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08화 (108/160)
  • 108화

    5번째.

    이번 퀘스트는 사실 쉬운 퀘스트다. 한 번에 깨기는 어렵겠지만, 두 번째에는 무조건 깰 수밖에 없다. 두 공작이라는 먼치킨 카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써 이걸로 5번째 도전.

    그렇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죽음.' 처음 경험한 죽음이 내게 불안과 두려움을 주었고, 그 탓에 침착함을 잃었다. 셋이서 상대한다지만, 악마 대장은 강했다. 셋이서도 압도하기는 어려운 상대다. 그런 적 앞에서, 눈이 팽팽 돌아가는 빠른 공방 중에 침착함을 잃는다는 건, 그대로 죽음으로 직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두 번째는 '검강.' 검강은 어느 검술이든 마스터 레벨에 올라야만 쓸 수 있는 기술로, 모든 걸 벨 수 있고, 꺾이지 않는 무형의 검이다. 검을 쓰는 자의 의지가 담겨 있어서, 마나 역장 안에서도 그 형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검이기도 했다. 악마 대장을 상대하려면 이 검이 필요했는데, 나는 이 검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그건 내게 아직 마스터 레벨의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마스터. 어느 것이든 그것에 통달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그러므로 아무리 급이 낮은 기술도, 심지어 기본 기술조차도 마스터 레벨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고, 일종의 벽 같은 것을 넘어야 한다. 그 벽은 영혼과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마스터 스킬은 '영혼을 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리력 또는 이능을 넘어서 영혼을 담아 사용해야 했다. 그래야 진짜 마스터가 되는 것이다. 자연히 영혼의 격이 상승한다. 영혼이 자기 몸을 넘어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거니까.

    그래서 마스터 기술을 쓰려면, 기술에 영혼을 담아야 한다. 여기서 기술은 리온의 머릿속에서 가져올 수 있지만, 영혼은 가져올 수가 없었다. 내가 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영혼을 담는 방법을 몰랐다. 체력이 마스터 보정을 받지만, 어디까지나 보정으로, 내 영혼과 관계되어 있지 않다. 헬 파이어도 굳이 따지자면 마스터 기술이지만, 이것 역시 시스템의 도움으로 쓰는 것에 불과하다. 아니, 마스터 레벨의 기술이 있어도 다른 검술의 검강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거야 시스템이 보정을 해주니까 쓰는 거지 않은가? 스스로 마스터 레벨에 올라 영혼의 격이 상승한 것과는 다른 문제다.

    아무튼, 그게 내가 만들어낸 검강이 마나 역장을 견디지 못하고 흩어진 이유다. 머리와 몸이 기억하니까 모양은 만들 수 있지만, 가짜다. 진짜 앞에 가면 촛불처럼 쉽게 꺼진다.

    '죽음'과 '검강.' 이 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는 퀘스트를 깰 수 없었다.

    방법은 한가지였지만, 그동안은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쓸 수 있었다. 이젠 흔들릴 이유가 없으니까.

    + + +

    퀘스트는 두 번째와 동일하게 진행했다. 들어가자마자 에밀리를 밀어내고, 바로 황궁으로 향했다. 황궁에 도착해서 두 공작을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사이에 리온이 심하게 반발했다. 이번엔 힘으로만 누를 수 없었다. 잠깐은 가능해도, 오랫동안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그는 마스터급 검사고, 그의 영혼은 나보다 한 단계 격이 높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나에게 우선권을 준다고 하지만, 그것으로도 누르기가 벅찬 상대다. 지난 3번의 퀘스트 동안 그게 가능했던 건, 내가 그만큼 미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몸을 넘겨주는 것 자체가, 내 의지를 빼앗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내 몸이라고 느끼게 되는 상태가 내 정체성을 더 흔들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힘으로 누르지 못하고 열심히 대화했다. 나를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그의 과거와 조금 있다가 겪게 될 미래를 설명했다. 그래도 안돼서, 분심까지 썼다. 분심으로 마음을 나눠서, 한쪽을 그와 동화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도 나에 대한 거부감을 접고, 내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분심으로 동화시켜 버리는 것.

    분심을 배울 때부터 생각하던 거다. 내 영혼만으로 동화하는 건 위험했다. 평행세계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둘이라면, 비교를 통해 어떤 게 바뀌었는지, 바뀌지 않았는지 알 수 있고, 그대로 합쳐진다고 해도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바뀐 부분을 인위적으로 쳐내기는 힘들어도, 뭐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는 있으니까.

    물론 최소화일 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다. 처음 한두 번은 괜찮아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내 영혼은 누더기같이 될 것이다. 내 것이 아닌 감정들로 가득 차, 어느 순간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반응을 하며 이질감을 느끼겠지.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때로 모르지 되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지가 있으니까.

    예지가 나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내 과거와 현재를 그녀가 이어주고 있으니까. 누더기가 되어도 더는 흔들리지 않는다.

    + + +

    검은 번개가 공터를 움직이며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하자, 나는 리온에게 경고했다.

    '조심해, 레이저가 올 거야.'

    '알았다!'

    공터 앞 망루 위에는 전처럼 두 공작도 함께 있었다.

    "근위대장, 우리를 대체 왜 부른 거지?"

    "별일 아니면 나중에 큰 경을 칠게야."

    두 공작은 여전히 왜 불려 와야 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리온이 열심히 설명했지만, 고작 그런 일로 부르느냐 하는 투였다. 그러나 이어 게이트로부터 레이저가 쏘아지자, 두 공작의 툭 튀어나온 입은 쑥하고 들어가 버렸다.

    "이건 뭔가!"

    "적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적은 정체불명의 이동기술을 가졌습니다!"

    싸움은 별다른 이변이 없이 흘러갔다. 작은 악마들이 출몰하고, 두 공작이 학살하고, 악마 대장이 나타나고……, 악마 대장은 다시 봐도 대단했다. 제국에서 가장 강한 둘과 호각을 이루다니, 리온의 마음에 놀람과 걱정이 교차했다.

    '가! 마나 역장에 주의하고!'

    '알고 있다!'

    마스터 검사인 리온은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상대를 다 파악한 듯, 검강에 힘을 실었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의 감각에서 최대한 멀어졌다. 이렇게 하면 그는 자기의 온 힘을 발휘해서 싸울 수 있다. 이러면 내가 하는 게 없는 것 같지만, 그러면 어떤가. 그 혼자 싸우는 게 낫고, 그게 퀘스트를 깰 방법이니까.

    게다가 '죽음'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가 전면에 있거나, 그 몸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으면, 싸움에 차질이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죽음의 공포를 완전히 떨쳐 내지 못했고, 다시 저 대장에게 달려들려고 하니 생각이 마구 날뛰니까. 이런 건 아예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안 순간 돌이킬 수가 없다. 이것도 언젠가 극복해야 한다.

    **네놈은 뭐냐!

    악마 대장은 절묘한 타이밍에 끼어드는 리온에게 핏빛 손톱을 휘둘렀다. 내가 저번에 막지 못하고 심장을 빼앗긴 공격이다. 하지만 리온은 달랐다. 푸르게 빛나는 그의 검강은 대장의 마나 역장 안에서도 흩어지지 않았고, 핏빛 손톱에도 꺾이지 않았다.

    깡. 까강.

    그리고 연이어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대장이 리온을 밀어내고 빠르게 두 공작의 공격을 막은 것이다. 그런데 조금 모자랐다.

    푸욱, 피싯!

    검은 피가 공중에 튀었다. 살짝 베였지만, 베였다.

    **이놈들!

    "화낸다고 네놈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셋은 좀 비겁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네."

    그걸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악마 대장은 무투로 안 된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제 와서 마법을 쓰려 했지만, 두 공작은 틈을 주지 않았고, 간간이 끼어드는 리온의 공격에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생각이 흐트러지니까 동작도 흐트러졌고, 처음엔 살짝 베인 거였지만, 점점 대장의 몸엔 상처가 늘어갔다.

    결국, 패트릭 공작이 대장의 심장을 찌르고, 매튜 공작이 이어 그 머리를 베면서 싸움은 끝이 났다.

    "케니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좋아, 근위대장. 이제 이야기를 해 보세나."

    리온은 숨을 고르다가, 패트릭 공작의 은근한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봐, 도와 줘.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거지?'

    그러나 나는 도와줄 수 없었다. 이유를 모를뿐더러, 그걸로 퀘스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 + +

    "당신, 꼭 이래야 하겠어요?"

    "그럴 수밖에 없어."

    에밀리는 지금이라도 리온이 뜻을 돌리길 원했다. 하지만 리온은 단호했다. 황제를 옆에서 봐온 그는 지금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저와 이 아이는 어쩌고요."

    "그래서 그러는 거야."

    "그건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는 평생 쫓길 거예요. 제가 이런 몸으로 그걸 버틸 수 있을까요? 조금만, 조금만 미루는 게……."

    "안 돼. 지금이 유일한 기회고, 이 이상 시간을 끌면 어떻게 될지 몰라. 당신은 직접 보지 않아서 몰라. 그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이계의 존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그는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서늘했다. 게이트를 통해 나온 악마는 강했다. 두 공작과 함께 협공해서야 겨우 물리칠 수준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쉽게 이긴 것으로 보였겠지만, 참여했던 그는 그게 얼마나 아슬아슬한 승부였는지 알고 있었다. 승패를 가른 건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나중에 게이트를 더 열며 알게 된 건, 그 악마 대장보다 강한 이들이 이계엔 수두룩하단 것이다.

    "괜찮아요?"

    "……미안해. 당신을 고생시키고 싶진 않았는데……."

    "그런 말 말아요. 이제껏 당신 덕분에 편했으니까, 약간의 고통은 감수할 수 있어요. 우리, 죽으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래, 일은 꼭 성공할 거고, 우리는 살 수 있을 거야."

    "당신을 믿어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긴 채, 마차를 타고 처가로 떠났다. 세간에 알려진 바로는 임신 우울증을 다스리기 위해 처가로 가는 거였다.

    "이제 이틀인가."

    이틀 뒤, 대륙 통일을 기념하는 통일제에서 그는 황제를 암살하기로 모의했다. 실패하면 죽음이고, 성공해도 편한 삶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두면 황제는 게이트를 계속 열 것이고, 이계에서 넘어온 존재들이 이 대륙을 파멸시킬 테니까.

    처음 게이트가 열린 후 이제 막 1년, 그는 막 그랜드 마스터에 올랐고, 통일제 경호는 근위대장인 그가 하게 되어 있었다. 이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곧 따라갈게."

    그는 저택을 벗어나는 마차를 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황궁으로 출근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축하합니다. 열한 번째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셨습니다. 퀘스트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리온 제국 초대 황제 리온’의 능력 중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암살은 성공했고, 그 뒤 리온은 의도치 않게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

    스킬은 고를 것도 없었다. 그는 검술 외에 특별한 게 없었다. 아니, 있어서도 검술을 골랐을 것이다. 지금은 라이트닝 소드 레벨을 올려야 했다. 하나라도 마스터, 혹은 그랜드 마스터, 결국 아키로로 올려야 한다.

    [A급 [스톰 블레이드 Grand Master]의 경험치 35%를 A급 [라이트닝 소드 lv.8 10.54%]에 더해 [라이트닝 소드 lv.9 95.0293%]로 변합니다.]

    마스터까지 앞으로 5%. 조금처럼 보이지만, 내 뜻대로 올릴 수 있는 건 아니겠지.

    탈이 더 많았던 열한 번째 퀘스트가 드디어 끝이 났다.

    ============================ 작품 후기 ============================

    원고료 쿠폰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5연참 하고 나니.... 후폭풍이.... 이거 쓰기도 쉽지 않군요...

    다음편부터는 1부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한편? 두편? 뭐 그렇게 되겠군요.

    여전히 설명이 많은 글이라 죄송합니다... 2부 부터는 좀 더 스펙타클(?)한 소설이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103-107편은 나중에 묘사를 추가하고 문장을 수정할 예정입니다. 완료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런데 102편 조회수 1918, 103편 조회수 1291.... 이 사이 627명은 도대체 어디 가신 걸까요ㅠㅠ댓글과 추천을 기다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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