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2015년 9월>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괴한은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났다고 합니다. 나타나자마자 주변 사람을 쫓아다니다가, 지금은 저 자리에서 가만히 있은 지 10분 정도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로 인한 큰 부상자는 없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카메라를 줌 해보겠습니다."
화면에 오크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녹색 피부에 코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의 들창코, 드문드문한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생김새가 매우 특이합니다. 분장한 건지 원래 그런 것인지 카메라로는 분간이 잘 가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이어 머리부터 시작해서 몸을 한 번 훑었다.
"차림도 이상합니다. 중요부위만 가리고, 어깨와 팔에는 갑옷 같은 것을 입었습니다. 손에는 칼로 보이는 걸 들고 있군요. 저 칼로 조금 전 사람을 위협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가만히 있지만, 어떤 행동을 보일지 모릅니다.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일까요?"
그때 경찰차가 공원 안으로 진입했고, 오크의 몇 미터 앞에 차를 세웠다. 카메라가 총을 꺼내 드는 경찰을 잡는다.
"경찰이 뭐라고 외칩니다! 자세한 내용은 헬기 소리에 들리지 않습니다만, 괴한은 여전히 반응이 없습니다."
기자의 말처럼, 오크는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렇게 몇 분간 대치가 이어지는 동안 아래엔 경찰이 더 도착했고, 기자들도 왔다. 그리고 오크는 그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한이 움직입니다! 갑자기 뛰고 있습니다! 경찰이 경고하는데도 멈추지 않습니다!"
탕!
헬기 소리 사이로 희미한 총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오크는 멈추지 않았다.
"공포탄에도 계속 달립니다! 지금 막 충돌합니다!"
탕탕탕!
"괴한이 쓰러졌습니다. 다리를 맞은 것 같습니다!"
토요일 낮, 사람이 많은 여의도 공원 한복판에서 오크는 넘어졌다. 주변은 도망친 사람들이 미처 들고 가지 못한 짐들로 어지러웠다. 그 장면 위로 기자의 놀란 목소리가 겹쳐졌다.
그리고 동시에 카페로 누군가 들어왔다.
"오빠!"
고개를 드니 눈앞에 예지가 헉헉대며 서 있었다.
"예지야?"
"괜찮아요? 이거 오빠랑 관계된 일이죠?"
관계된 일이라.
"아마도……."
퀘스트 중에는 이상 현상에 관한 일들이 많았다. 갑자기 정령이 나타난다든가, 드래곤이 나타난다든가. 이상한 괴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우리 세계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 추측은 했었다.
그리고 영웅.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설 거냐, 말 거냐.
그녀가 실제 물어보고 싶은 말일 것이다. 퀘스트는 처음부터 영웅이 될 거라고 대놓고 말했다. 그건 이런 상황을 알았기 때문이고, 이 상황에서 앞으로 나서기를 원해서겠지. 아니, 원하지 않아도 나서게 되어 있지 않을까? 고작 오크를 상대하라고 이런 힘을 주진 않았을 테니까.
"경찰이 다시 발포합니다. 괴한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춥니다!"
오크는 결국 사살되었다. 다가간 경찰에게 흉기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흥분한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직은.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야 될 것 같아. 저 정도로 이런 고생을 시킬 것 같진 않으니까. 지금은 나라가 어떻게 하겠지."
"오빠네 부모님은 안전하실까요?"
아…….
"깜빡했어."
"깜빡할 게 따로 있죠! 진짜, 오빠는……."
예지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고맙다. 우리 부모님을 대신 생각해주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도 내가 걱정돼서 달려온 거잖아?
"고마워. 그래도 지금은 괜찮지 않을까? 아직 다른 소식은 없어 보이고……."
그런데 그때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속보입니다! 지금 부산에도 여의도에서 나타난 것과 비슷한 차림을 한 괴한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오빠!"
"지금 바로 내려가……."
말을 끝내지 못한 건 예지 때문이었다. 내려가면 예지는 어떻게 하지? 예지의 부모님은? 게다가 아냐 누나는? 사장님이랑 미영 누님은?
"내려갔다 와요. 여기는 유비 언니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언니한테 도와달라고 할게요."
"하지만, 유비도 사정이 있을……."
"오빠가 지금 남 사정 생각할 때예요? 빨리 내려갔다 와요.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모르겠지만, 하루 이틀 만에 뒤집어지진 않겠죠.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괜찮을 거예요. 내려가서 정리하고 올라와, 아니, 제가 내려갈게요. 부모님을 설득하든지 해서요."
그게 될까?
그녀는 머뭇거리는 나를 두고 카운터 너머로 들어와 내 옷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 그게."
"일단 갔다 와요.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그럼 네 옆에 있어야……."
누가 더 중요한가 하는 물음에 대답하긴 어렵다. 둘 다 중요하니까. 그러니까 더욱 그녀를 여기다 두고 가는 게 걸리는 거다.
"제가 걱정되시면 빨리 대책을 마련해 주세요! 일단은 가족이 먼저! 자요, 빨리요."
"……."
"오빠, 저를 이렇게 실망시키실 거예요? 여자에게 정신 팔려서 모든 걸 다 내팽개치는 사람 아니잖아요. 미, 미래의 가족에게도 같은 일을 하시려면, 지금부터 하세요."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나도 모르게 웃었다.
"왜, 왜 웃어요. 지금 심각한 상황이라고요!"
"알았어. 금방 갔다 올게. 미래의 가족의 말을 들어야지. 안 그래?"
"……음, 알았으면 됐어요. 자요."
부끄러운지 예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옷을 내밀었다. 그 옷을 받고, 이마에 키스했다. 그리고 그녀를 안았다. 그녀도 내 품을 파고든다. 충격적인 일에 날뛰던 정신이 안정되어간다.
"금방 올게."
"네."
나는 그 길로 가게를 나갔다.
+ + +
서울역으로 향하면서 유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폰 너머로 그녀의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지?"
"너도 뉴스 봤지?"
"봤어."
"그럼 예지를 좀 지켜줘."
"너는?"
"집에. 부모님이 대구에 계셔. 너는 부모님이 어디에 계시는데?"
"서울이야."
"다행이네. 그럼 부탁 좀 해도 될까?"
어차피 서울에 있는 이상,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예지가 내 일을 알게 된 후, 그녀도 예지와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했으니까. 아냐 누나나 나 때문에 예지에 대한 감정이 썩 좋을 린 없겠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의 범주에는 충분히 들어가겠지.
"……알았어."
"고마워."
"나를 믿을 수 있는 거야?"
"너는 아직, 그러나 아냐 누나의 친구는 믿을 수 있지."
"……비겁한 놈."
"비겁은 무슨, 그럼 믿을게."
그러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한 거 같은데 뭘 그리 호들갑이야?"
"그러는 너는? 너도 지금 아냐 누나 옆이지?"
"들려?"
사실 처음부터 수화기 너머에서 아냐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 자주 같이 있지만, 오늘은 어쩐지 일부러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찔러봤는데, 그게 맞은 것 같다.
"그래.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하겠지만, 아냐 누나도 부탁해. 그럼 끊는다."
"조심해. 나는 괜찮지만, 아냐가 슬퍼할 테니……."
"걱정하지 마."
아냐 누나는 아직 내게 마음이 있다. 애써 숨기려 하지만, 누나의 눈빛을 읽는 데 익숙해진 내 영혼이 알아서 알아내 버린다. 일단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튼, 지금은 그것보단 이게 더 먼저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 일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그러나 이 뒤에 큰일이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고작 오크에게나 쓰라고 이 힘을 건네주진 않았을 테니까. 대응하려면 이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할 적이라는 거겠지. 이 앞에 나타날 적은 말이다.
+ + +
인터넷은 난리였다.
[오크, 저건 분명히 오크다! 저런 특수 분장이 있을 리가 없어. 특히나 저 송곳니 좀 봐.]
[네가 어디서 오크를 봤다고 그래. 영화에서나 나오던 게 현실에서 나올 리가 있나.]
[하지만 갑자기 나타났다잖아. 허공에서 갑자기. 그건 차원 이동 같은 거밖에 없지 않나?]
[만화를 너무 많이 본듯. 사람들 말을 다 믿음? 그냥 놀라서 헛소리한 거임.]
[그런데 왜 정부에선 아무 말도 없음? 시체 가져갔으면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확인해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러네요. 언론 반응도 이상해요. 왜 정체에 대해서는 말이 없죠? 누가 막았나?]
[다친 사람 불쌍하네요. 그래도 죽은 사람이 없으니 다행인건가.]
현실에서 나타난 오크는 영화에서 보던 것과 크기만 조금 다르지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그런지 한눈에 오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그냥 사람이 분장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는 일을 숨길 작정, 아니, 정보를 수집하고 대응을 결정할 생각인 모양이다. 인간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을 테니까.
부산에서 나타난 오크도 역시 경찰의 총에 사살되었다.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은 없었다. 오크가 느린 편이라 그런 듯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대구에 나타날 수도 있고, 오크가 아니라 다른 게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
[오빠, 유비 언니 집에 왔어요.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
[부모님은?]
[회사에서 잘 지켜줄 거예요. 지금 나오라고 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그렇긴 해.]
솔직히 이렇게 움직이는 게 호들갑 떠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크가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 이 기차만 해도 무섭거나 두려운 분위기 같은 건 하나도 없다. 그냥 평소처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가야 해. 혹시라도 잘못되면 방법이 없다.
죽음.
죽음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느껴야만 하는 육체적 고통도 장난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건, 혼자라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을 지탱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혼자서 생각을 유지해야 한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인다. 생각하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하지만 진짜 쉬울까? 1년, 2년, 10년, 100년……, 1억 년, 그리고 그 이상. 시간 개념이란 게 없는 곳에서 생각하는 것만으로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세계가 나고, 내가 세계인 공간에서…….
끔찍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그 안에 예지가 같이 있었다면 또 모르겠다. 부모님이 있으면 또 모른다. 그게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면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냥 혼자라는 건, 참을 수가 없다. 이프리타조차도 없는 세계에서, 나 혼자서 뭘 할 수 있다고. 아니, 뭘 한다고…….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위이잉.
생각을 끊어준 건 예지였다.
[오빠, 이것 좀 봐요! 외국에서도 나타났나 봐요!]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외국에서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예전에 벌어진 이상한 사고들은 전 세계에서 벌어졌으니까.
[그런데 벌써 힘을 드러낸 사람이 있는 모양이에요.]
그렇게 적혀있는 메시지 아래에, 동영상 링크가 있었다. 동영상을 틀었다. 영어로 말하는 걸 보면, 미국 뉴스인 듯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길 한중간에, 오크가 나타났다. 여의도나 부산에 나타난 놈과 거의 똑같이 생겼다. 오크는 나타나자마자 사람들을 공격했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혼잡했던 길이 순식간에 공터가 되었다. 오크는 여의도에서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 후 영상에 등장한 건 한 남자였다. 금발을 짧게 자르고, 군인 같은 복장을 한 그는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당했다. 아무리 오크라지만, 인간 남성의 세배나 힘을 가지고 있으며, 풍기는 살기가 장난이 아닐 텐데, 그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취이익!
오크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금방이라도 오크의 칼이 남자를 썰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의 손에서 흰빛이 방출됐고, 오크의 상체가 날아갔던 것이다.
깨끗하게.
**저 사람은 미국에 소속된 요원이라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괴물이 나타났지만, 영웅도 함께 나타났습니다!
중계를 해주는 앵커의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남자가 정부 소속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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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 쿠폰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냐는 다시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버리지는 않는 쪽으로..
2부 시작인데.... 영 자신이 없군요....
너무 진도가 안 나갑니다...
일단 이번주 안엔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쓰다 보면 속도가 붙겠죠...
댓글과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