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대이능부대 기린>
[뭐야, 저거 특수효과 아니야?]
[설마, 미국 애들이 그런 짓을 하겠어? 곧 밝혀질 일인데.]
[전공자의 눈으로 보건데, 저건 특수효과가 틀림없어.]
[그거야 어찌 됐든, 미국은 안전하다는 거 아냐?]
[최신 소식! 유럽에도 영웅이 있나 본데? 방금 막 발표했어.]
[오오, 여기는 팡팡 터지는데?]
미국에서 영웅이란 말을 붙여서, 나와 같은 힘을 쓰는 사람들의 이름은 그렇게 정해져 버린듯했다. 그리고 발표한 건 미국뿐만이 아니었다. 유럽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심지어 일본에서도 자국 내에 영웅들이 존재함을 알렸다. 외교적 전략일까?
[속보입니다. 지금 국방부에서 서울과 부산에 나타난 괴한과 영웅에 대해서 발표한다고 합니다!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고속열차가 대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일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국방부 발표라니, 우리나라에도 영웅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응이 우리나라답지 않게 빠르다. 어쨌든 미국 쪽에서 먼저 발표를 해 버렸으니, 가만히 넘어갈 수가 없어서 이런 걸 테지만.
화면은 바로 국방부 마크가 배경으로 있는 기자회견장으로 넘어갔다. 단상에는 디지털 군복을 입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중 중년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국방부 직할 대이능부대 부대장 김철곤입니다. 오늘 낮에 나타난 괴한, 아니 괴생명체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실 걸로 압니다. 국과수에서는 사건 직후부터 조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조사 결과, 그 생명체는 인간이 아닌 걸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물도 아닙니다. 이제껏 우리 지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생물임을 확인했습니다.]
굵고, 힘이 담긴 목소리에 현장에 있는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다. 화면상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 어떻게 인간이 아니냐고 단정할 수 있느냐, 그런 질문일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발표가 완전히 끝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하는 것보다는 의학 전문가께서 발표하시는 게 좋을 테니, 그에 관한 의문은 그 때 푸시기 바랍니다. 그보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건 우리 부대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부대는 대이능부대입니다. 여기서 이능이라 함은 마법, 초능력, 외계인 따위를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전혀 알 수가 없으실 테니, 일단 한 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박종훈 소위, 앞으로.]
그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앞으로 나선다. 그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화라락.
그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불꽃은 그의 팔 전체를 감쌌는데, 그는 전혀 뜨겁지 않아 보였다. 반응한 건 주위의 사람들이었다. 기자회견장 앞줄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뭐야, 말도 안 돼."
기차 안에서 이 영상을 보는 게 나만은 아닌 듯,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자회견장 안에서도 질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모두 조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질문은 나중에 받겠습니다. 우리 부대는 이런 능력을 가진 대한민국 군인 2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에 분할 배치되어 앞으로 나타날 이상 현상, 이를테면 오늘과 같이 괴생명체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 같은 일에 대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민 여러분, 앞으로도 안심하시고, 일상을 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안전은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 힘은 일상적인 말이 아니었다. 진짜 힘이었다. 화면 너머로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선명한 힘.
그 힘 덕분인지, 그 뒤로 이어진 부대 소개와 배치, 괴생명체에 대한 부차적인 설명을 사람들은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인 것 같았다. 기차 안에서 간간이 탄성이 들리긴 해도, 극렬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자는 없었다.
...저 사람도 능력자인가?
그래서 그럴지,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쉽게 넘어갔다.
[대이능부대라니, 언제 만들어진 겁니까?]
[괴생명체의 존재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었던 겁니까?]
[이 현상의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제 서야 이런 일을 공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들에 그가 한 대답이라곤 '모릅니다', '아직 조사 중입니다', '확인된 바 없습니다'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부족한 말에도 기자들이 침묵했다. 평소라면 수십 마디고 더 쏘아붙일 사람들이 말이다.
[이상 국방부의 발표였습니다. 관련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허탈했다. 오크 몇 마리에 큰 혼란이 벌어질 거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되면, 정말 아무 일 없이 넘어갈지도.
대이능부대라...
+ + +
"...그렇게 된 거예요."
부모님은 갑자기 돌아온 나를 놀란 눈으로 맞아 주셨다. 거기에다가 갑자기 나랑 같이 가자고 하니, 두 분의 표정은 더욱 더 이상하게 변해갔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왔던 터라, 그냥 처음부터 다 이야기해 버렸다.
그러고 나니 시원했다. 이럴 거면 왜 미리 말하지 않았던 걸까. ...현실이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아니면, 성격 탓이거나. 우리 집은 전형적인 경상도 집안이다.
"...그래서 이게 끝이 아니다 이거냐?"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친척들은 어떻게 하고?"
"삼촌은 수도권에 계시고, 다른 친척들은..."
그다음 말은 입을 떼기가 힘들었다. 친척 아저씨들은 아들딸 잘 키워놓고 조금 쉬시는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나 다름없었다. 그들까진 신경 쓸 수 없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해야 했다. 내가 모두를 챙길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하나둘씩 붙이다 보면 한국인 전체를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
"...제 손이 닿기에는 멉니다.“
아버지는 제 말에 내 눈을 빤히 쳐다보시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셨다.
"...알았다. 그럼 가마. 내일 출발하면 되나?"
"민이 아버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내일...?"
어머니는 내 이야기에 멍하게 계시다가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했다.
"내일 가야지. 짐이나 빨리 챙기라. 말하는 거 못 들었나?"
“듣기야 했지만서도...”
"피곤할 텐데 빨리 자라. 지희한테는 당신이 말해주고. 알았나?"
"...그럴게요."
아버지는 그길로 밖으로 나가셨다. 한 대 피시려나 보다. 씁쓸하다.
"민아, 아무튼 고생했다. 그런데 여자 친구 이름이 예지라고 했니?"
"네."
"그 애 때문에 내일 올라가는 거지?“
"아니, 꼭 그런 것 때문은 아니라...“
그게 가장 크기는 하다. 5촌 이상의 친척들보다는 예지네 부모님이 먼저랄까. 하지만 대이능부대나, 행동반경, 그 후의 일들까지,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결정이다.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야기도 했었는데...
"그게 그거지. 내일 소개해 주는 기가?"
"네? 네. 그렇죠. 뭐."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시는 어머니. 척 봐도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신 표정이 아니다. 아버지는 제대로 들으신 것 같은데 말이다. 이게 다 그 대이능부대장 때문이다.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직감이 그렇다.
그나저나, 예지한테 이걸 어떻게 전하지? 그리고 일단 지내실 곳을 마련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내 방에서 지내시라고 할 수도 없고.
+ + +
자기 전에 예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부모님이 내일 올라가기로 했다는 말을 꺼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목소리가 완전히 굳어 버렸다.
"...그러니까, 내일 어머님이랑 아버님을 봬야 한다는 말이죠?"
"응."
"..."
"좀 갑작스럽지?"
"..."
"예지야?"
"..."
"예지야?"
"...오빠는 내일 죽은 줄로 아세요."
그게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예지야? 잠깐만! 예지야?"
연결이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그녀라면 잘할 거다. 부모님이 예지를 싫어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고. 그런데 나는 죽는다고?
...몰라, 어떻게 되겠지.
그러고 나서 사장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사장을 비롯하여 미영 누님이나 유비, 아냐 누나, 예지까지 다 같은 장소에 있다. 바로 카페에.
"야, 강민. 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 그런 중요한 사실을 숨기다니."
유비가 다 이야기를 해서, 사장도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옆에서 미영 누님이 '섭섭하다'고 하는 소리도 들린다.
"알려서 좋을 게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뭐 좋아. 어쨌든 내일 올라오는 거야?"
"네, 부모님이랑 같이요. 여동생도 올라가요."
"여동생? 여동생이 있었어?"
"제가 말 안 했었나요? 이제 고2 올라가는 여동생이..."
"악!"
사장의 비명 뒤로, '너, 지금 뭐 때문에 그렇게 기뻐하는 건데?'라는 누님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여동생은 됐고, 부모님은 어디서 주무시는데? 잘 곳이라도 있어?"
"일단 삼촌네가 부천 쪽이라, 그쪽에 가려고요."
"그러면 올라오는 의미가 없지 않아?"
"대구 서울보다는 가깝잖아요? 그 정도 거리는 분 단위 안에 움직일 수 있지만, 대구 서울은 아무리 빨라도 시간 단위일 수밖에 없어서..."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해, 퀘스트 보상으로 한 번은 중급 바람의 정령 소환을 배워 놓았다. 덕분에 가까운 거리는 날아갈 수 있었다. 그 이상도 가능하다면 좋았겠지만, 중급 정령으로는 불가능했다.
"...너, 진짜 괴물이 되었구나?"
"괴물은요. 여전히 알바생일 뿐이에요."
분명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일 거다. 그런데도 그 말이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행히 사장은 그 이상 그 말을 하지 않았다.
"크큭, 그렇지. 설마 부모님을 네 조그만 방에 모실까 싶어서 물어봤다. 잘 데가 없으면 오피스텔 남는 거라도 빌려줄까 해서. 아니지, 그냥 그렇게 할까? 방 많이 남는 건물 있는데 우리 전부가 층층이 들어가는 거지. 예지도, 예지네 부모님도, 나도, 미영이도, 아냐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정말 그게 가능해요?"
"뭐, 어차피 남으니까. 누가 산다고 해서 뭐..."
"그럼 그렇게 말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역시 부자셨군요?"
"내가 말 안 했나? 나 엄청나게 부자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듣진 못했다. 오피스텔 건물이 있는, 아마도 몇 채나 가지도 있는 큰 부자였구나. 내가 사람은 잘 만난 셈일지도.
"그럼 내일 뵐게요."
"어, 그래. 그럼 우리는 이제부터 그쪽으로 옮겨야겠다. 파티를 열어야겠는데? 어쩌냐? 너 없이 파티해서?"
"괜찮아요. 예지를 잘 부탁합니다."
"당연한 걸. 내일 보자."
사장은 그저 같이 모이는 게 즐거운 것 같다. 목소리에 그런 감정이 묻어난다. 유비나 나의 위기의식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이해하진 못하겠지. 당연하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이 정도로 움직여 주는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거다.
후우, 오늘 밤엔 더는 아무런 일도 없기를 바란다. 지친 정신을 좀 쉬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든지 말든지, 퀘스트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퀘스트를 깨고 보상을 받으세요! 100개의 퀘스트를 깰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영웅이 될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셨다면 ‘시작’이라고 말씀해 주세요. 서른 한 번째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젠장.
============================ 작품 후기 ============================
원고료 쿠폰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진행을 좀 더 당기고 싶었지만... 역시나 퀘스트 진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게 이 글의 중심이니까요. 그래도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앞으로 한 10개 혹은 그 이하의 퀘스트가 완료되면, 이 소설은 끝이 날 겁니다. 대신 전처럼 한 퀘스트에 10편씩 이러지는 않을 겁니다. 금방 금방 넘어가겠죠. 그리고 현실 이야기를 더 많이 넣을 거고.... 앞으로 그렇게 진행될 겁니다. 생각보다 금방 완결이 날지도....(어쩌다 이렇게 됐지?)댓글과 추천 부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