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87화 (87/160)

87화

그레고리아 백작!

당장에라도 고개를 돌려 그 더러운 면상을 보고 싶었다. 단상으로 올라가 그 얼굴에 주먹을 한 대 날리고 싶었다. 네가 인간이라면 이럴 수 있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해리는 자기 안으로 파고 들어가 멍하니 있고, 미친 해리를 상대가 누구든 돌진할 뿐이었으니까. 그는 어느새 딜런의 앞에 도달해 검을 내리쳤다.

스윽.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프리타는 이미 불의 검을 시전 했고, 불의 검은 철을 벨 수 있다. 그러니 소리가 나지 않는 건 정상이지만, 이번엔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딜런의 검, 정확히는 쇠몽둥이라고 불러야 할 무쇠 덩어리는 한 번에 베이지 않았던 것이다. 요 몇 경기 동안 계속 불의 검을 써 왔더니 그에 대한 대책이라고 내놓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미친 해리는 그러든가 말든가 계속 공격할 뿐이다. 한 번이 아니면 두 번 베면 된다는 게 몸에 밴 듯, 쇠몽둥이를 반쯤 가른 검을 뽑아 다시 그 위치를 노린다.

“크와앙!”

그렇지만 딜런은 가만히 그 위치를 대주지 않았다. 짐승처럼 포효한 그는 미친 해리의 검을 쇠몽둥이의 다른 위치로 받고서는 발로 미친 해리의 배를 차 버렸다.

미친 해리는 급히 방패로 그 발을 막았지만, 오거와 비견될 만한 힘에 멀리 날아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공중에서 자세를 잡아 착지하고 다시 딜런을 향해 뛰었다.

딜런도 미친 해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둘은 중간 위치에서 격돌했다.

휘익, 훅. 휘리릭.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바람 소리만이 났다.

딜런은 강했다. 짐승처럼 포효하는 걸 보면 이성이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마치 이성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일단 미친 해리의 검과 절대로 맞서지 않았다. 피하는 게 먼저고, 막을 때는 비껴 막아 시간을 벌고, 쇠몽둥이를 빨리 뺐다. 공격도 굉장히 지능적이었다. 빈틈을 보이고 유인한 뒤, 피할 수 없는, 막을 수밖에 없는 공격을 날렸다. 그 덕에 미친 해리는 가끔 튕겨 나가야 했다.

“크아아!”

튕겨 나가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달려들었지만, 미친 해리에게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방패로 막고, 본능적으로 그 힘을 분산시키지만, 몸이 날아가 땅에 처박힐 정도의 힘이다. 해리의 몸은 근육질에 뼈도 강했지만, 벌써 삐걱대고 있었다.

“크와앙!”

“우와아!”

관중의 함성은 이전에 들었던 때보다 컸다. 100번째, 마지막 시합이라 사람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한 명의 얼굴이 들떠 있었다. 이해는 간다. 그들에게 이 싸움은 드림 매치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전대의 최강자와 지금의 최강자가 싸우는 거다. 그것도 서로 전성기인 상태로. 검투시합이 유일한 오락 거리인 이들에게는 이만한 볼거리가 또 없겠지.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지?

싸움을 지켜보면서 조금은 냉정함을 되찾았다. 백작을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 건 여전하지만, 그를 죽인다고 바뀌는 게 없었다. 죽일 수 있을 지도 의문이고. 실제로 죽인다고 하면 분이야 풀리겠지만, 퀘스트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해리는 그 자리에서 잡히거나 죽을 텐데.

일단 싸움은 미친 해리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대등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었다. 딜런의 힘보다는 불의 검이 더 우위에 있었다. 해리의 몸은 앞으로도 몇 번이나 공격을 버텨낼 수 있었다. 반면에 딜런의 쇠몽둥이는 거의 너덜너덜해져서 앞으로 조금이면 못쓰게 될 게 뻔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딜런의 움직임은 소극적으로 변할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나마 쇠몽둥이가 벌어주는 시간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백작이 딜런을 되살려냈다는 이야기는 해리를 풀어주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딜런을 되살리는 데 쓸 돈보다 아마 적게 써도, 딜런보다 강한 상대를 구할 수 있었을 거다. 예를 들면 오거 10마리 또는 그와 비슷한 것들. 그럼에도 돈을 써서 딜런을 되살렸다는 건, 해리의 트라우마를 이용해서 해리의 승리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런 백작이 여기에서 해리가 이긴다고 가만히 자유를 줄까? 아무래도 아닐 확률이 높겠지. 그리고 딜런을 되살린 백작이 불의 검을 몰랐을까? 그럴 리가 없다. 백작은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이 일에 참여했을 게 분명한 그 사람은 ‘불의 검’이라는 건 몰라도 해리에게 이상한 능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을 거다.

강령술을 어떻게 쓰는지는 잘 모른다. 노예 검투사인 해리가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내 세계의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죽은 이를 부르는 데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예상할 수 있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죽은 이가 사용하던 물건 같은 걸 테다.

그렇다면 딜런을 되살리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 누군지, 이 계획에 깊이 참여한 사람이 누군지 아는 건 일도 아니다. 4년 전의 검투사를 누구보다 잘 기억할 사람, 딜런의 소지품을 챙기거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딱 한사람밖에 없다. 어제부터 안 보였던 그 사람이 이 일에 큰 도움을 준 게 분명하다.

자크 감독관.

‘내가 그렇게 옆에 있는 놈이랑 철천지원수를 맺으라고 했는데…….’

돌팔이 치유사의 경고는 그들뿐만 아니라, 나에게 한 것이기도 했다. 같은 검투사로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검투사의 삶을 잘 아는 자크 감독관이 이럴 줄은 몰랐다. 그는 자유인이 되는 게 꿈이라고 했는데, 해리가 그 꿈을 이뤄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는데, 해리를 응원해 줬는데, 다 가짜였단 말인가?

그보다 딜런을 다시 끌어들이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고용인으로서 고용주인 백작의 뜻에 따르고, 조언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딜런을 다시 되살리는 데 동참한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그냥 ‘나는 모른다.’고 해도 넘어갈 수 있는 일일 텐데, 왜 굳이?

둑, 투둣.

그래서 마침내 딜런의 목이 그 몸에서 떨어져 땅을 굴러도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절단면에서 피도 솟아나지 않는다. 이대로 끝날 리가 없다. 검투사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 자크가 협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도 충분히 예상했을 거고, 그에 대해 대비도 했겠지.

“우와아!”

“승리다!”

“드디어 100번의 승리다!”

“자유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관중은 그저 환호했다. 이전의 소리도 거대했지만, 그보다 더 큰 소리였다. 땅이 진동할 정도의 크기다. 소리를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꼈다. 이제 피보다 승리가 그들에게 더 카타르시스를 주나 보다. 아마도 노예가 공식적으로 자유를 찾은 것이기에 그런 걸 테다. 그것도 이 대륙 역사상 처음으로니.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미친 해리는 목을 벤 기세를 따라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딜런을 공격해 들어갔다. 이번에 노리는 건 심장, 불의 검으로 심장을 찔러 버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게 될까? 한 바퀴 돌면서 얼핏 시야에 들어온 백작의 얼굴에는 완연한 비웃음이 걸쳐져 있었다. 이대로 미친 해리가 이긴다면 절대로 지을 수 없는 표정이다.

그리고 그 예감대로, 심장을 찔러야 할 검은 허공만을 찍었다. 딜런은 머리 없는 몸을 하고서 검을 피해 그의 머리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환호하던 사람들이 소리를 멈추고 웅성거렸다.

“저, 저게 뭐야? 끝난 거 아니었어?”

“왜 저래? 막 움직이네?”

“그거 아니야? 죽은 기사들도 잘 안 죽는다잖아.”

“그래, 목이 잘려도 다시 목을 붙이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달려드는 위대한 기사들이라고 했지.”

위대한 기사는 무슨,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노예들이겠지.

딜런의 목이 아무렇지 않게 붙는 모습을 보니, 이 강령술이라는 게 언데드나 다름없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저렇게 해서 어떻게 이겨?”

“그러게……. 저 딜런은 목이 잘려도 안 죽는다는 거잖아.”

“이길 방법이야 있지. 그 왜 이야기에서…….”

이 나라에 죽음에서 돌아온 죽은 기사들이 있다면, 다른 나라에도 그런 기사들이 있었다. 이야기에서는 그런 기사들을 처리하는 방법도 알려줬다.

“……주술사를 죽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주술사를 죽이면 죽은 기사도 없어진다고 했어.”

“그런데 주술사는 어디 있는 줄 알고?”

“근처에 있겠지. 이야기에서도 그랬잖아.”

“하지만 경기장에는 안 보이는데?”

그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대기실 복도가 그 어디쯤 있겠지. 혹은 귀빈석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시합이 치러지는 이 모랫바닥 위에는 없었다.

“뭐야, 그럼 어떻게 이기라는 거지?”

“이길 수가 있나?”

“…….”

사람들은 그제야 이 시합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친 해리는 그저 달려들 뿐이었지만.

“크아아!”

“크와앙!”

“…….”

다시 성대를 회복한 딜런의 포효와 미친 해리의 괴성이 경기장을 채웠지만, 좀 전처럼 사람들의 함성이 따라오진 않았다. 경기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굉장히 조용해져 있었다. 적어도 만 단위 이상의 사람이 모여 있는데, 아무도 없는 방처럼 조용했다. 소리라고는 미친 해리의 검과 딜런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들의 발이 모래를 차는 소리가 다였다.

‘노예로 태어난 놈이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한 번 노예는 영원한 노예다! 노예로 살기 싫거든 그냥 죽어 버려라! 네게 자유란 없다!’

어디선가 환청이 들렸다. 백작의 목소리로 된 환청이었다.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소리를 듣고 있는 게 아닐까. 100번의 싸움. 실낱같은 그 희망을 붙잡고 계속 싸워왔는데, 기적처럼 이겨왔는데, 그 꿈이, 기대가 눈앞에서 짓밟히고 있다. 이건 해리의 싸움이었지만, 그들의 싸움이기도 했다. 반쯤, 혹은 아예 노예로 사는 그들의 삶이 변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길이 열려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는 싸움. 그 답에 절망밖에 없다는 걸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크아아!”

미친 해리는 다시 딜런의 목을 베었다. 이번에는 이어 팔도 날려 버렸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딜런은 그게 뭐 어떠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움직여 팔을 다시 붙이고, 목을 다시 붙여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크와앙!”

포효하는 딜런을 향해, 미친 해리는 다시 달려들었다. 천강지체의 효력을 받고 있는 그는 아직 몇 번이고 이런 상황을 반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주술사의 정신력이나 체력이 계속 고갈될 테고, 때에 따라서는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런데도 관중은 환호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나도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덤비는 모습이 이리도 무력하게 보일지 몰랐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만 같았다.

검투 시합은 귀족들의 놀이이기도 했지만, 평민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오락 거리였다. 그런 점에서 계급에 상관없이 그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놀이라 할 수 있었다. 바로 이전까지는. 하지만 지금은, 그리고 이 이후부터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금 이 경기장에서 밝은 표정을 한 이들은 귀족들뿐이었으니까.

“크와앙!”

달걀로 바위 치기는 몇 번이고 계속됐지만, 다섯 번째인가로 목이 떨어지고 붙은 후에 딜런이 포효하자, 달걀은 결국 깨져 버리고 말았다.

“……죽일 수가 없네.”

미친 해리는 처음으로 말을 하고서는 사라져 버렸다. 해리는 강제로 전면에 나오게 되었고, 그동안 외면하던 감각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의 눈이 딜런의 얼굴에 가서 멈췄다. 4년 만이고, 머리카락도 없고, 많이 변한 얼굴이었지만, 그가 딜런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딜……런?”

떨리는 목소리와 멍한 정신. 그 상태로 성난 소처럼 달려드는 딜런을 막는 건 무리였다.

쩌억.

몇 번이고 무식한 발과 주먹을 막아주던 방패가 유명을 달리했다. 내가 재빨리 몸을 통제하며 막았지만, 역시나 날아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공중에서 자세를 잡아 착지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미친 해리는 쉽게 했는데, 내게는 아직 노하우가 부족했다.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딜런이 왜? 살아 있는 거야?’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해리에게 신경 쓸 틈도 없이, 바로 일어나 이어지는 딜런의 공격을 피해야 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딜런의 주먹이 어깨 부근을 스치며 지나갔다. 어깨가 화끈거린다.

‘어째서? 그리고 왜 나를 죽이려 드는 거야?’

그 뒤로도 몸은 내 뜻을 잘 따라 주지 않았다. 위기였다. 나는 미친 해리 같은 과감성도, 응용력도 없지만, 불의 검과 천강지체가 있는 이상 딜런에게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막기만도 버거웠다. 해리가 멍한 상태에서 동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가 무의식적으로 딜런을 공격하는 걸 막기 때문이다.

나는 딜런을 공격할 수 없었다.

돌파구는 하나. 해리를 어떻게 해야 했다.

‘정신 차려! 딜런은 죽었어! 저건 딜런이 아니라고! 잘 생각해 봐! 딜런은 죽었잖아!’

‘딜런이 죽어……? 그래, 딜런은 죽었지. 오거의 난동에 휘말려서…….’

‘그래, 딜런은 죽었어. 저건 그냥 그림자야. 그러니까 공격해!’

‘그런데 왜 다시 나타난 거야? 그리고 왜 나를 공격하지?’

‘그림자라니까! 그림자! 강령술로 불러내서 딜런을 괴롭히고 있을 뿐이라고! 네가 공격하는 게 딜런에게 더 좋은 일이야, 그러니까 공격해!’

‘강령술?’

좀 더 자세히, 다독이며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딜런은 계속 공격했고, 피하고 막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 강령술. 더러운 백작이 딜런을 되살려 너를 막으려고 한 거야. 지금 100번째 시합 중인 건 알지? 레베카 백작님을 생각해. 레베카 백작님께 힘을 드려야 하잖아?’

‘100번째 시합. 레베카 백작님…….’

레베카 백작은 조금 소용이 있었다. 몸이 내 뜻을 따라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하고, 막는 게 다였다. 여전히 공격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딜런을 어떻게…….’

“크와앙!”

다시 한 번 딜런의 주먹에 맞아 공중을 날았다. 몸을 웅크리며 왼쪽 어깨와 팔뚝으로 맞았는데, 부러진 것 같았다. 검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면 피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을 텐데. 여분의 충격량을 줄이느라 땅을 굴렀다. 이대로는 안 된다. 몸이 금방 병신이 될 것 같았다.

그 일을 들춰낼 수밖에 없었다.

‘해리! 기억해! 떠올려! 딜런을 죽인 건 누구지?’

‘오거가…….’

‘아니야! 딜런을 죽인 건 오거가 아니야! 딜런은 4년 전 이 자리에서, 이 모랫바닥에 피를 흘리며 죽었어! 누가 그렇게 한 거냐고!’

‘……그게 누군데?’

‘바로 너잖아! 바로 네가 죽인 거라고! 너, 무패의 해리가 4년 전에 딜런을 죽이고 챔피언에 올랐잖아! 떠올려! 딜런의 명치를 찌르던 너를 떠올리라고!’

‘나? 내, 내가 딜런을 죽였다고?’

‘그래, 너야. 거기서 도망치지 마. 딜런을 죽인 건 너야. 그리고 다시 딜런을 편하게 해줘야 하는 것도 너고. 검을 들어! 주술사의 손에 놀아나는 딜런의 영혼을 해방해! 그게 딜런을 죽인 네가 할 일이잖아!’

내 말에 해리의 기억, 봉인된 기억이 서서히 그의 의식 속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위험한 도박이었다. 해리가 기억에 충격을 받고 완전 침묵 속에 빠질 확률이 높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난 그 좌절을 견딜 수 있을까?

조금 전 미친 해리가 날뛸 때와는 달랐다. 그땐 미친 해리라는 방어용 인격이 있었으니 움직일 수 있었지만, 한 번 사라진 미친 해리가 다시 나타날 것 같진 않았다. 이번에 해리가 침묵에 빠진다면, 온전히 내 힘으로 그 좌절을 이겨내고 몸을 통제해야 했다. 그게 가능할까?

하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결말은 같다. 어차피 지금 공격하지 못하면, 이러나저러나 죽는 거다. 그렇다면 도박을 걸어볼 수밖에.

해리가 기억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딜……런.”

나는 해리에게 몸의 주도권을 넘겨주었고, 해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짐승처럼 포효를 내지르는 딜런을 보며 왼쪽 팔을 붙잡고 일어났다.

잘 된 것인가?

그런데 그때, 고요한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있었다. 귀빈석 쪽이었다.

“모두 죽여라! 아무나 죽여! 이왕 죽을 거, 저놈들을 길동무로 삼자!”

============================ 작품 후기 ============================

원고료 쿠폰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자유를 얻는 길은 역시나 험난합니다.

해리는 큰 난관에 봉착했었습니다.

어제 카페에서 글을 쓰고, 드랍박스에 글을 저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열어보니....헐.

역시 자유를 얻는 건 쉬운 게 아닙니다.

추천과 댓글을 기다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디노스님! 물음에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게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혹시 사장 요새 안나온다는 거 같기도 해서....

아무튼, 모든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래도 사장은 좀 죽어야 하는 게 맞지만요ㅋ나중에 비중이 커질 것인가?

0