 더해지자, 그를 멈출 수 있는 건 없었다.

단 5년 만에, 그의 상단은 왕국 제일이란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고작 상단일 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런 힘으로는 이대로 몇십 년이 지나도 제국을 막을 수 없었다. 금력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권력자를 찾았다. 믿을 만한 귀족에게 줄을 대 키우고, 나라의 방향을 틀 생각이었다. 가만히 멸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앞장서 제국을 막는 쪽으로.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 건 쉬웠다. 휘안 왕국이 멸망했을 때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사람이면 됐으니까.

마틴 네밀 백작.

백작은 휘안 왕국이 멸망했을 때, 군비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었다. 그는 5약과 맞닿아 있는 국경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이로, 휘안 왕국 멸망에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30년 이상 제대로 된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왕궁은, 저 멀리서 벌어지는 일에 신경 쓸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애쉬튼은 그런 네밀 백작에게 접근했고, 그를 뒤에서 후원했다. 제일 상단의 금력과 애쉬튼이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지식은 금방 변방의 백작을 중앙의 권력자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까지 가는 데 3년이 걸렸고, 예전처럼 제국은 소이즈 왕국을 멸망시켰다. 그 때문에 국무회의가 급하게 소집됐고, 애쉬튼과 제임스는 네밀 백작, 이제 총리대신이 된 그의 보좌로 참가하고 있었다.

“제국은 지금 대륙을 정복하려는 야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지금 당장 병력을 일으켜서 저 제국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 소이즈 왕국은 수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가다간 제국과 우리 국경이 곧 마주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언제 제국이 쳐들어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네밀 백작의 말에 재무 대신을 맡은 그레이엄 후작이 반박했다. 애쉬튼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키르카우스 제국으로부터 뇌물 같은 걸 받는 중이었다.

"그러면 좀 어떻소. 제국과 비교해서 우리가 꿀릴 게 무엇이오? 국경을 맞대면 국경을 맞댄 대로 잘 지키면 되는 것 아니오? 게다가 국경을 맞대면 제국과의 교류가 좀 더 잘 일어날 테고, 우리는 제국의 물건을 직접, 싸게 들여올 수도 있겠지."

조금 전 백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왕은 후작의 말에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국무 회의에 참석한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나라에는 제국풍이 유행하고 있었다. 제국 귀족들이 쓰는 물건들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고작 물건 몇 개 때문에 우리를 보호해주는 장벽을 없앤단 말입니까! 도대체 당신 머릿속에는 무엇인 든 것이요!"

"고작 물건 몇 개가 아니지요. 우리가 제국에게 들여오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알고서 하는 소리요? 각종 공예품은 물론이고, 칼과 갑옷 같은 것도 얼마나 들여오는데, 모르고 계셨소?"

알고 있다. 제임스도, 애쉬튼도, 당연히 네밀 백작도 알고 있다.

"알고 있소! 그 부끄러운 이야기를 어찌 모를 수가 있겠냔 말이오! 우리가 제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인데. 그러니 더 심각하지 않소! 국경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의 병장기가 인질로 잡히는 상황인데 뭐가 그렇게 태평하시오!"

백작의 호통에 대부분 귀족이 움찔했다. 그러나 후작은 진짜 태평한 듯했다.

"저쪽에서 받는 게 있으면 우리도 주는 게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니오? 우리의 은과 금은 제국에서 비싼 값에 팔립니다. 제국의 귀족들은 우리 은과 금에 환장한다고들 하지요. "

"그게 진짜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오? 철과 금이?"

"지금은 평화의 때가 아닙니까. 충분히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만. 게다가 소이즈 왕국을 점령한 이유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습니까? 소이즈 왕국에서 황가의 가보에 손을 댔다지요? 소국이 대국의 심기를 거슬렀으니 그 정도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 소국이, 대국인 황가의 보물에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단 말인가. 부외자인 나에게도 어이없게 들리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에 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몇몇은 후작처럼 제국과 끈이 닿아 있는 자로, 지금 바람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같은 핑계를 대고 점령한 휘안 왕국은 머리에서 사라지셨소?"

"그게 언제입니까? 거의 10년 전이 아닙니까? 제국이 진짜 야욕이 있었다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것 아니겠소? 밀고 들어오면 끝나는 일인데. 이번에도 더 전쟁을 넓힐 생각은 없어 보인다는 첩보가 들어오지 않았소."

"좋습니다. 그러고 10년 후에 제국이 탈란 왕국도 점령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소? 또 리투아니아나 오렘까지 지도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할 셈이냔 말이오. 그때 가서 제국을 몰아칠 셈이오?"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굳이 그럴 필요야 있겠습니까? 어차피 우리와 제국 사이의 왕국들은 있으나 마나 한 패인데. 중요한 건 워즈 왕국이지요. 이번에 왕가 사이에 혼인이 있으니 없는 걱정을 굳이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재정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게 맞겠지요."

그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이런 기회에 나라의 내실을 다지는 건 맞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기회가 지난 30여 년간 세 나라에 공히 이어졌다는 건 왜 보지 않을까. 지켜보는 애쉬튼은 그걸 답답해했다.

"그럼 그 워즈 왕국이 우리를 배신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이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지 않소! 나라를 다스린다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사는 것이오!"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얼굴 수 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좌중을 훑는 백작의 눈에, 그들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후작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이란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어지는 말은 당당했다.

"그런다면 막아야지요. 우리나라가 그런 힘도 없다고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후작의 당당함은 회장을 물들여갔다. '그렇지, 우리나라가 그렇게 약하단 말인가?', '우리가 이기면 되는 거잖아?', '어차피 워즈 왕국쯤이야'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네밀 백작은 그걸로 끝내지 않았다.

"그럼 그때 제국이 동시에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이오!"

"……."

"……."

"……."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 가운데, 백작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40여 년간, 우리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언제나 우리 변방을 대신 지켜준 다섯 개의 왕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렇게 안이하게 생각을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는 대신에, 우리는 달콤한 열매만을 따 먹었으니까요.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세상은 원래 그렇게 돌아간다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왔지요."

"그래서 그들을 위해 나서자, 혹은 그동안 애써줬으니까 보답하자는 말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들을 돕고, 그들이 제국 아래에서 잘 버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제국의 입김 한 번에 사라질 국가들이지만, 그들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잠시지만, 그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우리는 적군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워즈 왕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5약, 아니, 지금은 3약이 되었지만, 그 세 개의 국가가 살아 있다면, 워즈 왕국이 우리를 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세 개의 국가를 완벽히 통제하지 않는 이상, 워즈 왕국은 언제나 뒤통수 맞을 위험을 생각해야 하는 셈이니까요."

백작은 후작을 한 번 가리켰다.

"재무대신의 말도 맞습니다. 이런 때에야말로 힘을 길러야겠지요. 하지만 왜 한 면만 보십니까? 평화는 벌써 30년이나 지속하였고, 그건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워즈 왕국과 키르카우스 제국도 마찬가지로 30년 동안이나 평화를 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대비되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우리가 정녕 대비된 나라입니까? 철과 금이 비교 가능하다고 믿는 재무대신이 있는 나라가, 병장기를 다른 나라에게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이 나라가 준비되어 있는 나라입니까!"

좌중은 침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졸이고 있을 이는 아마도 군대를 책임지고 있는 제1군단장일 것이다. 백작은 귀신같이 그를 지목했다.

"제1군단장!"

"네!"

제1군단장도 백작으로 직위는 낮지만, 작위는 같아 쫄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분위기에 쫀 모양이다.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가! 왜 병장기를 수입한다는 이야기가 국무회의에 나오게 하는 거냔 말이다!"

".……철 산지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북쪽 워즈 왕국에서 수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제국에도 손을 벌릴 수밖에……."

"그래서 손만 놓고 있을 셈인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오!"

"아닙니다. 남쪽 섬들에서 광산 개발을 하곤 있지만, 철은 나오지 않아…….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군단장이 까이는 동안 끼어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왕도 마찬가지였다. 백작은 이제 왕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 뒤에 서 있던 제임스와 애쉬튼도 같이 무릎을 꿇었다.

"전하. 이 모든 게 부덕한 소인의 죄이옵니다. 소인을 벌하시옵소서. 허나 그 전에 제국을 저대로 두셔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만은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군대를 내어 소이즈 왕국 수복을 도와야 합니다. 직접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제국의 전격전에 손도 못 썼다지만, 소이즈 왕국에도 남아있는 힘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더불어 남은 3 왕국에도 힘을 보태야 합니다. 그러면 저들이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아니, 우리를 도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도, 우리도 그 이름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요."

"……."

고개를 숙이고 있어 상황은 알 수 없었다. 통할 것인가. 이런 호통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물론 그때야 소이즈 왕국이 남아 있었고, 지금은 사라졌으니 상황은 달라졌지만, 또 모를 일이었다. 이 나라 귀족들은, 심지어 왕조차도 과거는 잊고 제국에 호의적이었으니까.

"고개를 들라. 그대의 말처럼 그대의 죄를 벌하기 전에 저 파렴치한 제국을 먼저 처리해야겠지. 대책을 펴 놓아 보아라."

'좋아!'

왕의 명에 애쉬튼은 격하게 기뻐했다. 이제 한 걸음이다. 그러나 큰 한 걸음이다. 과거에는 이런 일 따윈 없었으니까. 지금 순간은 그야말로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전하. 제국을 막고 이 포보스 왕국이 대륙 제 1국가가 될 때까지 열심을 다하겠습니다."

그 뒤로 한두 시간 정도 구체적인 계획이 논의되었다. 그 사이에도 후작은 수없이 태클을 걸었다. 역시 역사를 바꾸는 건 쉽지 않았다. 하긴, 그러니까 제국한테 점령당하고 말았겠지.

그나저나 이번 퀘스트는 뭐지?

빨리 끝내고 싶지만, 이런 경우엔 방법이 없다. 퀘스트가 나와야 뭘 해도 할 수 있으니까. 퀘스트도 모른 채 내 맘대로 해본 적도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

그 궁금증은 백작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 풀렸다.

[서른한 번째 퀘스트, 애쉬튼을 암살에서 보호하세요!]

쉽군. 너무 쉬운데? 이왕이면 서비스나 좀 해줄까?

============================ 작품 후기 ============================

원고료 쿠폰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댓글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메리어 ...7~800편은 글의 긴장감(그런 게 있기는 했나...ㅠ.ㅠ)을 이어가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 다음 글도 써야지요. 나중에 퀘스트 중 하나가 소설로 집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ㅋ@dbss 퀘스트입니다!

@베르또 그런 소설입죠ㅎㅎㅎ

@uvs 겜판도 나올 수 있겠죠. 함대물이나, 우주전도 나올 수 있고, 요괴나...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제 마음만 동하면요ㅎㅎㅎ@저렴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일단 퀘스트는 일인용입니다. 퀘스트가 시작하는 순간 세계가 분리되어 나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평행세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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